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보

국보 제143호 화순 대곡리 출토 청동유물(和順大谷里出土靑銅遺物)

오늘의 쉼터 2008. 1. 26. 21:17



종     목 국보  제143호
명     칭화순 대곡리 출토 청동유물(和順大谷里出土靑銅遺物)
분     류 유물 / 생활공예/ 금속공예/ 무속구
수량/면적 일괄(11점)
지 정 일 1972.03.02
소 재 지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168-6 국립중앙박물관
시     대시대미상
소 유 자국유
관 리 자국립중앙박물관

일반설명

전라남도 화순군 대곡리 영산강 구릉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의 무덤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출토된 청동기 유물 중 세형동검(청동검) 3점·청동팔령두 2점·청동쌍령구 2점·청동손칼(청동삭구) 1점·청동도끼(청동공부) 1점·잔무늬거울(청동세문경) 2점이 국보로 지정되었다.

세형동검은 양 끝에 날이 서 있으며, 그 중 1점은 칼날 부분이 손상되어 있다. 동검 중앙에 굵게 나온 등대의 모습이 칼마다 다른 것이 특징이며, 한국에서 출토되는 동검으로는 시대가 늦은 편이다.

청동팔령구는 8각형의 별모양으로 생겼으며, 각 모서리에 방울이 달려 있다. 그 안에 청동구슬을 넣어 흔들면 소리가 나는 것으로, 주술적·종교적인 의식용 도구로 보여진다. 방울 표면에는 고사리문양이 나타난다.

청동쌍령구는 양끝에 방울이 있고 그 안에 청동구슬이 있어 흔들면 소리가 나는 주술적·종교적인 의식용 도구이다.

청동손칼은 공구류의 일종으로, 현재 조각칼의 용도로 보이는 것이다. 바닥은 평평하고 날의 끝이 일부 부러진 모습을 한다.

청동도끼는 한쪽면에 날을 세우고, 반대쪽에 자루를 끼울 수 있게 홈이 파인 형태의 도끼이다. 홈이 파인 쪽에는 어깨가 있으며, 폭에 비해 길이가 짧다.

잔무늬거울은 거울면에 광택있는 녹으로 되어 있어 깨끗하며, 거울 뒷면에 기하학적인 문양과 거울을 매달 때 사용하는 두 개의 뉴가 달려 있다.

대곡리에서 출토된 청동유물들은 종류가 다양하고 제작기법이 뛰어나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를 연구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전문설명

 

(1) 청동세문경(靑銅細紋鏡)(2점(點))

1) 지름 18cm, 두께 0.2cm

다뉴세선(多유細線) 문경(文鏡)으로 강원도(江原道) 양양(襄陽) 출토경(出土鏡)보다 크며 발견시(發見時)의 부주의로 파손이 심하나 복원은 가능하다. 경면(鏡面)은 광택 있는 녹으로 아름답다. 거울 뒷면은 녹수(綠銹)에 둘러싸여 있고 중심의 좀 위쪽에 2개의 대상뉴(帶狀유)가 나란히 있다. 양양(襄陽) 출토경(出土鏡)보다 더욱 기술이 발전되었고 특히 거울 뒷면에 새긴 세선문(細線文)에다 서로 대칭되게 8개의 원문(圓文)을 새긴 것이 특색이며 아직까지 출토예(出土例)가 없다.

2) 지름 14.6cm, 두께 (1) 청동세문경(靑銅細紋鏡)(2점(點))

1) 지름 18cm, 두께 0.2cm

다뉴세선(多유細線) 문경(文鏡)으로 강원도(江原道) 양양(襄陽) 출토경(出土鏡)보다 크며 발견시(發見時)의 부주의로 파손이 심하나 복원은 가능하다. 경면(鏡面)은 광택 있는 녹으로 아름답다. 거울 뒷면은 녹수(綠銹)에 둘러싸여 있고 중심의 좀 위쪽에 2개의 대상뉴(帶狀유)가 나란히 있다. 양양(襄陽) 출토경(出土鏡)보다 더욱 기술이 발전되었고 특히 거울 뒷면에 새긴 세선문(細線文)에다 서로 대칭되게 8개의 원문(圓文)을 새긴 것이 특색이며 아직까지 출토예(出土例)가 없다.

