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모래시계

<제18회> 모래시계

오늘의 쉼터 2018. 11. 7. 19:09

<제18회> 모래시계 



# 1 병원 전경. (밤)



# 2 병원 복도


진료시간도 면회시간도 지난 밤의 적막한 복도. 바쁘게 걸어가는 우석의 발소리만 들린다.



# 3 중환자실 앞


도착한 우석, 잠시 비어있는 복도에 의아해한다.

언뜻 보기에 복도에는 아무도 없는 듯 하다.

그러다가 대기의자 저 쪽 땅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선영을 발견한다.

그 앞에 다가가 보면 선영은 마치 겁에 질린 조개처럼 우석이 온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마음 속 생각에만 집착해있다.

우석 그 앞에 쭈그려 앉는다.


우석 : 왜 그래요? 아버님 상태가 안 좋아지셨어요?


선영, 힐끗 우석을 보지만 다시 그 자세로 돌아간다.

마치 조금이라도 딴 생각을 하면 아버지에게 안 좋은 일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우석, 조심스레 선영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우석 : 선영 씨.


선영, 움찔하더니 어깨를 비킨다.

우석, 할 수 없이 손을 떼는데 중환자실에서 나오는 의사.


의사 : 보호자 되십니까?


선영 공포에 질리며 의사를 본다. 꼼짝하지 않는다.

우석 대신 의사에게 간다.

선영이 보는 시선에서 저만치 우석은 의사의 말을 듣는다.

절망적임을 알리는 의사의 무거운 낯빛, 다급하게 뭔가 묻는 우석.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의사.

우석, 선영을 돌아본다.

선영 공포에 질려 보고만 있다.

의사 다시 들어가고 우석,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선영에게 온다.


우석 : (머뭇 거리다가) 어디 연락해야할 데 있어요? 친척분이라든가…


선영 : (고개를 젓는다)


우석 : (잠시 보다가 선영의 두 손을 모아 잡는다) 오늘밤 넘기기 힘드신가 봐요.


선영 : (꼼짝 않고 보고만 있다. 아무 것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막막한)


우석 : 들어가서 가시는 길 지켜드려야죠.


선영 : (고개를 젓는다.)


우석 : 선영 씨.


선영 : (고집스레 고개만 젓는다)


우석, 그런 선영을 보다가 손을 잡아 일으킨다.


우석 : 일어나요


선영, 고집부리는 아이처럼 고개를 저으며 손을 빼내려는데 우석, 억지로 일으켜 세우더니 병실로 끌고 들어간다.



# 4 병실 안


우석, 강제로 선영을 끌고 들어온다.

저만치에는 전화를 걸고 있는 의사. 선영 부친의 기계를 체크하고 있는 간호사.

침대에 누워있는 혼수상태의 선영 부친.

우석, 선영을 침대 옆으로 끌고 오는데 선영 거칠 게 손을 빼내더니 한걸음 뒤에 멈춰선다.

믿지 않는 듯 부친을 보고만 있다.

우석, 혼자 침대 옆에 서더니 의식 없는 선영의 부친을 향해.


우석 : 어르신 들리십니까? 저 아랫방 사는 강우석입니다.


꼼짝없이 누워있는 부친.


우석 : 허락받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저 따님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허락해주시겠습니까?


선영, 놀라 우석을 쳐다본다.

옆에 있던 간호사도 놀라 돌아본다.


우석 : (아랑곳없이 나직나직 성한 사람에게 말을 하듯) 이제껏 제가 해놓은 거라곤 사법고시 붙은 거밖엔 없습니다. 고향집엔 동생이 홀어머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보잘 것 없습니다만, 따님을 맞게 허락해주신다면, 평생 아끼고 지키겠습니다.


저만치에 의사도 벙해서 보고 있다.

선영, 굳어서 보고 있다.


우석 : 아이를 낳게 되면 우리 둘이 힘을 다해서 바르게 키울 겁니다. 어르신 따님을 제게 주십시오.


꼼작 않고 누어있는 선영의 부친.

선영, 주춤주춤 다가와 우석을 보고 다시 부친을 보았을 때.

