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지는 그릇이나 자기를 만들어 굽던 가마터를 말한다.
남종면·중부면·퇴촌면 등 광주시 일대에는 도자기를 굽는데 필요한 흙이 나오며, 나무와 물이 풍부하다. 제품의 공급지인 서울과 가깝고 한강을 이용한 운반의 편리성으로 인해, 조선 영조 28년(1752) 궁중음식을 담당하던 사옹원의 분원으로 지정됐다. 그 후 조선왕조가 끝날 때까지 130여 년 동안 285개소의 가마터가 이 일대에서 번창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국가 사정이 어려워지자, 분원리 가마터는 개인에게 경영권을 주게 되었다. 그 후 여러 계층의 수요와 요구에 따라 자기의 모양과 무늬가 다양해졌으며, 청화백자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가마터의 구조는 오름가마이며, 계단식가마도 확인되었다. 여러 모양과 무늬를 새긴 자기들이 출토되었고, 글씨가 새겨진 도자기를 통해 제작시기도 알 수 있다.
이 일대는 조선 전기에서 후기까지 질 좋은 도자기를 만들어내던 중심지였기에 조선 도자사 연구에 기반이 되는 곳으로서 매우 가치있는 곳이다.
전문설명
광주(廣州)의 조선시대(朝鮮時代) 분청자(粉靑瓷)와 백자요지(白瓷窯址)는 광주시(廣州市)를 중심(中心)으로 퇴촌면(退村面), 중부면(中部面), 초월면(草月面), 도척면(都尺面), 실촌면(實村面), 남종면(南終面) 일대(一帶)에 200여개소에 산재(散在)해 있다. 1920년대(年代) 이래 조선백자요지군(朝鮮白瓷窯址群)으로 널리 알려진 이래 관심 있는 국내외 학자들의 답사로 항상 주목되어 온 곳으로, 그동안 뜻있는 분들의 조사(調査), 보존(保存)작업에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도시화, 산업화에 따른 파괴 역시 적자 않아 그중 대표적인 가마터를 조사하여 1985년에 지정된 곳이다.
광주요지(廣州窯址)는 조선 초기의 분청자요지(粉靑瓷窯址)들과, 조선 초기로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의 관영사기제조장(官營沙器製造場)인 분원(分院)의 설치, 이동에 따른 백자요지군(白瓷窯址群) 그리고 약간의 질그릇가마터와 근현대(近現代)의 백자(白瓷)가마터들로 핵심(核心)은 경안천(慶安川)의 지천인 번천(樊川), 우천(牛川), 곤지암천(昆池岩川)의 좌우 구릉일대에 널려있다.
분청자(粉靑瓷)의 가마터로는 번천리(樊川里), 도마리(道馬里), 도수리(陶水里), 관음리(觀音里), 쌍동리(雙東里), 학동리(鶴東里) 등에 남아있으며, 15세기(世紀)의 상감(象嵌), 인화분청자(印花粉靑瓷)들로 백자(白瓷)가 발달되기 전의 가마터들로 주목되는 곳이다.
백자(白瓷)의 가마터로는 15세기(世紀) 상감백자(象嵌白瓷)를 제작하던 번천리(樊川里), 우산리(牛山里), 무갑리(武甲里), 목현리(木峴里), 도마리(道馬里) 요지(窯址)들로 선구적인 조선백자(朝鮮白瓷)의 제작지가 있으며, 분원(分院)이 15세기후반(世紀後半)에 설치되면서, 16세기전반(世紀前半)까지 활동하였던 우산리(牛山里), 도마리(道馬里), 도수리(陶水里), 학동리(鶴東里), 신대리(新垈里), 무갑리(武甲里), 오전리(梧田里), 번천리(樊川里)의 가마터가 있어, 초기의 청화백자(靑 白瓷), 양질(良質)의 백자(白瓷)접시, 항아리, 병(甁), 사발 등을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16세기후반(世紀後半)에서 17세기말까지 활동하였던 가마터로 관음리(觀音里), 대쌍영리(大雙嶺里), 정지리(亭支里), 탄벌리(炭筏里), 상임리(祥林里), 선동리(仙東里), 송정리(松亭里), 유사리(柳寺里), 신대리(新垈里), 지월리(池月里)의 백자요지(白瓷窯址)들로 중기(中期)의 회백색(灰白色)의 백자(白瓷), 철화백자(鐵 白瓷)의 제작이 중심을 이룬다.
조선후기(朝鮮後期)인 18세기(世紀)의 관음리(觀音里), 오향리(五香里), 금사리(金沙里), 분원리(分院里) 1요지(窯址)와 19세기(世紀)의 분원리(分院里) 2요지(窯址)의 설백색(雪白色), 청백색(靑白色)의 백자(白瓷)와 청화백자(靑 白瓷)의 항아리, 술병, 접시 필통, 연적, 제기 등의 다양(多樣)한 예들, 동화백자(銅 白瓷), 철유(鐵釉), 흑유(黑釉) 등이 제작되었다.
이처럼 광주일대(廣州一帶)는 조선초기(朝鮮初期)부터 후기(後期)에 이르기까지 분청자(粉靑瓷), 백자(白瓷), 청화백자(靑 白瓷), 철화백자(鐵 白瓷), 동화백자(銅 白瓷)의 각종 기형(器形)과 문양(紋樣)이 시문(施紋)된 양질(良質)의 뛰어난 도자기(陶瓷器)들이 제작되었던 곳으로 그 역할을 담당하였던 분원(分院)의 제작활동이 남아있는 조선백자(朝鮮白瓷)의 핵심(核心)이며 조선도자연구(朝鮮陶瓷硏究)의 기반이 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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