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와 역사/고구려

23. 안원왕(安原王)

오늘의 쉼터 2008. 10. 28. 00:39

 

 

23. 안원왕(安原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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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원왕(安原王)

■ ?∼545(안원왕 15)
■ 고구려 제23대왕
■ 재위 531∼545



※ 본문설명

일명 곡향강상왕(鵠香岡上王)·향강상왕(香岡上王) 또는 안강상왕(安岡上王)이라 하며 이름은 보연(寶延)이다. 안장왕의 동생으로 형의 사랑을 크게 받았으며 왕이 후사가 없이 죽자 왕위를 계승하였다. 신장이 7척5촌이나 되고 도량이 넓었다 한다.

즉위와 함께 남조의 양(梁)나라로부터 안장왕이 가졌던 지위를 계승할 것을 인정받았으며 532년(안원왕 2)에는 북위(北魏)로부터 ‘사지절산기상시 영호동이교위 요동군개국공 고구려왕 (使持節散騎常侍 領護東夷校尉 遼東郡開國公 高句麗王)’의 지위를 인정받았다.

당시 중국은 북위와 양나라가 대립하고 있다가 534년 북위가 동·서위로 분열하게 되는데, 동위와 양나라와의 양면외교를 적극 전개함으로써 서방의 안정을 유지하였다. 동위로부터는 534년에 ‘표기대장군(驃騎大將軍)’이라는 지위를 추가로 인정받기도 하였다.

한편, 백제와 신라는 군사동맹을 맺고 향상된 국력을 바탕으로 고구려에 대응함으로써 이들과의 대결은 540년에 백제군이 우산성(牛山城)을 침략하므로 그를 격퇴시켰던 사실 이외에는 대체로 소강상태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국내적으로는 535년에 홍수·지진·전염병이, 그리고 535·536·541년에는 각각 가뭄·황충·기근·태풍 등의 재난이 계속되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더욱이 왕의 후사를 둘러싸고, 두 왕비간에 각기 자기 소생을 왕으로 세우려 하여 그들을 후원하는 귀족세력들인 이른바 추군(群)과 세군(細群)의 암투는 고구려사회 전반에 동요를 가져왔던 것 같다.

왕은 545년 추군과 세군의 대립이 무력충돌로 비화하는 와중에서 세상을 떠났다. 안원왕의 재위기간에 대해서는 중국의 《양서 梁書》에는 《삼국사기》와 달리 526∼548년간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학계에서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따라 531∼545년간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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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三國史記
魏書
梁書
日本書紀
日本書紀所載 高句麗關係記事考(李弘稙, 韓國古代史의 硏究, 新丘文化社, 1971)
高句麗·百濟·新羅 사이의 力關係變化에 대한 一考察(盧重國, 東方學志 28,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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