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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씨남정기 2

오늘의 쉼터 2011. 5. 1. 20:09

 

사씨남정기 2

 

세월이 물 흐르듯이 빨라서 어느덧 삼상(三喪)을 마치고

유한림이 직임에 나가니 황제가 중용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유한림이 조정의 소인을 배척하는 기개가 강직하므로

엄승상이 꺼리고 방해하였으므로 벼슬도 제대로 승진하지 못하였다.

그뿐 아니라 유한림의 나이가 삼십에 이르렀으나 슬하에 자녀가 없어서 망연하였다.

사부인이 이를 근심하고 한림에게 호소하였다.
"첩의 기질이 허약하고 원기가 일정치 못하여

당신과 십여 년을 동거하였으나 일점 혈육이 없으니

불효삼천 가지 죄에 무자(無子)의 죄가 가장 크다 하여

첩의 무자한 죄가 존문에 용납하지 못할 것이나

당신의 관용하신 덕으로 지금까지 부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매 당신은 누대독신(累代獨身)으로

이대로 가다가는 유씨 종사가 위태로우니 첩을 개의치 마시고

어진 여인을 취하여 득남득녀하면 가문의 경사일 뿐 아니라

첩의 죄도 면할 수 있을까 합니다."


유한림은 허허 웃고서 부인을 위로하여 말하기를,
"소생이 없다 하여 당신을 두고 다른 첩을 얻을 수야 있소.

첩이 들어오면 집안이 어지러워지는 근본인데 당신은 왜 화근을 자청하는 거요?

그것은 천만부당하니 그런 생각은 하지 마시오."
"첩이 비록 용렬하나 세상 보통 여자의 투기를 잘 알고 경계하겠으니 첩의 걱정은 마시오.

태우의 일처일첩은 옛날에도 미덕이 되었으니

첩이 비록 덕이 없으나 세속 여자의 투기는 본받지 않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고모 두부인이 한림 부부의 사정을 살피고,
"듣건대 옛날에 관저와 수목은 진실로 태자의 투기함이 없었기 때문에

도리어 덕이었지만 만일 문왕이 미색을 탐하시고

의종이 편벽하셨으면 태우가 투기는 하지 않았더라도

어찌 궁중에 원한이 없었으며 규중이 평생 어지럽지 않겠느냐.

지금 시속이 옛날과 다르고 성인이 아닌 범인으로서

어찌 투기가 생기지 않으리라고 장담하랴.

공연히 옛날의 미명을 사모하여 화근의 씨를 뿌리지 않도록 함이 좋다."


"제가 어찌 고인(古人)의 미덕만 앙모하겠습니까마는

시속 부녀가 인륜을 모르고 시부모와 남편을 업신여기고

질투로 일을 삼아서 가도를 문란케 하는 것을 기탄하는 바이오니

첩이 비록 어리석어도 교화를 못할지라도 그런 패악을 창수하겠습니까.

제가 비록 어리석으나 몸을 반성하지 못하고

요색에 침혹하는 일은 결코 않기로 맹세하옵니다.

그보다도 가문을 이을 후손을 보는 것이 더욱 중합니다."


사부인의 뜻이 이미 굳게 정한 것을 보고 탄식하여,
"네 뜻은 매우 갸륵하다.

그러나 가부가 만일 너 같은 현부의 간언을 청납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내 말을 생각하고 뉘우칠 테니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
하고 두부인이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이튿날 매파가 와서 사부인에게 권하였다.
"한 곳에 마땅한 여자가 있는데 부인이 바라고 구하는 뜻에 맞을까 합니다."
"내가 구하는 여자가 어떤 것인 줄 알고 하는 말이오?"
사부인이 묻자 눈치 빠른 매파는,
"댁의 둘째 부인으로 구하시는 뜻이 요색을 취하심이 아니고

사람이 믿음직하고 덕이 있으며 몸이 건강하여

아들을 낳아서 후손을 이을 수 있는 여자인가 짐작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용모와 재색만 잘난 여자는 부인께서 구하시지 않으실 줄 압니다."
"호호호. 대관절 그 여자의 근본을 자세히 말해 보소."
"양반댁 사람으로서 성은 교(喬)요, 이름은 채란(彩蘭)인데,

조실부모하고 지금은 그의 형에게 의지하여 있는데 방년이 십육 세입니다."
"다행히 벼슬 다니는 양반댁 딸이라면 하류천녀와 다를 것이니 가장 마땅하오."
하고 남편 한림에게 매파의 말을 전하면서 권하였다.
"내가 소실을 두는 것은 바쁘지 않소.

