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정기발원 천왕봉 ‘등잔의 심지’
우리 헌법은 주권은 국토 속에 있다고 속지주의(屬地主義)를 명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식민지시대와 함께 주권을 강탈당한 적이 있었다.
해방이후 두 동강 한 국토, 반신의 국토에선 동족상잔의 비극이 터졌다.
그 당시 한반도는 오선위기형(五仙圍碁形)의 풍수형국이었다.
남과 북이 두던 바둑판에 미국 소련 중공이 훈수꾼으로 끼어들어왔다는 풍자다.
하기는 전세계에 우뚝 선 바둑의 제왕들이 한국이기도 하지만.
세계화의 무대에서 국토를 내걸고 각 민족들끼리 한수 벌인다면 우리에겐 지리산이 있어 당당할 수 있다.
건국신화가 서린 단군할아버지의 백두산이라면, 민족의 생명과 정기를 발원케하는 삼신할매의 산이 지리산이다. 백두산 천지가 등잔의 기름이라면, 지리산은 등불이 타오르는 심지인 것이다.
등불은 바로 한국인의 기상이다. 우리는 또한 천왕일출(天王日出)을 장엄의 압권이라고 이르지 않는가.
하봉(下峯) 중봉(中峯)이 층층이 천제(天梯:하늘로 연달아 피어오르는 산봉우리들을 가리키는 풍수용어)를 이루어 등극함에 상봉(上峯) 자리는 당연히 천왕(天王)의 자리매김질이 된다.
백두대간은 천왕봉 들머리에다 인간사는 고개를 숙이라고 통천문(通天門)마저 빗어놓은 한국인 기상의 발원지 지리산 천왕봉(天王峯).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민족기상이 역사와 언어로서 계승될 때 국토는 민족의 주권으로 지켜졌다.
유태인의 역사와 헤브라이 언어로 뭉친 민족정기가 시운을 만나자 수천년이 지나서도 이스라엘이라는 국토를 되찾았다.
반면 문자는 커녕 언어마저 봉두난발했던 인디안은 아메리카 대륙의 역사에서 실종된 신세로 전락하지 않았던가.
20세기 전후에 일어난 각 민족들의 찾은 국토와 잃어버린 국토의 실상이다.
일만년의 장구한 역사, 자랑스러운 언어 민족. 우수한 한글을 창제한 문화민족, 더불어 우리국토에는 민족정기를 발원하는 지리산이 있다.
교육 제1위, 한강의 기적, 88올림픽 세계4 강국으로 한국인은 일만년의 저력들을 이제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스포츠 교육 일등국이 정치는 삼류하는 세계의 비아냥거림을 받았다.
최근 삼풍참사 때 미국의 언론은 한국 건축기술은 일류이지만, 고질적인 관행이 건물을 붕괴시켰다는 날카로운 지적을 했다.
서울의 성수대교, 대구의 도시가스가 모두 대형관급공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세계화를 지향하는 오늘날에 이러한 한국의 독버섯들은 어디서 전염되었던 것일까.
그것은 해방 후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한데서 되살아난 망령들이다.
李承晩정권은 민족정기를 되찾기는 커녕 친일의 온상을 만들어 주었다.
친일의 온상에서 식민잔재의 씨앗들이 오늘날 독버섯을 퍼뜨렸다.
조선인은 족치면 된다는 식민시대의 악행이 ‘고문은 자백의 기름길’이라는 수사관행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조선인은 말로 떠든다는 식민통치의 폭력급부가 ‘한국인은 군화발로 밟아야 된다’는 군사정권의 호구지책으로 발전되었다.
이렇듯 식민시대 친일파의 반대급부의 기득권이 해방후 친일의 온상에서 소위 ‘배경’으로 통했고,
오늘날 배부른 봉투가 반대급부의 관행으로 나돌기 시작했던 것이다.
슬기로운 눈설미를 풍기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우리 국보 제83호라는 자리매김이다.
그런데 뱁새 눈을 치껴뜨고서 그것도 우리 것을 나무에다 아주 조잡하게 옮겨다 놓은 일본의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당당히 일본 국보 제1호. 이렇듯 민족의 저력으로는 수십수 앞서가는 우리들이다.
그런데도 오늘의 우리 경제는 일본에 밀리고만 있다.
가전제품의 선택은 10년을 좌우하고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 말하지만, 민족정기는 무궁한 역사와 민족의 주권과 향유할 국토를 지켜주는 영원한 수호신이다.
광복50주년. 패가망신당했던 일본은 세계적 경제대국이고, 해방되었던 우리는 일본경제의 꼬리를 쫓느라 허둥지둥이다.
광복 風水는 우리민족에게 이렇게 일러준다.
민족정기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일본을 앞지르기는 커녕 그들에게 또 당한다고. 세계 경제시장의 선두 주도권을 지키려고 새로운 탈바꿈과 기술개발을 끊임없이 하는 일본이다.
한데 우리는 아직도 식민잔재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등잔 밑의 신세라는 자리매김질에 허우적거릴 뿐이다.
지리산.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 민족의 등잔불을 지켜보려 8월의 여름날 사진작가 윤지영군과 천왕봉을 중심으로 3박4일을 야영했다.
지리산은 분명히 살아있었고 천왕봉은 이 땅의 젊은이들이 들끓는 민족정기의 성소(聖所)였다.
그날따라 삼정산을 머리로 하여 커다란 날개를 펼친 지리산 풍수 봉황(鳳凰)형국은 백두산을 향하여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 우리는 봉황의 후손들이고, 그곳 백두산이 있는 북녘의 국토를 잇대고 통일의 기상은 滿洲라는 우리의 옛 국토를 회복할 국운이 바로 지리산이 내비치는 민족기상이다.
같은 역사와 똑같은 언어를 쓰는 滿洲땅. 국토라는 자물통을 여는 동서고금의 열쇠는 역사와 언어가 아니었던가.
세계화의 경제전쟁. 지리산 지명중에는 유일한 경제적 지명을 풍기는 장터목, 그날 장터목산장은 헬기가 동원되어 분주히 깡통 쓰레기를 하산시켰고, 산행객들은 클린업 타임에 맞춰 아침 저녁으로 주변 청소를 실시하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우리들도 주변의 식민잔재 깡통 관행들을 아침 저녁으로 치워버릴 적에 민족정기 위에 우뚝선 우리의 빛나는 내일이 한걸음씩 더 가까이 있지 않겠는가.
<汕客 장영훈>
'풍수지리 > 풍수지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후손발복 水露王陵 (0) | 2008.02.01 |
---|---|
◆ 왕조말살 (0) | 2008.02.01 |
# 親日흉당 (0) | 2008.02.01 |
솥바위 발복 <하> (0) | 2008.02.01 |
솥바위 발복 (중) 서에서 동으로 물돌이동 (0) | 2008.0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