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의 끝에 있는 고려시대 가마터이다. 이곳에는 거대한 퇴적층이 있는데, 퇴적층 에서 가마의 유구와 백자, 청자, 도기 조각 등과 작업에 관계되는 건물터도 조사되었다.
가마는 벽돌로 된 가마와 진흙으로 지은 가마가 확인되었는데, 벽돌가마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밝혀진 것이고 진흙가마는 길이 83m의 대형가마로, 출입구가 27개나 확인되었다. 출토유물로는 그릇이 많으며, 특히 해무리굽을 가진 대접(완)이 대부분이다. 제작시기는 10세기 후반부터 12세기 전반까지로 추정한다.
거대한 퇴적층과 벽돌·진흙가마의 존재, 다양한 모양의 백자 조각 등의 발견은 고려백자의 발생과 변천과정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역할을 하며, 한국도자사 연구에도 큰 도움을 준다.
전문설명
서리(西里)의 중덕부락(中德部落) 산(山)23번지에 위치하여 퇴적구(堆積丘)는 자연경사형(形)으로 가운데가 움푹하고 양옆이 봉우리를 이루며 퇴적더미의 길이는 80m, 폭은 50m, 높이는 5∼6m에 달하는 대규모 가마터이다. 퇴적층에서 가마의 유구와 백자(白瓷), 청자(靑瓷), 도기편(陶器片), 갑발(匣鉢), 갑발(匣鉢)받침, 가마벽편(片)들과 작업과 관계있는 건물지가 조사되었다.
가마는 퇴적구(堆積丘)의 양쪽 사이에서 발견(發見)되었는데, 최하층의 벽돌가마는 약 40m의 길이, 폭 1.8m으로 7×15×32cm에 달하는 장방형(長方形)의 벽돌을 사용하였고, 그 위의 진흙가마는 길이 83m, 폭 1.2m로 진흙과 갑발(匣鉢)을 사용해 가마를 축조하였다.
출토도자(出土陶瓷)는 백자(白瓷)의 완, 접시, 발(鉢), 항(缸), 대합(大盒), 광구병(廣口甁), 탁잔(托盞), 호(壺), 장고, 제기 등으로 그중 햇무리굽 완, 접시가 대부분이며, 철화백자장고편(鐵畵白瓷장고片), 그리고 청자(靑瓷)접시, 완편, 질그릇항아리편(片)들이 발견되었다. 백자(白瓷)의 태토(胎土)는 백색(白色)의 고운 것과 입자가 거친 것이 있으며, 담청(淡靑)을 머금은 백자유(白瓷釉)에 내화토(耐火土)받침으로 받쳐 구워졌다.
가마의 제작시기는 햇무리굽완의 중심시기를 11세기(世紀)로 볼 때, 선햇무리굽완의 시기인 10세기후반(10世紀後半)부터 11세기(世紀)를 거쳐 후햇무리굽완의 시기인 12세기전반(12世紀前半)까지 계속되었다고 추정된다.
1984년, 87년, 88년까지 3차에 걸쳐 호암미술관(湖巖美術館)에 의해 발굴조사된 이 가마터는 고려시대(高麗時代) 초기(初期) 백자요지(白瓷窯址)로서의 중요성과, 6m에 달하는 잘 남아 있는 퇴적층(堆積層)과 벽돌가마, 진흙가마의 존재, 다양(多樣)한 기형(器形)의 백자편(白瓷片) 등으로 고려백자(高麗白瓷)의 기원(起源)과 발전(發展)을 이해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가마터이다.
용인서리고려백자요지 용인서리고려백자요지 진흙가마바닥하부의봉통구조 용인서리고려백자요지 용인서리고려백자요지 벽돌가마벽 퇴적구절개부(최하층) 백자화형접시 청자선해무리굽(위)과백자해무리굽(아래) 백자및청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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