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327호 창원 다호리 고분군

오늘의 쉼터 2008. 2. 21. 23:07



종    목 사적  제327호
명     칭창원 다호리 고분군 (昌原 茶戶里 古墳群)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무덤/ 고분군
수량/면적 101,802㎡
지 정 일 1988.09.03
소 재 지 경남 창원시  동읍 다호리 237-3
시     대삼국시대
소 유 자공유, 사유
관 리 자창원시

일반설명

경상남도 창원군 다호리에 있는 고대국가 형성기의 고분이다. 구릉지와 저습한 평지의 지형관계로 목제품 유물의 보존이 가능한 지형이다.

조사에 의하면 대부분이 널무덤(목관묘)이며, 일부에서 독무덤(옹관묘)이 나타났다. 널무덤은 무덤구덩이(묘광)의 크기와 껴묻거리구덩이(부장갱)의 유무에 따라 3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이러한 3유형은 무덤 주인의 신분차이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1호 목관묘에서 보이는 나무널은 지름 1m의 통나무를 세로로 쪼개어 속을 파서 만든 구유 모양으로, 우리나라 서북지방 나무널과 차이가 난다. 출토유물은 동검, 중국거울(한경)을 비롯한 청동기와 오수전, 철검, 손칼, 부어 만든 도끼(주조철부), 두드려 만든 판상철부 등 철기제품이 나왔다. 또한 칼집, 활, 화살, 합, 붓, 부채, 칠기와 민무늬토기, 와질토기가 출토되었다. 특히 중국 거울인 성운경과 중국 화폐인 오수전이 출토되어 다호리 고분이 서기 1세기 후반에서 기원전 1세기 사이의 유적임을 알려주고 있다. 다양한 철기와 중국계 유물의 출토로 보아, 이 지역의 철 생산을 바탕으로 중국·낙랑과 교역한 세력의 지배자 무덤으로 보여진다.

다호리 고분은 한국고대사의 공백기인 고대국가 형성시기에 대한 새로운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또한 통나무를 파내고 만든 목널의 출토는 나무널에 대한 새로운 형태를 제시하였으며, 문자 생활의 증거인 붓과 가야금의 원조인 현악기 등이 나왔으며, 한편 오수전, 성운경을 통해 중국·낙랑과 활발한 교역을 하였음을 알 수 있는 유적으로 당시 문화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전문설명


[위치(位置)·분포(分布)] 의창다호리분묘(義昌茶戶里墳墓)(옹관묘(甕棺墓)·목관묘(木棺墓))군(群)은 행정구역 상 경상남도(慶尙南道) 창원군(昌原郡) 동면(東面) 다호리(茶戶里) 232번지(番地) 일대(一帶)에 위치(位置)하고 있다. 분묘군(墳墓群)이 위치(位置)하고 있는 일대는 해발 433m의 구룡산(九龍山) 북서(北西)줄기와 이어지는 해발 20m 정도의 야산(野山)에서 북(北)쪽으로 뻗어내린 낮으막한 구릉(丘陵)이었던 곳이나 지금은 과수원과 계단식 논밭으로 개간되어 있다. 그리고 야산(野山)의 정상부(頂上部)쪽으로 올라가면서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 후기분묘(後期墳墓)들과 가야시대(伽倻時代)의 대소형(大小形) 석실분(石室墳)이 분포(分布)하고 있다.

[분묘(墳墓)의 구조형식(構造形式)] 분묘군(墳墓群)에서는 옹관묘(甕棺墓) 2기(基)와 목관묘(木棺墓) 12기(基)를 조사발굴(調査發掘)하였는데 옹관묘(甕棺墓) 2기(基) 중 5-2호옹관묘(號甕棺墓)는 5호분(號墳)의 묘광(墓壙) 바닥 생토면(生土面)에 길이 150cm·너비 65cm·깊이 24cm인 장타원형토광(長楕圓形土壙)을 파고 그 안에 우각형파수(牛角形把手) 1쌍(雙)이 대칭으로 달린 장란형무문토기(長卵形無文土器) 주옹구연부(主甕口緣部)에 역시 우각형파수(牛角形把手) 1쌍(雙)이 대칭으로 달린 광구발형무문토기(廣口鉢形無文土器) 부옹저부(副甕底部)를 삽입(揷入)한 합구식옹관(合口式甕棺)을 장축동서방향(長軸東西方向)으로 횡치(橫置)한 구조(構造)인데 주옹(主甕)의 높이는 69.6cm·입지름 25.5cm, 부옹(部甕)은 높이 22.3cm·입지름 24.6cm이다. 7호옹관묘(號甕棺墓)는 6호분(號墳)에서 북(北)쪽으로 50cm 떨어진 곳에 있고 토광(土壙)의 윤곽은 뚜렷하지 않으며 평저옹형무문토기(平底甕形無文土器)를 장축동서방향(長軸東西方向)으로 횡치(橫置)한 무개단옹식구조(無蓋單甕式構造)인데 옹관(甕棺)의 길이 41.4cm이다.

목관묘(木棺墓) 12기(基)는 지표(地表)에 말각장방형(抹角長方形)의 묘광(墓壙)을 파고 그 안에 목관(木棺)을 안치(安置)한 구조형식(構造形式)인데 묘광(墓壙) 바닥 중앙부(中央部)에 마련된 부장갱(副葬坑)의 유무(有無), 묘광(墓壙)의 크기 등에 의하여 3유형(類型)으로 크게 나누게 된다.

