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음택지

하연(河演) 정승묘의 전설

오늘의 쉼터 2009. 3. 20. 22:45

 

하연(河演) 정승묘의 전설

 

인천의 진산이면서 주산이 되는 소래산에는 세종때 영의정을 지냈던 하연(1376~1456)의 묘가 있다.

이 묘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살피기 앞서 간평(看評)부터 하기로 하겠다.

소래는 인천의 동남방에 있다. 수인선 협궤철도가 지나는 곳으로서 포구가 유명하다.

고구려때에는 '매몰소현'이었고 고려숙종때에는 왕비인 인준태후의 친정이라하여 '경원군'으로 승격되였다.

그러던 것이 오늘날의 인천으로 바뀐것은 인종의 왕비인 순정왕후의 친정 고을이기 때문이었다.

인천의 주산 되는 소래산을 중심으로 서쪽에는 청량산이, 동남쪽으로는 성인산의 군자봉이 문필봉으로

솟아올랐다.

그 북동남간에 관악산과 금지산, 수리산의 아넉한 산줄기는 기고만장으로 펼쳐져 있고, 북으로는 넓은

부평들 한복판을 계양산 높은 봉우리가 동서로 병풍처럼 둘러 있어 낙산을 이 주산의 정상에서 내려뻗은

용세는 굽이굽이 이어져 내려 산아래 무공단좌형(武公端坐形)의 명당을 이룬다.

안산을 바라보면 외래조안(外來朝案)으로 천마산이 둘러있고, 작은 물줄기는 청룡을 감싸 흘러가니

묘쓴 지 수백 년 후에 대발할 진혈이 있게 마련이다.

이 명당터에 바로 진주 하씨 하연과 부인 성산 이씨와 합장되여 있다.

하연은 부윤 자종의 아들로서 정몽주에게서 배웠다.

태조5년(1396)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친 다음 세종5년(1423)에 대사헌,

세종13년(1431)에 대제학, 세종29년(1449)에 영의정이 되였다.

단종1년(1453)에 돌아갔는데 묘를 지금의 소래산 아래에 잡았다.

묘를 쓴 뒤로 어느때부터인가

 

괴이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다음과 같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하연이 죽은뒤 어느땐가 부터 인천 부윤이 부임만 하면

그날밤으로 변사를 당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한두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이어 일어나는 괴변이니

어느 누구도 인천 부윤으로 가려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흉한의 손에 죽는 것도 아니고 연유도 모른 채 죽어가기 때문이었다.

 선임 사또들은 저마다 각오를 단단히 했다.

어떤 귀기가 오더라도 반듯이 물리쳐 없애겠노라고 다짐을 하면서

공포감에서 벗어나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다.

하는 수 없이 조정에서는 방을 내걸어 인천 부윤을 자청하는 사람에게는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부임시키 기록 하였다.

그때 서울에 기골이 장대하고 호걸찬 장부가 있었으니 백씨성을 가진 젊은이었다.

저녁 무렵에 도착한 신임 사또는 관속노비들을 대강 점검하고 저녁상을 받았다. 

신임 사또가 부임하는 날이면 관방노속들은 물론이요,

신임사또의 친지들까지 합세하여 변사의 진실을 밝혀보려고

선화당 대청에 대촉을 밝히고 사또와 자리를 같이 하였다.

그러나 밤이 되면 사또는 또 어김없이 말 한마디 못하고 눈을 부릅뜨며

기절초풍하고 죽어가는 것이었으니 참으로 괴이한 일이었다.

왜 하필이면 사또만 죽는 것인지 그 이유를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더니,

정말로 희한하고 불쾌하기 짝이 없는 변고였다.

그는 인천 부윤으로 자원하고 길일을 잡아 부임하였다. 

이윽고 해가 지니 관속노비들은 횃불을 높이 들어 사방을 밝히었고,

이방들은 신임 사또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시간이 점점 흘러감에 따라 관속들의 초조감은 더해지갔고 전에 변괴가 났던 시간에 다다르자

사또 또한 태연해보이려고 했지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순간 대촉이 바람도 없는데 일렁이며 꺼질 듯 말덧 하더니 싸늘한 기운이 몸을 움츠러 들게 하였다.

