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음택지

보검의 칼 끝에서 왕비가 속출한 여흥민씨 묘

오늘의 쉼터 2008. 5. 25. 21:22

 

* 보검의 칼 끝에서 왕비가 속출한 여흥민씨 묘

경기도 양주군(主 : 지금의 남양주시 와부읍 삼패리), 서울에서 약20리 망우리 고개의 오른쪽

(主 : 서울에서 망우리 고개를 넘어 구리시를 지나면 미금시다. 이곳을 지나면 춘천과 양평가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우측 양평길로 들어서 조금만 가면 오른쪽에 있음)에 민씨(閔氏)의 묘가 있다.

그 묘는 금곡(金谷)에 있는 이왕가(李王家) 홍릉(洪陵)의 백호에 해당되며 천마산(天摩山)에 대해서는

 회룡고조격(回龍顧祖格)을 이루고, 천마산의 지맥 호적산의 보검출갑형(寶劍出匣形)이 되어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묘는 민씨(민영기, 閔泳崎)의 13대조가 왕비 재산이 속출할 수 있는 땅으로

선정한 것이다. 그 중 보검의 칼끝에 쓴 묘의 자손이 더욱 영달했다고 한다.
(보검의 칼몸도 양쪽이 모두 좋기는 하지만, 칼은 뭐니뭐니 해도 칼끝이 좋다. 칼의 가치는 칼 끝에 있다.

더욱 이 보검은 출갑형이니 그 칼 끝이 더욱 유력하다고 했다.)

그 말처럼 대를 경과함에 따라 고관대작이 속출했다. 근세에는 이 왕가 3대에 걸쳐 왕비가 나왔다.

조선조 제26대 고종의 부친인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妃(主 : 부인), 고종의 후(后) 민씨(소위 王妃)이다.

그 시아버지인 대원군과의 세력 다툼으로 비명에 죽은 여걸 민씨 및 고종의 첫 아들 제27대 순종의 왕비

민씨가 모두 이 민씨 족에서 나왔다.
지금도 민씨가 양반으로 알려진 것은 다 인정하는 바이다.

훌륭한 대지에 조상의 묘를 잘 쓴 소응이라 한다.

고종이 금곡의 홍릉을 왕릉의 묘지로 선정하기 위하여 묘지를 중심으로 20리 안의 땅에 무덤쓰는 것을

금하고 원래부터 있었던 것도 이장시켰다.
이때 이전된 묘지는 660여 기에 이르렀으나 민씨의 묘만은 그대로 두었다.

즉 고종의 어머니가 민씨이며, 고종의 왕비가 민씨이기 때문에 어머니쪽 묘지에 손을 대는 일을 좋지 않게

생각한 점도 있었을 것이고, 또 세력있는 민비의 체면을 세워준 점도 있었을 것이다.

이장되지 않았던 사실과 왕명으로서도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원인은 처음부터 이 묘지가 좋은 땅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하튼 세상에 더욱 유명해졌다.

*** 主 ***
조선의 풍수라는 책은 조선총독부 촉탁 무라야마지쥰이 총독부 조직을 이용하여 조선 전역의

풍수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총독부에 보고한 자료를 책으로 엮은 것으로 원래는 보고서였다.
일제는 조선 식민지 통치를 위하여 풍수 뿐만 아니라 토속신앙도 조사했는데 `조선의 무속`이라

보고자료도 있다.
따라서 책 내용 곳곳에 조선과 특히 왕실을 의도적으로 비하한 내용들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 때 경부고속도로를 내면서 산맥을 끊었을 때 입을지 모를 화를 미리 피하기 위해서

이 책을 참고했다고 한다.

 

 

-[조선의 풍수, 무라야마지쥰(村山智順), 최길성 옮김, 민음사]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