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한국의 野史

3. 싹트는 骨肉相殘

오늘의 쉼터 2019. 1. 9. 18:12

 3. 싹트는 骨肉相殘



개루왕이 신라와의 관계를 악화시켜 놓았기 때문에 그 뒤를 이은 초고왕 때에는

두 나라 사이의 분쟁이 그칠 사이가 없었다.

 
초고왕 二년 七월에는 선왕의 유환을 갚는다는 뜻에서 백제측에서 몰래 군사를 일으켜
신라 서쪽 변경 두 성을 습격하고, 남녀 一천명을 사로 잡아가지고 돌아왔다.
이렇게 되니 신라측에서도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그 다음 달인 八월 아달라왕은 먼저 흥선(興宣) 등에게 군사 二만명을 주어 백제 동쪽 여러 성을
공략하는 한편 뒤이어 아달라왕 자신이 정병 八천명을 거느리고 한수(漢水)에 이르렀다.
 
이렇게 되니 백제측에서는 신라군을 대적할 힘이 없었다.
먼젓번에 약탈한 백성들을 돌려보내고 사과함으로써 신라군을 물러가게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적의 힘이 두려워 취한 처사였지 진심으로 화친하자는 뜻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 후에도 기회만 있으면 양국은 상대편의 국경을 침공하기에 바빴다.
 
초고왕이 재위 四十九년 만에 세상을 떠나자 그의 장자가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니
곧 제六대 구수왕(仇首王)이다.
그리고 구수왕이 二十二년 동안 통치하다사 세상을 떠나자
개루왕의 둘째 아들이 왕위를 계승했으니 제七대왕 고이왕(古爾王)이다.
 
선왕 구수왕에게는 장자 사반(沙伴)이 있었으나 나이가 너무 어려 정사를 돌볼 수 없으므로
그가 즉위한 것이다.
 
고이왕이 재위 五十三년 만에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이 왕위를 이었는데
그가 바로 제八애 책계왕(責稽王)이며, 그 후 제九대 분서왕(汾西王), 제十대 비류왕(比流王),
제十一대 계왕(契王), 제十二대 근초고왕(近肖古王), 제十三대 근구수왕(近仇首王),
제十四대 침류왕(枕流王), 제十五대 진사왕(辰斯王), 제十六대 아신왕(阿莘王)에 이르기까지
왕위 계승에는 별 분쟁이 없었다.
 
물론 그 중에는 고이왕, 비류왕, 근초고왕, 진사왕과 같이 적자(嫡子)가 아니면서
왕위를 계승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거기 따르는 분쟁이 있을 수 있었겠지만
기록에는 그런 사건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형제간의 불화가 건국의 근원이 된 백제로서는 뜻밖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왕위 계승문제 때문에 혈족간에 피를 뿌리는 사건이 끝까지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신왕이 세상을 떠나자 왕의 원자 전지왕자( 支王子)는 마침 왜국(倭國)에 볼모로 가있었으므로
아신왕의 중제(仲弟) 훈해(訓解)가 섭정하면서 태자의 환국을 기다리게 되었다.
 
훈해는 성품이 어질고 착한 사람이라 아무 야심도 품지 않고 태자가 돌아오면 정권을 물려줄
생각이었지만 그의 아우 혈례( 禮)는 그렇지 않았다. 전부터 야욕을 품고 기회만 노리고 있던
혈례는 태자가 왜국에 가 있는 동안에 왕이 세상을 떠난 것을 대단히 다행으로 여겼다.
 
'내 뜻을 펼 때는 바로 이때다.'
 
이렇게 생각하고 기뻐했지만 자기 야망을 채우자면 무엇보다도 고지식한 훈해가 방해물이었다. 
처음에는 훈해를 꼬여보기도 했다.
사람을 시켜 훈해더러 왕위에 오르라고 충동해 보기도 했다.
그렇게 되면 일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훈해가 만일 왕위를 계승한다면 적자를 제쳐 놓고 왕위를 찬탈했다는 죄명을 씌워 죽인다음
스스로 정권을 잡을 배짱이었다.
그러나 고지식한 훈해는 아무리 권해도 왕위를 계승하려고 하지 않았다.
 
"왕통은 반드시 적자가 계승해야 하는 법이야.
그렇지 않으면 왕실의 기강이 문란해서 대대로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피를 보게 마련이지."
 
이렇게 말하며 듣지 않았다.
 
혈례는 초조했다.
이대로 가다가 전지왕자가 귀국하는 날이면 만사가 수포로 돌아간다.
 
한편 전지는 아신왕 六년에 볼모로 왜국(倭國)에 건너간 채, 열한 해가 되도록
고국땅을 밟지 못하다가 부왕 아신왕이 세상을 떠났다는 부음(訃音)을 들었다.
 
태자는 왜왕에게 애걸했다.
 
