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回文山 五仙圍碁>
“옛 부터 靈山으로 이름난 회문산은 홍문대사(홍성문)가
이 산에서 道通하여 回文山歌 24 穴의 明堂訣錄을 만들었는데,
이 訣錄에는 회문산 정상에 24明堂과 五仙圍碁가 있으며 이 곳에 棺을 보토하여 묘를 쓰면 당대부터
발복하여 59대까지 갈것이라고 하였다. 이 설을 입증하듯 회문산 정상과 주변에는 많은 묘들이 자리 잡고 있다.”·····회문산 휴양림 사이트
“현재 전해지는 회문산가는 5종류인데 내용은 거의 대동소이하며, 구전되고 필사되는 과정 에서
몇몇 글자가 다를 뿐이다 지은이는 守一僧, 守一大師 , 須一大師로 표기되어 있으며 한 군데서만 홍성문이라 기록 되어 있다 따라서 “회문산가”의 원작자는 18세기 중반 전북 태인 출생의 守一大師이며,
홍성문은 필사본의 한 사람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2004년 김보근 학술논문 [풍수가사 회문산가의 원전비평]에서 발췌
아무튼 지금도 호남지방에서는 회문산 비결록이라는 것이 필사본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그것의 實在와 眞僞여부와는 상관없이 동학혁명의 실패와 6·25를 거치면서 극심한 회한과 절망에
빠져있던 인근의 민중들에게는 구원의 희망이요 고단한 삶의 도피처였을 것이다 회문산에는 6·25당시 빨치산 사령부가 있어 피아간에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었으며,
소설 남부군의 무대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五仙圍碁 穴은 다섯 신선이 바둑을 두고 있는 형상으로 인근의 풍수가들에게는
전설적인 명당이라 소문이 나게 된다. 바위를 바둑알이라 생각한 까닭인데, 그래서인지 회문산의 바위가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묘가
들어서 있다. 그들은 모두가 나름대로의 이유와 확신을 갖고 쓰여 졌을 것이다
石上에 五仙圍碁 아라보리 뉘잇스며 人間文千武萬을 차지하리 뉘잇스리 ~~~ 積善家人 안니질된 天神이 降災하리 만일 이 穴 어들진데補土掩棺 嫌疑마쇼 五年內 一靑孀은 黃牛一毛 格이라 當代에 速發하야 五十九代 갈언인와 ~~~ ~~~
그 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회문산의 정상 약 1m의 돌 틈 사이에 돌을 쌓고 시멘트로 발라서 묘를 쓴 것이다
(아래사진) 頂上에 오선위기가 있다는 결록에 따른 것인데, 그야말로 대단한 정성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이 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묘일 것이다 ·····837m
관리사무소의 파악에 의하면 연고 묘 180基, 무연고 묘는 300~500基로 추산하고 있으나 지금도
계속해서 묘가 늘어나는 추세라 한다. 그러나 절반가량의 묘는 돌보는 이 없이 그대로 방치되어 산짐승에 의해 심하게 훼손되고 있는
상태이다
다음은 원광대 조용헌 교수의 글이다 다섯 신선이 둘러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형국인 오선위기혈은 조선 후기 호남의 풍수가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던 명당자리였다.
풍수 매니아들은 이 전설적인 명당을 찾으려고 회문산 일대를 수없이 답사하곤 하였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강증산은 오선위기의 의미를 당시 조선을 둘러싼 4대 강국으로 풀이 하였다. 다섯 신선 중에 한 신선은 주인이라 가만히 있고, 나머지 네 신선이 바둑에서 이기기 위하여
골몰하고 있는 형국으로 해석하였던 것이다.
풍수에 빗대서 당시 한반도 주변의 국제정세를 설명한 셈이다.
여기서 네 신선이란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을 가리키고, 바둑판은 조선 땅이요,
바둑돌은 조선백성들에 비유한 것이다. 오선위기혈은 범부가 보기에는 묏자리의 명칭에 지나지 않았지만,
국운의 흥성을 소망하였던 예언자의 안목에서 보면
한반도를 집어삼키려는 주변 강대국의 모습으로 비쳤던 것이다.
한편 정상에 오르는 등산로에는 절묘한 형상의 女根木과 天根月窟이라는 글이 새겨진 석굴이 있다 이 때문에 회문산은 陰氣가 강하다 하는데, 그러서인지 많은 恨을 품고 있는 산이다
“天根月窟” 중국 송나라 때 시인인 소강절의 시로서 음양의 변화와 조화를 말한 것이라 한다.
天根月窟 閑往來 三十六宮 都是春
천근은 陽으로 남자의 모습이고 월굴은 陰이니 여자의 형상이 되어 음양이 한가로이
왕래하여 소우주인 육체가 모두 봄이 되어 완전하게 한다는 뜻이다 .
따라서 이곳이 회문산에서도 氣가 가장 센 곳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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