그러나 당신의 말이 관대하여 받아들이겠으니 택일해서 좋도록 하소."


그리하여 곧 그 집에 통혼하고 집에서 친척을 모아 간략한 잔치를 열어서

교씨를 제이 부인으로 데려왔다.

교씨는 유한림과 본부인에게 예배하고 자리에 앉았다.

주빈 일동이 교씨를 바라보니 자태가 매우 아름답고

거동이 경첩하여 마치 해당화 꽃가지가

아침 이슬 머금은 듯이 고와서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두부인 혼자만은 안색이 우울해지며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날이 저물자 교씨를 화원별당에 머무르게 하고

유한림이 새로운 둘째 부인과 밤을 지냈는데 남녀의 두 정분이 각별하였다.


이때 두부인이 질부되는 사씨에게,
"한림의 둘째 사람은 마땅히 질둔유순한 여자를 얻어야 할 것을 잘못 택한 것 같다.

저토록 절색가인을 얻었으니 만일 저 여자의 성품이 어질지 못하면

장차 집안이 평온치 못할 것 같아서 걱정이다."
하고 미리 걱정하였다.

그러나 사부인은 태연한 태도로,
"옛날의 위장강의 고운 얼굴과 공교로운 웃음으로도 현덕지덕을 가작하여

지금까지 절대가인이 반드시 간교롭지 않음을 증명하고 있는데

색이 곱다고 어찌 어질지 않으리까?"
"장강은 어진 부인이었지만 자색은 그리 곱지 못하였던 모양이다."
하고 서로 웃었다.

그러나 이튿날 두부인은 사씨에게

재삼 새로 맞은 교씨를 조심하라고 이르고 돌아갔다.


유한림은 교씨 처소의 당호를 고쳐서 백자당(百子堂)이라 하고,

시비 납매 등 다섯 명으로 교씨의 시중을 들게 하였다.

교씨는 총명민첩이 지나친 교활한 솜씨로 유한림의 마음을 잘 맞추며

본부인 사씨도 잘 섬겼으므로 집안이 칭찬하여 마지 않았다

 

 

멀지 않아서 교씨 몸에 잉태하였으므로 유한림과 본부인 사씨가 매우 기뻐하였다.

한편 간사한 교씨는 아들을 낳지 못할까 미리 염려한 나머지 여러 무당을 불러서 물었지만

어떤 자는 생남한다고 하고 어떤 자는 생녀한다고도 하였다.

그리고 또 아들을 낳으면 단명하고 딸을 낳으면 장수한다는 점괘풀이도 하였다.

교씨는 이런 무당들의 불길한 점괘에 마음을 놓지 못하고 근심으로 지냈다.

하루는 시비 납매가 교씨에게 이상한 말을 속삭였다.


"동리에 어떤 여자가 있는데 호를 십랑이라 합니다.

본디 남방 사람으로서 여기 와서 우거 중인데 재주가 비상하여 모를 것이 없으니

그 사람을 불러다가 물어 보십시오."
교씨가 그 말을 듣고 기뻐하고 곧 자기 거처로 불러들였다.

교씨는 그 십랑에게 운수를 물었다.
"임자는 뱃속에 든 아기의 남녀를 알아낼 재주가 있소?"
"제가 비록 식견이 밝지 못하오나 수태한 사람의 남녀를 분별치야 못하겠습니까?

부인의 손을 잠깐 빌려주시면 진맥한 후에 정확하게 판단해 올리겠습니다."
교씨가 팔을 걷고 맥을 짚어 보이자 십랑이 잠시 맥을 짚어 본 뒤에,
"여맥입니다."
하고 말하자 교씨는 그 엄연한 선언에 깜짝 놀라면서,
"대감께서 나를 이 댁으로 들여놓으신 것은 한갓 색을 취하심이 아니라

사속할 생남으로 농장지경(弄掌之慶)을 보고자 하신 것인데

만일 첫아기를 생녀하면 낳지 않느니만 못하니 이 일을 장차 어쩌리요."
"제가 일찍이 산중에 들어가서 도인을 만나서 수업하고

복중의 여맥을 남태로 변화시키는 술법을 배운 바 있습니다.

