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공왕(孝恭王)
◐생존기간 : (?~912)
◐재위기간 : (897~912)
◐본문설명
신라 52대 왕으로서 성은 김(金)이며 이름은 요(嶢)이다. 헌강왕(憲康王;재위 875-886년)의 서자(庶子)로서 어머니는 의명태후(義明太后) 김씨이고 비는 이찬(伊粥) 우겸(又謙)의 딸 김씨이다. 헌강왕(憲康王)이 사냥을 나갔다가 길에서 자색이 뛰어난 한 여자를 만났는데, 뒤에 헌강왕이 궁궐을 빠져나가 그 여자와 야합하여 태어난 아들이다.
893년(진성여왕 9) 태자에 책봉되고, 897년 진성여왕(재위887-897년)이 후사 없이 죽자 897년 즉위하였다. 크게 사면하고 문무백관의 관작(官爵)을 한 등급씩 올려주었다.
898년 정월에 어머니 김씨를 높여 의명왕태후(義明王太后)로 삼았다. 서불한 준흥(俊興)을 상대등으로 삼고 아찬 계강(繼康)을 시중으로 삼았다. 7월에 궁예에게 패서도(浿西道)·한산주(漢山州) 관내의 30여 성을 빼앗겼다.
899년 3월에 이찬(;2등급) 예겸(乂謙)의 딸을 맞아들여 왕비로 삼았다. 7월에 북원의 도적 양길은 궁예가 배반할까 꺼리어 국원 (지금의 충주) 등, 10여 성의 성주와 더불어 비뇌성(非惱城)으로 궁예를 치려고 하다가 오히려 패하여 도망갔다.
900년 남서쪽의 땅을 견훤에게 빼앗겼다.
901년 궁예가 왕이라 칭하였다. 8월에 후백제 왕 견훤(甄萱)이 대야성을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자 군사를 금성(錦城)의 남쪽으로 옮겨 연변(沿邊)의 마을을 약탈하고 돌아갔다.
902년 3월에 서리가 내렸다. 대아찬(;5등급) 효종(孝宗)을 시중으로 삼았다.
903년 궁예가 도읍을 옮기고자 하여 철원(鐵圓)과 부양(斧壤)에 이르러 산수를 두루 살펴보았다. 그리고 궁예의 부하 왕건(王建)은 903년 병선(兵船)을 이끌고 금성(錦城)등 10여 군현을 공취하였다.
904년 북쪽의 땅을 또 궁예에게 빼앗겨 신라의 영토는 날로 축소되어갔다. 궁예가 여러 관직을 설치하였는데, 신라의 제도에 의거하였다.<제정한 관직 이름은 비록 신라의 제도에 따랐으나 다른 것도 있었다.> 나라 이름을 마진(摩震)이라 하고 연호를 무태(武泰) 원년(元年)이라 하였다. 패강도(浿江道)의 10여 주현이 궁예에게 항복하였다.
905년 2월에 별이 비오듯 떨어졌다. 4월에 서리가 내렸다. 7월에 궁예가 철원으로 도읍을 옮겼다. 8월에 궁예가 군사를 움직여 우리의 변방 고을을 침략하고 약탈하며 죽령(竹嶺) 동북쪽에까지 이르렀다. 왕은 땅이 날로 줄어드는 것을 듣고 매우 걱정하였으나 힘으로 막을 수가 없어, 여러 성주(城主)들에게 명하여 나가서 싸우지 말고 성벽을 굳건히 하여 지키도록 하였다.
906년 정월에 파진찬(;4등급) 김성(金成)을 상대등(上大等)으로 삼았다. 3월에 앞서 당나라에 들어가 급제했던 김문울(金文蔚)은 관직이 공부원외랑(工部員外郞) 기왕부자의참군(沂王府諮議參軍)에 이르렀는데, [이때] 책명사(冊命使)에 임명되어 돌아왔다. 4월부터 5월까지 비가 내리지 않았다.
907년 봄과 여름에 비가 오지 않았다. 견훤에게 일선군(一善郡) 이남의 10여 성을 빼앗기고도 환락의 세월을 보냄으로써 후삼국(後三國)을 탄생케 하였다.
908년 2월에 살별[;혜성의 옛이름]이 동쪽에 나타났다. 3월에 서리가 내렸다. 4월에 우박이 내렸다.
909년 6월에 궁예가 장군(將軍)에게 명하여 병선(兵船)을 거느리고 가서 진도군(珍島郡)을 항복시켰다. 또한 고이도성(皐夷島城)을 깨뜨렸다.
910년 견훤이 몸소 보병과 기병 3천 명을 이끌고 나주성(羅州城)을 에워싸고 열흘이 지나도록 풀지 않았다. 궁예가 수군을 내어 그들을 습격하자 견훤이 군사를 이끌고 물러갔다
911년 정월 초하루 병술에 일식이 있었다. 왕이 비천한 첩에게 빠져서 나라의 정치를 돌보지 않았다. 대신 은영(殷影)이 간언(諫言)하였으나 따르지 않았으므로, 은영이 그 첩을 잡아 죽였다. 궁예가 나라 이름을 태봉(泰封)으로 고치고 연호를 수덕만세(水德萬歲)라 하였다.
912년 4월 왕이 죽으니 시호를 효공이라 하고 사자사(師子寺 절 이름) 북쪽에 장사하였다. 효공왕이 후사 없이 죽어 8대 아달라왕(阿達羅王;재위 154-184년)의 원손(遠孫)이고, 대아찬(;5등급) 예겸(乂兼)의 아들인 박휘가 신덕왕이 되었다.
※ 본문참고 : 두산대백과사전
※ 본문출처 : 차석찬의 역사창고
※ 이미지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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