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와 역사/신라

12. 첨해이사금(沾解尼師今)

오늘의 쉼터 2008. 10. 26. 20:09

 

12. 첨해이사금(沾解尼師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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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해이사금(沾解尼師今)



□ 생존기간 : (?~261)

   □ 재위기간 : (247~261)



◐ 본문설명

신라 12대 왕으로서 성은 석(昔)이며, 원래의 칭호는 첨해 이사금(沾解尼師今)이다. 벌휴왕(伐休王;재위184-196년)의 손자이며, 골정(骨正)의 둘째 아들이다.

247년 형인 조분왕(助賁王;재위230-247년)이 후사(後嗣)가 없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7월에 시조묘에 배알하고 아버지 골정(骨正)을 세신갈문왕(世神 葛文王)으로 봉하였다.

248년 정월에 이찬(伊飡;2등급) 장훤(長萱)을 서불한(舒弗邯)으로 삼아 나라의 정치에 참여시켰다. 2월에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화친을 맺었다.

249년 4월에 왜인이 서불한 우로(于老)를 죽였다. 7월에 궁궐의 남쪽에 남당(南堂)을 짓고<남당(南堂)을 혹은 도당(都堂)이라고도 하였다.> 양부(良夫)를 이찬으로 삼았다.

251년 정월에 처음으로 남당(南堂)에서 정무를 보았다. 한기부(漢祇部) 사람 부도(夫道)는 집안이 가난하였으나 아첨하는 일이 없고 글씨와 셈을 잘하여 당시 이름이 나 있었으므로, 왕이 그를 불러 아찬(;6등급)으로 삼고 물장고(物藏庫) 사무를 맡겼다.

253년 4월에 용이 궁궐의 동쪽 연못에 나타났다. 금성(金城) 남쪽에 쓰러져 있던 버드나무가 저절로 일어났다. 5월부터 7월까지 비가 오지 않았으므로 조묘(祖廟)와 명산에 빌며 제사지냈더니 비가 왔다. 이 해에 흉년이 들고 도적이 많았다.

255년 9월에 백제가 침입해 왔으므로 일벌찬 익종(翊宗)이 괴곡(槐谷)의 서쪽에서 맞아 싸우다가 적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10월에 백제가 봉산성(烽山城)을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256년 3월에 나라의 동쪽 바다에 큰 물고기 세 마리가 밖으로 나왔는데, 길이가 세 길이고 높이가 한 길 두 자였다. 10월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259년 7월에 가뭄이 들고 누리[蝗(황) ;메뚜기]의 재해가 있었다. 이 해에 흉년이 들고 도적이 많았다.

260년 여름에 큰 비가 내려 산 40여 곳이 무너졌다. 7월에 살별[;혜성의 옛이름]이 동쪽에 나타났다가 25일만에 없어졌다.

261년 2월 달벌성(達伐城;지금의 大邱)을 축조하고 나마(奈麻;11등급) 극종(克宗)을 성주로 삼았다. 3월에 백제가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12월 임금이 병으로 승하하였다. 그런데 왕이 아들이 없이 죽었기 때문에 형인 11대 조분왕(助賁王;재위230-247년)의 사위인 미추(;김알지(金閼智)의 5대손 구도(仇道)의 아들)가 이사금이 되었다.


※ 본문참고 : 두산대백과사전
※ 본문출처 : 차석찬의 역사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