시 체처럼 창백하게 누워있던 부친의 감은 눈가로 눈물이 맺히고 흘러내린다.

선영, 그제야 소리 없는 울음이 치밀어 오른다. 떨리는 손으로 부친의 손을 잡고 천천히 부친의 품으로 무너져 고개를 묻으며 운다.

멍하니 보던 의사, 더듬더듬 안 경을 벗어 가운 자락으로 닦는다.

우석. 우는 선영의 어깨에 양손을 얹어준다.



# 5 병원 영안 실 낮


영안 실 한 쪽에 초라하게 마련된 빈소.

부친의 영정. 쓸쓸하게 놓여있 는 국화. 피어오르는 향.

상주도 따로 없이 앞에는 하숙생들로 보이는 젊은 청년들 몇 명만이 구석에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을 뿐이다.

그 청년들과 얘기를 나누던 우석, 문득 주위를 둘러본다.



# 6 영안 실 밖


달랑 쳐져있는 천막 밑에는 돗자리가 깔려있지만 아무도 없다.

그 뒤에 석유곤로를 갖다놓고 큰 솥에 육개장을 끓이고 있는 상복 차림의 선영.

국자로 끓는 국을 휘휘 젓고 있다.

다가온 우석, 뭐라 말을 건네지 못하는데.


선영 : 식사 더 하실 분 없대요?


우석 : 없어요, 좀 쉬어요.


선영 : 국을 너무 많이 끓였나 봐요. 전이랑 떡두 많이 했는데 …


곤로 옆에 놓여진 대바구니에는 수북이 쌓여있는 전과 그 옆에는 박스에 그대로 담겨있는 떡.


선영 : (슬픔을 내색하지 않느라고 쓸데없이 수다스러워져가고 있다) 음식… 너무 많이 한다는 건 알구 있어요. 알구 있는데, 그래두 너무 적 게 하면 섭섭해서… 그래서 (얼핏 목이 메는 것, 얼른 삼키고 국자로 국을 떠 맛을 본다) 너무 오래 끓였나 봐요, 짜졌어요, 어뜩허나…(결국 목이 메어 입을 다문다)


우석 : (그런 선영을 안쓰러워 보다가 국자를 뺏어 놓고 선영을 곤로 앞에서 끌어낸다) 간밤에 한숨도 못 잤지요? 일루 앉아요. (돗자리에 앉히고) 아무 것두 하지 말구 아무 생각두 하지 말구 좀 앉아있어요. (자기도 그 옆에 앉는다)


선영 : ……하숙하는 분들이 와주셔서, 그나마 다행이에요. 아니면, 아무도 없을 뻔 했어요 그쵸? (웃어보이다가 그만둔다)


우석 :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선영을 안다)


선영 : 사실 돌아가신 분은 모를 거예요. 조객이 많이 왔는지 아닌지…


우석 : 결혼식은 간단하게 빨리 했으면 해요. 검사장님께 주례를 부탁할까하는데, 괜찮겠어요?


선영 : (자기 앞만 보고 있는)


우석 : 조만간 광주로 부임하게 될 거예요. 관사를 빌릴 수 있을 겁니다. 신혼여행 갈 시간이 없을지도 몰라요 그 전에 고향집에 함께 다녀왔으면 하는데…


선영, 불쑥 일어나더니 저만치 가서 선다.

우석, 따라가 그 뒤에 서면.


선영 :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아버지 안 심하셨을 거예요. 고마워요. 이제 됐어요.


우석 : 무슨 뜻입니까?


선영 : (돌아서 마주보고) 이제 걱정 안 하셔두 돼요. 저 씩씩해요. 혼자 괜찮아요.

 

우석 : ……(웃는)


선영 : 걱정 마시구 좋은 분 만나세요. 어울리는 분으루요.


우석 : 제 청혼을 거절하는 겁니까?


선영 : 아시잖아요. 전 안 돼요, 맞지…않아요,


우석 : 제가 싫은 게 아니구요?


선영 : 그런… 우린… 데이트 같은 것두 안 했구…


우석 : 그런 건 결혼하구 나서 하면 안 될까요? 데이트두 하구 연애두 하구?