때를 같이 하여 멀리서부터 관노들의 벽제(벽제: 지위 높은 사람이 지나갈때 구종별배가 잡인들의

통행을 통제하던 일) (별배 : 벼슬아치 집에서 불이던 하인)

소리와 말 발급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곧이어 아문을 거쳐 걸어 들어오는 발자욱 소리가 들였다.

신임 사또는 마음이 어지러워지고 극도의 공포가 엄습해 오는 것을 느꼈다. 

 이른바 정체를 알 수 없는 귀신의 무리들이 몰려오는 것이었다. 

그는 정신이 혼몽해지는 가운데서도 기운을 차리고 벌떡 일어나 앞뜰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것이 도대채 어찌 된 일인가 한 백발의 정승이 구중구배들을 이끌고 당상에 오르는 것이 아닌가.

백사또는 엉겁결에 머리를 조아려 하례를 하였다.

백발의 정승은 껄껄 웃으며, 내가 이제서야  이고을의 임자를 만났구나.

그동안 집이 편치 못해 고을의 부윤에게 이야기 좀 해보려 했으나 말도 꺼내기 전에 모두 죽어버리니

안타까운 마음만 더해갈 뿐이었다.

이제 내가 비로서 기상이 출충한 대장부를 만났으니 비로소 소원을 말하게 되였노라.

그대는 들어보라.

소래산 아래에 내무덤이 있는데

그 앞에 우시장이 있어 지저분하기 짝이 없고 냄새가 고약하기는 이루 말할 수 없도다.

내가 살아서 무슨 덕을 많이 쌓았는지 참으로 운좋게 대명당에 들어서 쉬고 있는데

우시장 때문에 지기가 상하고 체백마저 고통스러우니 

그대가  앞장서서 소시장을 다른곳으로 옮겨주었으면 한다. 하고

말하더니 창졸지간에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신임 사또는 잠시 후 정신이 들어 깨어 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른 관속들은 아무런 낌새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 었다.

신임 사또 역시 그 시각이되자 혼절하여 쓰러지니 이번에도 또 초상을 치르는가 싶었든 것이다.

그렇게 걱정하던 중에 사또가 홀연히 깨어나니 여기 저기서 환호성이 울리는 것도 당연했다.

그들은 사또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었다.

정승 귀신이 찾아와서 부탁의 말을 남기고 갔다는 이야기를 듣자

모두 머리를 조아리려 지엄하신 영혼에게 하례를 올렸다.

 새날이 밝았고 신임 사또가 밤새 무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고을 사람들은 저마다 몹시 기뻐 했다.

지난밤 사건의 자초지종이 전해지자 모두들 혀를 차며 놀란 마음을 억누르지 못했다.

 

"맞았어. 거기는 하연 정승의 묘역인데 언제부터인가

소시장이 생겨 시끌 벅적하고 똥냄새가 진동하니 영의정의 체백이 편안 할 리 있었겠는가?

시장을 다른곳으로 옮겨야 됨세.  암 그렇구 말구. 명당이 어디 그렇게 아무 데나 생기는 감.

청룡이 겹겹이 호종하고 백호가 중중한 저곳에 맺인 혈이야말로 이곳에서는 으뜸인데

진혈이 어떻게 스스로를 지키지않을 수 있겠나?"

 

삼삼오오로 모여 이렇게 이야기 하니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한결같았다. 

그리하여 새로 부임한 사또는 즉시 우시장을 옮기고 묘소 근처를 청결히 한 후

제수를 장만하여 하연 정승의 묘에 참배를 하였다.

그 후부터는 아침마다 꿩이 한 마리씩 떨어져 있어 그것으로 적(炙)을 삼아 제사를 드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명당진혈이 자기 스스로를 지키는 사례로써 민간에 널리 전해져오는 이야기다.

더불어 대장부의 기개와 용맹함이 귀신의 소원을 들어 적덕하였다는 미담이기도 하다.

(육관도사의 풍수 명당이야기 (하) 손석우 지음 터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