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해의 나쁜 운을 풀기 위해 굿판을 벌였는데 그곳에서 무당이 즉흥적으로 나쁜 기운을 푸는 춤을 춘 것을 살풀이춤이라 하며 ‘도살풀이춤’‘허튼춤’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수건춤, 산조춤, 즉흥춤 이라는 이름의 수건춤이었으나 춤꾼 한성준이 1903년에 극장공연에서 살풀이란 말을 쓴 데서부터 살풀이라는 이름이 비롯되었다.
춤꾼은 고운 쪽머리에 비녀를 꽂고 백색의 치마 저고리를 입으며, 멋스러움과 감정을 한껏 나타내기 위해 하얀 수건을 들고 살풀이 곡에 맞추어 춤을 춘다. 지금의 살풀이춤은 경기지방과 호남지방에서 계승된 춤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중기 이후 나라가 안정되고 서민문화가 활발히 전개되면서부터 광대들의 춤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굿이 금지되자, 무당들 중 일부가 집단을 만들어 춤을 다듬으면서 점차 예술적 형태를 갖추게 되어 오늘날 한국춤의 대표로 정착하였다.
살풀이춤은 살풀이 가락에 맞춰 슬픔을 품어 환희의 세계로 승화시키는 인간 감정을 아름다운 춤사위로 표현하는 예술적 가치가 큰 고전무용이다. 살풀이춤은 경기도 지방에 전승된 김숙자류의 춤과 전라도 지방에 전승된 이매방류의 춤이 있는데, 김숙자류의 춤이 섬세하고 고운 면을 가지고 있다면 이매방류의 춤은 구수하면서도 화끈한 멋을 가지고 있어서 대조적인 멋을 보이고 있다.
전문설명
살풀이춤은 조선 중기 이후 나라가 안정되고 서민문화가 활발히 전개되면서부터 광대예술이 발전함에 따라 창우(倡優)들이 창작한 춤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살풀이춤의 핵심적인 형식은 손에 수건을 들고 남도무악인 살풀이에 맞추어 추는 것인데 이때 수건을 들고 추는 까닭은 춤을 만들어낸 창우들이 판소리를 할 때 땀을 닦거나 멋(발림)으로 사용한 데서 온 것이거나 아니면 춤꾼이 자기의 감정을 확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라 생각된다.
살풀이곡을 반주음악으로 사용한 이유는 창우들이 무당출신이고 그들은 인간적으로 어두운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슬픈 곡을 선택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소리광대들을 중심으로 창우들이 한말 때 식량이 풍부한 호남지방으로 모였기 때문에 이곳의 무악인 살풀이곡을 사용하게 된 것이라 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살풀이춤은 사랑방에서 손님을 접대할 때 예술적으로 보여주는 공연예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춤은 원래 살풀이춤이라 하지 않고 수건춤, 산조춤, 즉흥춤이라는 명칭의 수건춤이었으나 춤꾼 한성준이 1903년대 극장공연에서 살풀이라는 말을 쓴 데서부터 비롯된다.
살풀이춤은 한성준이 창작한 춤이 아니라 조선 중기 이후 창우나 기생들이 판소리와 병행하여 승무와 같이 연행하였으므로 춤사위의 호칭도 대삼, 소삼, 잉어잡이, 완자걸이 등 판소리 음악의 용어가 나온다. 그런데 이러한 춤은 일제강점기 때에는 기생춤으로 한에 치우친 예술로 자리하였으나 지금은 대학풍물학과 학생들에게 한국무용의 기본이 되면서부터 고전무용으로 정립되었다.
살풀이춤은 경기도 지방에 전승된 김숙자류의 춤과 전라도 지방에 전승된 이매방류의 춤이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로 지정되었는데, 김숙자는 작고하였다. 김숙자류의 춤이 다양한 수건들이 무수한 곡선을 형성한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이매방류의 춤은 흥이 많고 춤 마디마디 멋이 넘쳐 흐르는 한편 즉흥성을 띠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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