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음택지

울산김씨인 여흥민씨 할머니묘

오늘의 쉼터 2008. 1. 30. 17:01

 

* 울산김씨인 여흥민씨 할머니묘

 

울산김씨인 여흥민씨 할머니묘는 전남 장성군 북이면 명정 마을에 있다.

 가마솥을 엎어놓은 것 같은 복부혈(覆釜穴)로 유명하다.

동방18현을 탄생케한 하서 김인후선생의 발복지이다.

동방18현이 누구인가 신라에서부터 조선에 이르는 사람으로서 문묘 배향을 받는 사람이다.
신라(설총)을 비롯하여 최치원, 고려의 회헌 안향, 포은 정몽주, 조선의 한훤당 김굉필, 일두 정여창,

정암 조광조, 회재 이언적, 퇴계 이황, 하서 김인후, 율곡 이이, 우계 성혼, 사계 김장생, 중봉 조헌,

신독재 김집, 우암 송시열, 동춘당 송준길, 현석 박세채이다.


이중 호남출신은 유일하게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선생 한 명으로 전남 장성 출신이다.

지금도 장성 사람들은 선비의 고장이라는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데 하서 김인후 선생뿐만 아니라

성리학 6대가의 한 사람인 노사 기정진 선생을 배출하였기 때문이다.

하서 선생은 도학의 정통을 이은 영수라 할 수 있으며 경기의 김안국, 조광조, 영남의 이언적, 이황,

조식 등이 같은 시대 사림의 영수였다.

하서 선생과 같은 훌륭한 인물을 배출하고 호남 제일의 명문가로 알려진 울산 김씨의 번영은

하서의 5대조모인 여흥민씨 할머니로부터 시작되었다.

민씨 할머니는 조선 태종 이방원의 왕비인 원경왕후 민비와 사촌 형제가 되며,

울산김씨인 김온(金穩)과 혼인한다.

김온은 고려 우왕 때 등과하여 이성계를 따라 요동정벌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고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으로 정권을 잡자 이조좌랑에 올랐으며 단양군사와 함양군사를 지냈다.

회군 때와 개국 때의 공으로 정종2년에는 좌명공신(佐命功臣)에 책록 되어 흥려군(興麗君)이라고 불리고

여산군(麗山君)에 봉해졌다.

 태종 때는 양주목사를 지냈다.그러나 태종 이방원이 왕권강화를 목적으로 외척을 배척할 때

자신의 처남인 민무구, 민무질 형제를 옥사에 연루시켜 죽게 하였다.

 이때 김온도 외척으로 연루되어 죽음을 당하였다.

그러자 민씨 할머니는 아들3형제를 데리고 한양을 떠나 전남 장성군 황룡면 맥동 마을로 피신하였다.

이곳에 터를 잡은 민씨 할머니는 아들3형제를 모두 훌륭하게 키웠다.

큰아들 김달근(金達根)은 좌군부사정(左軍副司正)을 지냈고, 손자 김률(金律)은 문과에 급제 군수를 하였다.

하서 김인후는 둘째 아들 김달원(金達源)의 고손이다.

그리고 죽어서도 이곳 복부혈 명당에 묻혀 그 후손들이 크게 번창하도록 해주었다.

고려대학교와 동아일보를 세운 인촌 김성수 선생도 이분의 후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