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와 역사/고구려

25. 평원왕(平原王)

오늘의 쉼터 2008. 10. 28. 00:58

 

25. 평원왕(平原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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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원왕(平原王)


■ ?∼590(영양왕 1)
■ 고구려 제25대 왕
■ 재위 559∼590



※ 본문설명

이름은 양성(陽成) 또는 탕(湯). 일명 평강상호왕(平岡上好王)· 평강왕(平岡王)· 평국왕(平國王)이라고도 한다. 양원왕의 장자로 태어나 557년(양원왕 13) 태자가 되고, 559년 왕위를 계승하였다. 담력이 있고 승마와 활쏘기에 능하였다.

560년(평원왕 2) 졸본(卒本)에 행차하여 시조묘에 제사를 지냈다. 백성들의 재난을 구휼하기 위해 재위 중 왕의 음식을 줄이고 백성을 위로하고 농상(農桑)을 장려하며, 552년부터 짓기 시작한 장안성(長安城)의 축성을 일시 중단하는 등 양원왕의 즉위 이래 계속된 내분과 민심의 수습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러나 왕의 전제적 권한은 이미 귀족세력들의 발호에 의해 상당한 제약을 받았다. 586년에는 지금의 평양 대성산성(大聖山城) 일대에서 장안성으로 궁을 옮겼다.

외교면에서 당시의 중국은 남조의 진(陳)나라 및 북조의 북제(北齊)·북주(北周)가 대치하고 있었는데, 고구려는 전통적인 외교정책대로 이들과 두루 교섭관계를 가짐으로써 국제관계의 안정을 이루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560년에는 북제로부터 ‘사지절영동이교위 요동군공 고구려왕 (使持節領東夷校尉 遼東郡公 高句麗王)’의 지위를 인정받았고, 563년에는 진나라로부터 ‘영동장군(寧東將軍)’의 지위를 받았다.


또한, 580년에는 북주에 조공을 하고 ‘개부의동삼사대장군 요동군개국공 고구려왕 (開府儀同三司大將軍 遼東郡開國公高句麗王)’의 지위를 인정받았고, 581년에는 북주를 계승한 수나라와 외교관계를 가지고 ‘대장군요동군공(大將軍遼東郡公)’의 지위를 받았다.


이같이 표면적으로 순탄한 관계를 가진듯 하지만 양원왕 이래 북조와의 관계는 평탄하지 않았다. 북주의 무제(武帝)가 요동을 공격하여 왔을 때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배산(拜山)에서 싸웠고, 또 590년에는 수나라가 남조의 진나라를 멸망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전쟁준비를 서두르게 하였다. 이같은 사실로 미루어 당시 중국의 통일이 고구려에 주는 정치적·군사적 부담이 점차 가중되어 갔던 것을 알 수 있다.


586년에 고구려 세력권 내에 있던 거란별부(契丹別部) 출복(出伏) 등이 이탈하여 수나라에 투항하였다. 돌궐(突厥)과의 관계도 겉으로는 커다란 충돌이 없었으나, 양세력의 긴장된 상태는 여전하였다.


한편, 한강유역의 점령을 둘러 싸고 기존의 나제동맹이 결렬되면서 백제와 신라 사이에 전쟁이 빈발하자, 고구려는 이들과 소강상태를 유지한 채 북방과 서방의 변화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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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三國史記
北齊書
周書
隋書
陳書
5·6世紀 東아시아의 國際情勢와 高句麗의 對外關係(盧泰敦, 東方學志 44, 1984)
高句麗の平壤城及び長安城に就いて(關野貞, 朝鮮の建築と藝術,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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