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음택지

비오탁시형의 명당

오늘의 쉼터 2008. 1. 31. 17:52

 

 * 광주이씨 선대 산소 비오탁시형의 명당

 보성지역 음·양택 명당(하)







보성지역도 산세의 기운이 중후하고 아름다워 크고 작은 음택명당이 많기로 소문난 지역이다.
그런데 보성도 고흥과 마찬가지로 호남대지 56대 혈에 드는 음택대지는 한 곳도 기록되지 않아 의아심을

떨칠 수 없다.
우리나라 풍수지리학 영역에 큰 획을 그었다고 알려진 일지스님이나 일이스님이 엮어 전해오는 활산활수의

결록에는 3개혈의 대혈이 실려 있고, 또 다른 결록에도 보성지역에 결지된 음택명당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특히 삼우당에서 펴낸 장택결의 갈형장에 소개된 명혈만도 60여곳에 달한다.
보성읍을 중심으로 10리 거리의 안치(기러기재) 인근에 맺혀 있다는 비학상천형을 비롯, 보성읍에서 동쪽

50리에 소재한 열개치 부근 갈마촌 윗쪽에 몸을 감춘 단봉함서형, 낙안 서쪽 20리 거리에 자리잡은

금계두월형 등 대지에서 부터 작은 혈에 이르기까지 널리 자리잡고 있다.
필자는 이런 수없이 많은 명혈을 모두 간산하고 싶은 충동이 일지만 몇몇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음택명당을

간산하고 그 소감을 쓸까 한다.

특히 박실터를 자상하게 일러준 양동기 선생의 안내로, 겸백면 수남리에 소재한 광주이씨 입향조인 이수완의

유택인 비오탁시형(飛烏琢屍形)을 둘러봤다.
이 산소의 발음에 의해 보성땅에 들어온 광주이씨가 번성해 이른바 향반으로 근거를 확보하게 된 명당이라고

회자되고 있어 이미 검증된 명혈대지로 여겨진점이 필자의 발걸음을 유혹했다.
목포-순천간 고속화도로를 타고 보성읍을 지나 순천방향으로 10여분을 달리다 보면 기러기재를 넘게 된다.

기러기 휴게소를 왼편에 두고 곧바로 오른쪽에 쇠실 쉼터를 지나면 기러기재의 내리막길이 끝나고

겸백면으로 통하는 845번 지방도로를 따라 좌회전해 나아가면 박실터가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거리에 있고,

얼마되지 않은 곳에 호남권에서 가장 오래된 보성강수력발전소가 보인다.
이곳에서 약 4㎞를 달려가면 겸백천을 건너는 교량이 나오는데 수남리라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거기서 우회도로를 타고 산골길을 2~3분 달려가면 마을이 왼쪽에 보이고 그 마을에서 500m를 더 나아가다

오른쪽 산 모퉁이를 돌아가면 예의 그 산소와 제실이 나타난다.
필자가 전에 없이 간산코스를 자세히 소개한 이유는 풍수지리에 관심이 있거나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동호인들에게 한번쯤 답산해 보기를 권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산소는 필자가 늘상 강조해온 용진혈적은 말할 것 없고 혈 주위의 보국과 수세 또한 조화롭다.
<산도>에서 보듯 이 명당을 결작하기 위한 내룡맥부터 주룡(혈을 짓기 위해 내룡한 맥)의 윤서와 요건을

잘 갖추고 있다.
장흥땅의 제암산, 사자산의 정기를 가득 품고 달려온 보성지역의 간룡이 줄기차게 이어져 해발 667.5m의

일림산을 거친 후 활성과 봉화산, 미력면의 배각산과 반성산을 뛰어 넘어 방장산을 추켜 세우고는

 이내 556.9m의 우람한 주월산을 세운다.
주월산에서 한자락 대지룡맥이 크게 우선으로 회두해 수남리의 원수남마을쪽으로 주룡맥을 이룬다.

이 산이 곧 비오탁시형의 음택명당을 결작시키기 위해 한껏 정기를 응축하고 세워진 진산이자

본원이 되는 태조산이다.
500고지와 400고지, 그리고 300고지의 조종산을 차례로 세우면서 기복과 위이를 거듭하며 행룡하는 기세는

가히 대지명혈을 짓기 위한 용맥임을 예측하게 한다.

큰 자리를 만들려는 용맥은 언제나 그 연원이 확실하고 매조지되는 끌탱이가 분명한 법이다.

