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404호 나주 복암리 고분군

오늘의 쉼터 2008. 2. 22. 20:42



종    목 사적  제404호
명     칭나주복암리고분군(羅州伏岩里古墳群)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무덤/ 고분군
수량/면적 25,090㎡
지 정 일 1998.02.20
소 재 지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 873-17외
시     대삼국시대
소 유 자국유,공유
관 리 자나주시

일반설명

나주 복암리에 있는 삼국시대 무덤들이다. 95∼97년까지의 조사를 통해 하나의 봉분(3호무덤)을 비롯하여 32기의 다양한 무덤이 발견되었다.

무덤의 형태는 독무덤(옹관묘), 구덩식돌방무덤(수혈식석실묘), 돌덧널무덤(석관묘),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 앞트기식돌방무덤(횡구식석실묘)들로 다양하다. 출토 유물은 금동제신발, 관모, 고리자루큰칼(삼엽환두대도)를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유물이 출토되어 죽은 사람의 신분이 최고 지배층임을 보여준다. 4세기 돌무덤에서 6세기말∼7세기초의 굴식돌방무덤까지 볼 수 있다.

긴세월 동안 다양한 무덤양식을 한 봉분이 나타나는 것은 영산강유역의 토착세력인 독무덤계 사람과 백제세력인 돌방무덤계 사람이 융합하면서 봉분을 계속 확대한 결과이다. 즉 이지역에 진출한 백제세력이 토착세력인 마한세력을 지배한 결정적 자료로서 4∼7세기 집단무덤 성격과 무덤변천과정 연구에 중대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특히 돌방무덤과 독무덤은 도굴이 되지 않아 시체를 묻는 방법 및 유물연구의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전문설명


발굴조사결과('96∼'97) 한 분구(3호분)내에서 국내유일의 다양한 묘제 32기가 확인됨은 물론, 금동신발, 관모, 삼두환두대도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어 영산강 유역의 토착묘제인 옹관묘와 백제계인 석실분의 융합대체과정 즉, 마한과 백제와의 관계를 연구하는데 결정적인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4∼7세기에 걸쳐 조성된 집단묘적 성격과 시기에 따른 옹관묘 및 석실분의 변천과정 연구에 결정적인 자료를 제공해 주는 유적이다.

조사기간은 다음과 같다. 1995년 11월∼1996년 5월에 기초조사(전남대학교 박물관)를 하고, 1996년 7월∼1996년 8월에 국립문화재연구소, 전남대학교박물관 3호분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으며, 1996년 11월∼1997년 3월에 국립문화재연구소, 전남대학교박물관 1단계 전면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한 분구내에 옹관묘, 수혈식석실, 석곽, 횡혈식석실, 횡구식석곽, 서곽옹관 등 다양한 형태의 묘제 32기를 확인하였는 바, 이렇게 다양한 묘제가 복합된 고분은 국내 유일하다. 한 시기의 집단묘제의 성격뿐만 아니라 장구한 세월에 거쳐 한 집단이 사용하면서 분구를 확대한 것을 알 수 있다.

옹관중에는 영산강유역 전용 옹관 중에서 이른시기(4세기)에 해당하는 것이 있고, 횡혈식 석실분 중에는 6세기말∼7세기초반까지 내려오는 것이 있다. 분구는 옹관 또는 석실을 추가하면서 확대해가다가 어느 시기에 방대형(方臺形)으로 만들었다. 이는 각 유구의 축조를 위한 굴광여부와 유구간의 토층으로 확인되었다.

시기에 따른 옹관묘 및 석실분의 변천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제공이 된다. 석실분 및 옹관묘는 모두 처녀분으로 매장방법 및 유물연구의 기준을 마련할 수 있다.




나주 복암리 고분군 전경

나주 복암리 3호분 유구 전경

3호분 7호 석실 금제관식

3호분 '96석실 대도

나주복암리3호분전경

97년발굴조사에서출토된단옹옹관막음돌

제3호옹관묘유물출토상태

제3호옹관묘출토철기(대옹)

제7호석실현문및연도유물출토상태

제7호석실현실내부유물출토상태

석실서편관모및금장식

제7호석실서편삼루환도대도및과대교구

제7호석실삼루환두대도병부

제7호석실동편관모

제7호석실동편금은장원두대도

제7호석실동편대도병부

96년조사3호옹관석실

3호석실출토토기류

3호석실출토금동신발

3호석실출토마구류

3호석실출토마구류

3호석실출토삼엽환두도

나주복암리고분군

나주복암리고분군

북측 좌측분

북측에서 본 우측분

북측에서 본 전경1

북측에서 본 전경2

북측에서 본 전경3

북측에서 본 중앙분

북측에서 본 중앙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