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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씨남정기 4

오늘의 쉼터 2011. 5. 1. 21:41

사씨남정기 4 

 

"사형(오빠)께서는 지인지감(知人之鑑)이 있고

또 천하의 일을 모를 것이 없이 지내셨는데 매양 사씨를 칭찬하되

우리 자부는 천하에 기특한 절대열부로서 옛날의 열부에 못하지 않다 하셨다.

또 네 일을 나에게 부탁하시기를 아직 연소하니

모든 것을 가르쳐서 그릇되지 않도록 하라고 하셨다.

또 자부에 대하여는 모든 일에 별로 경계할 바가 없다고 하셨으니,

이것은 선친의 총명이 사씨의 범행숙덕을 잘 아시고 한 말씀이었으니,

그 교자지도(敎子之道)가 어찌 범연하셨겠느냐.

그렇지 않을지라도 선친의 유탁을 생각함이 인자의 도리어늘

하물며 선친의 식감과 사씨의 열행에 이 같은 누명을 씌워서 옥 같은 처자를 의심하느냐?

이것은 필경 집안에 악인이 있어서 사씨를 모해함이 아니면,

시비들 가운데 간음한 자가 있어서 옥지환을 도적질해 낸 것이 분명하다.

그것을 엄중히 밝혀내지 않고 왜 그런 어리석은 의심을 하느냐?"
"고모님 말씀이 지당합니다."
하고 유한림은 곧 형장지구를 갖추고 시비들을 엄중하게 문초하였다.

애매한 시비는 죽어도 모를 수밖에 없었고

장본인인 설매는 바른대로 고백하면 죽을 것이 분명하므로

끝까지 고문을 참고 자백하지 않았으므로 마침내 시비들 가운데서

범인을 색출하지는 못하였으므로 두부인도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사씨는 누명을 깨끗이 씻어 버리지 못하였으므로 하당하여 죄인으로 자처했고,

유한림은 유한림대로 참언을 하도 많이 들었으므로

역시 사씨에 대한 의심을 풀지 않았으므로 집안에서 기뻐하는 자는 교씨뿐이었다.
"선친께서 항상 말씀을 빚내어서 사씨를 옛날의 열부에 비교하고

다른 사람들은 안하로 보니 첩인들 어찌 좋지 않은 일을 해서 남의 치소 능욕을 받겠습니까.

 첩의 소견으로도 두부인 말씀이 옳을까 합니다.

그러나 두부인 말씀도 역시 공평하지 못하셔서

사씨만 너무 칭찬하시고 한림을 너무 공박하시니 자못 체면이 없어서 민망스럽습니다.

옛날의 성인도 오히려 속은 일이 많사오니,

선친이 비록 고명하시나 사씨가 들어 온 후에 오래지 않아서 기세하셨으니

어찌 사씨의 심지를 예탁하심이며 임종시의 유언은 한림을 경계하심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두부인이 그 말씀을 빙자하여

모든 일을 사씨에게 상의하여 처리하라 강요하시니 어찌 편벽되지 않습니까?"


"사씨의 행색에 별로 구차한 점이 없어서 나도 이런 일은 없을 줄 알았더니

지금은 아무래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점이 있다.

요전에는 방예물의 저주 필적이 사씨 필적 같아서

그때는 집안의 누구의 참언인가 하고 불살라 버리게 하였지만

옥지환이 없어진 일 같은 중대한 사건을 본 뒤로는 금후에 어떤 지경에 이를지 매우 불안하다."
하고 유한림이 사씨에 대한 현재의 심경을 말하자 교씨가 이때라고 다그쳐 물었다.
"그러면 사부인을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입니까?"
"그러나 지금 명백한 증참이 없으니 이대로는 다스릴 수 없고

또 선친께서 사랑하셨고, 또 초토(焦土)를 함께 지내었고,

숙모께서 그토록 두둔하시니 어찌 처치하겠는가."
유한림의 이런 신중한 태도에 교씨는 불만인 안색으로 묵묵히 대답하지 않았다.
교씨가 또 잉태하여 십 삭이 차서 남아를 낳았으므로

한림이 기뻐하고 이름을 봉추(鳳雛)라 하고, 교씨 소생 형제를 사랑함이 장중보옥 같았다.


