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풍수지리

육관도사 손석우

오늘의 쉼터 2009. 3. 26. 20:02

 

육관도사 손석우

전. 현직 대통령 가족 묘터 봐준 당대 최고의 지관

육관도사 손석우 충남 가야산 대원군 부친묘 옆에 자신을 묻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가족묘원은 천선하강의 명당입니다.
" 지난 대선 때 김대통령의 가족묘터를 봐준 육관도사 손석우씨가 8월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죽어서도 대화제.

육관도사가 묻힌 곳이 명당이 것이라는 데 세인들의 관심이 집중된 것.
그러나 충남 가야산에 묻힌 그의 무덤은 불법이라 해서 이장될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한다.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 집안의 묘 단골로 잡아줬다

"왕비가 탄생하고 집안이 흥해질 겁니다."

김복동의원(노태우 전 대통령 처남)의 회고이다.

"저는 풍수지리 같은 걸 신뢰하지 않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게 되자 집안 형님께서 좋은 터에다

아버님을 모시기 위해 육관 손석우씨를 찾았나 봐요.
손씨는 너스레가 뛰어난 지관이었습니다.
손씨는 대구 북쪽으로 10여 Km 되는 동명마을 뒷산에다 묘를 쓰라고 했지요.
선친묘에 서기가 서려있는 고로 우리집안이 발복할 거라며 허풍을 떨었으나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렸습니다."

서울 망우리 묘지기 한 노인은 육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전두환씨가 대통령에 취임하기 직전이었습니다.
한밤중에 손석우씨가 수많은 장정을 데리고 공동묘지로 올라왔습니다.
관리사무소의 허락도 받지 않고 이순자 여사의 할아버지 이봉학 묘를 파헤치는 겁니다.
내가 달려가 이 무슨 짓이냐 호통을 하자 손석우씨가 국보위 위원장(당시 전두환씨 직책)

허락 받고 묘를 이장하는 중이나 잠자코 가만히 있으라는 겁니다."

손석우씨의 진두지휘로 이봉학씨의 관은 헬리콥터로 경기 용인군 내사면 금박산 정상으로 옮겨졌다.
이순자 여사가 할아버지 묘를 옮기게된 사연은 이렇다.
이순자씨 아버지 이규동씨가 은밀히 손석우씨를 만났다.
이규동씨는 손씨에게 "우리 집안 발흥을 위해 명당 자리 하나 잡아주시구려"라고 말했다.
손씨는 대뜸 왕비가 날 자리가 있다며 당장 이봉학의 묘를 용인 금박산 정상에다 이장하라고 권유했다.

"그곳은 학이 날아가는 형국의 명당터입니다요. 곧 왕비가 날 자리지요."
손석우씨는 지난 대선 직전 하의도에 있던 김대중 대통령 부모의 묘와 포천 천주교 묘역에 있던

전처와 여동생의 묘를 경기도 용인시 이동명 묘봉리 산에다 이장시켰다.

한편 손석우씨는 93년 자신의 베스트셀러 '터'에서 김일성 사망을 1년 앞서 예언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자칭 당대 최고의 지관, 손석우씨가 8월 26일 지방 출장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72세. 그는 죽어서도 화제를 모았다.
언론은 손석우씨의 죽음을 뒤쫓았다.

그는 풍수의 달인.
자신의 무덤 터는 비범할 터.

어느 곳에다 자신을 묻었는가?

그 묘터의 형국은 어떠한가.
그의 돌연한 심장마비는 진실인가.
그의 죽음을 놓고 왜 가족들은 한동안 쉬쉬했나.
그는 각종 송사에 휘말렸는데 그의 잘못은 무엇인가.
사망하기 전 그의 행적은.
육관의 묘터는 후손에게 화목을 가져다주는 길지

육관은 충남 가야산에다 자신의 시신을 묻었다.
가족들은 8월 28일.
비밀리에 육관의 시신을 거두어 장지로 향했다.

 

당대 최고의 풍수면 호화스런 꽃상여도 있을 법한데 그러나 영결식엔 가족외 문상객은 없었다.
09시 발인제로 시작, 개토제 산신제 하관 평토제 반혼제 등으로 엄수했다.
장사를 지내고 3일째 되는 날 삼우제를 지내고 길거리에 짚을 깔아 밥을 놓고선 혼이 그 밥을 먹도록 했다.
육관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으나 한동안 가족들이 외부인과 단절했으므로 그의 묘터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와 절친했다는 어느 풍수는, 치악산에 육관의 묘가 있다느니 고향 울진 평해라느니

내뱉았지만 모두 낭설이었다.