2) 지름 14.6cm, 두께 0.18cm

양양(襄陽)이나 소록도(小鹿島)에서 출토된 거울과 크기에 있어서 거의 같다. 역시 발견 당시의 부주의로 파손이 심하나 복원은 가능하다. 녹은 큰 것과 같고 백동질(白銅質)의 거울로 여겨진다. 세선문양(細線文樣)은 앞의 거울과 비슷하나 더욱 세밀해졌고 정교해졌다. 거울 뒷면 중심에서 위쪽에 2개의 대상뉴(帶狀유)가 있고 특히 거울 뒷면의 중심에서 지름 6∼6.8cm 사이에 3줄의 원권문(圓圈文)을 양각하면서 중앙의 원권을 일정한 간격으로 끊어 나가면서 거기에 연결되는 외부 2원권을 오므라지게 양각해서 연결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유례가 없는 것으로 극도로 발전된 기술로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2) 청동검(靑銅劍)(3점(點))대(大)… 길이 32.8cm, 최대(最大) 검몸 너비 3.8cm중(中)… 길이 29.5cm, 최대(最大) 검몸 너비 3.2cm소(小)… 길이 24.7cm, 최대(最大) 검몸 너비 3.5cm

이상 3점의 청동검(靑銅劍)은 한국(韓國)에서 출토되는 형식의 동검(銅劍)으로는 시대가 조금 떨어지는 양식이다. 백동질(白銅質)로 여겨지는데 특히 녹이 고우며 칼날도 예리하나 퇴화된 형식으로 여겨진다.

(3) 청동팔주원령(靑銅八珠圓鈴)(2점(點))길이 12.6cm, 너비 2.6cm

바탕에 흑수(黑銹)가 곱게 광택을 내고 있다. 변형된 8각형 4줄을 새기고 단사선문(單斜線文)들을 새겨 매우 상징적이다. 특히 8개의 영(鈴) 표면에는 각각 쌍두와문(雙頭渦文)을 새겼는데 한국(韓國)의 청동기에서 잘 볼 수 없는 문양(文樣)인 반면 일본(日本)에서는 미생시대(彌生時代)의 동탁(銅鐸)에서 이와 같은 와문(渦文)이 보인다. 뒷면에는 뉴(유)가 하나 있어 고리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다분히 주술적(呪術的)인 의기(儀器)의 하나로 여겨진다. 2점 중 1점은 완전한 편이나 다른 1점은 파손이 매우 심하다.

(4) 청동쌍령구(靑銅雙鈴具)(2점(點))길이 17.8cm, 너비 2.7cm

부분 부분에 흑수(黑銹)가 벗겨져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흑수(黑銹)가 곱게 광택을 내고 있다. 영신(鈴身)은 완만하게 곡선을 그려 두 영(鈴)과 접하고 있다. 앞면 중앙에 4각형의 구멍이 뚫려 있어 뒷면과 통하고 있으며 1면에만 중앙의 구멍 좌우에 불규칙하게 각 1개씩의 구멍이 뚫려 있다. 신부(身部)와 영부(鈴部)의 내부는 비어 있고, 평행사단선문(平行斜單線文)이 4줄로 새겨져 있다. 2점 중 1점은 완전한 편이며 1점은 파손이 심하나 복원이 가능하다.

(5) 청동공부(靑銅공斧)(1점(點))길이 7.8cm, 너비 4.4cm, 공부(공部) 너비 1.8cm

형태가 완전하며 녹이 출토품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다. 소위 소케트형(形) 공부(공斧)로서 대구(大邱) 서변동(西邊洞) 출토 공부(공斧)와 형태가 동일하다. 공구(공口)에서 인부(刃部)를 향하여 부신(斧身)이 곡(曲)을 지으며 점점 넓어져서 견부(肩部)를 이루고, 견부(肩部)에서 부(部)까지는 약간 내향(內向)하면서 직선으로 내려왔다. 날은 편인(片刃)이며 인폭(刃幅)은 0.4cm에 지나지 않는다.

(6) 청동삭구(靑銅削具)(1점(點))길이 11.5cm, 최대(最大) 너비 1.7cm, 두께 2.5cm

긴 펜촉 같은 형태이며 원래는 양인(兩刃)으로 된 것 같으나 끝 부분 한쪽이 떨어져 나갔다. 녹이 곱고 삭구(削具)의 등 면(面)은 곡선을 이루고 바닥은 평평하다. 김해패총(金海貝塚)에서도 이와 같은 형태의 동제삭구(銅製削具)가 출토되었다고 전한다.

한국(韓國)에서 출토된 청동기일괄유물(靑銅器一括遺物)은 대구(大邱) 만촌동(晩村洞), 대전(大田) 괴정동(槐亭洞), 경주(慶州) 평리(坪里), 강원도(江原道) 양양(襄陽) 등 그 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

초기 철기시대의 유물로 여겨지는 이곳 화순(和順) 대곡리(大谷里) 출토 유물(遺物)은 발견 수량의 많음과 종류가 다양하고 또 출토된 상황을 조사한 결과 유구(遺構)가 뚜렷이 남아 있었다는 것은 청동기 연구자료로서 귀중할 뿐 아니라, 영남지방(嶺南地方)에서만 출토되고 있었던 청동 유물이 호남지방(湖南地方)에도 출토됨은 앞으로 청동기 사용문화를 규명(糾明)하는 데 더없는 귀중한 유물이라 하겠다.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

청동검

청동검

청동팔령구

청동팔령구

청동쌍령구

청동 공부, 청동 삭구

청동 세문경

청동 세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