그 뒤에 그 술법을 시험해 보았더니 영험이 백발백중입니다.

부인께서 꼭 생남하시고 싶으시면 저의 그 묘한 술법을 한번 시험해 보십시오."


교씨가 반색을 하고 그 술법으로 다행히 생남하면

천금을 아끼지 않고 후한 상을 주리라고 약속하였다.

십랑은 그 술법이 매우 어렵다는 태를 뺀 뒤에 문방사우를 청하여

기묘한 부적을 여러 장 써서 기괴한 비방을 많이 한 뒤에

교씨의 방 안의 각처와 침석 속에 감추어 둔 뒤에,
"저의 술법은 끝났습니다. 금후 만삭이 되면 반드시 옥동자를 낳으실 것입니다.

그때 다시 와서 득남 하례를 하겠으며 후하신 상금은 그때 받을까 합니다."
하고 십랑은 자신만만하게 돌아갔다.

 

그 후에 어느덧 십 삭이 차매, 교씨는 과연 순산득남하였다.

어린아이의 이목이 청수쇄락하고 크기가 세 살된 아기만 하매,

한림은 본부인 사씨와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고

노복들도 모두 경희하며 칭송하였다.
교씨가 남아를 낳은 뒤로는 유한림의 교씨에 대한 대접이 더욱 두터워지고

사랑이 비할 데 없어서 백자당을 떠난 일이 없고

아들의 이름을 장지라 하여 장중보옥같이 여겼다.

더구나 본부인 사씨는 아기에 대한 정이 극진하였으므로

교씨가 낳은 아이인지 모를 정도로 두 부인 사이의 정까지 한층 깊어졌다.


때는 마침 늦봄이라 동산의 백화가 만발하여 경치가 아름다웠다.

유한림이 황제를 모시고 서원에서 잔치를 배석하고 집에 일찍이 돌아오지 못하였다.

이때 사부인이 책상에 의지하여 글을 보고 있었는데,

시녀 춘방이 와서,
"지금 화원 정자에 모란꽃이 만발하였으니 구경하십시요.

대감께서 아직 조정에서 돌아오지 않았으니

한가로운 이때에 한번 화원에 소풍하시고 꽃구경하십시요."
하고 권하였다.

사부인이 반가운 소식이라고 곧 책을 덮고 옷을 가볍게 갈아입은 뒤에

시녀 오륙 명을 거느리고 연보를 옮겨서 화원의 정자에 이르렀다.

버들 그늘이 정자의 난간에 기대고 꽃향기가 연못에 젖었으며

그윽한 경치가 매우 고요하여 봄경치가 매우 즐길 만하였다.

사부인이 시녀에게 차를 명하고 교씨를 청하여

함께 봄경치를 구경하려던 참에 바람결에 문득 거문고 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사부인이 이상히 여기고 귀를 기울이고 자세히 들으니

거문고 소리가 맑아서 비취가 옥쟁반에 구르는 듯, 사람의 마음을 깊이 감동시켰다.

사부인이 좌우 시녀에게 물었다.
"어디서 누가 저렇게 거문고를 잘도 타느냐?"
"그 거문고 소리가 교낭자 침소에서 나는 성싶습니다."
"그럴까? 음률은 여자의 할 바가 아닌데 교낭자가 어찌 거문고를 저리 잘하겠느냐.

남의 말은 믿기 어려우니 저 소리 나는 곳에 가 보고 와서 사실대로 고하라."


시비가 사부인의 명을 받들고 그 거문고 소리나는 곳으로 찾아가 보니 과연 백자당이었다.

시녀가 밖에서 안을 엿본즉 교씨가 요리상을 풍부하게 차려 놓고

섬섬옥수로 거문고를 희롱하고

한 사람의 미인이 화려한 의상으로 마주앉아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시비가 자기의 눈을 의심하고 몇 번 자세히 본 뒤에

돌아와서 사부인에게 사실대로 고하였다.
사부인은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고 교랑이 어느 사이에 거문고를 배웠으며

또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누구냐고 노하였다.
그리고 교씨를 불러서 좋은 말로 훈계한 후에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게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곧 시비를 보내어 교씨를 데려오라고 명하였다.


