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315호 청주 흥덕사지

오늘의 쉼터 2008. 2. 21. 21:49



종     목 사적  제315호
명     칭청주흥덕사지(淸州興德寺址)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사찰
수량/면적 69,730㎡
지 정 일 1986.05.07
소 재 지 충북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866
시     대통일신라
소 유 자청주시
관 리 자청주시

일반설명

청주 운천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절터이다.

1985년 발굴조사 때 금당터·서회랑터·강당터·부속건물들이 있던 건물터가 확인되었고 ‘흥덕사’라고 새겨진 쇠북(금구)조각이 나와 절의 이름이 흥덕사였음을 알 수 있었다. ‘대중 3년명(大中 3年銘)’이라 새겨진 기와와 기타 유물들로 보아 늦어도 9세기에 지어져 고려 후기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치미·기와조각·그릇 들과 청동제품이 많이 출토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직지심체요절』을 찍은 곳으로서 그 가치가 중요한 유적이다.


전문설명


이 사지(寺址)는 1985년 발견(發見)되어 발굴조사(發掘調査)가 이루어져 금당지(金堂址)(정면5간(正面5間), 측면3간(側面3間)), 서회랑지(西廻廊址)(13간(間)), 강당지(講堂址)(정면5간(正面5間), 측면2간(側面2間)), 부속건물(附屬建物)(정·측면(正·側面) 각1간(各1間)) 등이 확인(確認)되었으며 유물(遺物)로는 치미 2점(2點)을 비롯한 와전(瓦塼), 토기편(土器片), 자기편(磁器片), 토제품(土製品) 나발 등이 출토(出土)되었다.

명문와(銘文瓦) 중(中)에서는 '대중삼년(大中三年)'의 와편(瓦片)이 나와 신라(新羅) 문성왕(文聖王) 11년(849년)에 법등(法燈)이 있었다고 보여지며 출토유물(出土遺物)로 보아 고려말(高麗末)에 폐사(廢寺)된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사지(寺址) 동쪽 훼손부분에서 발견(發見)된 청동금구(靑銅禁口)에서 '갑인오월 일 서원부흥덕사금구대좌(甲寅五月 日 西原府興德寺禁口臺座)'라는 명문(銘文)이 판독되어 이 사지(寺址)가 흥덕사(興德寺)였음이 분명(分明)해졌으며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권하(卷下)의 '선광칠년정사7월 일 청주목외흥덕사 주자인시(宣光七年丁巳七月 日 淸州牧外興德寺 鑄字印施)'라는 간기(刊記)의 흥덕사(興德寺)라는 사명(寺名)이 금구(禁口)의 흥덕사(興德寺)와 일치(一致)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유적으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이곳 일대(一帶)에서 행하여진 택지개발공사(宅地開發工事) 중 금당(金堂) 남(南)쪽의 탑지(塔址) 및 중문지(中門址) 부분과 동회랑부분(東廻廊部分)이 훼손되어 그들 건물지(建物址)의 위치(位置) 및 규모(規模)가 불확실(不確實)한 상태(狀態)에서 추정정비(推定整備)되었다. 특(特)히 금당지(金堂址)와 탑지(塔址)에는 복원시(復元時) 건물(建物)과 탑(塔)이 세워지고 기타(其他) 건물지(建物址)는 잔디를 깔아 정비(整備)되었으며 사지(寺址) 앞 남서(南西)쪽에는 인쇄사(印刷史)를 알 수 있도록 전시건물(展示建物)이 마련되어 있어 사지(寺址)와 더불어 중요한 문화사적(文化史的) 유적(遺蹟)의 역할(役割)을 하게 되었다.




청주흥덕사지

발굴전경('85)

남쪽 회랑터

발굴석물

벽돌깔은 집터 전경

벽돌깔은 집터

전경

청동소종

측면 전경

흥덕사 청동금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