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와 역사/신라

37. 선덕왕(善德王)

오늘의 쉼터 2008. 10. 27. 22:19

 

37. 선덕왕(善德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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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왕(善德王)



※ 생존기간 : (?~785)


※ 재위기간 : (780~785)



※ 본문설명

신라 37대 왕으로서 내물왕(奈勿王)의 10대손이며 성은 김(金)이고, 휘(諱;임금의 이름)는 양상(良相)이다. 할아버지는 각간 원훈(元訓)이며 개성대왕(開聖大王)에 추봉된 해찬(海飡) 효방(孝芳)의 아들이다. 성덕왕(聖德王)의 딸인 사소부인(四炤夫人) 김씨 소생으로 정의태후(貞懿太后)로 추봉되었다. 비(妃)는 각간 양품(良品)의 딸 구족부인(具足夫人)이다.

771년에 완성된 성덕대왕신종의 명문(銘文)에 의하면 그는 대각간 김옹(金邕)과 함께 검교사숙정대령겸 수성부령검교 감은사사각간(檢校使肅政臺令兼 修城府令檢校 感恩寺使角干)으로서 종 제작의 책임을 맡고 있었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감찰기관인 숙정대(肅政臺)의 장관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정치적 위치를 엿볼 수 있다. 그는 혜공왕(재위 765-780년) 10년에 이찬(;2등급)으로서 상대등에 임명되었고, 동왕 12년에는 한화된 관제의 복고작업을 주관하였다. 그리고 동왕 13년에는 당시의 정치를 비판하는 상소를 올려 전제주의적인 왕권의 복구를 꾀하는 일련의 움직임을 견제하였다.


780년 2월 2월에 왕당파이었던 이찬(;2등급) 김지정(金志貞)이 반란을 일으켜 궁궐을 침범하자,

상대등이었던 양상은 4월에 김경신(金敬信;원성왕)과 함께 병사를 일으켜 지정을 죽이고 혜공왕(재위 765-780년)과 왕비를 죽인 뒤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의 즉위는 무열왕계인 김주원(金周元)을 경계하고 그들의 반발을 억제하려던 김경신의 강력한 뒷받침에 의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그해 어룡성(御龍省)에 대한 개편이다. 어룡성에 둔 봉어(奉御)를 경(卿)으로 고치고 다시 감(監)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이찬(;2등급) 경신(敬信;원성왕)을 상대등으로 삼고 아찬 의공(義恭)을 시중으로 삼았다.

당나라에 조공을 바쳤으며, 당의 덕종(德宗)이 검교대위계림주자사영해군사신라왕

(檢校大尉鷄林州刺史寧海軍使新羅王)의 봉작을 주었다.

781년 2월에 몸소 신궁에 제사지냈다. 7월에 사자를 보내 패강(浿江) 남쪽의 주와 군을 위로하였다.

782년 윤 정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2월에 왕이 한산주를 두루 돌며 살펴보고 백성들을 패강진(浿江鎭)으로 옮겼다. 7월에 시림(始林)의 벌판에서 군사를 크게 사열하였다.

783년 정월에 아찬 체신(體信)을 대곡진(大谷鎭) 군주(軍主)로 삼았다. 2월에 서울에 눈이 세 자나 내렸다.

784년 4월에 왕이 왕위를 양보하려 하였으나 여러 신하들이 세 번이나 글을 올려 말렸으므로 그만두었다.

785년 정월에 당나라 덕종(德宗)이 호부랑중(戶部郞中) 개훈(蓋塤)을 보내 부절을 가지고 왕을 검교태위(檢校大尉) 계림주자사(林州刺史) 영해군사(寧海軍使) 신라왕(新羅王)으로 책봉하였다. 이 달에 왕이 병으로 자리에 누워 오랫동안 낫지 않았으므로 조서를 내려 말하였다.

『과인은 본래 재주와 덕이 없어 왕위에 마음이 없었으나 추대함을 피하기 어려워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왕위에 있는 동안 농사가 잘 되지 않고 백성들의 살림이 곤궁하여졌으니, 이는 모두 나의 덕이 백성들의 소망에 맞지 아니하고 정치가 하늘의 뜻에 합치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늘 왕위를 물려주고 밖에 물러나와 살고자 하였으나, 많은 관리와 신하들이 매양 지성으로 말렸기 때문에 뜻대로 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주저하고 있다가 갑자기 병에 걸려 다시는 일어날 수 없게 되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돌이켜 보건대 무슨 여한이 있겠는가? 나 죽은 뒤에는 불교 법식에 따라 [시신을] 불태워 뼈를 동해에 뿌려라.』

13일에 이르러 죽으니 시호를 선덕(宣德)이라 하였다.

유언대로 불법에 따라 화장하고 뼈를 동해에 뿌렸다.

선덕왕이 아들 없이 죽자 그 뒤를 이어 김경신이 원성왕이 되었다.



※ 본문참고 : 두산대백과사전
※ 본문출처 : 차석찬의 역사창고
※ 이미지출처 : hyangto.pe.kr/ L10A-MS28.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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