이때 교씨는 십랑의 술법으로 생남하고

유한림의 사랑이 두터워지자 십랑과 더욱 친해졌다.

그 뒤로 교씨는 십랑의 힘과 방예로 유한림의 총애를 독점하려고 애쓴 나머지

음률로 유한림의 마음을 매혹시키고 농락하려고

 거문고와 노래까지 배우게 되었던 것이다.
"낭자가 유한림의 총애를 더 얻으려면 음률을 배우시오.

거문고와 노래는 장부를 혹하게 하는 마술이니

거문고 잘하는 사람을 스승으로 삼으시오."
"나도 그런 마음이 있으나 그런 사람을 구할 길이 없으니 소개해 주오."
"거문고 잘 타는 여자가 있는데 이름이 가랑으로서

거문고와 노래의 명수이니 그 여자에게 청하여 배우시면 됩니다."
교씨가 찬성하고 십랑을 통해서 가랑을 백자당으로 불러들였던 것이다.

 

 

가랑은 화방 계집으로서 온갖 풍악에 능숙하였는데

교씨의 부름을 받고 와서 곧 뜻이 맞고 정이 깊어졌다.

교씨는 본래 영리하였기 때문에 가랑에게 음률을 배우기 시작하자

거문고와 노래 솜씨가 일취월장하였다.

교씨는 음률의 스승이자 이야기 친구인 가랑을 옆방에 숨겨두고

유한림이 조정에 나가고 없는 틈에 음률을 배웠다.

그리고 유한림이 집에 있을 때는 그 배운 솜씨의 음악으로

유한림의 심정을 혹하게 해서 더욱 총애를 받고 마침내 몸까지 독점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유한림은 사부인과는 점점 멀어져서 침소에는 얼씬도 않고

교씨 침소에만 사로잡혀 있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그날도 유한림이 조정에 나가고 집에 없었으므로

요리를 차려 놓고 가랑과 함께 술을 즐기면서 가곡을 희롱하고 있는데,

사부인의 시비가 와서 명을 전하고 같이 가자고 재촉하였다.

교씨가 황급히 주안상을 치우고 시비를 따라서

사부인이 있는 화원의 정자로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사부인은 넌지시 좋은 낯으로 맞아서 자리에 앉힌 뒤에 조용히 물었다.
"교랑 침소에 와 있는 미인이 어떤 여자지?"
"친정 사촌 누이입니다."
교씨가 거짓말을 하였다.

사부인이 엄숙한 태도로 정색을 하고,
"여자의 행실은 출가하면 시부모 봉양과 낭군 섬기는 여가에

자녀를 엄숙히 교육하고 비복을 은혜로 부리는 것이 천직이 아닌가.

그런데 방종하게 음률과 노래로 소일하면

가도가 자연 어지러워지니 교랑은 잘 생각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조심하게.

그리고 그 여자는 곧 제 집으로 보내며 이런 내 말을 고깝게 여기지 말게."
"제가 배우지 못하여 그런 잘못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이제 부인의 훈계 말씀을 들었으니 각골명심하겠습니다."


사부인은 재삼 위로하고 조금도 오해하지 말라고 자상하게 일렀다.

그리고 그날이 지도록 화원에서 꽃구경을 하면서 즐겁게 지냈다.
하루는 유한림이 조정에서 돌아와서 백자당에 들렀으나

술이 취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난간에 기대서 봄밤의 원근 경치를 바라보니

달빛은 낮같이 밝고 꽃향기 그윽하매 호흥(好興)이 발작하였다.

그래서 교씨에게 거문고를 타고 노래를 하라고 청하자 교씨가 딴청을 썼다.
"바람이 차서 감기가 들었는지 몸이 불편하여 못하겠으니 용서하십시오."
"허허, 그게 무슨 말인고.

여자의 도리는 남편이 죽을 일을 하라고 해도 반드시 어겨서는 안 되는 법인데

그대가 병 핑계로 내 말을 거역하니 무슨 못마땅한 일로 그러는 것이 아닌가?"
"실은 제가 심심하기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더니

부인이 불러서 책망하기를 네가 요괴스럽게 집안을 어지럽게 하고

한림을 혹하게 하니 다시 그런 행동을 말라고 꾸중하셨습니다.

만일 또다시 노래를 부르면 칼로 혀를 끊고 약을 먹여 벙어리로 만든다 하셨습니다.

