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진’에 비해‘혈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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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지역 음·양택 명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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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지역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역을 대상으로 인물고장을 꼽게되면 의례 담양군 창평지역을
그 대상에서 빼놓지 않는다.
물론 광양지역의 진상·진월과 무안군 몽탄면도 그 반열에서 제외시킬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창평·광양·몽탄에 가서는 인물자랑을 말라”는 말까지 회자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연유로 인해 이 곳들은 알려질 만큼 알려졌고, 여러 매체를 통해 널리 소개됐다.
따라서 필자는 ‘이번 풍수기행에서는 제외시켜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가졌다.
그러나 ‘인물과 풍수’라는 주제에서 세 고장을 들먹이지 않으면 오히려 그 핵심이 빠져버리게 된다는
생각에서 간산에 나서기로 했다.
다만 많은 인물을 소개하는 것을 지양하고 그 지역들이 갖고 있는 풍수지리적 특징을 살펴보는데
더 무게를 두고 답산기를 썼다.
창평땅이 인물고장이라고 사회적 인식이 두드러지게 심어진 것은, 창평면 지역에서도 창평소재지와
장전마을, 그리고 운산마을에서 많은 인재가 배출된데 기인함을 이번 간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 3개 마을은 그 배경을 이루는 산봉산맥과 어떻게 발달돼서 땅의 기운이 마을터에 서리게 됐는지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고도 밟아야 할 순서일 것이다.
필자는 이번 기회에 전남·광주지역의 태조산 무등산의 연원을 따라 올라가 호남정맥의 용맥 가운데
창평지역의 산세에 이어지는 용맥을 확인하는데 더 많은 관심과 시간을 할애했다.
왜냐면 필자를 포함해 이 지역에 삶의 근거를 두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호남정맥의 지세를
확인 하는 것은 또 다른 관점에서 ‘내가 자리잡은 곳’의 근원을 따져보고 스스로 다시 찾아 확인해 보는
계기를 만드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믿기 때문이다.
지면의 한계성 때문에 ‘산도’에서는 전북 순창군 산정산에 한정해 도시했지만 호남정맥의 본원은
백두대간이 지리산으로 진행하는 분지점이라 할 영취봉에서 비롯된다.
영취봉에서 한 가닥 간룡은 낙담해서 백운산 월경산, 봉화산, 시리봉, 고남산, 수정봉, 고리봉, 만복대,
종석대, 노고단을 거쳐 지리산을 낀 낙남정맥으로 발달해간다.
그리고 영취봉에서 서남방으로 분지된 간룡이 전북 장수군의 장안산 사두봉과 신무산까지 나아가다가
머리를 서북방으로 틀어 팔공산으로 북상하며 선각산, 덕태산, 성수산을 지나며 장수군과 진안군의
군계를 형성, 그 이름난 마이산을 세우고는 이내 부귀산을 넘어 금남호남정맥의 끝 지점이 되는
조악봉에 다다른다.
여기서 계속 북상하며 금남·금북정맥(금강정맥)으로 나아가고 서남방으로 내려 달리며 섬진강의 면원을
돌면서 동진가의 분수령을 삼는 만덕산, 박이뫼산, 옥녀봉, 경각산, 치마산, 오봉산을 지나 옥정호를 끼고
묵방산, 왕자산, 국사봉, 장군봉으로 거쳐 서방으로 향하다가 내장산의 신선봉을 통과해 다시 방향을
동남방으로 바꿔 담양군 추월산에 닿는다.
거기서 동북방으로 꺾어 순창군과 담양군 북방의 경계지점을 이루는 용추산봉을 앉혀놓고
다시 낙남길에 올라 위이, 기복을 계속하는가 싶더니 순창군과 담양군의 동·서 군계를 이루면서
광덕산(강천산)과 산성산, 덕진봉, 고지산, 봉황산에 이르러 동남방으로 방향을 바꾸고는 전남·북의
도계를 이루는 서암산과 곡성군과 옥과의 설산에 이른다.
