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387호 공주 우금치 전적

오늘의 쉼터 2008. 2. 22. 19:40



종    목 사적  제387호
명     칭공주 우금치 전적 (公州 牛禁峙 戰蹟)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전적지/ 동학전적지
수량/면적 51,896㎡
지 정 일 1994.03.17
소 재 지 충남 공주시  금학동 산78-1외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공주시
관 리 자공주시

일반설명

우금치 고개는 1894년 동학농민군이 관군과 일본군의 연합군을 상대로 연합군을 상대로 최후의 격전을 벌인 장소이다. 공주에서 부여로 넘어가는 견준산 기슭의 고개로 우금고개, 우금재 또는 비우금 고개라고도 부른다.

1894년 9월,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은 일본군의 경복궁 침범과 경제적 약탈을 규탄하며 반봉건·반외세의 기치를 내걸고 재봉기를 했다. 일단 우금치를 장악하면 중부지역의 거점인 공주 점령의 기선을 잡을 수 있는 중요한 곳이었다. 공주를 중심으로 향후 전쟁을 이끌어 나가려던 동학농민군은 죽검으로 총에 맞서 싸우다 결국 거의 전멸하게 되었다.

우금치 싸움 후, 재기를 노리던 전봉준이 체포되어 이듬해 3월 처형됨으로써 1년 동안 전개된 동학농민전쟁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동학군의 넋을 달래기 위해 1973년에 이 고개의 동학혁명위령탑이 세워졌으며, 동학농민전쟁 100년이 지난 1994년 이르러 우금치는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동학농민전쟁은 비록 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역사발전의 큰 계기가 되었다.

우금치는 동학농민군이 반봉건·반외세 기치를 걸고 마지막 항전을 이루어냈던 장소로, 한국 근대사의 한고비를 이루는 무대가 된 뜻깊은 장소이다.


전문설명


이 유적은 1894년 9월 당시 일본군의 경복궁 침범(동년 6월)과 경제적 약탈을 규탄하며 반봉건·반외세의 기치를 내걸고 재봉기한 전봉준(1854 철종 5년∼ 1895 고종 32년) 중심의 동학농민군이 논산을 거쳐 공주로 진격하기 위해 우금치 고개에서 관군과 일본군의 연합군을 상대로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으나 패한 동학농민군의 최후·최대의 격전지로서 그 역사적인 가치가 인정되어 주격전지(견준산< 犬준山 >)를 중심으로 한 적정면적을 국가문화재(사적)로 지정·보존하게 된 것이다.




공주 우금치 전적

우금치전적지

우금치전적지

우금치전적지비

우금치전적지

우금치전적지

우금치전적지비

기념구조물1

기념구조물2

기념구조물3

기념비 뒷면 감사문

기념비 앞쪽 비문

기념비 전면부

기념비

뒤쪽에서 본 전경

옆에서 본 전경

왼쪽에서 본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