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종 때 신숙주, 최항, 박팽년 등이 왕의 명으로 편찬하여 세종 30년(1448)에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표준음에 관한 책으로, 6권 6책이며, 활자본이다.
중국의 운(韻)에 관한 책인 『홍무정운』에 대비되는 것으로, ‘동국정운’이란 우리나라의 바른 음이라는 뜻이다. 당시 혼란스럽던 우리나라의 한자음을 바로잡아 통일된 표준음을 정하려는 목적으로 편찬, 간행되었다.
형태를 보면 본문의 큰 글자는 나무활자, 작은 글자는 갑인자, 서문은 갑인자 대자로 기록되어 있다. 구성을 보면 서문 7장, 목록 4장, 권1은 46장, 권 2는 47장, 권3은 46장, 권4는 40장, 권5는 43장, 권6은 4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기는 가로 19.8㎝, 세로 31.9㎝이다.
특히 이 책은 동시 출간된 국보 제71호『동국정운』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첫째, 개장(改裝) 당시 책의 천, 지를 약간 절단해 냈고, 둘째, 제목은 다같이 목판인쇄이나, 그 서체가 서로 다르다. 셋째, 책의 순서로 예, 악, 사, 어, 서, 수를 묵서했는데 이것은 뒤에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한자음을 우리의 음으로 표기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국어연구자료로서의 중요성도『훈민정음』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또한 한자음의 음운체계 연구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의 글자를 만든 배경이나 음운체계 연구에 있어서 기본자료가 된다. 이 책은 동시 출간된 국보 제71호『동국정운』과 함께 당시 음운학을 연구하는데 아주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전문설명
이 정운은 신숙주(申叔舟)·최항(崔恒)·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이개(李塏)· 강희안(姜希顔)·이현로(李賢老)·조섭안(曹燮安)·김증(金曾)등이 봉명(奉命) 찬(撰)하여, 세종 29년(정통(正統) 12,1447) 9월에 완성하자 간행(刊行)이 하명(下命)되어, 다음해인 30년(1448) 11월에는 제도(諸道), 성균관(成均館), 사부학당(四部學堂)등에 반사(頒賜1)되었다. 그것은 이 책의 '정통 12년 정묘 9월 하한 신숙주수계수근서(正統十二年丁卯九月下瀚申叔舟手稽首謹序) '와 『세종실록』 [29년 정묘 9월 무오조]의 '시월동국정운완성 범6권명간행(是月東國正韻完成 凡六卷命刊行)' 그리고 [30년 무진 11월 경오조]의 '반동국정운우제도급 성균관사부학당(頒東國正韻于諸道及 成均館四部學堂)'의 기록에 근거한 것이다. 결국 간행이 그 기간에 시필(始畢)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완질본은 국보 제71호로 지정된 간송미술관 소장의 『동국정운』(권 1·6) 잔질(殘帙) 2책과 동인본(同印本)이며, 다만 차이가 있다면, 선장본(線裝本)을 포배장(包褙裝)으로 개장하고, 개장 당시 책의 천(天)·지(地)를 약간 절단해 냈고, 《선사지기(宣賜之記)》가 없고, 책차(冊次) 표시를 뒤에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로 묵서가필(墨書加筆)한 것뿐이라 하겠다.
각 책의 공지(空紙) 뒷면에 '책주망서정(冊主望西亭)' 또는 '망서정(望西亭)'의 묵서(墨書)가 있다. 《망서정》은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인 어촌(漁村) 심언광(沈彦光)이래 심씨가(沈氏家)의 명칭이다.
어촌의 수택본(手澤本)이 세장(世藏)되어 오다가 16대손 심교만(沈敎萬)이 건국대학교 박물관에 양도한 것이다. 전질 완본(全帙完本)이 발견되어, 어학(語學) 등의 학문 연구의 면에 있어서는 물론 문화유산의 면에 있어서도 지보적(至寶的)인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동국정운 동국정운 동국정운 동국정운 동국정운 동국정운 동국정운 동국정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