선영 : …진심이세요?


우석 : 청혼 같은 거 장난으루 하진 않아요, 저.


선영 : (……결심하여) 하나만 묻겠어요. 절 원하는 건가요? 아니면 그냥 살림할 여자가 필요한 거예요?


우석 : ……사랑하냐구 묻는 겁니까?


선영 : …네


우석 : (보다가 웃고 생각해보다가) 사랑은 노력하는 거라구, 생각해요. 난 노력할 준비가 되어있어요. 평생 노력할 생각입니다. 이런 말루… 안 되겠습니까?


선영, 말 못하고 본다.



# 7 광주


시내 전경. 평온하고 일상에 분주한 거리……



# 8 요정 앞


이미 와서 주차해있는 여러 대의 차.

각 차 주위에는 그 차를 따라온 각 패의 수하들이 진을 치고 있고,

(지방의 주먹패들이라 옷차림은 제각각) 새로 차가 도착한다.

조수석에서 뛰어내리는 수하는 뒷문을 열고 보스를 내리게 한다.



# 9 내부


이 지방의 내노라하는 주먹패들이 모인 자리.

여자들은 없는 상황.

상에는 술이며 요리가 차려져있지만 아무도 손을 대지 않고 있다.

새로 들어온 자가 이리저리 인사를 하고 그 자를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하는 자도 있고, 앉은 자리에서 거들먹거리는 자도 있고…

자기 옆에 앉은 자가 수근 거리기도 하고, 어수선한데, 문이 열리더니 태호와 무사시가 문 양 쪽에 들어와 지켜 선다.

장내 조용해진다.

들어서는 종도.

분분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내들…

종도 상석으로 가서 앉고 뒤를 따른 태호와 무사시는 양 쪽에 나눠앉는다.

종도가 자리에 앉자 자리에 앉는 사내들. 종도, 좌중을 둘러보더니 여유와 위엄으로…

어느새 더 강해진 원단 사투리로.


종도 : 오랜만입니다. 고향에 오니까 좋긴 좋구만요, 내가 어렸을 땐 천지 분간을 못하고 고향이 고마운 줄도 몰랐소. 그동안 서울 살이 하면서 쪼끔 힘도 비축을 했고, 앞으로 당분간 있는 힘을 다해서, 내 고향발전을 위해 애써볼 생각이요. 여러 형제들의 성원을 부탁하겠소.


누군가 박수를 치기 시작하고 좌중의 모두가 열렬한 박수를 보낸다.



# 10 교도소 내부 복도


간수가 뚜벅뚜벅 다가와 문 하나 앞에 선다.

문을 쿵쿵 치고


간수 : 1251번 면회


건너편 감방의 쪽문에 매달려 내다보는 죄수 한 명.

간수가 문을 열면 천천히 나서는 성범.

성범이 나온 감방 안 에서 젊은 죄수 한 명 문가까지 따라나서며 복도를 향해 소리친다.


젊은이 : 형님 면회 나가십니다아!


그리고는 성범을 향해 깍듯이 절을 한다.


젊은이: 다녀오십시오, 형님.


건너편의 감방에서 내다보던 사내도 소리 지른다.


사내 : 형님 다녀오십시오.


이 방 저 방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다녀오십시오, 형님 면회 가신다아…

그 소리들 속에 성범 느릿느릿 간수를 따라 나선다.



# 11 면회실


창살이 없는 특별 면회실이다.

기다리던 태수와 인영, 정근 일어선다.

간수와 함께 들어서는 성범.

인영과 정근 허리를 꺾어 인사를 하고, 성범,

다가선 태수의 팔을 잡아 툭툭 쳐준다.


(시간경과)


정근, 가느다란 시가를 성범에게 내어주고 불을 붙여준다.


성범 : 그래서 전북 쪽은 죄다 종도 그놈 손에 들어갔다는 거야?


태수 : 조만간 남북을 통일할 거 같습니다.


태수, 재미있다는 듯 미소 짓고 있다. 그런 태수를 한심하다는 듯 보다가


성범 : 그래서 잘 한다구 꽃다발이라도 보내줬냐?