교씨는 한림이 없을 때를 타서 동청과 함께 흉계를 꾸미고 있더니,
"요전에 행한 계교가 실로 묘하였소.

옛말에도 풀을 뿌리째 뽑아 없애야 한다고 했으니 앞으로 어찌할까요?

더구나 두부인과 사씨가 옥지환 없어진 근맥을 잡아내어서 그 내막이 누설되면 어떡할까요?"
교씨가 전후사를 근심하자 동청이 교씨를 위로하면서 교사하였다.
"두씨가 옥지환 사건을 극력 추궁하고 있으니 숙질간을 참소하여 이간시키시오."
"나도 그런 생각이 있어서 두부인과 한림 사이를 이간시키고자 하지만

한림이 두부인 섬기기를 모친 못지 않게 하여

모든 집안 일을 두부인 뜻에 순종하니 그 계략은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러면 묘책이 곧 생각나지 않으니 두고두고 상의합시다."
하고 사씨 음해를 끈덕지게 벼르고 있었다.


이때 두부인은 사씨의 누명을 벗겨주려고 사람을 시켜서

옥지환이 없어진 단서를 잡지 못하고 심중으로 생각하기를,
'아무래도 교녀의 간계 같은데 단서를 잡지 못하였으니

그런 발설을 할 수도 없고 이 일을 장차 어찌할까.' 하고 속을 썩이고 있었다.

그래서 유한림 집에 오래 머무르기도 거북해 하다가

아들 두억(杜億)이 장사부 총관으로 부임하므로 그 아들을 따라 장사로 가게 되었다.

자기는 아들을 따라서 장사로 떠나는 것이 좋으나

사씨의 고생을 생각하면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마침내 장사로 떠나는 날 유한림이 두부인 모자를 청하여

큰 환송잔치를 배설하였는데 그 좌상에 사부인이 보이지 않았다.

두부인이 자못 울적하여 유한림에게 원망스러운 말을 하였다.


"오라버님이 세상을 떠나신 후로 현질 한림과 서로 의지하여 지냈는데

이제 갑자기 만리의 이별을 하게 되었으므로

꼭 현질에게 한마디 부탁코자 하는데 내 말을 꼭 지키겠느냐?"
"소질이 비록 신의가 없을지라도 고모님 말씀을 어찌 거역하겠습니까?

무슨 말씀인지 들려주십시오."
"다른 일이 아니라 사씨의 앞일을 부탁하련다.

사씨의 성행이 근엄하여 억울한 마음도 소견대로 변명하지 않으니 더욱 측은하다.

그 정렬한 점으로 보아서 무죄한 것이 틀림없으니

멀지 않아서 억울한 사실이 나타나려니와

만일 내가 이 집에서 없어진 후에 또 무슨 해괴한 일로 참언이 있더라도

곧이 들지 말며 혹 무슨 불미한 일이 있더라도 나에게 먼저 편지로 상의하고

내 의견이 있을 때까지 과하게 처치하지 말아서

나중에 경솔했다고 뉘우치는 일이 없게 하라."
"고모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교의를 근수하겠사옵니다."
유한림이 맹세하듯이 대답하자 두부인은 시녀를 불러서 물었다.
"사부인께서 어디 가시고 이 자리에 안 보이시느냐?

이 자리에 오시기를 꺼려하시거든 나를 그리로 인도하라."
시비가 두부인을 모시고 사씨 사는 곳으로 갔다.

가서 본즉 사씨가 녹발(綠髮)을 흐트린 채 얼굴이 창백하고

전신이 연약해져서 입은 옷 무게조차 이기지 못하는 듯이 애처로웠다.

 

이를 본 두부인의 마음이 칼로 저미듯이 아팠다.

