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당산 서쪽 기슭 논 가운데에 있는 절터로서 현재 석재와 기와조각들만 남아 있다. 통일신라 전기에 있던 절로, 김유신과 천관이라는 기생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청년시절에 김유신은 천관이라는 기생과 사랑에 빠져 지내다가, 어머니의 꾸중으로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를 한다. 어느날 말이 술에 취한 유신을 천관의 집 앞으로 데려가자, 유신은 말의 목을 베고 냉정하게 천관을 뿌리친다. 이를 슬퍼한 천관이 자살을 하고, 후에 유신은 천관이 살던 집에 천관사를 지어 그녀의 명복을 빌어 주었다고 한다.
전문설명
천관사지< 天官寺址 >는 오릉< 五陵 > 동쪽 논 가운데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석탑재< 石塔材 > 몇개와 와편< 瓦片 >들이 보일 뿐 전체적< 全體的 >인 규모< 規模 >·배치< 配置 > 건물내용< 建物內容 >들은 알 수 없다. 이 점은 사지< 寺址 >에서 출토되는 기와나 김유신장군과 천관< 天官 >이라는 기생의 전설< 傳說 >로 보아 통일신라< 統一新羅 > 초기< 初期 >에 이룩된 절이 아닌가 추측된다. 김유신< 金庾信 >이 어렸을 때 우연한 기회에 천관< 天官 >이라는 기생을 알게 되었고 결국에는 깊은 정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때문에 김유신은 하루의 수련이 끝나면 일과처럼 천관< 天官 >의 집에 찾아가곤 하였다. 이 사실을 안 유신의 어머니는 그의 아들을 불러 "너는 장차 이 나라의 대들보가 되어 공명< 功名 >을 세워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를 영화롭게 하기를 바랐는데 너는 천한 기생과 사귀어 스스로 귀함을 버리니 웬일이냐" 하고 흐느껴 울었다. 유신은 엎드려 뉘우치고 어머니 앞에 맹세하기를 다시는 천관< 天官 >의 집 근처에도 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유신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그를 태운 말이 어느새 천관< 天官 >의 집앞에 멈추었다. 이때 천관< 天官 >은 오랫동안 보지 못한 님을 보자 기쁘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한 감회를 억누르고 문앞으로 뛰어나왔다. 그러나 정신을 차린 김유신은 어머니와의 약속을 어기게 하고 대장부의 결심을 헛되이 한 죄가 모두 말(마< 馬 >)의 죄라며 말의 목을 벤 뒤 뒤로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오고 말았다. 그후 천관< 天官 >은 늘 유신을 사모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훗날 김유신장군은 사랑했던 옛 여인을 위하여 천관< 天官 >의 집터에 절을 세우고 천관사< 天官寺 >라 불렀다 한다.
경주천관사지 천관사지 전경 천관사지1 천관사지2 천관사지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