거기서 남쪽으로 괘일산, 무이산을 세우면서 곡성군과 담양군의 경계를 형성하고는 과치재에서
연산을 사이에 두고 호남고속도로가 통과한다.
연산에서부터 이번 간산기의 기점을 형성한다.
즉, 연산에서 만덕산에 오르기 앞서 한가닥의 용맥이 서쪽으로 발달해 나가면서 월봉산을 뒤쪽에서
감싸며 마치 치마폭처럼 병풍을 치면서 서쪽으로 달리다가 대덕터널 위의 문재를 건너 대덕면 소재지
배경산이 되는 만덕산을 지나 턱 고개를 건너 장전터의 현무봉을 세워 앉히고는 마무리를 짓는다.
연산에서 만덕산을 지나 국수봉을 세우고 북산을 세운뒤 전남·광주지역의 태조산 무등산을 드높이 세운다.
호남정맥의 태조산은 이런 과정을 거쳐서 매조지 된다.
그리고는 또 다시 호남정맥의 기맥은 광양의 백운산과 영암의 월출산, 무안의 승달산을 향해
그 여정을 멈추지 않는다.
무등산에 오르는 주요 성봉 국수봉이 이번 간산 대상지역의 하나인 창평소재지와 운산마을의
태조산격이 된다.
그러니까 창평지역의 산맥은 무등산을 연원으로 삼지 않고 성급하게도 그 중도에서 갈라져 분지된
용맥임이 특징이다.
국수봉에서 내려선 생기에 찬 용맥은 다시 북상하면서 위이, 기복, 과협, 박환의 윤서를 밟아 돌아
그 아름다운 탐장성의 준봉 월봉산을 서쪽으로 회룡해 우뚝 세운뒤에 그 준봉에서 두 가닥의
주룡맥이 발달해 양택명당을 만드려 평지로 내려 앉는다.
그 중 북쪽으로 낙맥해 크게 결인한 뒤에 서북쪽으로 진행하다 창평 소재지 양택의 현무봉격인
주산을 훌륭하게 마무리 짓고 양택 길지를 짓기 위해 평야지대로 그 길고긴 여정의 짐을 풀어 놓는다.
그리고 월봉산의 직룡입수에 해당되는 또 하나의 주룡맥이 운산지로 내려서서 상·하 운산 마을을
결작한다.
세 마을 양택명당은 그 작국의 형세로 보아 각각의 특징을 갖는다.
주산을 현무봉으로 삼아 평지에 넓게 터를 짓는 창평소재지 터는 체생지무.
즉, 혈을 맺기 위한 주룡맥은 역동적인 내룡의 형세와 우선룡의 교구통맥의 작국을 갖췄으니,
경(經)에서 이른대로 생기론에 입각해 텃기운을 타고 태어난 이 양택의 출신들은
이 지역과 나라의 동량재로 출세의 길을 걷게 될 것임을 암시해 준다.
그래서 일까. 이 양택길지에서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인재들이 배출됐다.
장전마을 역시 한 가닥의 강세룡이 평지를 돌고 돌아 과협, 위이, 기복을 반복하면서 회룡입수해
양택명당을 짓고는 마무리 한다.
창평소재지터와는 다르게 마을터를 감싸 안은 주위의 보국이 매우 정겹다.
다만 그 배경산이 되는 마을 뒷산의 규모가 크지 않아서 작국에 비해 지기의 마무리와 크기가 아쉽다.
그 행룡의 생기와 작국의 짜임새가 더 없이 조화로워서일까.
이 마을터에서 출생한 많은 사람들이 큰 인물로 진출했다.
월봉산에서 직룡으로 입수돼 명당터를 맡은 문산 마을 역시 뒷산의 기운을 받아서 많은 인재가
배출됐으나, 그 형세나 생기로 보아 전기한 2개 마을에 크게 뒤지지 않는데 비해 인재 배출의 규모는
그에 버금가지 못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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