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는 토기나 도자기를 만들고 굽던 가마터를 말한다. 이곳은 3∼4세기경 백제토기를 굽던 곳으로, 9기의 크고 작은 가마터와 작업장이 확인되었다.
가마의 구조는 산비탈을 이용한 굴가마(등요)로, 지하굴식의 대형가마 5기와 반지하식의 소형가마 4기로 구분된다. 대형가마의 하나인 7호는 전체길이 7.7m, 폭 2.95m, 높이 1.55m이며, 소형가마의 하나인 4호는 길이 3.6m, 넓이 1.6m이며 모양이 둥글다.
토기들은 회흑색의 단단한 경질토기와 적갈색의 연한 연질토기 등이며, 기형은 목짧은 항아리, 달걀모양의 항아리 등에 두드림무늬가 새겨진 것이 있다.
백제 초의 토기 가마터와 작업장이 함께 확인되는 중요한 유적지이다.
역사성과 특성을 고려한 인접지역 고분군 통합 ※ 재지정 : 사적 제511호 '진천 산수리와 삼용리 요지'
전문설명
1986년 중부고속도로 공사에 의해 한남대학교 박물관이 발굴조사(發掘調査)한 가마터로 모두 9기의 대형(大形), 소형(小形)의 가마터와 2개의 작업장 확인되었다.
가마의 구조는 야산의 경사면을 이용한 등요(登窯)이며 지하굴식(地下窟式)의 대형(大形)가마 5기와 반지하식(半地下式)의 소형(小形)가마 4기로 구분할 수 있다.
대형가마인 7호(號)가마는 야산 경사면에 아궁이를 수직으로 파내려 간 다음 아궁이쪽으로부터 굴을 뚫어 번조실(燔造室)을 만든 지하굴식 가마로, 아궁이쪽으로부터 점점 넓어져 번조실 앞부분이 최대넓이를 이루고 뒤로 가면서 좁아졌는데 가마의 전체길이는 7.7m, 폭 2.95m, 천장의 높이는 1.55m이다.
소형(小形)가마인 4호가마는 총길이 3.6m, 넓이 1.6m로 전면이 둥글게 되었으며, 출토도편(出土陶片)들은 회흑색경질도기(灰黑色硬質陶器), 회색(灰色), 적갈색연질도기(赤褐色軟質陶器), 흑색도기(黑色陶器) 등으로 기형(器形)은 대형의 짧은목항아리, 소형(小形)의 짧은목항아리, 달걀모양 항아리로 대부분 짧은 목에 밖으로 벌어진 것이었으며, 전면에 돗자리무늬의 타날수법에 의해 제작된 것이었다.
가마의 제작시기는 서울 석촌동(石村洞)의 백제토광묘출토(百濟土壙墓出土) 도기(陶器), 청주(淸州) 신봉동(新鳳洞) 백제토광묘(百濟土壙墓) 출토(出土) 도기(陶器)들과 비슷한 기형(器形)이 출토(出土)되고 있어 백제시대 3∼4세기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처럼 백제초기(百濟初期)의 도요(陶窯)로서 대형(大形), 소형(小形)의 9기(基)의 요(窯)가 집단으로 작업장과 함께 발굴조사된 가마터로 다양한 질그릇들과 함께 매우 중요한 요지군(窯址群)이다.
발굴작업모습('86) 발굴작업모습(근경) 7호가마터 7호가마터(경화처리보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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