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382호 여주 고달사지

오늘의 쉼터 2008. 2. 22. 19:24



종     목 사적  제382호
명     칭여주고달사지(驪州高達寺址)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사찰
수량/면적 58995㎡
지 정 일 1993.07.23
소 재 지 경기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411-1외
시     대통일신라
소 유 자국유,사유
관 리 자여주군

일반설명

고달사는 신라 경덕왕 23년(764)에 처음 세워진 후, 고려 광종 이후 역대 왕들의 보호를 받아 큰 절로 성장하였다. 고달사에는 석조 문화재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모두 고달이라는 석공이 만들었다고 전한다. 고달은 가족들이 굶어 죽는 줄도 모르고 절을 이루는 데에 혼을 바쳤다고 하는데, 절을 다 이루고 나서는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으며, 훗날 도를 이루어 큰스님이 되니, 고달사라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절터 안에는 깔끔한 모양과 세련된 조각수법의 고달사지부도(국보 제4호)를 비롯하여 훌륭한 문화재들이 많이 남아 있다. 고달사 원종대사혜진탑비 귀부와 이수(보물 제6호)는 원종대사의 행적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탑비로 975년에 만들었는데,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시대 초기로 넘어가는 탑비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달사 원종대사혜진탑(보물 제7호)은 원종대사의 묘탑으로 아름답고 화려한 조각이 있어 고려시대 부도의 조각 수법이 잘 나타나 있다. 그 밖에 고달사지석불좌(보물 제8호)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긴 고달사지쌍사자석등(보물 제282호)이 있다.

최근에 발굴조사를 통해 금당터를 비롯한 건물터를 확인하고, 절터의 규모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전문설명


고달사< 高達寺 >는 신라 경덕왕< 景德王 > 23년(764)에 창건< 創建 >되었으며 고려 광종< 光宗 > 이후 역대왕< 歷代王 >의 비호< 庇護 >를 받은 대사찰< 大寺刹 >이었으나 언제 폐사< 廢寺 >가 되었는지 확실하지 않다.경내< 境內 >에는 부도 < 浮屠 >(국보 제4호), 석불좌< 石佛座 > (보물 제8호), 원종대사혜진탑 < 元宗大師慧眞塔 >(보물 제7호), 원종대사 혜진탑비< 慧眞塔碑 > 귀부< 龜趺 > 및 이수 (보물 제6호)가 있고, 쌍사자석등 < 雙獅子石燈 >(보물 제282호)은 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에 보관되어 있다.'원종대사 혜진탑비'의 기록< 記錄 >에 의하면 국가가 관장< 管掌 >하는 사원< 寺院 >인 삼원< 三院 > 중의 하나로 규모가 크며 고려시대에는 원종대사가 주지< 住持 >로 머무는 등 대사찰< 大寺刹 >의 규모를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여주 고달사지 전경

여주 고달사지-5차 발굴조사 지역 전경

여주 고달사지-나-2탑지

여주 고달사지-여주 고달사지 발굴 전경

여주 고달사지-석조

여주 고달사지-출토유물

여주 고달사지-출토유물

여주 고달사지

여주 고달사지

여주고달사지

여주고달사지부도(국보4호)

가1 담장지

가12 건물지

가2 건물지 추정 법당지

귀부1

귀부2

나13 건물터

나5 축대

석조1

석조2

석조불대좌 정면

석조불대좌 정측면

원종대사탑비 정면

원종대사탑비 정측면

원종대사탑비 측면

전경1

전경2

전경3

전경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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