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마립간(慈悲麻立干)
※ 생존기간 : (?~479)
※ 재위기간 : (458~479)
※ 본문설명
신라 20대 왕으로서 원래의 칭호는 자비마립간(慈悲麻立干)이다. 눌지왕(訥祗王;재위417-458년)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아로부인(阿老夫人)으로 실성왕(實聖王;재위402-417년)의 딸 김씨(金氏)이고, 비(妃)는 미사흔(未斯欣)의 딸이다.
458년 아버지 눌지왕의 뒤를 이어 왕에 즉위하였다.
459년 2월에 시조묘에 배알하였다. 4월에 왜인이 병선(兵船) 100여 척으로 동쪽 변경을 습격하고 나아가 월성을 에워싸고는 사방에서 화살과 돌을 비오듯이 퍼부었다. 왕성(王城)을 굳게 지키자 적들이 장차 물러가려고 하였다. [이에] 군사를 내어 공격하여 쳐부수고 북쪽으로 바다 어구까지 뒤쫓아갔다. 적들 중에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반이 넘었다.
461년 2월에 왕이 친동생인 서불한(舒弗邯) 미사흔(未斯欣)의 딸을 왕비로 삼았다. 4월에 용이 금성의 우물 가운데에 나타났다.
462년 5월에 왜인이 활개성(活開城)을 습격하여 깨뜨리고 백성 1천 명을 사로잡아 갔다.
463년 2월에도 왜병이 경상남도 양산(梁山)의 삽량성(葛良城)에 침입하자 벌지(伐智)·덕지(德智)등에게 명하여 대파시켰으며, 7월 대규모 열병식(閱兵式)을 거행하였다.
465년 4월에 홍수가 나서 산 17곳이 무너졌다. 5월에 사벌군(沙伐郡)에 누리[蝗(황) ;메뚜기]의 재해가 있었다.
467년에는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전함(戰艦)을 수리하게 하였다. 9월에 하늘이 붉어졌고, 큰 별이 북쪽에서 동쪽으로 흘러갔다.
468년 봄에 고구려가 말갈과 함께 북쪽 변경 실직성(悉直城)을 습격하였다. 9월에 하슬라(何瑟羅) 사람으로서 15세 이상인 자를 징발하여 이하(泥河)에 성을 쌓았다.<이하(泥河)를 이천(泥川)이라고도 하였다.>
469년 정월 왕경(王京)인 경주를 지역적으로 구분하여 방리명(坊里名)을 확정함으로써 왕경의 족제적 성격을 탈피하고 행정적 성격을 강하게 하였다. 4월에 나라 서쪽 지방에 홍수가 나서 백성의 집들이 떠내려가거나 무너졌다. 7월에 왕이 수재(水災)를 당한 주와 군을 두루 돌며 위로하였다.
470년 삼년산성(三年山城)을 쌓았다.<삼년(三年)이라는 것은 공사를 시작한 지 3년만에 완공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471년 2월에 모로성(芼老城)을 쌓았다. 3월에 서울에 땅이 갈라졌는데, 가로 세로가 두 길이었으며 탁한 물이 솟아올랐다. 10월에 전염병이 크게 돌았다.
473년 정월에 아찬(;6등급) 벌지(伐智)와 급찬(;9등급) 덕지(德智)를 좌·우장군 (左右將軍)으로 삼았다. 7월에 명활산성(明活山城)을 수리하였다.
474년 일모성(一牟城), 사시성(沙尸城), 광석성(廣石城), 답달성 (沓達城), 구례성(仇禮城), 좌라성(坐羅城)을 축조했다. 7월 고구려 거련왕[장수왕]이 백제를 침공하니 백제왕 개로왕이 왕자 문주를 보내어 구원을 청하니 군사를 내어 구원하였다.
475년 명활성(明活城)에 이거(移居)하였다.
476년 6월에 왜인들이 동쪽 변경에 침입하였으므로 왕이 장군 덕지(德智)에게 명하여 공격하여 쳐부수고 200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477년 5월에 왜인이 군사를 일으켜 다섯 방면의 길로 침입하였으나 끝내 아무런 성과없이 되돌아 갔다.
478년 2월에 밤에 붉은 빛이 한 필의 표백한 명주를 편 것처럼 땅에서 하늘까지 뻗쳤다. 10월에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다.
479년 2월 3일에 왕이 죽었다. 그 뒤를 이어 맏아들이 소지마립간이 되었다.
※ 본문참고 :두산대백과사전
※ 본문출처 :차석찬의 역사창고
※ 이미지출처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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