수심에 잠겨 있던 사씨 부인이 고모님을 보고 반가워하며 축하 인사를 올리었다.
"이번에 고모님 댁이 영귀하셔서 임지로 행차하시매,

죄첩이 존하에 나아가서 마땅히 하직올려야 하오련만,

몸이 만고의 누명을 쓰고 있기 때문에 나아가 뵈옵지 못하와

제 목숨이 있는 동안에 다시는 뵙지 못하게 되면 무궁한 한이 되겠더니

천만 뜻밖에 누처에 왕림하여 주셔서 감사하옵니다."
두부인이 눈물을 흘리면서 위로하였다.
"오라버님의 임종시의 유언에 유한림을 나에게 부탁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되 내가 조카를 잘 인도하지 못한 탓으로

사람을 이 지경에 이르게 하였으니 모두 내 허물이다.

그리고 타일에 어찌 지하로 들어가서 오라버님 영혼을 뵙겠느냐.

모두 내 불명이지만 질부 너무 근심하지 말고

필경은 사필귀정으로 길운을 만나서 흑운을 벗어날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간사한 무리가 능히 모해하지 못하고

조카 한림이 자기의 불명을 뉘우치고 질부 누명을 씻어 줄 것이다.

예로부터 영웅열사와 절부열녀가 시운을 만나지 못하면

한때 곤욕을 당하는 법이니 널리 생각하고 심신을 상함이 없도록 하라.

이 유씨 가문이 본디 충문지가로서 간악한 소인에게는

원한을 사서 해를 많이 당하였으나 가중은 한결같이 맑더니

선대가 별세하신 후로 이렇듯 괴이한 변고가 있으니

이것은 집안의 요사한 시첩이 조카의 총명을 흐리게 한 까닭이다.

요사이 조카의 거동을 보니 그전의 총명과 맑은 기운이 하나도 없고,

나하고도 집안 일을 의논하는 일이 적어서 숙질간의 의도 감소되어 버렸다.

내가 동정을 살펴보니 한림에게도 귀신에 홀린 것 같아서

빨리 그 매혹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지만, 그것도 시기가 와야 미몽을 깨우칠 것 같다.

질부도 천정(天定)의 운수로 여기고 과도하게 심사를 상하지 말라."


되풀이하여 신신당부한 두부인은 시비를 시켜서 유한림을 그 방으로 불러오게 하였다.

두부인은 유한림을 맞아서 정색으로 슬퍼하면서 엄숙히 훈계하였다.
"요새 네 행사를 보니 아무래도 본심을 잃은 사람 같으니 매우 뜻밖의 일로써 슬프기 짝이 없다.

네 선친이 별세하실 때에 집안의 대소사를 나에게 부탁하신 말씀이

아직도 귓전에 새로운데 내가 용렬하여 질부 사씨의 빙옥 같은 행실까지

시운이 불리한 탓인지 누명을 쓰고 고통하고 있는 정사를 보고도

내가 멀리 떠나게 되니 마음을 놓고 갈 수가 없다.

내가 지금 질부 있는 이 자리에서 한 말을 꼭 부탁하겠다.

금후에 집안에서 질부를 음해하거나 혹 무슨 흉사를 보게 되는 경우라도

결코 사씨를 의심하고 냉대하지 말고 내가 돌아옴을 기다려서 처리하라.

질부는 절부정녀니까 결코 그른 생각이나 그른 행동은 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질부의 신세가 위태로운 정상을 보니 내 발길이 돌려지지 않는다.

그러니 조카 한림은 부디 조심하고 간사한 말을 듣지 말아라."


유한림은 이마를 찌푸리고 엎드려서 묵묵히 고모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두부인은 깊은 한숨을 쉬고 재삼 사씨의 일을 당부하고 돌아갔다.