태수 : 눈치를 봐선 장 씨가 밀어주고 있는 모양입니다.


성범 : 흥, 의리가 있는 친구로구만.


태수 : 야구에도 일진이 있고, 이진이 있잖습니까? 말하자면 이진인 셈치고 돌봐주는 거겠지요.


성범 : 그래서, 언제구 네 어깨가 고장 나면 걷어 차버리고, 그놈을 끌어올린다. 그 거야?


태수 : 그렇겠지요.


성범 : 도 닦은 놈처럼 얘길 하는구나.


태수 : 형님 그동안 저 돈 많구 힘가진 자들 구경 많이 했습니다. 보구 배운 것두 많습니다.


성범 : 그래서?


태수 : 배운 대로 해볼 생각입니다. 강한 자에겐 약하구, 약한 자에겐 강한 게, 그들의 생리에요. 이왕 시작한 거 아주 강해질 겁니다.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요.


성범 : ……잘못 배웠군.


태수 : 물론 내가 자기들보다 강해지는 거 그들은 원하지 않겠지요. 되도록 은밀하게 진행하겠지만 어쩌면 형님께 안 좋을지 몰라요. 가석방이 늦어질지두 모르구요 그래서…


성범 : 난 신경 쓸 거 없다. 여기 좋아. 네가 보내준 애두 영리하구… .나야 들어올 만해서 들어온 거니까, 억울한 것두 없고. ……사실 요즘처럼 편한 때는 없었어. 성경이란 것두 읽구 있다. 그럴듯한 책이야.


태수 : 죄송합니다.


성범, 인영과 정근을 보고.


성범 : 느이들 오느라고 수고했다. 먼저 나가있지.


인영, 정근, 인사를 하고 나간 뒤 성범, 담배만 피우고 있다가.


성범 : 그 여자앤 어떻게 됐냐.


태수 : ……윤 회장 딸 말입니까?


성범 : 종도 그 자식이 한 짓을, 죄 니가 시킨 걸루 알고 있다며?


태수 : (웃는)


성범 : 오해는 풀었냐?


태수 : 별루 신경 쓰지 않구 있어요.


성범 : (안 믿는다는 듯 피식 웃어보다가) 괜찮은 애냐. 그 여자?


태수 : ……(웃기만)


성범 : 똑똑하다며?


태수 : 애들이 쓸데없는 말을 했군요.


성범 : 대학원 다녔다고?


태수 : ……착해요.


성범 : 착하다……


태수 : 그렇게 기억해요.


성범 : 흐흥…… ……태수야.


태수 :


성범 : 넌 머리가 나빠. ……정말로 중요한 게 뭔지 몰라. (킬킬 웃더니) 강해지겠다고? 어디까지? 얼마나 어떻게? 강해지고 나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거라고? 강하다는 놈들이 두 발 뻗고 자는 거 봤니? 바보 같은 놈 진짜루 강한 게 뭔지두 몰라. 철 들래면 멀었어.


성범, 다시 웃기 시작하고, 한 쪽에 하릴없이 앉아있던 간수 힐끗 쳐다본다.

태수, 곤혹스러워 보는데.


성범 : 신경 쓰지 않고 있어요? 착하다고 기억해요? (계속 웃는)



# 12 도박 하우스 저택 전경


겉으로는 정원도 넓은 가정집 저택이지만 안 에서는 대규모 도박이 벌어지고 있는 집이다.

대문 안 으로 보이는 정원에는 세퍼트 정도의 개를 데리고 어슬렁거리며 감시를 하고 있는 경비 사내들의 모습이 보인다.



# 13 하우스 내부


거실은 일종의 카운터와 바처럼 쓰여 지고 있다.

신사복의 손님들이 드나들고 그때마다 안 내를 하는 젊은 사내들…

카운터의 지배인, 금고에서 돈다발을 꺼내고 있다.

그 앞에서 기다리는 종업원.

거실 옆으로 열려진 방문 사이로 보이는 모습…

커다란 방에는 몇 패의 고스톱 패가 둘러앉아 한창 도박 중이다.