"살아 계실 때 모시지 못한 것만도 큰 한입니다만, 이제 세상을 떠나셨으니
그 유해나마 고이 모시는 게 자식된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왜왕은 묵묵히 말이 없었다.
 
전지태자는 진실한 사람이었다.
그가 지성으로 애걸하는 말을 들을 때 인정상으로는 그 청을 들어 주고 싶긴 하다.
그러나 볼모라는 것은 배반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보낸 말하자면 담보인데
그것을 아무 보상도 없이 돌려보낸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기도 했다.
 
"아시다시피 저는 태자의 몸입니다.
왕이 세상을 떠나셨으니 하루 속히 귀국해서 왕위를 계승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왕위를 탐내는 파들의 싸움으로 나라는 위태로워지고 백성들은
 공연한 고생만 하게 될 겁니다."
 
이 말을 듣자 왜왕은 비로소 태자를 귀국시키기로 마음을 정했다.
 
왜국으로선 백제와 화친을 맺고 지내는 편이 어느 모로 보나 유리했다.
그런데 새로 왕이 되는 자가 왜국을 잘 알고 왜국 조정에 친분이 두터운 전지태자라면
힘들이지 않고 화친을 계속 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다른 자가 왕이 된다면
사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또 새로 왕이 되는 자가 전지태자를 아끼는 자라면 또 몰라도 미워하는 자라면
전지를 머물러 두어도 볼모로서의 아무런 가치도 없다.
 
"태자의 말씀은 잘 알겠소.
 속히 귀국하시어 대위를 계승하도록 하시오. 내 힘자라는 한 태자를 도우리라."
 
왜왕은 이렇게 말하고 군사 백명을 딸려 보냈다.
그러나 태자가 고국에 당도하기도 전에 태자가 염려하던 변은 벌써 벌어지고 말았다.
 
전지태자 일행이 가락국을 거쳐 백제에 이르렀을 때였다.
한성(漢城) 사는 해충(解忠)이란 사람이 마주 오더니 이렇게 일러주었다.
 
"태자님의 신변이 지극히 위태롭기에 급히 아뢰려고 주야를 가리지 않고 달려왔소."
 
"내 신변이 극히 위험하다니,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가쁜 숨을 가다듬으며 해충이 알려준 이야기는 이러했다.
 
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훈해가 임시로 섭정을 하게 되었는데 야욕에 불탄 혈례는
마침내 훈해를 죽이고 스스로 왕을 칭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자 전지태자는 앞일이 막막했다.
 
"백명 정도의 군사를 가지고는 어찌하는 수 없고….
차라리 호젓한 섬에 가서 숨어 있으면서 때를 기다리도록 하자."
 
태자 일행은 다시 바다로 나갔다.
그리고 조그만 섬을 찾아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한편 해충은 다시 왕성으로 돌아갔다.
혈례가 형 훈해를 죽이고 스스로 왕이라 칭하고 있으며
앞으로 전지태자마저 해치려 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극소수의 혈례의 심복을 제외하고는 누구 하나 혈례를 지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기골 있는 사람들은 은밀히 모여 전지태자와 연락을 취해서 혈례를 칠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러한 속에 해충이 나타났다.
 
"여러분, 태자는 지금 무사히 숨어 계시오."
 
해충이 이렇게 말하자
그들은 뛸 듯이 기뻐하고 은밀히 더 많은 동지를 규합하고 무장을 갖추었다.
 
한편, 태자가 귀국할 것을 두려워한 혈례는 주위의 경계를 강화하려 했지만,
심지가 바른 사람은 하나도 모여들지 않았다.
다만 물욕에 눈이 어둔 부량배 몇몇이 모여들 뿐이었다. 
그날밤도 혈례는 여러 심복들과 함께 크게 잔치를 베풀었다.
 
취흥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궁성밖에 불길이 오르더니 천지를 뒤흔드는 함성이 들려왔다.
 
"혈례를 죽여라!"
 
"형을 해치고 왕위를 찬탈한 놈을 능지처참하라!"
 
고함소리에 섞인 이런 말들이 들려오고 있었다.
혈례는 이내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서 좌우를 둘러보며 소리소리 질렀다.
 
"거, 뭣들 하고 있는가! 어서 도적을 무찌르라!"
 
그러나 물욕과 일시적 권세가 탐이 나서 모여 든 자들이 목숨을 내걸고 싸울 까닭이 없었다.
모두들 겁을 먹고 줄행랑을 치고 혈례 곁에는 단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
 
혈레는 하는 수 없이 이리저리 도망할 길을 찾다가 마침내 몰려 들어온 백성들에게 잡혀
처참한 죽음을 당했다.
혈례를 처치하고 난 나라 사람들은 곧 전지태자를 맞아 대위를 계승하도록 했다.
(西紀 四五)그가 곧 제十七대 전지왕( 支王)이다.
 
왕위에 오른 전지는 이번 난에 가장 공로가 큰 해충(解忠)으로 달솔(達率)을 삼고
한성(漢城)의 조(租) 一천석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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