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와 역사/신라

47. 헌안왕(憲安王)

오늘의 쉼터 2008. 10. 27. 23:20

 

 ◆헌안왕(憲安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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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안왕(憲安王)



◐생존기간 : (?~860)

◐재위기간 : (857~860)

◐본문설명

신라 47대 왕으로서 성은 김(金)이고 이름은 의정(誼靖)·우정(祐靖)이다.

아버지는 성덕대왕(成德大王)으로 봉해진 균정(均貞)이며 신무왕(재위839-839년)의

이복동생으로서 어머니는 조명부인(照明夫人) 김씨(金氏)로 선강왕(宣康王)의 딸이다.

슬하에 딸이 둘 있었는데 모두 다음 왕인 경문왕의 비가 되었다.

그리고 궁예(弓裔)는 왕의 서자로 알려져 있다.

857년에 서불한(舒弗邯, 角干)으로서 조카인 문성왕(재위 839-857년)의 유조(遺詔)를 받아

즉위하였다.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이찬(;2등급) 김안(金安)을 상대등(上大等)으로 삼았다.

858년 정월에 몸소 신궁에 제사지냈다. 4월에 서리가 내렸다.

5월부터 7월에 이르기까지 비가 내리지 않았다.

 당성군(唐城郡)의 남쪽 강가에 큰 고기가 나왔는데, 길이가 40보(步)이고 높이가 여섯 자이었다.

859년 봄에 전국에 흉년이 들자 백성의 구원에 힘썼고, 4월에 제방을 쌓아 농사를 장려하였다.

860년 9월에 왕이 임해전에서 여러 신하들을 모아 잔치를 베풀었는데, 왕족 응렴(膺廉;경문왕)이

15세의 나이로 그 자리에 참석하였다.

왕이 그의 마음을 알아보려고 갑자기 물었다.

“너는 한동안 돌아다니면서 공부했는데, 착한 사람을 본 일이 없는가?”

[응렴]이 대답하였다.

“저는 일찍이 세 사람을 보았는데, 착한 행실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왕이 “어떤 것인가?” 하니,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한 사람은 귀한 집 자제이면서 남과 사귐에 있어서는 자기를 먼저 하지 않고 남의 아래에 처하였으며, 또 한 사람은 집에 재물이 넉넉하여 사치스러운 옷을 입을 수 있는데도 항상 삼베와 모시옷으로 스스로 즐거워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은 권세와 영화를 누리고 있었으나 일찍이 한번도 다른 사람에게 위세를 부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본 것은 이와 같습니다.

왕이 듣고서 잠자코 있다가 왕비에게 귀엣말로 말하기를

내가 많은 사람을 보아 왔지만 응렴같은 사람은 없었다.” 하고는 딸을

그의 아내로 삼게 할 마음을 가지게 되어, 응렴을 돌아보고 말하였다.

“바라건대 그대는 자중자애 하라. 나에게 딸자식이 있는데

그로 하여금 잠자리를 모시도록 하겠다.”

다시 술자리를 베풀고 같이 마시다가 조용히 말하였다.

“내게는 두 딸이 있는데 언니는 지금 20세이고 동생은 19세이다.

오직 그대가 장가들고자 하는 대로 하라!”

응렴이 사양하였으나 어쩔 수 없어 일어나 절하여 감사하고는 집에 돌아와 부모에게 알렸다.

부모가 말하였다.

“듣건대 왕의 두 딸의 용모는 언니가 동생만 못하다고 한다.

 만약 어쩔 수 없다면 마땅히 그 동생에게 장가드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여전히 주저하며 결정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흥륜사(興輪寺) 승려에게 물으니, 승려가 말하였다.

 “언니에게 장가들면 유익한 것이 세 가지 있고,

  동생에게 장가들면 반대로 손해되는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응렴은 이에 [왕에게] 아뢰었다.

“저는 감히 스스로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왕께서 명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이에 왕은 맏딸을 [응렴에게] 시집보냈다.

861년 정월에 왕이 병으로 자리에 누워 오랫동안 낫지 않았으므로 좌우의 신하들에게 일렀다.

“과인은 불행히도 아들은 없고 딸만 있다.

우리나라의 옛일에 비록 선덕(善德)과 진덕(眞德) 두 여자 임금이 있었으나,

이는 암탉이 새벽을 알리는 것과 비슷하므로 본받을 일이 못된다.