 

가야산..
육관의 묘는 어떤 형국일까?
기자는 풍수연구가인 야은 거사(김승기)와 함께 육관의 묘를 답사하기 위해 충남 가야산을 향했다.
차 안에서 야은거사가 말한다.
"원래 대원군 아버지 묘는 연천땅 남송정에 있었습니다.
풍수에 능한 대원군은 풍수 정만인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듣고 귀가 솔깃해지지요.
정풍수 말하길 '내포 지방에 명당자리가 둘 있는데 북쪽(가야산)에는 이대천자지지가 있고,

남쪽(홍성 오서산)에는 만대영화지지가 있나이다.
대원군은 자미원이 있다는 가야산을 택하게 됩니다.
그래서 정풍수는 가야산을 찾게 됩니다.
가야산 주봉인 석문봉에서 뻗어내린 송낙바위 맥이 동으로 달리다가 멎은 곳에 1천4백년된

고찰 가야사가 있었어요.
정풍수는 이 절 5층 석탑 자리가 대명당터임을 인지하게 됩니다.
바로 여기가 자미원이다 하며 탄복을 합니다.
그러나 이 곳에 묘를 쓰려면 불탑을 제거해야 하는데 그 일이 그리 쉽습니까.
영악한 대원군은 임시방편으로 가야사에서 서북쪽 4백m 지점에다 부친을 모시게 되지요.
그후 대원군은 가야사에 승려가 살지 못하도록 합니다.
급기야 이절은 폐절이 되고 맙니다.
승려들로 하여금 절에 불을 지르게 합니다.
이렇게 한 후 마침내 대원군은 부친을 가야사 5층 석탑 자리에 모시게 됩니다.

이후 대원군 형님인 흥녕군과 흥원군이 악몽을 꾸게 되지요.
하얀 소복을 입은 노인이 나타나 크게 노하며, 나는 금탑의 사신이다.

내 집을 허물고 네 아비를 묻어? 미구에 너희들은 죽는 줄 알아라.
형님들의 꿈 이야기를 전해들은 대원군은 도리어 이렇게 말하지요.
형님, 그렇다면 그 곳은 필경 길지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렇게 하여 묘를 쓴 겁니다.
나중 대원군은 부처를 불태운게 민망했던지 아들이 임금으로 즉위하자마자

5층석탑이 있는곳 아래에 보덕사라는 절을 짓게 되죠.

손석우 영감은 평소에 대원군이 찾은 곳은 자미원이 아니다.
가야산엔 남연군 묘보다 더 좋은 명당터가 있다.
그곳이 바로 자미원이다 라고 주장했지요.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육관의 묘가 육관이 말했던 자미원인가 보죠?"

차는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에 멈췄다.
3부 능선 산길을 걷노라니 길가에 국화가 피어 있다.
예산, 서산에서는 국화꽃 잎을 따서 찹쌀가루와 반죽하여 단자를 만들어 먹는데 이를 국화전이라 한다.

육관이 묻힌 가야산 연봉 중의 상가리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처지가 이러할진데 어떻게 이곳에다 묘를 썼을까.
도립공원에 묘를 쓴게 탄로 날까봐 가족들은 그토록 쉬쉬한게 아닐까
(아들은 자신의 명의로 된 땅에 아버지를 모셨다고 주장한다).

가야산은 원효대사가 머물고 있었다는 원효암 자리가 있으며 넓은 동굴과 맑은 샘이 있다.
원효는 가야산을 이렇게 칭송했다.
"산모습 물기운이 나라 안에서 가장 뛰어난 형국은 사람의 내장부와 같노라."

육관의 묘는 석문봉 기슭에 있었다.
대원군의 친산인 남연군 묘도 이 봉우리 아래에 있다.

석문봉 산정에서 내려다보면 골과 골을 뒤덮는 임해가 장관이다.
중국 대륙을 향해 몸을 낮추는 낙조와 노을이 그만이고 산속에는 나무숲이 우거진 옥녀폭포 계곡이 있다.
육관의 묘 앞에는 비석도 석상도 없는 평범하기 이를데 없는 봉분이었다.
손씨의 아들 광식씨에 의하면 지난해 9월 육관이 몸소 묘터를 잡고 자신이

이 곳에 묻혀야 할 이유를 설명했다 한다.

이유는 바로 이곳이야말로 북두칠성의 기운을 한몸에 받는 곳이라는 것이다.

묘지 앞엔 못이 있다.
생전에 육관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미원 터 앞엔 못이 있지.

북두칠성에서 내려온 천사가 잠시 이 못에서 목욕재계하고 다시 천상을 향한다네.
용연이라 할 수 있지.
용들이 사는.