깔끔하게 와이셔츠에 나비넥타이를 멘 종업원이 쟁반 위에 돈다발을 받쳐들고 바쁘 게 간다.



# 14 방


문을 열며 종업원이 들어선다.

그 방에서는 포커판이 벌어지고 있다.

자욱한 담배연기…

테이블 위에는 고액권의 돈다발이 쌓여져있다.

밤을 새워 추레한 모습의 권 사장, 또 돈을 잃고 있다.

초조한 모습으로 술을 마시다가 들어선 종업원을 보고 어서 오라고.

종업원이 내민 차용증에 얼른얼른 싸인을 하고 돈다발을 받는다.

카드가 돌려지고 있다.

권 사장, 조심스레 받은 카드를 쪼아본다.



# 15 빌딩 앞


현대적인 세련된 건물

고급 승용차가 와 선다.

조수석에서 내려선 정근, 뒷문을 열면 말끔하게 차려입은 태수, 내린다.



# 16 사장실


권 사장, 손수 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고 있다.

그 앞에 앉은 태수, 온화한 얼굴로 그런 권 사장을 보고 있다.


권 사장 : 내 오죽하면 박 사장한테 도움을 청하겠소. 내가 아무래도 병이 든 게야, 이 게, 아무래도 정신병이야, 지정신이 아니에요 내가.


태수 : 공금도 쓰셨습니까?


권 사장 : (움찔해서 보다가 긴 한숨)


태수 : 여기 감사가 얼마 안 남은 걸로 알구 있는데요.


권 사장 : (죽을 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이번 감사만 어떻게 넘어가게 해줘요. 내 어떻게든 이 은혜를 보답할게.


태수 : (빙그레 웃고) 보답이라고 하셨습니까?


권 사장 : 그래요, 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태수 : 한 가지만 약속해주시면 됩니다.


권 사장 : (좀 불안 하지만 고개부터 끄덕이고) 말씀하세요.


태수 : …다시는 도박을 하지 마세요. 약속하실 수 있겠습니까?


권 사장, 그만 목이 메어오면서 테이블 너머 태수의 손을 찾아 잡는다.



# 17 도박 하우스 정원


대문이 벌컥 열리면서 인영을 선두로 한 양복의 사내들이 우루루 수십 명 들어선다.

경비를 서던 하우스의 사내들, 수에 눌려 주춤주춤 뒤로 물러선다.



# 18 하우스 내부 거실


구둣발로 거침없이 들어서는 인영과 그 무리들… 지배인, 놀라서 나선다.


지배인 : 죄송하지만 우리 집은 예약제인데…


인영, 그를 보고 싱긋 웃는가싶더니 그대로 그의 멱살을 잡아 밀어버린다.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경비들… 그러나 인영의 무리가 워낙 숫자가 많다.



# 19 방


도박을 하던 신사들… 놀라 보는데 방으로 우루루 들어서는 양복의 인영 무리들……

그 중 하나는 사진기를 들고 있다.

신사들 놀라 우왕좌왕하는 사이 그 얼굴에 대고 거침없이 사진기의 플래쉬를 터뜨린다.



# 20 정원


황급히 나서는 신사들… 하우스의 경비들은 구석에 모여 서서 눈치를 보고 있고, 정원도 이미 인영의 양복 무리들이 여기저기 서서 장악하고 있다.



# 21 거실


역시 검은 양복의 인영 무리들이 진을 치고 있는데 잡담하는 이 하나 없이 절도있게 자리를 지키는 모습. 군기가 잡힌 무리들이라는 인상.



# 22 포커 방


인영, 포커 테이블 한 쪽에 여유 있게 앉아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옆에는 수하들 몇 명.

방문이 열리며 지배인이 가방을 들고 들어선다.

이미 얻어맞아 피가 맺힌 입술.

사내들의 눈치를 보며 인영의 앞에 가더니 가방을 올려놓고 열어 보인다.

가득 든 돈다발 위에 차용증이 몇 장 얹어져있다.

인영, 차용증을 들어 살펴보더니 지배인을 향해 미소지어보이고, 라이타로 차용증에 불을 붙인다.