제(第)Ⅰ유형(類型)은 묘광(墓壙)의 규모(規模)가 비교적 크고 깊은 편으로 길이 240cm∼278cm, 너비 110cm∼136cm, 지금 깊이 120cm∼205cm이고 묘광(墓壙) 바닥 중앙부(中央部)에 장방형부장갱(長方形副葬坑)이 있으며 부장품(副葬品)이 비교적 많은 것이다. 이 유형(類型)에는 제(第)1·2·11호목관묘(號木棺墓) 등이 속(屬)한다.

제(第)Ⅱ유형(類型)은 묘광의 규모가 제1유형과 비슷한 것도 있으나 대체로 약간 작은 편이고 묘광 바닥 중앙부에 부장갱이 보이지 않으며 묘광의 길이 200cm∼270cm, 너비 80cm∼125cm, 지금 깊이 90cm∼168cm 정도이다. 이 유형에는 제3·4·6·8·10·13호목관묘가 속한다.

제(第)Ⅲ유형(類型)은 묘광(墓壙)의 규모(規模)가 제일 작고 얕으며 길이 160cm∼200cm, 너비 55cm∼64cm, 지금 깊이 20cm∼40cm 정도이다. 그리고 묘광 바닥 중앙부에 부장갱이 없고 부장품도 매우 빈약하다. 이 유형에는 제9·12호목관묘가 속한다. 그리고 5호목관묘(號木棺墓)는 묘광(墓壙)의 윤곽(輪廓)이 불분명(不分明)하여 유형분류(類型分類)에서 제외(除外)되었다.

목관(木棺)의 구조(構造)에 있어 잘 남아 있는 1호목관묘(號木棺墓)의 것을 보면 길이 240cm·너비 85cm·지름 65cm 크기의 굵은 통나무를 반절(半截)한 뒤 각각의 내부를 구유 모양으로 파내어 관(棺)의 개부(蓋部)와 신부(身部)로 사용(使用)하였는데 개부(蓋部)와 신부(身部)의 결합방법(結合方法)은 개(蓋)·신부(身部)의 양단(兩端) 단측면(短側面) 안쪽에 개부상면(蓋部上面)에서 신부하부(身部下部)로 이어지는 장방형(長方形) 구멍을 뚫고 나무쐐기를 삽입(揷入)하여 결합(結合)하였다.

[출토유물(出土遺物)] 유물(遺物)은 재질(材質)과 용도(用途)에 따라 분류(分類)하면 다음과 같다. 토기(土器)…온전한 것은 없고 무문토기(無文土器)에는 옹형토기(甕形土器)·심발형토기(深鉢形土器)·변형점토대토기(變形粘土帶土器)·두형토기(豆形土器)·주머니호(壺)·완형토기개(완形土器蓋) 등이 있고 연질(軟質)(와질(瓦質))토기(土器)에는 우각형파수부호(牛角形把手附壺)·주머니호(壺) 등이 있다. 목기(木器)…목관(木棺)·목봉(木棒)·합(盒) 등. 칠기(漆器)… 칠초(漆초)·칠궁(漆弓)·궁시(弓矢)·원형두(圓形豆)·방형두(方形豆)·발(鉢)·배(杯)·통형배(筒形杯)·유개통형칠기(有蓋筒形漆器)·흑칠목심통형잔(黑漆木心筒形盞)·개(蓋)·흑칠찰갑편(黑漆札甲片)·흑칠환(黑漆環)·칠기(漆器)붓·부채 등. 청동기(靑銅器)…동검(銅劍)·동모(銅모)·검파반부(劍把盤部)·검초금구(劍초金具)·대구(帶鉤)·거치문동환(鋸齒文銅環)·소동탁(小銅鐸)·오수전(五銖錢)(천상횡문(穿上橫文)·사각결문(四角決文))·성운문경(星雲文鏡)·단추형동기(銅器) 등. 철기(鐵器)…철검(鐵劍)·철모(鐵모)·철과(鐵戈)·환두도자(環頭刀子)·철착(鐵鑿)·철겸(鐵鎌)·판상철부(板狀鐵斧)·방주형철부(方柱形鐵斧)·공부(공斧)·따비 등. 석제품(石製品)…마제석부(磨製石斧)·지석(砥石) 등. 기타(其他)…식옥(飾玉)·노끈·동아줄·나무잎·씨앗·밤 등. [추정년대(推定年代)] 년대(年代)는 1호목관묘(號木棺墓)의 경우 출토(出土)된 성운문경(星雲文鏡)과 오수전(五銖錢)으로 보아 기원전(紀元前)1세기(世紀) 후반(後半)으로 추정(推定)하고 그 밖의 분묘(墳墓)는 모두 기원(紀元) 전후(前後)한 시기(時期), 늦어도 기원(紀元)1세기대(世紀代)에 축조(築造)한 것으로 보고 있다.




목관노출모습

의창다호리고분군

출토유물

칠초동검

각종토기

전경

부장갱내죽협

다호리 고분군 전경1

다호리 고분군 전경2

다호리 고분군 전경3

다호리 고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