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란 도자기, 기와, 그릇을 굽던 가마터를 말한다.
월출산 남서쪽의 남송정마을로 드러가는 우측 구릉에 있다. 이 곳에서 2기의 가마터가 발굴되었는데, 가마는 길이 4.7m, 폭 2.3m의 반지하식으로 아래부분은 넓고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모양을 하고 있다. 회흑색 토기 조각을 비롯해 다양한 용도와 모양의 자기들이 발견되었다. 대체로 10세기 전반을 중심으로 하는 시기에 제작활동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영암 구림리 요지는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로 옮겨가는 전환기의 가마터이다. 반지하식으로 굽는방을 1개만 가진 가마의 구조나 발전된 도자기조각의 특징으로 보아 매우 중요한 것이다.
전문설명
월출산< 月出山 >의 남서< 南西 >쪽 얕은 구릉으로 동구림< 東鳩林 >고등학교에서 남송정마을로 들어가는 우측구릉에 위치하며, 1987년 이화여대박물관에 의해서 퇴적층일부와 전체구조를 명확히 알 수 있는 2기의 요< 窯 >가 발굴< 發掘 >되었다. 요< 窯 >의 구조< 構造 >는 아랫쪽으로부터 경사면을 굴을 파들어가서 요상< 窯床 >은 지하< 地下 >가 되는 반지하식< 半地下式 >의 단실요< 單室窯 >로 길이는 4.7m, 폭은 2.3m, 가마바닥의 경사는 입구가 15°, 뒷면 굴뚝부분에서 30∼40°의 급경사를 이룬 아래가 넓고, 위가 좁아지는 소위 독사머리모양의 구조이다. 아궁이는 2m×2.5m의 타원형으로 가마바닥과 비스듬히 바로 연결되어 있다. 출토도편< 出土陶片 >은 회흑색< 灰黑色 >의 경질도기< 硬質陶器 >와 연질도기< 軟質陶器 >들로, 대호< 大壺 >, 광구사각병< 廣口四角甁 >, 병< 甁 >, 주름문소병< 小甁 >과 대발< 大鉢 >, 바래기, 대접, 시루편들이 발견되었는데 대체로 기벽< 器壁 >이 두껍고 기공< 氣孔 >이 많으며 구록< 口綠 >이 예리한 점을 들 수 있다. 제작< 製作 >시기는 9세기< 9世紀 >중반으로 추정되는 보령진죽리< 保寧眞竹里 > 도기< 陶器 >의 기형< 器形 >과 유사성이 있으나 그보다는 늦은 약화< 略化 >된 솜씨가 11세기< 11世紀 >로 추정하는 완도해저출토< 莞島海底出土 > 도기< 陶器 >보다 이른 것으로 보아 10세기전반< 10世紀前半 >을 중심< 中心 >으로 하는 시기에 제작활동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영암 구림리요지< 靈岩鳩林里窯址 >는 통일신라도기< 統一新羅陶器 >에서 고려시대< 高麗時代 >로 이행되어 가는 전환기의 도기요지< 陶器窯址 >로서 반지하식< 半地下式 >의 단실요< 單室窯 >의 구조나 출토도편< 出土陶片 >의 특징으로 매우 중요한 가마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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