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110호 성저오리정계석표 <해제>

오늘의 쉼터 2008. 2. 17. 22:27



종     목

사적  제110호

명     칭

성저오리정계석표(城底五里定界石標)

분     류

기록유산 / 서각류/ 금석각류/ 석각류

수량/면적

1기

지 정 일

1963.01.21 ~ 1970.10.30.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정능동 403-2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

관 리 자

성북구

일반설명

성저오리정계석표(城底五里定界石標)눈 높이 76cm, 너비 42cm, 두께 24cm. 1970년 경복궁 내로 옮겨졌는데, '성저오리정계입표경인일()'이라고 새겨져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조선 전기에 한성부의 관할 행정구역이 도성으로부터 사방 10리로 정해졌는데, 동쪽으로는 양주 송계원과 대현, 서쪽으로는 양화도와 고양 덕수원, 남쪽으로는 한강과 노도()에 이르렀다고 한다. 북쪽의 경계는 확실하지 않으나 지형상 북한산일 가능성이 많다.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한성부의 관할구역이 도성으로부터 10리라고는 하지만 그 경계를 하천이나 산악으로 삼는 것으로 보아 지형에 따라 가변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성저 10리와 마찬가지로 본 비석은 성으로부터 5리 지점을 표시하는 것이다.

조선 전기에는 이러한 방명표·정계표가 많이 세워졌을 것으로 보이지만 현존하는 것으로는 정릉동에 세워졌던 이 비석이 유일하다. 이 비석이 언제 세워졌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태종실록》 5년 4월 병오조에 "한성부에 명하여 오부의 방위표를 세우게 하였다"는 내용이나 《경국대전》의 "한성부의 낭관()이 사산을 나누어 막고 긴관()과 금기()하는 곳에 표()를 세운다"는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조선 전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위치 이전에 의해 사적으로서의 가치가 손상되었다고 인정되어 1970년10월30일 해제.






성저오리정계석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