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전상서◈
‘여보세요’
“그래 아빠다.”
수화기 넘어 들려오는 일흔 되신 아버님의 목소리다.
당신 젊으실 때 엄부 노릇 미안해서 서른을 훌쩍 넘긴 두 아이 아빠에게
“그래 아빠다.”속으론 둘째아들 무척이나 귀여우셨나 보다.
아직 당신 이름으로 전화기 한 대 없이 일흔을 살으셨다.
어쩌다 자식 생각에 이웃집 전화한 번 빌려 쓰자고 아끼고 아끼던
사탕 한 줌 들고 “아가야 이거 먹어라.” 하시며 이웃집 툇마루에
걸터앉으신다.
세상사는 이야기, 농사 이야기, 차마 전화 빌려 쓰잔 말이 나오질 않아
긴 서론을 더 길게 늘여놓고 그래도 당신 아들 그리우셨는지,
"이 사람아 전화 한 번만 씀세" 어렵사리 내뱉어 겨우 수화기 받아들고
윗주머니 뒤적여 꼬깃꼬깃 적어두신 작은아들 전화번호 행여 잘못 눌러
전화요금 많이 나올까 두 번 세 번 확인하고 꾹꾹 번호를 누르신다.
어쩌다 추석에 약주 한 병들고 가면 아들이 사다준 귀한 술이라며
한잔 드시고 갈무리하시고, 또 한잔 드시며 아들 딸 본 듯이 미소 한 번
지으시고, 또 생각나면 그냥 한번 쳐다만 보시다가 손님 오면 자랑삼아
한잔 대접하고, 설날이 오기까지 반 병이 남는다.
비싼 술 아까워 두 잔을 못 드시며 힘든 농사일 막걸리로 다 하시고
이젠 허리 굽어 지게질도 못 하실 때, 장성한 자식들 도회에 나가 살아
보고 싶어도 자주 볼 수 없으니 전화로 목소리나 들어볼 요량으로 며느리가
사다 드린 사탕 봉지를 여신다.
그렇게 한 세월 살다 손자 둘 손녀 둘에 외손자 일곱을 두시고
일흔 되시던 해 억수 내리던 날 바람처럼 구름처럼 홀연히 떠나셨다.
아빠 하며 가슴에 한번 안겨 드리지 못하고, 술 한 병 고기 한 근이 무슨
대수라고 명절마다 그리도 술만 사다 날랐는지……
고3인 큰딸, 출장이라도 갔다 오면 현관에서 부터 아빠 하며 달려와
넙죽 안긴다.
이젠 다 자라 껑충 뛰어오르면 감당이 안 되지만 마음엔 한없는
행복이 넘친다.
당신도 그런 마음이셨을 터인데, 그 마음 이해 못 하고 늘 하는 대로
‘아버님 절 받으세요.’ 방바닥에 넙죽 엎드려 큰절 올리는 것으로
당신께 지킬 예의는 다 지킨 양 턱 하니 마주앉아 이것저것 집어 주시는
음식만 먹었었다.
자식을 키워봐야 부모 공을 안다고 했던가?
철들자 머리는 희끗희끗해져 오고, 인제 와서 산소 앞에 무릎 꿇고 사죄드린들
이미 지나버린 세월인 것을, 당신 살아 실제 그 무릎에 한번 안겨
드리지 못하고 정겹게 아~빠 한번 불러 드리지 못한 것이 이렇게 두고두고
후회가 될 줄은 몰랐다.
오늘 밤 꿈에라도 혹여 뵙게 되면 아~빠~~~목이 터져라 불러 드리렵니다.
뼈만 앙상한 가슴일 지라도 세 살 적 아이 되어 넙죽 안겨 드리렵니다.
<<시인, 수필가 이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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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걷히지 않는 새벽,
창천에 떠 있는 음력 열나흘 달을 훔쳐보며 카네이션 한 바구니 들고
아버지, 어머니가 잠들어계신 곳을 다녀왔습니다.
차디찬 봉분 앞에 엎드려 할 수 있었던 건 엄마~~아버지 부르며
방울방울 눈물 흘리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이렇게라도 찾아뵙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저야 살아 계실 때 다 하지 못한 효도 때늦은 후회로 고개 숙이지만
우리 님들은 후회로 남지 않도록 시부모님이나 친정 부모님 가리지 않고
곤경 하여 자식의 도리를 다했으면 참 좋겠다 싶습니다.
국보 가족님!
오늘 하루만이라도 하시던 일손 잠시 내려놓으시고 자식들의 사랑 마음껏
받으시고 기뻐하시는 즐거운 하루를 보내시길 예람 이가 소망합니다.
고운님의 가슴에 빠알간 카네이션 한 송이 달아 드리겠습니다.
비록 마음으로 드리는 꽃이지만요.
박꽃처럼 웃으시는 아름답고 행복한 하루 보내십시오.
♣김미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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