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385호 구례 석주관성

오늘의 쉼터 2008. 2. 22. 19:34



종     목 사적  제385호
명     칭구례석주관성(求禮石柱關城)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수량/면적 29,965㎡
지 정 일 1993.11.10
소 재 지 전남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산65외 12필지
시     대고려시대
소 유 자사유
관 리 자구례군

일반설명

고려 말기에 왜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 진을 설치했는데 임진왜란(1592) 때 전라방어사 곽영이 호남지역의 왜적을 막기 위해 옛 진 위에 석주관성을 쌓았다.

성의 북쪽과 남쪽이 지리산과 백운산의 험한 산줄기이고 그 사이에 섬진강이 흐르고 있어 군사 방어 지형으로도 중요한 길목이다. 경사진 산허리를 따라 만든 성곽의 길이는 약 736m이고 돌로 쌓아 만든 벽의 높이는 50∼120cm이다.

성벽에 일정한 간격으로 활이나 총을 쏠 수 있게 갈라놓아 적의 공격으로부터 잘 방어할 수 있도록 한 점이 특징이며 성벽 아래쪽과 위쪽의 쌓은 수법에도 차이가 있다.

호남지역에 현존하는 유일한 관문으로서 매우 중요하며, 13세기(고려후기)와 16세기(임진왜란)에 성을 쌓은 기법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는 유적이다.


전문설명


이 유적은 구례 군청 소재지에서 동쪽 6km 지점에 있는데 북쪽과 남쪽이 지리산과 백운산(白雲山)의 험한 산줄기이기 그 사이를 섬진강이 흐르고 있는 천험의 요충지이며 하동과 구례를 통하는 호일령(湖一嶺)간의 인후지에 해당된다. 호남지역에 현존하는 유일한 석축관문(石築關文)으로서 그 가치가 인정되고 있다.

이 유적이 설치되게 된 배경은 고려말에 왜구를 방어하기 위하여 이 곳에 진(鎭)을 설치하고부터인데 임진왜란 당시(1592) 고려때의 진성(鎭城) 위에 전라방어사 곽영(郭嶸)이 호남의 왜구를 막기 위해서 이 석주관성을 쌓았다.

경사진 산허리의 정상부를 따라 축조된 현존 성곽의 총 길이는 약 736m, 석축 높이는 50-120cm로서 석축에 일정한 간격으로 단(段)을 두고 단과 단 사이에 타구(타口)(성 여장에 활이나 총을 쏠 수 있게 갈라놓은 자리)를 두어 적의 공격시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한 점이 특징이다. 또한 산허리 정상부를 따라 축조된 성벽의 중간부분 이하나 높은 부분의 축조기법에 차이를 나타내고 있어 13세기(고려말)와 16세기(임진왜란)의 관성축조(關城築造)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구례 석주관성 원경

구례 석주관성 체성(성벽)부

구례 석주관성 근경

구례석주관성전경

구례석주관성

구례석주관성

구례석주관성

구례석주관성

동쪽에서 본 칠의각

성1

성2

성3

칠의사묘에서 본 칠의각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