# 23 룸살롱의 한방


배 상무, 어디까지나 고자세로 얘기를 하고 있다.


배 상무 : 이런 일 박 사장한테는 별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요. 나 같은 사람하고 친해놓으면 박 사장한테두 나쁠 거 없어요.


태수, 언짢은 얼굴로 보고 있다가.


태수 : 말하자면 집안싸움에 나를 끌어넣겠다는 얘기군요.


배 상무 : 이 게 다 회사를 위해서예요. 오 전무가 이번 공사를 무사히 끝내봐.


태수 : (가로 채서) 배 상무님이 차기 사장이 되는데 막대한 지장이 있겠죠.


배 상무 : 그 치는 기껏해야 구멍가게나 해먹을 위인이야. 사장? 흥 머잖아 회사를 말아먹을 거라구.


태수 : 어쨌거나 동서지간이 아닌가요? 배 상무님. 처제의 남편이시든가.


배 상무 : 회사가 먼저야.


태수 : 그래서 현재 오 전무님이 추진하고 있는 공사에, 뭔가 차질이 있으면 좋겠다…


배 상무 : 지 능력을 좀 일찌감치 깨닫게 해주란 얘기에요.


태수 : 그 대가로 뭘 주시겠습니까?


배 상무 : (보다가 껄껄 웃더니) 내 듣기론 우리 박 사장이 뭐 대가 같은 건 바라지 않는다구 하든데.


태수 : 사람에 따라 다르지요.


배 상무 : 좋아 그래 얼마나 원해?


태수 : (웃더니 ) 이렇게 하죠. 이번 일루 배 상무님은 제 게 빚을 진 겁니다 .언젠가 제가 도움이 필요할 때 그 빚을 갚아주시면 됩니다.


배 상무 : (불안 해진다) 어떤 일인지 봐야……


태수 : 어떤 일이든 해주셔야될 겁니다.


배 상무 : 협박하는 건가?


태수 : (미소……정근을 돌아본다)


한 쪽에 앉아있던 정근, 감춰두었던 녹음기를 꺼내 보인다.


배 상무 : (낯빛이 변해) 무슨 짓이야. 이 게 ?


태수 : (차가와져서) 나 박태수, 한번 부탁받은 일은 반드시 해드립니다. 이번 일은 맡겨두십시오. (일어선다) 이 녹음테이프는 사용하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배 상무, 할 말을 잃어 본다.



# 24 밤 공사장


안전모를 쓴 인부 두 명이 플래쉬 불빛을 비치며 대충 경비를 돌고는 공사장 한 쪽에 가 건물로 세워진 숙소 쪽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어두운 곳에서 소리 없이 움직여 나오는 몇 명의 사내들…

창민이 그 무리를 이끌고 있다.

창민, 몇 명과 함께 망을 보며 뒤로 손짓을 한다.

공구 가방을 든 몇 명의 사내가 공사장 안으로 재빠르게 움직여간다.



# 25 공사장 근처


소리 없이 달려 나온 사내들이 대기해있던 두어 대의 차에 나누어 오른다.

차에 탄 창민,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 공사장 쪽을 본다.

잠시 후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무너져 내리는 (불길이 오르는) 공사장……

창민, 끄덕여 기사에게 신호를 보내고 전조등도 켜지 않은 채 출발해가는 자동차……

차들 뒤로 훤한 불길과 놀라 튀어나오는 인부들의 그림자…



# 26 호텔 볼룸


연단 뒤에는 [관광호텔슬롯머신협회 정기총회]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빠찡고 업소 사장이며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이다.

사회자가 소개를 하고 있다.


사회자 : 국세청에서 와주신 오성철 부가세 과장께서 격려사를 해주시겠습니다.

회원들의 박수…… 연단의 오 과장.


오 과장 : 회원들께서 올해 하반기에 자율적으로 상반기보다 세금을 100프로에서 300 프로까지 인상, 성실신고하는 등 납세 업무에 적극 협조해준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회원들 와아 박수를 친다.