사씨 부인은 가장 믿어 오던 보호자가 떠나감을 멀리 바라보며 슬프게 울었다.
교씨는 원수같이 여기다가 이제 멀리 장사로 감을 내심으로 기뻐하고 십랑을 불러 놓고,
"지금까지 원수 같던 두부인이 이제 아들을 따라 멀리 가게 되었으니

이때에 빨리 계획대로 해치우는 것이 좋겠네."
십랑이 찬성하고 계획을 진행하기로 하고 납매를 불러서 이리저리하라고 일렀다.

그 말을 들은 납매는 설매를 불러서 계교를 일러주었다.
"매우 중대한 일이니 먼저 교낭자께 알리고 하는 것이 좋을 것 아니요?"
하고 설매는 교씨의 확실한 다짐을 받으려는 생각에서 말하자

납매도 찬성하고 교씨와 함께 만나서,
"지금 사씨 부인을 이 댁에서 내쫓으려면 아씨 아드님

장기 아기의 목숨을 끊어야 한림께서도 격분하시고 계교를 행할 수 있을까 합니다."
교씨도 자기 아들의 목숨을 희생으로 삼아야 되겠다는 말에는 깜짝 놀랐다.
"미운 사씨를 위한 일이라면 무슨 일을 하여도 좋지만

어찌 귀여운 내 아들의 목숨을 재물로 바치겠느냐? 그리고 어찌 내가 살 수 있겠느냐?"


이에 악에 바쳐서 묵묵히 말을 못하고 있었다.
이때에 유한림은 두부인이 멀리 떠난 후 더욱 기댈 곳이 없어서

주야로 백자당에서 교씨와 즐겁게 지내던 중

아들 장지의 병이 낫지 않는 것을 근심하면서 납매와 설매에게 약시중을 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설매가 역시 사씨 부인의 시비인 춘방을 시켜서

약을 달이게 한 뒤에 장지에게 먹일 때 몰래 독약을 섞어서 먹였다.
이 얼마나 끔찍하랴.

교씨는 남을 잡으려고 제 자식을 죽이기까지 하였으니

어찌 천도가 무심하며 만고의 독부가 아니겠는가.

천진한 어린아이 장지가 약을 먹자마자 전신이 푸르게 부어오르고

일곱 구멍에서 일시에 피를 흘려 내면서 한마디 큰소리를 지르고 죽어 버렸다.

교씨와 유한림이 대경실색하고 장지의 시체를 살펴보니

독약을 먹고 죽은 것 같으므로 유한림이 의심하고

약 그릇을 자져와 남은 약을 개에게 먹여 본즉 약을 먹은 개가 즉사하였다.

이것을 본 유한림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는 것을 본 교씨가 대성통곡하면서,
"내 평생에 남의 원한을 살 만한 일은 한 적이 없는데

어떤 간악한 자가 우리 모자를 죽이려고 이런 악독한 짓을 했을까?"
하고 죽은 자식을 붙잡고 장지의 이름을 부르고 울다가 유한림에게 향하여,
"한림이 내 원수를 갚아주지 않으시면 나도 죽어 버리고야 말겠나이다."
유한림은 교씨를 위로하고 좌우의 시녀를 족쳐서

장지에게 먹인 독약의 출처를 추궁하려고 하였다.

사씨 부인은 시비 춘방이 설매의 꼬임으로 약을 달였는데

약을 쓴 뒤에 장지가 급사한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겁을 집어먹고 탄식하였다.
"장지의 어린 목숨이 불쌍하다. 죄 없는 자식이 어미를 잘못 만나서 참혹한 죽음을 하였구나.

공교롭게 내가 달인 약을 먹고 죽었다는

그 의심을 받은 내 신세가 앞으로 무슨 화를 입을지 모르겠다."


유한림이 서헌에 나와서 여러 비복들을 호령하고

당장에 납매와 설매를 잡아내다가 엄형으로 독약의 출처를 추궁하여

살이 터지고 피가 흘렀으나 좀처럼 자백하는 자는 나오지 않았다.

