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부터 배를 만드는 조선소가 있던 자리이다. 특히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한 거북선을 만들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지도상으로 보면 가막만의 가장 북쪽에 조선소가 있으며 조선소의 바다 입구에는 가덕도와 장도가 조선소의 방패 구실을 하고 있다. 또한 먼 바다에서 보면 육지처럼 보이고, 가까이 봐도 바다인지 호수인지 알아보기 어려워 중요한 해군 군사 방어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이곳에는 거북선을 만들고 수리했던 ‘굴강’, 칼과 창을 갈고 닦았던 ‘세검정’, 수군지휘소였던 ‘선소창’, 수군들이 머물렀던 ‘병영막사’, 거북선을 매어 두었던 ‘계선주’, 칼과 창을 만들던 ‘풀뭇간’, 왜군들의 활동을 살피던 ‘망해루’, 말과 수군이 훈련하던 ‘망마기마대’, 창을 던지고 활을 쏘는 연습장인 ‘궁장사’, 일반인의 통행금지를 표시했던 벅수(석인) 등 다양한 관련 유물들이 남아 있으며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 하씨부인을 모셨던 곳인 ‘자당기거지’가 있다.
전문설명
선소(船所)마을은 고려시대부터 배를 만드는 조선소가 있었으며 조해소(朝海所)가 있었다고 전해지며, 성조대왕조 1470년 전쯤 고지도에 보면 이곳 선소(船所)는 순천부(順川府) 산하직속 선소(船所)로 명시되어 있다. 이때만해도 선소(船所)에서 판옥선(板屋船), 전선등을 만들어 수군들에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하고 보수도 하며 배를 대피시키기도 했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는 라대용 장군으로 하여금 거북선을 건조(建造)케하여 임진왜란을 결정적인 승리로 이끌게 했던 선소(船所)로써 지도상으로 보면 가막만의 최북단에 여천선소(麗川船所)가 위치하고 있으며 선소(船所)의 해상입구에는 가덕도와 장도가 천연의 방패를 이루고 있어 외해(外海)에서 보면 선소만(船所灣)이 전혀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바다인지 호수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해면이 조용한 전략적인 중요한 위치로써 선소(船所)에 들어서면 누구나 수군요새임을 느낄 수 있고 선소(船所)의 중심부에는 직경 40m(면적 1,388㎡)정도의 굴강(屈江)(거북선을 건조하고 수선한 곳)이 있는데, 이는 선박의 노반장 또는 대피소로 쓰여진곳이 있다.
서남방향으로 20m 부근에는 세검정(洗劒亭)과 군기고가 현재 복원되어 있고 계선주(繫船柱), 벅수, 망루(望樓), 선소창(船所倉),망마산, 궁장, 풀뭇간이 보존되어 있고 임난 5년동안 효성이 지극한 충무공께서 모친 하씨부인(下氏夫人)을 여천시 웅천동(古音川)에 5년동안 기거토록 하여 극진히 모셨던 곳인 자당기거지(慈堂起居地)가 있다. 이곳 이충무공 선소(船所) 유적지를 2차에 걸쳐 발굴조사 하였던 보고서에 의하면 (1차발굴조사시) 출토유물은 금속류 7종에 94개, 자기류 2종에 13개, 기타 4종에 18개, (2차발굴조사시) 출토유물은 금속류 5종에 21개, 자기류 4종에 387개, 기타 4종에 44개가 발굴되었다.
여수 선소유적 전경 여수 선소유적 - 굴강 석축 모습 여수 선소유적 - 복원된 세검정 모습 여수 선소유적 - 복원된 세검정 내부 모습 여수 선소유적 - 풀뭇간 여수 선소유적 - 벅수 여천선소유적 굴강 군기고 세검정 여천선소유적 여천선소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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