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왕(昭聖王)
※ 생존기간 : ( ?~800)
※ 재위기간 : (798~800)
※ 본문설명
신라 39대 왕으로서 휘(諱;임금의 이름)는 준옹(俊邕)이며
원성왕(元聖王;재위 785-798년)의 태자인 인겸(仁謙)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성목왕후(聖穆王后) 김씨이고
비는 대아찬(大阿飡;5등급) 숙명(叔明)의 딸인 계화부인(桂花夫人) 김씨이다.
소성왕은 원성왕의 장손으로서 왕위에 오르기 전 궁중에서 자라면서 789년에 대아찬(大阿飡;5등급)을 제수받고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으며, 790년에는 파진찬(波珍飡;4등급)을 제수받아 재상이 되었다. 791년 10월에는 시중(侍中)에 임명되었으나, 그 이듬해 8월에 병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태자에 책봉된 아버지가 일찍 죽고, 또 그에 뒤이어 태자가 된 숙부 의영(義英)이 또한 794년에 죽자 그가 795년 정월에 태자로 책봉되었다.
799년 3월에 청주(菁州) 거로현(居老縣)을 학생의 녹읍으로 삼았다. 냉정현령(冷井縣令) 염철(廉哲)이 흰 사슴을 바쳤다. 5월에 죽은 아버지 혜충태자를 혜충대왕(惠忠大王)으로 추봉하였다. 우두주(牛頭州) 도독이 사자를 보내 아뢰었다.
“소 같이 생긴 이상한 짐승이 있는데, 몸은 길고 높으며 꼬리의 길이가 세 자 가량이나 되고 털은 없고 코가 긴 놈이 현성천(峴城川)으로부터 오식양(烏食壤)으로 향하여 갔습니다.”
7월에 아홉 자 되는 인삼을 얻었는데, 매우 기이하게 여겨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바쳤더니, 덕종이 인삼이 아니라 하여 받지 않았다. 8월에 어머니 김씨를 성목태후(聖穆太后)로 추봉하였다. 한산주에서 흰 까마귀를 바쳤다.
800년 정월에 왕비 김씨를 왕후로 봉하고, 충분(忠芬)을 시중으로 삼았다. 4월에 폭풍이 나무를 부러뜨리고 기와를 날려 보냈으며, 서란전(瑞蘭殿)에 쳤던 발[簾]이 날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임해문(臨海門)과 인화문(仁化門) 두 문이 무너졌다. 6월에 왕자를 태자로 봉하였다. 왕이 죽어 시호를 소성(昭聖)이라 하였다. 그 뒤를 이어 큰아들이 애장왕이 되었다.
※ 본문참고 : 두산대백과사전
※ 본문출처 : 차석찬의 역사창고
※ 이미지출처 :http://www.museum.co.kr/cyber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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