이 묘터도 마찬가지다.
주월산으로 부터 내려오는 용맥과 성신은 작혈의 연원으로서 손색이 없고,
그렇듯 역동적인 내룡맥은 마치

소명을 완수하려는 듯 마무리의 기지맥지의 혈장에 청기를 오롯이 응결시키고 있다.
움직임이 있으면 고요함에 이르러 땅의 기운을 서리게 하는 이치가 간산의 9대 강령의 하나인 동·정임을

일깨워 주려는 듯 영락 없는 그 본보기를 간직하고 있다.
혈장에 이르는 마무리 용맥의 교도(용맥이 박환하며 각도를 이루는 형세)는 굽이 굽이 내룡한 생기맥의

결과를 헛되지 않게 하려는 자연산세의 본태성에서 일까.
시계바늘 반대방향으로 선회하는 이른바 우선 작국에 따라 남남서의 용맥에서 남맥의 용맥으로 머리를 틀어

행룡해 오는가 싶더니, 이내 동동남의 용맥으로 살며시 내려 앉아 100여평 남짓한 당판을 만들고는 남은

기운이 내려서는 여기(餘氣)를 끝으로 비탈을 만든 뒤 그 강세룡의 일생을 마감한다.

풍수지리학의 24산 설리결

(24 방위별로 혈장에 이르는 마무리 내입수룡의 성정에 따라 물형의 형상을 설정하는 이치)에

손맥이나 그 좌는 교룡(도룡룡)으로 비교됐듯이 산소를 쓰기 위해 마무리된 혈장은 마치 도룡이의 몸통처럼

두텁고 풍부하며 길게 자리잡고 있었다.
물론 우선룡의 진맥이 매조지를 했으니

지기를 갈무리 하듯 와형(땅기운을 깊게 갈무리 하듯 도두룩하게 짜인 형세)으로

작혈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예외일 수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자리잡은 혈장에 쓰여진 산소의 배치를 보고, 맨 윗쪽 외조모 산소와 중간의 이수완 입향조

산소가 납득하기 어려운 거리의 간격을 두고 쓰여진 점이 의아스러웠고, 풀어야 할 궁금증으로 떠올랐다.
상단의 산소와 중단의 산소사이에 족히 두 봉분의 산소를 쓸 수 있는 공간이 드넓게 비어있는데,

왜 그곳을 남겨두고 아래로 치우쳐 중대의 묘소를 재혈했을까.
필자가 이 음택의 간산을 권하는 한 가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난해하고도 깊은 학리적 요인을 여기에 모두 적시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이유를 어렴풋이 깨우친 필자는, 이곳에 소점해준 그 당시 어떤 지사는 도선국사가 

 명당요건 마디마디에 “호리의 오차(떨끝 만큼의 잘못된 차이)를 범하면 멸문지화를 면키 어렵다”는

깊은 뜻을 헤아리기라도 했을까.
오묘하고 심오한 풍수지리학의 진수가 재혈(산소를 쓸 자리를 정확하게 정함)에 있음을 실제적으로

제시해준 하나의 표본으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간산을 권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산소를 옹위해 주는 국세의 짜임새와 안산과 조산의 어울림,

그리고 그 수려함이 넋을 잃게 한다는 점이다.
혈전에서 합수된 물이 구곡수를 이루며 교쇄된 내외 청룡 백호사이로 빠져나가는 수세도 그렇거니와

도지목(나무를 눕혀놓은 형국)의 안산은 마치 시신이 누워있는 모습이며 그 높이도 알맞다.
이만한 음택명당에 선대의 산소를 정했고, 양택 또한 명당터이고 보니

보성으로 들어온 광주이씨의 후사가 괄목할만 한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필자가 군 단위 지역의 풍수기행의 내용을 소개하다 보니 독자들이 행여 식상해 할까봐 걱정이 된다.

그러나 먼저 우리지역의 음·양택을 살펴 아는 것이 뜻있는 일이라 여겨 계속 쓰기로 마음을 다 잡았다.
다음은 담양지역의 창평땅에 전해오는 음·양택 명당을 방문할 차례다.
덧붙여 필자도 색다른 곳으로 풍수기행을 떠나고 싶다.

가령 ‘500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조용헌 저)’에 담겨진 명가종택을 돌아보고

그 명문가에 스민 풍수지리적 비기를 밝혀내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또 삼불차의 원칙을 370년간 지켜온 경북 주실마을의 호은종택과 조선선비의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살아 있는 12대 만석꾼 경주최씨의 양택 등 필자를 유혹하는 유서깊은 땅을 밟아보고 싶으나,

강의가 없는 여름방학을 기약할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