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109호 아산 맹씨 행단

오늘의 쉼터 2008. 2. 17. 22:26


종    목 사적  제109호
명     칭아산맹씨행단(牙山孟氏杏壇)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제사유적/ 제사터
수량/면적 7,856㎡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충남 아산시  배방면 중리 300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사유
관 리 자아산시

일반설명

조선 전기 청백리로 유명한 고불 맹사성(1360∼1438) 가족이 살던 집으로, 원래 고려 후기에 최영 장군이 지은 집이라고 전하기도 한다.

맹사성은 고려말 · 조선초의 문신으로, 최영 장군의 손주사위이다. 고려 우왕 12년(1386) 문과에 급제하여 춘추관검열, 전의시승 등을 지내고 조선 태조 때에는 예조의랑, 이조참의, 예문관대제학, 우의정의 벼슬을 했다. 사람됨이 소탈하고 조용하며, 효성이 지극하였으나, 조정의 중요한 일을 의논할 때는 과감하게 일을 처리하였다.

‘행단(杏壇)’이란 선비가 학문을 닦는 곳이라는 뜻인데, 이곳은 우리나라 일반 백성이 살던 집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집의 마당에는 600년이 된 은행나무 2그루가 서 있고, 뒷동산에는 느티나무 ·전나무·감나무 들이 넓은 숲을 이루고 있다. 또한 집 앞의 개울가에도 느티나무·버드나무 등이 많이 자라고 있으며, 담장 안 마당에는 채소밭도 만들어져 있다.

이 집을 통해 조선 전기 민가의 모습을 잘 알 수 있다.


전문설명


온양(溫陽)읍에서 보면 동남쪽으로 차령산맥이 뻗어 있다. 이 산맥의 한 줄기가 내려오다 큰 산봉우리를 이루는데 이산을 설화산(雪華山) 또는 배방산(排方山)이라 부른다. 또한 촛불같이 뾰족한 산봉우리가 다섯이 솟아있어 오봉산(五峯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산의 맥이 북쪽으로 굽이쳐 내려오다가 평평한 지형을 이루는데 단정한 좌청룡(左靑龍)의 지세와 웅장한 우백호(右白虎)의 지세가 명당(明堂)을 호위하고 있는 풍수상 길지(吉地)에 맹씨행단이 터를 잡고 있다.

이 집은 조선초기 청백리로 유명한 맹사성((孟思誠) 1360~1438)의 가족이 살던 집이다. 원래 고려말 최영(崔瑩)장군이 지은 집으로 전하기도 한다. 맹사성은 그의 벼슬이 좌의정에까지 이르렀는데 황희(黃喜), 허주(許周)와 더불어 이 집 후원에 괴목(槐木) 9주를 심어 구괴정(九槐亭)이라 하고 그 터를 삼상평(三相坪)이라 하였다. 집 마당가에는 단(壇)을 만들어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었는데 현재 마당가에는 은행나무가 서 있다.

이 맹씨행단은 우리나라 민가(民家)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의 하나로 이 집을 통해 조선초기 민가조원의 모습을 잘 알 수 있으며 행단(杏壇)이란 선비가 학문을 닦는 곳이란 뜻이다. 좁은 개울이 집 앞을 흐르고 이를 지나 돌계단을 올라 정면 7칸의 문간채가 있는데 문간채의 대문칸은 솟을 지붕이다. 문간채 좌우로 길게 돌담이 둘러쳐 있으며 문간채 안에는 안채가 있다. 안채 우측에는 높이 5자의 석축단이 있는데 계단을 올라가면 그 단에 수백년 된 두 그루 은행나무가 마당가에 서 있다. 이단에 H형의 본채 건물이 서 있는데 본채는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건물로 중앙 2칸이 대청이고 양측칸이 온돌방이다. 건물기단은 자연석으로 조성되었으며 본채에서 안으로 높은 곳에 단을 지우고 가묘(家廟)의 사당을 배치하고 있다. 집 경역은 2,300여평으로 자연석 담을 둘렀으며 후원은 느티나무, 전나무, 감나무 등이 넓은 원림(園林)을 이루고 있다. 또한 집 앞 개울가에도 느티나무, 버드나무 등의 원림이 조성되어 있다. 담장내 마당가에는 채소밭도 조성되어 있다.




아산맹씨행단(전면우측)

아산맹씨행단(전면좌측)

사당

대청마루와 창호

대청에서 바라본 전경

배면

세덕사 전경

세덕사 현판과 툇마루

세덕사

아산 맹씨 행단

아산 맹씨 행단과 은행나무

아산 맹씨행단 은행나무

안내문과 입구

오른쪽 정측면

우측면

전경

좌측면

천정 대들보

측면 창호 문양

툇마루와 창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