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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바위 발복 (상) 재벌 창업주 4명탄생

오늘의 쉼터 2008. 2. 1. 21:39

 

* 솔바위 발복 (상) 재벌 창업주 4명탄생


 

작은 부자는 부지런하면 이룰 수 있지만, 큰부자는 하늘이 내려준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큰부자에 속하는 세칭 재벌들에게 하늘은 어떠한 발복의 문을 열어준것일까.

재벌들에게 내려준 하늘의 열쇠가 바로 사진에서 보듯 솥뚜껑처럼 생긴 솥바위이다.

솥바위 風水 열쇠를 잡던 첫날부터 천기누설죄의 액땜은 연달아 일어났다.

의령군과 함안군에서 협조받은 자료들은 고작 종이 두장이란 먹통인데 태풍 재니스마저 절벽으로 밀어붙여왔다.

천둥과 번개 속을 헤매던 셋째날, 비로소 솥바위 열쇠가 풍수의 문을 열기 시작했는데, 마지막날 현장의 기록들은 영원히 사장될뻔 했었다.

 줄곧 잘 달리던 풍수답사 차량이 칠서의 고개에서 빗길에 나뒹굴어버린 것.

볼품없이 뒤집혀진 찻속을 빠져나와 폭우속에서 풍수자료들을 챙기기에 여념이없었다.

사고 수습 후 직접 취재한 수많은 자료들이 기적과도 같이 털끝 하나손실됨이 없음을 확인한 순간

다음과 같은 생각이 언뜻 들었다.

`그래, 그 정도의 액땜을 목숨 걸고 통과했으니 이렇게 우직한 중생은 천기누설을 해도 된다'라는

하늘의 허락을 말이다.

어찌 됐건 천기누설의 열쇠를 돌려서 재벌 발복의 풍수소식을 애독자들에게 모조리 보여주기로 마음 먹었다.

솥바위는 남강의 물줄기 위에 걸쳐있는데 그 번지수는 경남 의령군 의령읍 정암리이다.

솥바위를 뜻하는 정암(鼎巖)의 열쇠에 맞물리던 자물통은 세개가 있다.

정곡면 중교리에서 삼성그룹의 호암(湖巖) 이병철씨(1910-1987)가 태어났다.

지수면 승산마을에서는 LG그룹의 연암(蓮庵) 구인회씨(1907-1970)와 삼양통상의 허정구(許鼎九)씨의 生家

자물통이 있다.

나머지 한개의 자물통은 군북면 신창마을이 되는데 이곳은 효성그룹의 만우(晩愚) 조홍제씨(1906-1984) 생가이다.

여기서 鼎巖이라는 솥바위 열쇠와 재벌 생가의 비밀번호가 드러난다.

 생가들이정암(솥바위)에서 남과 북, 그리고 동남방위에 자리하는데 모두가 20리라는 직선거리를 두고 있다는

비밀번호. 더불어 호암 연암, 그리고 허정구라는 작명들을 잇대어보면 정암이라는 열쇠 상표와도 흡사하다.

따라서 재벌 풍수의 발복은 무덤 발복이 아니라 솥바위에 맞물려진 生家풍수임이 확연히 드러난다.

먼저 솥바위 자물통의 하나인 호암의 생가를 찾아갔다.

생가 관리인 성창섭씨(63)와 중교리 토박이 최영호씨(32.면사무소 공무원)의 증언을 토대로 하여 좌향에서

형국에 이르는 풍수 검증이 시작됐다.

먼저 中橋리의 지명 유래를 묻자 최씨가 "가운데 다리요"라며 힘차게 대답했다.

왜 가운데 다리냐고 의미를 되묻자 이번에는 성씨가 팔뚝을 내밀면서 넉살스럽게 "이거요" 한다.

한눈에 양물(陽物)처럼 생겼기에 그 이름마저도 숫골산이라는 걸물이 중교리에 있다.

이러한 숫골산과 잇대고 있는 것이 호암의 생가다.

결국 호암은 숫골산의 정기를 생가에서 받아 재벌의 문을 열었던 인물이라는 풍수적 검증.

풍수에 갓 입문한 윤지영군이 동행중 질문을 해왔다.

숫골산에 잇대고 있는 집들이 수십채나 있는데 유독 호암의 생가만 발복한 풍수적 이유는 무엇이냐고.

그것은 관산 지점을 잘 잡아야만 그 해답을 얻을 수있다.

 관산 지점을 선정하고서 생가와 숫골산을 관찰하자 윤군은 신기한듯 역시나 하면서 감탄을 연발했다.

수십채의 가옥들 중에서 호암의 생가만이 숫골산이 아기 포대기를 싸듯 매미 날개 처럼 벌어진 터를

차지한 광경. 이 매미 날개로 감싸주는 입지를 선익정혈(蟬翼定穴)이라 하는데, 풍수 실무에서 명혈(名穴)을

찾을 때 사용되는 법칙이기도 하다.

또한 숫골산의 생가 포대기는 호암의 건강과 난국의 정세에서 그를 감싸 주었던 것이다.

 21세 때 도쿄에서 심한 각기병에 시달려 좌절, 귀국했던 그는 이곳 생가에서 신기하게 건강을 되찾는다.

일제말기에는 광폭의 정세속에서 호암은 이곳 생가로 은둔 하였다.

3년동안 그는 이땅의 국부(國富)의 그릇을 생가에서 재충전하여 해방 이후 뭇별들 보다 선명하게 떠올랐다.

삼성그룹, 오늘날 세인들은 삼성의 자금력 토대를 제당(製糖)사업의 발복으로 입을 모으고 있다.

한데 제당사업 창립 사무실이 부산(釜山)이라는 가마솥 지명과 함께 솥바위의 열쇠가 맞물려 있다.

부산에서도 그 당시 대교로(大橋路)였다 하니 이는 가운데 다리격인 숫골산의 크게 길을 연다는 풀이 마저 된다.

흡사 남강의 솥바위 열쇠와 숫골산의 자물통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부산의 대교로에서 하늘은 큰 부자를 만들어 주었던 격.이후 그의 아호마저 湖巖을 사용한 1955년부터는 아예 솥바위 열쇠를 차고 다닌 격이 되었으니

명실공히 이 땅의 선두 재벌로 발복했다는 풍수 소식이다.

湖巖, 여기서 巖은 정암(鼎巖)이라는 솥바위를 뜻할 때 호(湖)는 물(水)을 가리키는데 이에는 어떤 풍수 소식이

있을까.

기실 물은 재물을 뜻하기도 하지만이러한 물의 지혜를 알고 있다는 지명이 이곳 남쪽 40리에 있다.

바로 지수(智水). 이곳 역시 솥바위에서 20리 거리라는 비밀번호와도 맞는다.

재벌의 생가마저 있는 그곳의 智水국민학교 마당에서는 재벌의 월척들이 줄줄걸려 나왔다.

풍수 낚시줄에 걸린 재벌들의 발복의 신선도는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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