이 못 위에는 병풍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는 남성의 힘찬 심벌 같이 생겼다네."

묘를 둘러보니 영락없이 생전에 육관이 말한 자미원 바로 그곳이다.
야은 거사가 무덤터를 평한다.
"이 자리는 형국론으로 복치형입니다.
꿩이 적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알을 품고 웅크린 자세를 하고 있습니다.

복치형으로 대표적인 묘혈은 개성에 있는 파평 윤씨의 묘혈이죠.
파평 윤씨 후손들에 의하면 옛날 윤씨가 고향을 등지고 개성에 와서 살았는데,
그가 죽자 운구를 하던 도중 갑자기 가마 막대가 부러져서 더 이상 운구를 못해 할 수 없이

그 자리에서 매장을 했는데 그 곳이 다시없이 좋은 복치형 자리죠.
이 곳에서 파평 윤씨를 비롯해 남원 윤씨, 철원 윤씨 등의 분파가 나와 후손들이 번창하게 됩니다.
복치형은 자손들이 건강하고 평안하게 그리고 적당한 부도 갖추고 살 수 있는 자리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육관 묘자리는 수맥이 전혀 흐르지 않는 좋은 터입니다.
풍수의 기본인 용혈사수가 잘 갖추어졌지만, 한가지 흠이라면 사신사 중에서 주작이 밋밋하다는 게 흠입니다.
다행히 청룡이 백호를 싸안고 있어 장풍득수에는 지장이 없는 자리입니다.
혈장 좌우 물길이 서출동류라서 좋고, 상가리 저수지가 5년전에 생겨서 계수즉지로서 좋습니다."
야은 거사가 수맥 탐지기구인 L 로드로 손씨의 무덤 주변엔 수맥이 흘러가는지 안 흘러가는지를 체크한다.

기구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죽어서도 화제를 모았던 손석우씨 그는 사망 전 많은 송사에 연루되기도
모 방송국 'PD 수첩' 취재팀은 육관을 파렴치범이라고 공격했다.
취재팀은 육관이 고객에게 명당을 잡아주겠다고 유혹, 상당한 돈을 갈취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서울지법 민사합의 16부는 손석우씨로부터 명당이란 말을 듣고 손씨 아들의 땅을 사서

조상 묘지로 썼던 한모씨가 손씨 등을 상대로 낸 매매대금 반환청구소송에서 손씨측은 한씨에게

매매대금을 돌려주라고 했다.
졸지에 사기꾼으로 전락하게된 육관은 사망하기 1년 전부터 언론과의 접촉을 꺼리며 산천을 주유했다.

손씨 사망과 관련 그의 최근 행적을 추적 취재해 본다.
손씨는 한 여인에게 이런 양심고백을 했다.
충북 중원군 동량면 조동리 뒷산에 가면 한울선원이라는 기도터가 있다.
이곳은 홍윤흥이라는 단군을 숭배하는 여인이 세웠다.
기도터 앞에는 쌍거북 바위가 있다.
산 기도 하기에 좋았던지 서의현 전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등이 이곳에 자주 내려온다.
손석우씨도 지난 겨울, 진눈개비를 맞으며 이곳에 내려와 산 기도를 드렸다.
이곳은 갈마음수혈, 목마른 말이 와서 목을 축이고 가는 형국이다.
손씨는 천등산 지등산 인등산에 둘러싸여 있는 한울선원에서 홍윤흥씨와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세 산봉우리 위에 떠 있는 하늘에서 큼직큼직한 함박눈이 기도터 앞마당 쪽으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육관 선생님,
이유야 어떻든 모름지기 지관은 돈과 멀리해야 합니다.
명당 아닌 곳에 흉사를 막을 수 있다 하여 부적 등을 권하면 얼풍수로 전락되고 맙니다.
어찌하여 당대 최고의 풍수가 그런 구설수에 오르내리는지요."

그러게 말이오.
내가 죽을 때가 다 되었나 보지.
예부터 풍수가 돈은 탐하면 시신의 노여움을 받아 비명횡사하거나 중풍 심장마비에 걸려 죽게 되지요.
잘 못 하다간 내가 그 꼴이 되고 말겠구먼.

옛날에 말이오.
중국 땅에 증갈래라는 풍수쟁이가 살았는데 이 양반이 이런 말을 했어.
좋고 길한 땅을 구하려거든 반드시 양사(지리에 밝고 어진지관)를 찾아야 한다.
나 스스로 양사가 되어보려 마음을 고쳐먹곤 했건만 이렇게 구설수에 오르내리니

허참 딱한 노릇이구먼.

