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유적은 청동기시대의 대규모 집단 마을터로서 낮은 구릉의 비탈면에 위치한다.
마을 둘레에 못(환호)을 파 놓았는데, 이것은 당시 마을의 방위개념을 보여주는 자료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V’형태로 판 이 못은 현재 길이가 약 300m, 너비 50∼200㎝, 깊이 20∼150㎝ 정도이며, 이전에는 더 깊고 넓었을 것으로 보인다. 집자리와 움집터가 확인되었고 다양한 토기류와 석기류, 가락바퀴(방추차), 그물추 등 약 4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마을의 개념을 나타내는 못의 발견, 각종 유물들로 인해 당시의 생활상을 살필 수 있어 중요하며 청동기시대 연구에도 큰 역할을 하는 가치있는 곳이다.
전문설명
이 유적은 1990년 부산대학교< 釜山大學校 > 박물관< 博物館 >의 학술발굴조사로 선사시대< 先史時代 >인 청동기시대< 靑銅器時代 >의 집단마을터< 集團聚落址 >였음을 밝히게 되었다. 해발 123∼104m의 언덕의 느릿한 비탈에 마련된 마을 둘레에 타원형의 못을 파 돌려 놓았다. 이는 우리나라 고고학상< 考古學上 > 처음으로 밝혀진 것으로, 당시 마을의 방위개념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V꼴로 판 이 못은 현재 300m 길이에 너비 50∼200cm, 깊이 20∼150cm이나 규모로 보아 본래는 더 깊고 넓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조사된 넓이 약 400평에 집터 93기, 움터 3기, 대상유구< 帶狀遺構 > 2기와 공렬토기< 孔列土器 > 등을 비롯한 민무늬토기< 無文土器 >, 반달칼< 半月刀 > 및 석기< 石器 >, 가락바퀴< 紡錘車 >, 그물추< 漁網錘 > 등 모두 400여점의 유물이 나와 당시의 생활문화를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울주검단리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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