설매는 교씨의 심복이라 이를 갈고 불복하였으므로 유한림은 하는 수 없이

시비들을 모두 감금하고 자백하는 자가 나오기를 기다리려고 하였다.
시비들이 그 흉한 사고를 사씨 부인에게 알리고 통곡하였으므로

사씨 부인도 경악하면서 올 것이 마침내 왔다고 생각하였다.

 

"내가 이런 일이 있을 줄 예측한 지가 오래매 새삼스럽게 놀랄 것도 없다.

피하지 못할 운수일지도 모른다."
하고 안색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이튿날에는 유씨 종중이 모두 모여서 가문의 괴변을 처리하려고 의논하였다.

이 자리에서 유한림이 사씨의 전후의 죄상과 모든 의심쩍은 말을 하였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전부터 사씨의 현숙함을 알고 있었으며

사씨 또한 모든 친척을 후대하여 왔으므로 깜짝 놀라며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유한림은 반드시 증거를 잡아 내겠으니 비밀을 아는 사람은

가문을 위하여 서슴지 말고 증거인으로 나와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남의 집안의 비밀 일을 어떻게 알겠느냐고 펄쩍 뛰며 이구동성으로,
"이 일은 한림 스스로 잘 살펴서 처치할 일이지 우리가 어찌 판단하겠소.

우리 소견은 한림이 공명정대하게 처치하기를 바랄 뿐이오."
하고 은근히 사씨의 무죄를 암시하는 동시에

그런 불상사의 분규에는 휩쓸려 들기를 꺼려하였다.

 

유한림은 향촉을 갖추어서 사당 앞에 올리고

친척들과 함께 분향 예배하고 사씨의 죄상을 고하였다.

그 조상에 고발하는 글월에,
'유세차 가정 삼십 년 모월 모일에 효증조 한림학사 유연수는

삼가 글월을 현증고조(顯曾祖考) 문현각 태학사 문충공부군(文忠公府君),

현증조비 부인 호씨, 현조고 태상경 이부상서부군(吏部尙書府君) 현조비 부인 정씨,

현고 태사공 예부상서부군(禮部尙書府君), 현비 최씨 영전에 아뢰옵나니

부부는 오륜이요 만복지원이매 나라를 비롯하여

서인에 이르기까지 어찌 삼가지 아니하리오.

슬프도다, 저 사씨 처음으로 유씨 문중에 들어오매,

가내에 예성이 자못 자자하고 예도에 어김이 없으므로 천행이었습니다.
그러나 범사에 처음만 있고 내내 여일치 못하여 혹 불미한 일이 있어도

대체를 생각하고 책하지 않았더니 그 후로 사씨의 행색이 점점 방자하여졌습니다.

선고(先考)의 삼년상을 함께 모신 후에 출사하여

집에 있지 못하는 사이에 더욱 음흉하였고 모병(母病)을 빙자하고

본가에 가서 누행이 탄로되었으나 혹 억울한 중상을 입은 것이 아닌가도 생각하고

자취를 집안에 머무르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스스로 후회하지 않고 그 죄가 칠거에 더하니 조종심령이 흠향치 않으실 바이므로

후사멸절할까 두려워서 부득이 출거시키고자 하옵니다.

소첩 교씨는 비록 육례는 갖추지 못하였으나 실로 명가의 자손이요,

고서를 박람하여 가히 조종의 제사를 받듦직하온지라 교씨를 봉하여 정실로 삼나이다.'


유한림은 조상 영전에 고하는 이 글월을 다 읽은 뒤에 시비들을 시켜서

사씨를 데려다가 사당 앞에 사배 하직케 하매 사씨의 눈물이 비오듯 하였다.

친척들은 대문 밖에서 쫓겨나가는 사씨와 이별하고 모두 동정의 눈물을 흘렸다.

유모가 사씨 소생 인아를 안고 나오자 사씨 부인이 받아서 안고 차마 이별하지 못하였다.
"너는 내 생각을 말고 잘 있거라. 혹 우리가 다시 만날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

새도 깃을 잃으면 몸을 부전하기 어렵다 하니 나 간 뒤에 넌들 어찌 완명할 수 있으랴.

