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농사꾼의 개똥철학
엉터리 농사꾼이 동창모임에 참가하겠다고
왕대나무를 베어내는 작업을 중단한 채 서울에 올라 왔다.
모임이 끝났으면 즉시 시골로 내려갔다면야
이렇게 몸과 마음이 묵직하지는 않았을 터다.
서울 체류기간이 고작 삼 일 정도인데도 좀이 쑤신다
어제에는 시골로 내려간다고 벼르고 별렀는데도
궂은 날씨 핑계를 댔다.
덕분에 잠실 주변의 대형서점 두 군데에 두 번이나 들러서
3월 11일 입적한 법정 스님의 책 몇 권을 얼른 샀다.
그 큰 서점에서도 책들이 벌써 동났다, 다 팔렸다고 한다.
법정 스님의 책을 더 산 이유는 단순하다.
그 분이 쓴 글들이 명문장이기에 글쓰기를 익히는 데
요긴한 교과서이다.
어제도 어떻게 하면 글 잘 쓸까 하고 고심하면서
내 글 어디에 약점이 있는가를 따져보았다.
첫줄, 첫문장서부터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첫줄, 첫문장서부터 독자의 관심과 시선을 잡아끄는
그런 흥미와 재치, 유머 감각이 없었다는 판단이다.
본문인 내용조차도 재미 없고, 흥미도 없고, 더군다나 감동도 없다는 뜻일 께다.
더욱이 마지막 문장에서는 긴 여운을 남겨야 하는데도 이조차 없다고 보았다.
오늘 시골로 내려 가서, 텃밭을 천천히 일구면서 더 생각해야겠다.
엉터리 농사꾼이며 게으른 농사꾼이기에 올 봄철 씨앗 뿌릴 시기를 놓칠 것 같다.
이무려면 어떠랴 싶다.
어깨쭉지가 아프다는 구실로 게으른 농사꾼이 더 되어야겠다.
게으름을 피면서도 마음의 텃밭만큼은 잘 가꿔야겠다.
어리석은 나를 그나마 지탱해 주는 것이 글쓰기라면서 습작에 충실해야겠다.
습작의 대상에는 살아 있는 식물, 작은 동물, 날씨 등 기후변화도 포함될 것이다.
이들에게도 애정과 관심을 가지면서 쓰고자 하는 글에 이들을 연계시켜야겠다.
자잘한 것들을 소재로 하는 글이 나한테는 생태산문이 될까?
하는 기대감으로 올봄을 보내야겠다.
하지만 신변잡사, 신변잡기 등의 수준만큼은 조금씩라도 벗어나고 싶다,
뛰어 넘고 싶다.
높이 뛰다보면 나중에는 더 높이 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오늘을 살아야겠다.
게으른 농사꾼한테도 개똥철학이 스며들기를 바란다.
<수필가 최윤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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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여러분...
농사는 모든 직업에서 가장 정직한 직업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글을 쓸 때에도 서론-본론-결론과
기-승-전-결의 틀 안에서 써야 합니다.
농사도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땀을 흘리며 잡초를 제거해야 하고,
가을에는 그동안의 노력에 따라 풍성한 수확과 쭉정이를 거둬야 합니다.
아직은 게으른 농부의 마음을 읽으면서
그래도 땅을 생각하는 자유인을 생각해 봅니다.
화요일, 흙과 고향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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