(시간경과)


사회자 : 그간 우리 슬롯머신 협회에서는 여러 차례 군과 경찰을 직접 위문해왔고, 그에 대한 치하의 말과 함께 수많은 감사패를 받은바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앞장서 추진해 주신 분, 우리 협회의 실질적인 대들보 박태수 사무총장을 소개합니다.

연단 한 쪽에 앉아있던 태수, 겸손하게 일어나 답례한다.

회원들 열렬하게 하나둘 일어나 기립박수를 친다.


# 27 빌라 전경


서울 시내,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한 고급 빌라는 한 동 전 체가 태수 패거리의 사무실 겸 아지트로 사용되고 있다.

빌라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한 경비실에는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경비를 서고 있다.

마악 도착한 승용차, 경비 사내들의 저지를 받고 안 의 손님을 확인한 후에 승용차를 들여보낸다.

승용차에는 주주1과 주주2가 타고 있다.

승용차가 빌라 안 의 정원을 들어서 현관에 도착하는 동안 정원 이곳저곳에 역시 검은 양복의 사내들을 볼 수가 있다.



# 28 태수의 집무실


빌라 내에 위치한 곳.

주주 1, 2와 태수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정근, 한 쪽에서 대기하고 있고…


주주1 : 그 처녀, 나이 어리다구 만만히 보면 안 돼요. 범새끼에 고양이는 없다아, 이런 말도 있잖소. 그러니까 박 사장, 이러구 사무실만 지키구 있으면 곤란해.


주주2 : (어디까지나 사분사분하게) 박 사장, 윤 양을 좀 아신다면서요? 여간 당찬 게 아니에요. 요즘 카지노 주주들을 하나씩 찾아다니고 있는 가 봐요.


주주1 : 각개격파를 하겠다 이 말이지. 이봐요, 나 군대서 모은 돈 여기 카지노에 다 쓸어넣었어. 나 사단, 여단을 지휘하던 사람이야. 늙으막에 새파란 여자애 밑에서 놀 게 될 줄 상상이나 했겠냐 말이지.


주주2 : 나이 젊은 거야, 뭐 좋죠. 허허, 우리 박 사장두 젊은 분이시니까, 하하.


주주1 : (그제야 실언을 알고 흠흠 헛기침)


주주2 : 사실 우리야, 박 사장을 윗분들 소개루 알 게 됐지만요. 꼭 소개 때문만은 아니에요. 우리두 정보망이 있어요. 박 사장이 얼마나 유능한지 에 또… 얼마나 활약이 대단한지. 다 듣구 있어요. 우리 도와줘요. 우리 믿구 있어요.


태수 : (피곤한 듯 듣고만 있다가) 주주들을 찾아다니고 있답니까?


주주1 : 이봐 이봐, 우리가 아니었음 아무 것두 모르구 있었지.


주주2 : 그렇대요. 그래봤자, 혜린 양 얘기 들을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도 유비무환이니까.


태수 : 윤 회장 딸이 지분에 42프로를 갖구 있다구 했지요?


주주2 : 그래요 9프로의 지지만 얻게 되면, 우린 꼼짝 못해요. 박 사장을 밀어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게 된다구요.


태수 잠시 앉아 있다가 불쑥 일어선다.


태수 : 알겠습니다. 일부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주주1 : 가라구? 아니 술이라두 한잔 해야지 어?



# 29 사무실 복도


정근, 주주 둘을 배웅한다.


주주2 : (정근을 향해 ) 우리 박 사장, 건강 잘 살펴드려. 할일이 많은 분이니까.


정근 : 명심하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깍듯이 절하여 보낸다.


주주1 : 어이 장 사장, 우리 끼리라두 한잔 해야지, 섭섭하잖아.


주주1, 계속 궁시렁 거리며 가고…



# 30 집무실 내부


정근, 문을 닫고 들어와 보면 태수, 창 밖을 바라보며 서있다.


정근 : 식사 하셔야죠 ?준비 시킬까요 ?


태수 : 어 아니 별로 생각이 없는데.


정근 : 점심도 거르셨는데.


태수, 싱긋 웃고 대답이 없다. 어쩐지 피곤해 보인다.


정근 : (망설이다가) 형님 이번 일 내키지 않으십니까?