제가 본디 비천한 계집으로 유한림의 은혜를 입사와

부귀영화가 이같이 되었으니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지금 부르시라는 노래를 못하는 고충을 짐작하시고 용서하여 주십시오.

더구나 한림의 청덕이 저의 잘못으로 흠이 되고 흐려지실까 두려워합니다."
교씨가 공교로운 말로 은근히 사부인을 좋지 않게 중상하자

유한림이 깜짝 놀라면서 속으로 본부인 사씨의 질투라고 생각하고 교씨를 위로하였다.


"내가 그대를 취함이 모두 부인의 권고로 이루어진 것이요,

지금까지 한번도 그대에 대하여 나쁘게 대하는 것을 본 일이 없었다.

이제 부인이 그대에게 그런 책망을 한 것은 필경

비복들이 부인에게 참언으로 고자질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부인은 본디 성품이 유순한 사람이라 결코 그대를 해치려고 할 리가 없으니

부질없는 염려는 말고 안심하라."
교씨는 가슴이 투기로 타올랐으나 대범한 유한림의 말에는 잠자코 있었다.

그것이 더욱 유한림의 동정을 사게 되었다.
속담에도 범의 그림에서는 뼈를 그리기 어렵고,

사람의 사귐에는 마음을 알기 어렵다고 하듯이,

교씨는 교언영색으로 말은 겸손한 탈을 쓰고 있었으므로

사부인은 교씨가 겉다르고 속다른 본심을 알 수 없었다.

 

사부인이 교씨를 훈계한 것은 조금도 질투에서 나온 사심은 아니었다.

다만 음란한 노래로 장부의 마음을 미혹할까 염려한 것보다는

실로 교씨에게 정숙한 여자의 몸가짐을 하라는 심정에서 충고한 데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교씨는 사부인의 충고에 원한을 품고 교묘한 말로 유한림에게

은연한 참언을 하여 내화를 빚어 내게 하였으니 이것은 교씨의 요악한 투기 때문이었다.


이때 유한림의 친한 벗이 하나 있었는데 그 친구가 자기의 집사로 있던

남방 사람 동청(董淸)을 천거하여 문객으로 두라고 권하였다.

유한림이 마침 집사를 구하던 중이라 집에 두고 집일을 보게 하였다.

동청은 영리하고 민첩하여 남의 마음을 잘 맞추어서 영합하기를 잘하였다.

친구도 그의 마음이 착하지는 못하여도 마음을 잘 맞추어서 좋게 여기다가

외임으로 떠나게 되자 동청의 허물은 말하지 않고 유한림에게 천거하고 갔던 것이다.

유한림이 동청을 불러서 사람됨을 보았을 때에 동청의 언사가 민첩하여 흐르는 물 같았다.

유한림은 믿는 친구의 추천에다 그처럼 영리하였으므로 곧 집에 두고 서사(書士)의 일을 시켰다.

그런데 동청의 위인이 간사하고 교활하여 유한림에게 아첨하고 하고자 하는 것을

미리 알아차리고 비위를 잘 맞추었으므로 순진한 유한림이 기뻐하고 신임하게 되었다.

그런 동청의 태도를 본 사부인이 한림에게 귀띔하였다.


"들리는 말에도 동청의 위인이 정직하지 못하다 하니

큰 일을 저지르기 전에 내보내는 것이 좋을까 합니다.

전에 있던 곳에서도 요악한 일을 많이 하다가 일이 탄로되어 쫓겨났다 하니 곧 내보내십시오."
"남의 풍설의 진부를 알 수 없고 친구의 추천으로 받아들였으니

좋고 나쁜 것은 좀 두고 보아야 할 것 아니오."
"사람은 부정한 사람과 함께 지내면 주위 사람까지 부정에 물들게 되는 법이니

빨리 내보내서 가도를 어지럽히지 말도록 예방하는 것이 좋을까 합니다.

만일 그런 표리부동한 사람 때문에

지하로 돌아가신 부모님의 가법을 추락시키면 그때 후회하여도 소용이 없습니다."
"당신의 말도 일리가 있으나 세상 사람들이

남을 중상하기 좋아해서 하는 풍설인지 모르니 좀 써 봐야 진부를 알 것이며

좋지 못할 것을 발견했을 때 처리하는 것이 우리의 길이 아니겠소."

 

다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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