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음택지

완주의 풍수지리

오늘의 쉼터 2010. 10. 28. 18:57

 

완주의 풍수지리 

완주는 원래 전주와 둘이 아닌 하나였으나 전주와 분리되면서 풍수상 완주를 살피는데도 

그 범위가 상대적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특히 완주군에 속한 지역들이 시세 확장으로 

전주시에 편입되면서 그 서술 범위도 축소될 수 밖에 없다.

여기서는 위에서 도표로 제시한 순서대로 완주군내의 풍수적 현장 가운데 

묘지, 태실, 집터 및 사찰 몇 곳을 제시하여 구체적으로 실제 호사가들이나 관광객들의 

구경 및 답사의 안내가 되게끔 하고자 한다.

 

음택 풍수

 

(1) 구이면 상학 전주김씨 시조묘

몇 년전 북한 김일성 사망과 함께 완주군 구이면 상학 마을 뒤 모악산 전주김씨 시조 김태서 묘가 

세인의 관심과 답사의 대상이 되었다. 지금도 그곳은 꾸준히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이곳이 유명하게 된 것은 이곳이 김일성의 시조묘라고 알려진 이후의 일이다. 

진위야 어찌 되었든 이곳은 이미 묘지명당으로 전국적인 명소가 되어버린 만큼 가장 먼저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을 처음 소개한 손석우는 자신이 쓴 책 ≪터≫에서 "김일성의 운명은 이미 그 시조묘

(김태서 공의 묘를 지칭)에 의해 정해져 있다. 

김일성과 같은 큰 인물은 산천의 정기 없이는 생겨나지도 못한다. 

김일성은 이 묘역의 정기를 한 몸에 받고 태어났는데 묘자리가 미좌축향으로 

만49년 동안은 절대권력을 행사하게 되어 있다. 

특히 49년의 근거는 77수로 천도에 의해 지축을 여는데 77수리로 계산해 절대제왕, 

절대권력을 향유하는 요지부동의 지배자라는 의미이다."라고 썼다. 

그 이후 이곳은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고전적 풍수지리설을 근거로 하여 김태서 공의 묘가 과연 "천하의 대명당"인가에 대해서는 

좋은 땅임에는 틀림없지만 김일성과는 별 상관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김일성 시조묘라고 이야기되어지는 김태서 무덤의 경우, 주변국세는 아주 뛰어나다. 

무덤 뒤에 있는 주산 겸 현무에 해당되는 산봉우리의 모습은 풍수지리의 고전인≪금낭경≫에서 

말하는 "현무수두(玄武垂頭)"(주산의 모양이 단정하게 굽어보는 듯하면서 앞을 바라보는 모양)에 

해당되는 형국이다. 

백호는 주산에서 그 가지를 끌고 내려가 이 무덤 가까이서 후덕하게 감싸고 있다. 

내청룡 또한 비록 본신(주산)에서 그 가지를 뻗어 내려가지는 않았지만 형세가 웅장하고 

힘이 있어 보인다.

 

특히 모악산 정상(현 송신소 위치)에서 뻗어져 내려오는 외청룡은 이 무덤을 완벽하게 감싸고 있다.

(이 외청룡의 끝 부분이 주작에 해당된다.)

그러나 풍수전문가들은 이곳이 비록 청룡·백호가 아름답지만 풍수의 핵심인 용과 혈이 제대로 

그 요건을 갖추지 않아 용진혈적에 어긋나는 곳이기에 풍수상 가치는 떨어진다고도 말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풍수를 논함에 있어서 가장 먼저 살피는 것이 

용(풍수에서는 산줄기를 용으로 표현한다.)이고 그 다음이 穴(무덤자리), 

그 다음이 砂(주위 국세, 청룡, 백호등), 水(물길이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느 쪽으로 빠져나가는가를 살핌)이다.