사위 응렴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노련하고 성숙한 덕을 가지고 있다.

경들은 그를 왕으로 세워 섬기면 반드시 선조로부터 이어 온

훌륭한 왕업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과인은 죽어도 또한 썩지 않을 것이다.”

이달 29일에 [왕이] 죽었다.

시호를 헌안(憲安)이라 하고 공작지(孔雀趾)에 장사지냈다.

헌안왕이 후사가 없어 그 뒤를 이어 사위인 응렴이 경문왕이 되었다.

※ 추가설명(애꾸눈 왕자)

음력 5월 5일은 신라의 큰 명절인 단옷날입니다.
이 날, 백성들은 한해의 풍작을 기원하는 제사를 성대히 지내고 하루를 즐겁 게 보냅니다.
그런데 헌안왕(신라 47대 왕)은 아침부터 초조한 마음으로 이리저 리 서성대고 있었습니다.
해가 중천에 떠서야 심부름을 보냈던 시녀가 돌아왔습니다.
"상감마마, 기뻐하십시오. 왕자 아기가 탄생하셨습니다."

"그래? 분명 왕자란 말이지?"

헌안왕은 왕자가 태어났다는 말에 입이 절로 벌어졌습니다.
" 예, 그러합니다.

  왕자 아기께서 태어나실 때, 지붕 위에는 하얀 빛이 감도는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합니다."

"무지개가!"

"예. 그리고, 왕자 아기께서는 예쁜 이가 나 있었다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임금의 기쁨은 말로다 할 수 없었습니다.

잘될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는 말대로 필경 큰 인물이 될 아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 음, 참으로 경사로다."

아기의 어머니인 후궁(後宮)도 기뻤습니다.

왕자가 태어남으로 임금의 사랑을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를 시기하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왕자를 그대로 두면 장차 자신들의 권력이 위태롭게 될것을 두려워하여

나뿐 음모를 꾸미고는 왕에게 나아가 아뢰었습니다.

"상감마마, 이 나라에 앞으로 큰 일이 생길 것입니다.'

"아니, 이렇게 경사스러운 날에 그게 대체 무슨 소리요?"

헌안왕이 의아해 하며 묻자 그 신하는 엄숙한 표정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예로부터 단옷날에 아기가 태어나면 나라에 큰 불행이 닥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다, 갖 낳은 아기가 이가 있음은 장차 상감마마를 해치고 왕위에 오를 징조가 분명합니다.

그러니 아기를 당장 죽여 훗날에 일어날 나쁜 일을 막아야 합니다."

신하의 말을 들은 헌안왕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할 말을 잊고 말았습니다.

"그, 그게 정말인가.....?!"

헌안왕의 표정을 본 신하들이 일제히 더욱 소리 높여 말했습니다.
"상감마마, 어서 왕명을 내리시어 후 한을 없애야 합니다."

"으음, 그렇다면 그냥 두어서는 안 되겠군."

헌안왕은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자기를 해친다는 말에 가슴이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얼마후, 임금은 아기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이 소식은 곧 후궁에 전해졌습니다,

한참 웃음꽃이 피던 집 안에는 갑짜기 먹 구름이 덮였습니다.

아기를 낳은 어머니인 후궁은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급히 유모에게 부탁하여

빨리 궁을 빠져나가라고 지시했습니다.
숨가쁘게 밖에서는 아기를 죽이려고 왕의 명령을 받은 군사들이 들여 닥쳤습 니다.

"왕명이오, 아기를 죽이라는 분부를 거행하겠소."

군사들이 아기엄마에게서 아기를 빼앗으려 하자

아기 엄마는 재빨리 아기를 창문 밖으로 던졌습니다.

창문밖에는 때마침 숨어있던 유모가 강보에 쌓인 아기를 덥썩 받았습니다.
그러자 아기는 깜짝 놀라 자지러지는 울음소리를 내었습니다.

그것은 유모가 아기를 받을 때, 잘못하여 유모의 손가락이 아기의 눈을 찌르고 만 것입니다.

아기는 목숨은 구했으나 그만 애꾸눈이 되고 말았습니다.

유모는 어둠 속으로 아기를 안고 어디론가 멀리 달아났습니다.
이 애꾸눈이 된 왕자가 바로,뒷날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입니다.



※ 본문참고 : 두산대백과사전
※ 본문출처 : 차석찬의 역사창고
※ 이미지출처 : user.chollian.net/
※ 추가설명출처 : user.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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