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가무형문화재

국가무형문화재 제100호 옥장

오늘의 쉼터 2008. 2. 17. 19:38



종     목 국가무형문화재 제100호
명     칭옥장(玉匠)
분     류 무형문화재 / 전통기술 / 공예
수량/면적 개인
지 정 일 1996.02.01
소 재 지 전라남도 목포시
시     대삼국시대
소 유 자장주원
관 리 자장주원

일반설명

옥은 동양문화권에서 발달된 보석류로서 금·은과 함께 쓰여진 대표적인 보석이며, 음양오행의 다섯 가지 덕인 인(仁)·의(義)·지(智)·용(勇)·각(角)을 상징하는 장신구로 쓰여 왔다. 또한 방위신에 예(禮)를 베푸는 예기(禮器)를 비롯하여 사회계급의 신분을 구분하는 드리개와 악기인 옥경(玉磬), 약재 및 의료용구 등 여러 가지로 쓰여지고 있다.

청동기 유적에서 발견되고 있는 옥석공예품과 삼국시대의 여러 고분에서 출토된 곱은옥, 구슬옥, 대롱옥 및 신라의 세 가지 보물 가운데 하나였던 진평왕의 옥허리띠를 통해 옥이 상류층의 중요한 장신구였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을 비롯하여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왕족계열과 특수계층에 한하여 지닐 수 있었다. 옥공예품은 재료의 확보도 어렵고 귀한 공예품이라는 점에서 옥공예를 다루는 공인의 수를 국가에서 제한하여 그 수가 극히 적었다. 옥공예의 가공에 있어서도 동공예 제조기술과는 판이하게 달라 정으로 쪼아 다듬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일이 갈아 만든다. 채석 - 디자인 - 절단 - 성형 - 세부조각 - 광택의 과정을 거쳐 작품이 완성되는데 쇠톱, 활빙개(활비비), 갈이틀, 물레 등 여러가지 연장이 사용된다.

옥장은 전통공예기술의 장인으로 그 가치가 크며, 기능보유자인 장주원은 옥공예의 종주국으로 알려진 중국 옥기술과 작품성을 능가하여 신장(神匠)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옥장은 고가의 원석을 다루기 때문에 정확한 예측이 필수적이며 정교한 조각기능 뿐 아니라 고도의 예술성이 요구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전문설명

 

옥(玉)은 동양 문화권에서 발달된 보석류로 옛부터 돌 중에 아름다움이 있을 뿐 아니라 음양오행의 오덕인 인(仁)·의(義)·지(智)·용(勇)·각(角)을 상징하는 장신구로 쓰여 왔다. 또한 방위신(方位神)에 예(禮)를 베푸는 예기(禮器)를 비롯하여 사회계급의 신분을 구분하는 벽(璧)과 종(琮)·규(圭)·장(璋)·호(琥)·황(璜)과 6단(六端), 병기(兵器), 수상옥(隋喪玉) 등 패식(佩飾)뿐만 아니라 악기(樂器)인 옥경(玉磬)을 비롯하여 약재 및 의료용구 등 여러가지로 쓰여지고 있다.

옥의 산지는 중앙아시아의 호우탄(khotan)지방 하상(河床)에서 채취하여 중국에 공급된 귀한 광물로 중국에서는 신석기시대의 배이강 문화를 비롯하여 하모도 문화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예품 중에 귀중한 옥공예가 있다.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청동기 유적에서 발견된 옥석공예품(玉石工藝品) 등에 조형곡옥(祖型曲玉)을 비롯하여 문헌자료로는 『후한서 현토조(玄토條)』와 『삼국지 위서 동이전 현토조(三國志 魏書 東夷傳 玄토條)』에 의할 것 같으면 옥갑(玉匣)을 항상 준비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조선시대의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 경공장 (京工匠)조』에 상의원(尙衣院) 소속 장인 중 옥장(玉匠)이 10명을 두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2, 일성이사금(逸聖尼師今) 11년 2월조에 의하면 금(金), 은 (銀),주(珠), 옥(玉)을 민간이 쓰는 것을 금(禁)한 사실을 비롯하여 삼국사기 권 제33 잡지 제2복색조에 의하면 성골(聖骨)을 제외한 진골대등(眞骨大等)의 요대(腰帶)나 백옥에 연마된 무늬장식을 한 것을 금하도록 내린 사실과 조선시대에 접어 들면서도 계속 백성들의 사용금지령이 내려져 있었다. 즉, 태종 3년에 예조부터 옥영자(玉纓子)와 옥환자(玉環子)를 쓰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린 후 세종대에도 계속 금법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우리나라 사람들도 중국과 같이 옥공예품은 주로 왕실에 국한하여 쓸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옥공예품은 중국을 비롯하여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옥제품을 지닐수 있는 계층은 왕족계열(王族系列)과 특수계층에 한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매우 귀한 공예품이다. 귀한 공예품이란 점에서 옥공예를 다루는 공인들도『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 밝힌 바와 같이 10명에 한하고 있듯이 국가에서 장인의 숫자를 제한하고 있으므로 자연히 옥공인의 수가 희소함도 그 이유중 하나이기도 하며 재료확보에도 힘들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옥공예의 가공에 있어서도 특수한 공정에 의해 이루고 있다. 즉 옥공예는 동공예 제조기술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으로 이는 정으로 쪼아 다듬어 만든 것이 아니고, 일일이 갈아서 만들기 때문에 기술도 판이하다.

옥장(玉匠) 기능보유자인 장주원(張周元)은 그의 부친 장중현(張重鉉)으로부터 국민학교 시절에 금은 세공기술과 옥공예 가공기술을 전수받아 그 기량을 익혀 옥공예의 종주국으로 알려진 중국 옥기술과 작품성을 능가하여 신장(神匠)으로 평을 받고 있다.




옥장-장주원

옥장-장주원

옥장-장주원

옥장-장주원

완성된그릇의세부

활비비로구멍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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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각장면

옥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