 이곳의 용(龍:산줄기)을 살핌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보아야 할 것이 생룡인가 사룡인가의 여부이다. 

생룡이란 문자 그대로 산줄기가 살아 있어야 한다. 

산줄기가 밝은 빛깔을 띠면서 힘차게 뻗어 내려오는 모양이 마치 살아 있는 뱀이 움직이는 것처럼 

좌우 혹은 상하로 몸통을 흔들어야 한다. 

따라서 어느 무덤이 생룡에 위치하느냐 아니면, 사룡에 위치하느냐를 알기 위해서는 그 무덤 뒤로 

뻗어 올라가는 용의 생사여부를 먼저 살펴야 한다. 

이곳은 용의 변화가 큰 특징을 보이지 않다고 한다. 


둘째, 용을 살펴서 그것이 생룡을 판명되었으면 그 다음에 살펴야 할 것이 흔히 사람들이 

"명당"으로 잘못 지칭하고 있는 혈(유골이 묻히는 자리)의 맺힘(結穴)여부를 살피는 것이다. 

그런데 이곳은 무덤 아래로 수십미터를 계속하여 산능선이 계속 흘러가기 때문에 결혈이 

안되었다는 것이 풍수가들의 이야기이다. 

어쨌든 이곳은 이미 전국적으로 유명한 곳이 되었기에 풍수 호사가들은 한번 정도 꼭 

가 볼만 한 곳이다. 

 

(2) 용진면 금상리 회안대군묘

전주에서 진안 방면으로의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완주군 용진면 금상리(현재 전주시에 편입됨)가 

나타난다. 

이곳에는 태조 이성계의 넷째 아들이자, 태종의 바로 위 형님인 회안대군의 무덤이 있다. 

이곳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몇 해 전 TV드라마 「용의 눈물」에 회안대군이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은 풍수호사가들에게는 그 이전부터 널리 알려진 유명한 곳이다. 

같은 피붙이 사이에서도 명당이라면 매정하게 맥을 잘라 기를 죽이는 단적인 예를 여기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태조 이성계는 전처 한씨에게서 여섯 형제, 후처 강씨에게서 두 형제등 모두 여덟 아들을 두었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세운 뒤 후처 소생이자 여덟째 아들인 방석을 세자로 책봉한다. 

이에 다섯째 아들 방원이 불만을 품고 후처 소생인 두 아들을 모두 죽인다. 

그후 전처 소생이자 둘째 아들인 방과가 세자가 되어 제2대 임금인 정종이 된다. 

 

원래 정종에게는 뒤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따라서 동생들 가운데 누군가가 임금자리를 이어야 했다. 

이 자리에 가장 관심이 많았던 이들이 바로 넷째인 방간(회안대군)과 다섯째인 방원이었다. 

이 두 형제의 권력 다툼은 정종 즉위 2년째 1400년에 무력 충돌로 나타난다. 

이 무력 충돌에서 넷째인 방간(회안대군)이 다섯째 방원에게 패하여 사로잡힌다. 

사로잡힌 후 사형을 선고받으나 사면되어 황해도 토산으로 유배를 간다. 

얼마 후 회안대군은 이곳 완주군 금상리로 유배된다.

회안대군이 유배생활을 한 지 20년이 흐르는 동안 태종도 나이가 들어 아들인 세종에게 

임금자리를 넘겨주었다. 

오래 전에 귀양을 보낸 형 회안대군도 그리워졌다. 

이에 태종은 형의 귀양을 풀어주고 한양으로 올라올 것을 명한다. 

회안대군은 그대로 전주에 살겠다며 한양 가는 것을 거절하였으나 

태종이 재차 상경할 것을 명하니 회안대군은 병중의 몸으로 상경한다. 

그러나 그는 도중에 은진 땅에서 병사한다. 

이때가 1420년, 회안대군의 나이 57세, 귀양길에 오른 지 20년의 세월이 지난 때였다. 

