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재란 때 전라도지방의 관문이었던 석주관을 끝까지 지키다가 숨진 구례출신 의사(義士) 7명의 무덤이다.
석주관은 경상도지방에서 전라도지방으로 통하는 관문으로서 군사전략상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안음의 황석산성·진안 웅치·운봉 팔량치와 함께 영남과 호남 사이의 4대 관문의 하나로, 고려때부터 이곳에 진영이 설치되어 왜군의 침략을 막았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왜군은 호남지방을 목표로 하여 이곳을 집중공격하였다. 그러자 왕득인이 의병을 일으켜 적에게 대항하였으나 결국 숨지고 말았다. 그후 왕득인의 아들과 각 지역에서 모여든 의병·승병들이 힘을 합쳐 처절한 혈전을 전개하였으나, 역시 대부분의 의병을 희생시킨 채 끝나고 말았다.
순조 4년(1804) 나라에서 왕득인을 포함한 7명의 의사에게 각각 관직이 내려졌고, 1946년에는 뜻있는 지방 유지들에 의해 칠의각과 영모정이 세워졌다.
전문설명
정유재란 때 호남의 관문이었던 석주관(石柱關)을 사수하다가 순절한 구례 출신 의사(義士) 7인의 무덤이다.
하동으로부터 섬진강을 따라 올라와 구례 경내에 들어서면 산악과 하천이 어우러진 한 요해처에 이르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석주관이다. 강을 가운데 끼고 북쪽으로는 지리산의 험준한 산세가 강안(江岸)에까지 뻗쳐 있고 남쪽으로는 백운산의 일봉(一峰)이 치솟아 역시 강변에 접한 곳으로 양대 산이 마주친 중심부에 목을 이루는 천험(天險)의 요충이다. 기록에 의하면, 섬진강이 장곡(長谷)을 이루며 흘러가는 이곳의 좌안(左岸)에는 좁고 험난한 세로(細路)가 수십리에 뻗쳐 있었고, 이 길을 군사가 통행할 경우 일인일기(一人一騎)로 일렬종대를 이루었을 경우에나 간신히 통과할 수 있을 정도였었다. 그리고 사납게 흐르는 강류(江流)의 형세와 들쭉날쭉 이어진 유역의 굴곡이 견아상착(犬牙相錯)을 이룬 곳이었다고 한다.
석주관은 영남에서 호남으로 통하는 관문으로서 군사전략상 매우 중시되었던 곳이었으니 안음의 황석산성, 진안의 웅치, 운봉의 팔량치와 함께 호령간(湖嶺間) 4대관문의 하나이기도 했다. 따라서 고려 때부터 여기에 진(鎭)이 설치되어 왜구의 침략을 방어하는 요새가 되었다.
특히 조선시대에 들어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전라방어사 곽영(郭嶸)이 석주관과 팔량치에 조방장·별장(助防將·別將) 등을 파견하여 성을 쌓고 적을 막게 하였는데, 당시 석주성은 산성별장 신호(山城別將 申浩)와 구례현감 이원춘(李元春)이 현지의 방어임무를 맡고 있었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소서행장(小西行長)이 이끄는 적의 대군이 호남 공략을 목표로 이곳을 집중 공격, 구례현감 이원춘 등이 모두 전사하였다. 이에 향리방위(鄕里防衛)와 석주관 사수를 위해 구례의 사인 왕득인(士人 王得仁)이 의병을 일으킨 것은 그해 9월 말이었다. 그는 50여명의 향민(鄕民)과 더불어 죽음을 각오함으로써 매복에 의한 기습전이나 산곡간의 바윗돌을 굴려내리는 석탄공법(石彈攻法)으로 적에게 대항하였다. 그러나 우세한 화력을 지닌 적의 대군을 당해낼 수가 없었으니 결국 왕득인도 석주성의 의병혼을 떨치고 순절하였다.
그후 11월 초, 이번에는 구례읍내 20대의 젊은 선비들을 주축으로 하여 수백명의 규모를 갖춘 의병군이 다시 일어났다. 왕득인의 아들 왕의성(王義成)과 각 면으로부터 모여든 이정익(李廷翼)·한호성(韓好誠)·양응록(梁應祿)·고정철(高貞喆)·오종(吳琮)등이 주축을 이룬 구례읍의 의병연합체였다. 뿐만 아니라 화엄사로부터 의승병 153명까지 가세, 한층 군세를 보강한 구례의병은 지형지물을 이용한 유격전법과 분산작전을 꾀하였다. 석주성 아래 협곡을 사이에 두고 좌우측 산등성이에 오의사군(五義士軍)을 배치함과 동시에 복수장 왕의성군(王義成軍)은 산정에 포진케한 뒤 처절한 혈전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계속 밀려드는 적의 대군을 당해낼 수가 없었으니 왕득인의 의병전 이후 제2차 석주관전투 역시 대부분의 구례 의병을 희생시킨 채 끝나고 말았다.
1804년(순조 4년) 조정에서 7의사에게 각각 관직이 추증되었고, 1946년에는 뜻있는 지방유지들에 의해 칠의각(七義閣)과 영모정(永慕亭)이 세워진 뒤 1963년에 국가 사적(史蹟)으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사당전경 묘역전경 칠의사묘전경 숭의각 칠의각 칠의사비 묘소근경 비문 전경 정면 측면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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