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증왕 (智證王 )
※ 생존기간 : (437~514)
※ 재위기간 : (500~514)
※ 본문설명
신라 22대 왕으로 본래의 칭호는 지증마립간(智證麻立干)이다. 성은 김(金)이고 휘(諱;왕의 이름)는 지대로(智大路:智度路) 혹은 지도로(智度路), 지철로(智哲老)라고도 한다. 내물마립간의 증손자로서, 갈문왕(葛文王) 습보(習寶)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17대 눌지왕(訥祗王;417-458년)의 딸 조생부인(鳥生夫人) 김씨이며 왕비는 박씨로 이찬(;2등급) 등흔(登欣)의 딸인 연제(延帝)부인이다. 재종형인 소지왕(재위;479-500년)이 후사(後嗣) 없이 죽자, 500년 왕위에 추대되었다. 그 때 나이 64세였다.
그의 기골이 얼마나 장대하였는지는 <삼국유사>에 전하는 다음의 기록으로도 알 수 있다. 지증왕은 음경이 너무 컸다. 그의 음경의 길이는 무려 1자 5치(약 45센티미터)였다. 음경이 너무 큰 관계로 마땅한 신부감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지증왕은 각 지방에 사자를 보내 자기의 음경을 능히 감당할 만한 처녀를 수소문하였다. 어느 날 지증왕이 보낸 한 명의 사자가 모량부에 도착해 동로수(冬老樹)아래에 쉬고 있는데 큰 개 두마리가 북만한 누런 똥을 양쪽에서 물고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이것을 본 사자는 쾌재를 부르며 마을로 내려가 그 커다란 똥덩이의 주인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자 한 소녀가 말했다.
"그것은 모량부 상공의 딸이 빨래를 하다 숲속에 숨어서 눈 똥입니다."
사자가 그 집을 찾아가 처녀를 보니 키가 7자 5치(약 2미터 20센티미터)나 되었다. 사자는 급히 지증왕에게 그 처녀를 소개했고, 지증왕은 수레를 보내 그녀를 궁중으로 불러 왕비로 삼았다.
502년 2월에 영(令)을 내려 순장(殉葬)을 금하였다. 전에는 국왕이 죽으면 남녀 각 다섯 명씩을 순장했는데, 이때 이르러 금한 것이다. 왕이 몸소 신궁(神宮)에 제사지냈다. 3월에 주주(州主)와 군주(郡主)에게 각각 명하여 농사를 권장케 하였고, 처음으로 우경법(牛耕法)을 시행하였다.
503년 10월 국호를 '신라'로 개정하였는데 이때에 제정된 국명인 신라의 의미는 “왕의 덕업이 나날이 새로워지고, 사방의 영역을 두루 망라한다(新者德業日新 羅者綱羅四方之義).”는 뜻에서 취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왕을 뜻하는 마립간(麻立干)의 칭호를 폐지하고 정식으로 왕이라고 칭하게 하는 등 국가 체제를 정비하였다.
504년 4월 상복(喪服)제도를 제정하였다. 9월에 인부를 징발하여 파리성(波里城), 미실성(彌實城), 진덕성(珍德城), 골화성(骨火城) 등 12성을 쌓았다.
505년 2월에 왕이 몸소 나라 안의 주(州)·군(郡)·현(縣)을 정하였다. 실직주(悉直州)를 설치하고 이사부(異斯夫)를 군주(軍主)로 삼았는데, 군주(軍主)의 명칭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11월에 처음으로 담당 관청에 명하여 얼음을 저장하게 하였다. 또 선박 이용의 제도를 정하였다.
506년 봄과 여름에 가뭄이 들어 백성이 굶주렸으므로 창고의 곡식을 풀어 진휼하였다.
509년 정월에 서울에 동시(東市)를 설치하였다. 3월에 함정을 설치하여 맹수의 피해를 없앴다. 7월에 서리가 내려 콩을 죽였다.
510년 5월에 지진이 일어나 백성의 집이 무너지고 사람이 죽었다. 10월에 천둥이 쳤다.
512년 6월 이사부(異斯夫)에게 명하여 지금의 울릉도인 우산국(于山國)을 공취(攻取)하였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이사부(異斯夫)가 아슬라주(何瑟羅州 강릉)의 군주가 되자 꾀를 내었다. 우산국(于山國) 사람들은 어리석고도 사나워서 힘으로 복종하게 하기는 어렵지만, 꾀를 써서 항복받기는 쉽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사부는 나무로 많은 사자를 깍아 전선에 나누어 싣고 우산국 바닷가에 이르러서는,
"만약 너희들이 항복하지 않는다면 이 맹수를 풀어서 모두 밟아 죽이겠다." 하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두려워서 항복을 하였다.
514년 정월에 아시촌(阿尸村)에 소경(小京)을 설치하였다. 7월에 6부와 남쪽 지방 사람들을 옮겨 그 곳을 채웠다. 왕이 죽었다. 죽은 뒤에 지증(智證)이란 시호[諡號;선왕(先王)의 공덕을 기리어 붙인 이름]를 받았는데, 이것이 한국 시법(諡法)의 시초이다. 그 뒤를 이어 아들이 법흥왕이 되었다.
※ 본문참고 : 두산대백과사전
※ 본문출처 : 차석찬의 역사창고
※ 이미지출처 : 엠파스 블로그/ 해삼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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