회안대군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태종은 놀라움과 애도의 정을 금치 못하여 

국장의 예우를 베풀며 지사(풍수)를 보내어 길지를 택하도록 했다. 

이곳 마을 사람들이 들려주는 말이다.

태종이 세 사람의 지사를 파견하여 자리를 잡게 했다. 

조정에서 파견된 지사들은 쥐가 먹이를 찾으러 밭으로 내려오는 형상 명당을 잡아주고 

한양으로 돌아가 태종에게 그 결과를 보고하였다. 

이때 태종이 "어떤 자리더냐?" 라고 물었다. 

이에 "대대로 군왕이 나올 자리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이 말에 태종이 깜짝 놀라면서 

"회안의 자손이 대대로 군왕이 된다면 내 자손은 어떻게 된다는 말이냐?"

하면서 다시 이곳의 지맥을 자르게 했다. 

이 명을 받은 지사들이 다시 전주에 내려와 맥을 자르고 뜸을 떴다. 

그 자리가 자그마치 수십군데였다. 

임무를 완수한 지사들이 상경하여 태종에 보고하기를

 "이제는 회안의 자손들이 대대로 호미 자루를 면치 못하게 되었습니다."하니 

태종이 안도하는 기색이었다.

그로부터 거의 600년이 다 된 지금도 뜸자리와 맥을 자른 흔적은 역력하다. 

무덤 뒤로 이어지는 산 능선을 따라 주산을 향해 몇십 미터 올라가다 보면 

직경 6-7미터 안팎의 도두룩한 부분이 나타난다.(풍수용어로는 현무정이라 부른다)

그러나 원래의 볼록한 모습이 아니고 평평하게 깎아지른 모습이다. 

뜸을 놓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다시 한참 오르다 보면 

이 무덤의 주산에 해당되는 산 정상에 다다른다.  

 

주산에 다다르기 몇 미터 전부터 자연스럽지 못하게 골이 패인 곳이 나타난다. 

그뿐만 아니다. 산 정상은 거대한 암반으로 둥근 모습을 보이나 

그 거대한 암반 덩어리를 무엇으로 잘랐는지 사람 키보다 깊도록 깊은 골이 길게 나 있다. 

또한 암반 맥을 자른 바로 몇 미터 근처에는 뜸을 놓았던 흔적이 완연하다. 

지금부터 600년 전 풍수적 이유로 맥을 자른 가장 대표적인 곳이기에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할 가치가 충분한 곳이다.

 

(3) 용진면 간중리 밀양박씨 부인묘

봉황이 둥지로 돌아오는 형상(飛鳳歸巢穴)의 특이한 명당이다. 
전주역에서 고산 방면으로 가다 보면 봉서재 입구라는 안내비가 서 있다. 

진묵대사가 묵었던 절로 유명해진 봉서사로 가는 길이기도하다. 

도로와 교통편이 나쁜 탓인지 수려한 산세와 계곡, 산그림자가 물에 그대로 비추일 정도로 

맑은 저수지와 봉서사의 좋은 약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은 한적한 곳이다. 

진묵대사의 부도석이 계속 자란다는 소문 때문에 가끔씩 이곳을 찾는 이들도 있지만 

이 또한 드문 편이다. 

비봉귀소혈의 명당 주인은 고려조에 전법판사라는 벼슬을 지낸 밀양박씨의 부인묘이다 

봉서사를 가기 전에 좌측으로 봉서재라는 재실이 있는데 묘는 재실 뒤에서 한참 가파르게 

올라가다 보면 나타난다.

밀양박씨 문중에서는 조선의 팔대명당 가운데 하나로 내세울 만큼 자부심을 갖는 자리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의 산세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교과서적인 형국일 뿐만 아니라 

이 부인의 후손이 현재 전국에 40-50만 명으로 추정될 정도로 번창하였기 때문이다. 