육관 선생님,

이제 풍수로서 명성은 얻을 만큼 얻었으니 우리 이제 힘을 모아 민족의 정기를 고쳐 잡는데 매진합시다.
단군을 섬기며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일에 말입니다.
당돌한 말이오나 제가 관상은 좀 봅니다.
선생님 지금 이마 전체에 파도가 일고 있습니다.
말년에는 파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습니다.

감히 말합니다.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잠시 두 사람사이에 정적이 맴돌았다.
손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가?

이제 이승과 이별할 시간이 온 건가?
그 후 육관은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여 민족관을 설립한다고 선언했다.
육관은 사망 직전, 경북 문경을 자주 찾았다.

홍윤흥씨의 말이다.
문경 동로면 적성리 갈밭골에 천하 명당이 있다며 그곳으로 떠난다 해요,
몇번이나 풍수 일 그만두시라고 애원했지만 노인은 훌쩍 그곳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곳에 치마 바위라는 곳이 있는데...
치마바위는 조선조 명대신 정도전과 관련이 있다.

정도전은 중국의 이름높은 풍수 두사충으로 하여금 자신의 묘터를 찾아달라 한다.
두사충은 이 바위 부근을 답사한 후 이곳은 연주패옥이로다, 라고 극찬한다.
연주패옥이란 조선시대 벼슬아치들이 허리춤에 차던 구슬을 일컫는 말로써

풍수세계에서는 이런 형국은 아주 높이 평가한다.
이 야화는 문경시에서 펴낸 향토지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두사충은 연주패옥 자리에 술잔 1개와 은 2백냥을 묻어 표식을 해놓는다.
두사충은 중국으로 떠나고 정도전은 죽었다..
청지기는 위치를 알고 있었다.
아들이 정도전 청지기와 함께 아비 묘터를 찾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청지기가 그 위치를 가리킬 때 그만 타고 온 말이 갑자기 대노해 청지기를 물어 죽인다.
이로써 연주패옥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되고, 세월이 흘러 손석우씨가 연주패옥을 찾아나서게 된 것이다.

손씨가 문경에서 명당터를 찾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자

장안의 명문집 부인들이 지관들과 함께 고급 승용차를 타고 내려와 한바탕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문경 사람들은 괜히 육관이 내려와 마을을 들뜨게 했다며 그를 탓했다.

이렇듯 손석우씨는 가는 곳마도 소란을 피우고 화제를 모았다.
유달리 풍수사상에 매료되어 있는 우리 국민성 때문에 육관은 본의 아니게 유력인사 대접을 받았다.
비록 말년에 좋지 않은 사건에 연루되어 골머리를 앓았지만 그에게도 긍정적인 부분이 없진 않다.
보학 연구(족보)에 매진했으며 일제가 우리나라 명산에 박아놓은 단혈철주(쇠말뚝)를 뽑아야 한다며

민족 정기 바로 세우기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남의 묘터를 봐주기 위해 출장중 심장마비로 인해 죽게 된 손석우씨,
한울선원 홍윤흥씨의 말대로 문경 땅의 비밀을 캐지 않았더라면,
풍수일을 그만뒀더라면 그는 장수했을지도 모른다.
손석우씨는 생전에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풍수를 잘못 하면 지신으로부터 천벌을 받는다네,

나야 뭐...
지관으로서 올바른 길을 걷고 있지 않은가. 하하하.
노인의 웃음은 참으로 호탕했다.
그러나 웃음 뒤에는 누구에겐가 쫓기고 있는 듯한 초조함도 없진 않았다.



육관의 마지막 예언 "우리나라의 앞날 운세는 매우 전도양양하다"
한편 손석우씨는 비록 믿거나 말거나 식이겠지만 우리 국민들에게 역술의 힘을 빌어 많은 용기를 주었다.
그는 우리나라의 앞날 운세는 매우 전도양양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다.

"하늘에 오경명성이라는 별이 있소. 그 별의 기운을 받는 나라는 늘 흥했습니다.
이 별은 천체의 자미국에 있어요.
왕성한 기운을 내뿜습니다.
오경명성이 지구를 비추기 시작한 것은 2천5백년 전인데

그동안 중국 로마 영국 독일 미국 일본을 비췄어요.
이 별의 기운을 받은 나라가 세계를 제패했지요.
훌륭한 인물도 많이 태어났구요.


우리나라를 이 별이 비추기 시작한 것은 1986년 가을부터인데 3백81년 동안 계속 됩니다.
그동안에 우리나라가 세계 인류를 이끄는 종주국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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