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대놀이란 중부지방의 탈춤을 가리키는 말이다. 송파산대놀이는 서울·경기 지방에서 즐겼던 산대도감극(山臺都監劇)의 한 갈래로 춤과 무언극, 덕담과 익살이 어우러진 민중의 놀이이다. 이 놀이는 매년 정월 대보름과 단오·백중·추석에 명절놀이로 공연되었다.
송파마을은 경기일원의 상업근거지였는데 약 200년전 송파장이 가장 번성하던 때에 산대놀이가 성행하여 오늘날까지 전하는 놀이형태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송파산대놀이는 전체 7과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놀이에 앞서 가면과 의상을 갖추고 음악을 울리면서 공연장소까지 행렬하는 길놀이를 하고, 가면을 배열해 놓고 고사를 지낸다. 놀이내용의 구성이나 과장·춤·탈 등이 양주별산대놀이와 거의 비슷하지만 몇 개의 탈과 춤, 배역이 옛 형태를 지닌 것이 특징이다. 즉 양주별산대놀이에서는 이미 사라진 화장무 춤사위가 남아 있고, 해산어멈·신할미·무당의 탈이 남아 있어 이들 탈들이 맡은 역이 따로 있다. 바가지, 소나무껍질, 종이 등으로 만든 탈 33개가 사용되며, 놀이형태는 다른 탈춤과 마찬가지로 춤이 주가 되고 재담과 동작이 곁들여진다.
전문설명 송파는 한강변의 오강(五江:송파, 한강, 서빙고, 용산, 마포)의 하나로서 수운(水運)으로는 강원도까지 배가 내왕하였고, 육운(陸運)으로는 마상행인(馬商行人)들이 많아 전국을 돌았고, 송파장(松坡場)은 조선후기 전국에서 가장 큰 향시(鄕市) 열다섯 중의 하나였다.
송파는 경기일원에서는 부촌이었기 때문에 송파산대놀이가 경제적 요건을 갖추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구전에 의하면 약 200여 년 전부터 송파산대놀이가 시작되었으나 중도에 쇄진되었다가 1900년대부터 송파에 사는 허총(許銃, 1867∼1935)에 의해 구파발 본산대(本山臺)의 연희자 윤희중(尹熙重, 1840∼1923)을 초빙하여 재건하고, 그후 연중행사로 구정 보름과 단오와 추석에 놀아왔다고 한다. 1924년에는 큰 규모의 산대놀이 모임을 송파에서 열었는데 구파발, 아현, 퇴계원, 의정부, 노량진 등지에서 20여 명의 명연희자들이 모였었다고 한다.
송파산대놀이의 연출형태도 양주별산대놀이와 마찬가지로 반주음악에 맞추어 춤이 주가 되고, 재담과 소리와 동작이 곁들이는 탈춤놀이의 일종이며, 그 주제를 보아서도 산대도감계통극(山臺都監系統劇)의 중부형의 한 분파이다.
그 특징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송파산대놀이의 가면의 수는 33개이다. 가면의 제작수법은 양주별산대 탈과 같으며, 바가지탈이다. 다만 송파산대놀이에는 양주별산대놀이에서 이미 없어진 당녀(唐女), 해산어멈, 신할멈, 무당탈 들이 남아 있고, 놀이 과장에서도 이들 탈들이 맡는 역이 따로 있어 송파산대놀이가 비교적 고형을 보존한 대목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령, 근래에 양주별산대놀이에서 배춤은 왜장녀가 추었으나 송파에서는 해산어멈이 조산하는 대목에서 소무의 배를 문지르며 배춤과 엉덩이춤을 춘다. 당녀춤은 송파에만 남아 있고 또 신할아비의 아내로 신할멈이 있는데, 양주별산대놀이의 미얄과는 다르다. 미얄할미는 샌님의 본마누라이다. 끝장면에서도 무당을 양주별산대놀이에서처럼 도끼누이가 겸역하는 것이 아니라 따로 있다. 송파산대놀이의 과장과 그 내용도 양주별산대놀이와 대동소이하여 다같이 본산대의 분파임을 말해 준다.
놀이순서를 보면 먼저 길놀이, 서막으로 고사가있고 제1과장 상좌춤, 제2과장 옴중, 제3과장 연잎과 눈끔쩍이, 제4과장 팔목중 제1경 북놀이, 제2경 곤장놀이, 제3경 침놀이, 제5과장 노장 제1경 파계승놀이, 제2경 신장수놀이, 제3경 취발이놀이, 제6과장 샌님 제1경 의막사령놀이, 제2경 샌님과 미얄할미, 제3경 샌님과 포도부장, 끝으로 지노귀굿이 있다.
취발이놀이에서소무의해산 송파산대놀이 샌님과포도부장이소무를차지하려고다투는샌님놀이 샌님과미얄할미 송파산대놀이 지노귀굿 북놀이 취바리놀이 의막사령놀이 지노귀굿 죽은할미를위한지노귀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