명당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자연스러우면서도 위엄이 있고 높으면서도 높아 보이지 않고 

사방을 고루 둥글게 싸고 있으면서도 탁 트인 느낌과 편안함을 준다 

주산에 해당되는 무덤 뒷산은 단아하게 좌우로 양날개를 펴서 

그 안에 무덤자리에 해당되는 혈을 감싸고 있다. 

마치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랄까? 

그래서 이곳을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으로 부르기도 한다.

과연 이 명당의 무엇이 전국에 4-50만 명이나 되는 자손을 번창하게 했을까?

호기심 많은 일부 풍수들의 관심거리이다. 

앞에서 명당을 구성하는 인자들은 매우 다양하며, 

그 가운데 어떤 한 가지가 두드러질 때 그 영향은 절대적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풍수는 이곳 명당이 그렇게 많은 자손을 번창케 한 요인으로서 무덤 앞에 정면으로 바라다 

보이는 산봉우리 모양이 남자의 성기(혹은 문필봉)와 같기 때문일 것이라고 풀이한다.

밀양박씨 문중에서도 이 무덤 앞에 보이는 특이한 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던 듯하다. 

이 무덤에 대한 기록인 <봉서동비봉귀소혈명기(鳳棲洞飛鳳歸巢穴名記)>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

 

"위봉산 아래에 오도치라는 고개에서 과협(흔히 고갯길로 많이 이용되는데, 

풍수에서는 기가 흐르는 증거로 본다)을 이루고, 봉서산(지도에는 서방산으로 표기, 봉서사가 위치)에 

봉황이 둥지로 돌아오는 형상의 명당을 형성하였다. 

왼쪽 산줄기인 청룡이 얼굴을 드러내고, 관성이 안산이 된다. 

백명의 자손과 천명의 손자가 나올 자리로서 38대에 걸쳐서 장군과 재상이 나올 땅이다."

풍수지리에 뛰어난 식견을 가진 사람이 작성한 글이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이 관성이 안산으로 된다는 구절이다. 
관성이란 앞에서 언급한 수많은 풍수 개념들 가운데 하나로서 안산 너머로 보이는 산을 말한다. 

대개 안산 뒤에 있는 산들을 조산(신하가 임금에게 예의를 표하는 산이라는 뜻임)으로 부르는데, 

관성은 그 조산 가운데에서 안산을 받쳐 주는 산봉우리를 말한다. 

모든 명당이 이 관성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얼핏 보아서는 쉽게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이다. 

명당 앞에 이 관성이 있으면 매우 길한 작용을 하는 것으로 보는데, 

이것이 없으면 후손이 벼슬을 못한다고도 일부 풍수지리서에는 적고 있다. 

이 명당에서의 관성은 앞에서 언급한 남성의 성기 모양과 같이 약간 삐죽하니 솟아 나온 부분이다. 

바로 이 관성이 이 명당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일부 풍수들은 주장한다. 

혈상은 유혈(乳穴)에 속한다.

 

(4) 기타 완주군 소재 묘지 명당들


묘지 명당 하나 하나에 대한 자세한 소개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하므로 

여기에 명당과 그 소재를 일람하도록 하여 답사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


 ① 전의이씨(全義李氏) 선산
  ·소재지 :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
  ·명당의 특징 : 지네명당(蜈蚣飛天穴) 혹은 퉁소혈로 알려져 있다.

 ② 전주유씨(全州柳氏) 유습(柳濕)묘
  ·소재지 : 완주군 고산면 율곡리
  ·명당의 특징 : 용사취회형(龍蛇聚會形)

 ③ 전주최씨(全州崔氏)묘 
  ·소재지 : 완주군 소양면 죽절리
  ·명당의 특징 : 장군대좌혈(將軍大座穴)

 ④ 진주소씨(晉州蘇氏) 선산 
  ·소재지 : 완주군 이서면 산정리
  ·명당의 특징 : 벌(蜂)명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