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수의 현장 ...낙동강풍수 (1)
뱃길 칠백리 물길 천삼백리에 이르는 낙동강은 黃池에서 시작된다.
발원지를하구에서 가장 먼 거리에 있는 물줄기로 잡는 서구지리학일 경우
황지에서10Km 더 연장되는 너덜샘이나 용담이 된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황지를 낙동강의 유일한 발원지로 자리매김했다.
왜 그랬을까?
황지의 족보를 풍수거울로비춰보면 비로소 깊은 뜻이 밝혀진다.
황지는 은하수 황(潢)자를 붙인 潢池에서 유래되었다. 또한 潢池는 천황(天潢)못에서 변천된 것이다.
天潢에서 潢池로 대물림한 족보를 풍수거울로 비춰보면 天潢은 白頭山 천지(天池)로 잇대어진다.
天潢 역시 太白山이라는 白자 항렬에 놓여있는 못이다.
더불어 은하수를 담아놓은 못이라는 潢池 역시 漢拏山을 당겨주고 있다.
漢拏山을 은하수를 끌어당기는 산으로 동국여지승람에다 풀이한 우리 선조들의 생각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밝달, 배달민족이라는 우리의 번지수를 白자 문패로 걸고 있는 백두산(천지) 태백산(황지) 한라산(백록담)이다.
백두산을 머리로, 한라산을 다리로삼으면, 태백산은 허리가 된다.
허리인 태백산 자락 깊숙이 움푹 팬 곳에 자리한 황지는 결국 배꼽이란 이야기이다.
현장 사진에서 잡힌 황지 역시 배꼽처럼생겼기도 하다.
오늘날 `한라에서 백두까지'의 외침 속에 통일정서가 어우러져 있다면,
황지라는 배꼽의 단전(丹田) 부위는 생명 발원인 풍수정서다.
즉 황지는 생명정기(生命精氣)를 분출하는 곳이다.
그러기에 이곳의 물줄기에는 수온 20도 이하의 1급수에서만 생명을 유지한다는 열목어가 서식하고 있지만,
그 산자락에는 힘없는 민초(民草)들의 생명을 품어주었던 우리의 역사가 있었다.
생명의 분출인 황지를 발원지로 삼은 낙동강. 그래서 낙동강 천삼백리에는 뭇생명들의 삶이 있고,
이곳의 땅덩어리 전체가 생명정기로 가득차 있었다.
따라서 당대의 풍수사 남사고가 이곳 땅에다 넙죽 절을 하였고,
정감록마저 사람의 씨앗은 양백(衿白:태백산과 소백산) 사이에서 구하라는 예언까지 적어놓았다.
십승지(十勝地). 십(十)은 완성을 뜻하는 하늘의 숫자다.
승지(勝地)는 풍수의복지(福地)를 말한다. 이 경우 하늘이 내려준 복지가 십승지라는 풀이가 된다.
양백(衿白)이란 이 땅의 십승지가 무더기로 몰려 있는 곳이다.
영광스럽게도 하늘이 내려준 복지에는 누가 살았을까.
조선 시절 힘있는 사대부들은 풍수사를 앞세워서 명당에다 양반촌을 세웠다.
따라서 오늘날 양반촌이라는 곳에는 꼭 풍수형국이 검증되기도 하지만,
그곳을 토대로 뼈대있는 자손들이 번창해 갔던 것이다.
그러나 손에다 흙 한번 묻히지 않고서 잘먹고 잘살았던 양반들의 반대 급부격인 민초들은 등골마저 빼앗겨
생명 부지도 막막했던 것이다.
`정감록'은 민초정서이다.
기왕의 천지개벽은 부실공사로 무너져버리고 하늘이다시 천지공사를 한다는 것이 `정감록' 4막5장에 해당하는
후천개벽설이다.
이때 후천개벽 재개발공사의 입주자격자란 다름아닌 십승지 점유권자에게 0순위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풍수가 선천개벽으로 잘나간 양반들의 승지였다면,
십승지는 못나간 민초들의 풍수라는 묘한 논리마저 성립된다.
어쨌든 십승지를 찾아 양백의 땅으로 민초들은 줄행랑을 쳤다.
말세라는 생각만 들어도 그러했다. 6.25 때 피란 행렬까지 십승지로 몰려 왔다.
십승지에 가면 안죽는다는 생각에서 빨치산 마저 이곳으로 밀치고 들어섰다.
결국 문전성시를 이루었던 양백의 땅에서 난장판은 벌어졌다.
민초와 피란민,빨치산과 토벌대가 서로 얼키고 설키자 학살 토벌 소탕이라는 난리가 터졌던 것이다.
인간과 풍수는 어떤 등식 관계일까.
낙동강 상류에서 가을 햇살에 사과를 따는춘양면 아낙네들에게 물어보았다.
"이곳이 십승지냐"고. "십승지는 무슨 망할십승지, 난리통에 마지못해 눌러앉다보니
이렇게 사과나 따는 팔자"라는 퉁명스런 소리만 들었다.
그러나 옛유적의 기왓장 흔적과 옛터의 물줄기마저 용케기억하여 친절히 안내해주던 그들의 내면속에서
혹시나 하는 십승지의 바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1일 5천톤에 이르는 생명수를 용출 시키는 황지에는 8대 명당이 전해져 오고 있다.
그 중 절반이 본연재 풍수 답사 중 직접 낙동강에 걸린 명당발복으로 드러나 무척 흥미로웠다.
상운봉일(祥雲奉日), 공경받는 인물들이 구름처럼 일어난다는 명당은 청량산과 낙동강의 합작품이 었다.
그곳에선 퇴계와 영남학파가 구름처럼 일어났기 때문이다.
연화부수(蓮花浮水), 낙동강이 연꽃을 띄우듯 뼈대있는 국반(國班)마을을 발복시켰는데
오늘날 안동 하회마을이 된다.
금오탁시(金烏啄屍), 故朴正熙대통령을 발복한 생가풍수는 지난 8회에서 상세하게 밝힌 바 있다.
금구몰니(金龜沒泥), 거북이가 진흙탕에서 만물을 상생(土生金)시킨다는 텃자리 발복의 대길지로서
大邱가 해당된다.
이는 최초로 드러나는 大邱풍수 형국으로서 아직까지 정확한 유래가 정립되지 않은 八公山의 지명이
풍수 발복설로 밝혀지기 까지 했다.
이렇듯 황지를 발원지로 삼은 낙동강은 생명의 강이며, 정신의 강이며,
오늘날 까지 발복이 이어져 왔던 번영의 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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