서로가 죽더라도 하생에서 미진한 인연을 후생에 다시 만나서

모자의 연분이 되기를 원한다."
사씨의 슬픈 회포가 피눈물로 화하여 흘렀다.

문전에서 발이 떠나지 않는 사씨 부인은 다시 자기 모자의 슬픈 신세를 하소연하였다.


"네 조부님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에 모시고 따라가지 못하고 살아 있다가

지금 이런 광경을 당하니 어찌 슬프지 않으랴."
하고 사랑스런 아들 인아를 다시 유모에게 돌려주고

죽으러 가는 죄인처럼 가마에 오른 뒤에도

유모에게 안긴 천진난만한 인아의 조그만 손을 잡고 어루만지다가

마지막으로 어린 손을 놓고 이내 가마가 떠나자

어린 인아가 엄마를 따라가려고 애처롭게 울어댔다.

사부인은 우는 목소리로 유모에게

인아의 장래를 수없이 당부하고 하인 하나만 데리고 떠나버렸다.
이때 유한림 집안에서는 교씨의 흉계가 성공되었으므로

교씨의 시비들이 저희들 세상이 되었다고 기뻐하였다.

그 시비들은 교씨를 사당 앞으로 인도하고 분향 예배시키기를 서둘렀다.

주홍군의 패옥 소리가 맑게 울리고 황홀히 빛나서 마치 신선과 같이 아리따운 자태였다.

사당 예배를 마치고 정실 부인으로서 많은 비복들의 하례를 받았는데

교씨는 비복들에게 향하여 훈시하였다.
"내가 오늘부터 새로 이 댁의 내사를 다스릴 터이니

너희들은 각각 맡은 일에 근면하고 죄를 범하지 말아 주도록 명심하라."


이에 응하여 시비 중의 팔구 명이 앞으로 나와서 교씨에게 아뢰었다.
"그전의 사씨 부인이 비록 출거하셨으나

여러 해 섬기는 동안에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다행히 부인께서 허락하시면 문 밖까지 나가서

전 부인께 이별 인사를 드리고 전송하고자 하옵니다."
"그것은 너희들의 인정상 원하는 것이니 내가 어찌 막겠느냐?"
교씨의 허락이 내리자 모든 시비들이 일시에 문 밖으로 달려나가서

이미 저만큼 떠나가는 가마를 따라가서 통곡하였다.

사씨가 교자를 멈추고 타일렀다.
"너희들이 나를 생각하고 이렇게 나와서 나를 보내 주니 고맙다.

앞으로는 새로운 부인을 잘 섬기며 나를 잊지 말아다오."
이 말에 여러 시비가 울면서 배별을 슬퍼하여 마지 않았다.


유한림의 집에서 쫓겨난 사씨는 가마꾼에게

신성현으로 가지 말고 유씨의 묘소로 가라고 분부하였다.

교자가 묘소에 이르자 사씨는 시부모 묘전에 수간초옥을 짓고 거기서 홀로 살았다.

그 뒤로 한적한 산중에서 화조월석에 친부모와 시부모를 사모하는 효성이 지극하였다.
이런 소식을 들은 사씨의 남동생이 찾아와서 눈물을 흘리면서 탄식하였다.
"여자가 남편에게 용납되지 못하면 마땅히 친정으로 돌아와서

형제와 함께 지낼 것이지 누님은 왜 이런 무인 산중에 홀로 고생을 하고 계십니까?"
"네 말은 고맙다. 내가 어찌 동기지정과 모친 영혼을 모르겠느냐.

그러나 한번 친정으로 돌아가면 유씨 집안과는 아주 인연이 끊어지고 말 것이요,

또 한림이 비록 갑자기 나를 버렸으나 내가 돌아가신 시부님께 죄진 일이 없으니

시부님 산소 밑에 여년을 마치는 것이 나의 마지막 소원이다.

그러니 내 걱정을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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