태수 : 왜?


정근 : 그냥요 … 내키지 않으시면 관두시죠.


태수, 돌아본다.

정근, 민망해지는데 태수 싱긋 웃더니.


태수 : 회나 먹으러 갈까?


정근 : 예?


얼른 옷걸이에 걸려있는 태수의 윗도리를 벗겨들고 보면 태수는 여전히 그대로 서있다.

정근, 기다리는데


태수 : (불쑥) 정근아.


정근 : 예?


태수 : 넌 왜 이 바닥에 들어섰니?


정근 : 예?


태수 : 왜 주먹질을 시작했냐고.


정근 : (머리를 벅벅 긁고 민망한 대로) 그야 뭐…글쎄요. 그냥… 학교에서 떨려나구… 기술은 배우기 싫구… 노는 친구들이 다 이 바닥이구. 히히, 다 그렇죠 뭐.


태수 : 학교에서 떨려났다……갈 데가 없어서 이 바닥으로 기어들었다……


정근 : 에에 헛소립니다. 사실, 고향 친구 한 놈은 중학교 겨우 나왔는데, 지금 자동차 정비하면서 잘 살아요.


태수 : 잘 산다?


정근 : 장가갔거든요, 애가 벌써 둘이에요. 그 놈 마누라가 된장찌개를 기차 게 끓여요. 가끔 얻어먹죠, 히히.


태수, 빙긋이 웃으며 보더니 다기 창 밖으로 시선이 간다.

정근, 손에 태수의 옷을 든 채 머뭇머뭇 서있다.



# 31 한옥 정원


연못? 에 낙엽이 떨어지고 있다.

한옥의 고요한 정취…



# 32 사랑방


화선지에 난이 쳐지고 있다.

일흔은 되어 보이는 듯한 해암 노인, 방금 쳐놓은 난의 모양새를 이리저리 본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암 : 역시 난이 문제야 사내의 손에 난은 맞지가 않아.


그 앞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혜린.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지만 해암노인은 아예 무시하고 있다.


해암 : 오군아 계속 갈아라.


해암 노인의 옆에 앉은 십대 소년 오 군, 먹을 간다. 해암 노인 새 화선지를 펼친다.


혜린 : 잠시만 시간을 나눠주시겠습니까?


해암 노인 아랑곳하지 않고 빈 화선지를 보며 구상을 한다.

혜린 한숨이 나온다.

꿇어앉은 다리가 저리고 있다.

단념을 하고 방안 에 걸린 족자며 병풍을 보고 있는데


해암 : (혜린 쪽은 여전히 보지 않은 채) 세상이 변하긴 했구만. 치마 두른 젊은 것이 도박 장사를 하겠다고 나서대고…


혜린 : 그래서 반대를 하시는 겁니까?


해암 : 묻기 전엔 나서질 말어.


혜린 : ……


해암 : 내가 죽은 니 애비한테 투자를 한 건, 어디까지나 인생이 불쌍해서였어. 젊은 것이 처자식 먹여 살리겠다고, 뛰어다니는 꼴이 가상하기도 하고.


찻잔을 들어 마시려다가 찡그리고


해암 : 오 군아 차 식었다.


오 군, 얼른 방 한 쪽에 마련된 화로에서 새로 차를 마련한다.


해암 : 니 애비를 봐서 하는 얘기야. 나이가 찼으면 남편을 만나. 요즘 것들 남녀가 평등하니 뭐니 말들 해대는데, 자승자박인줄 알아야지. 지 무덤을 지가 파는 것이야, 내 말뜻 알겠냐?


혜린 : 예.


해암 : 알긴 뭘 알어? 남자 일, 겉으론 화려해 뵈도 그처럼 고생이 없다. 치마 두른 것들이 너나없이 거리로 뛰쳐나오면, 가정은 어찌되고 나라는 어찌되겠는가? 가정을 지키는 것도 큰일이야.


혜린 : 제가 이사업을 하자는 것은 화려해보여서가 아닙니다.


해암 : 어허 어른 말하는 도중에!


혜린 : 꾸중 들을 각오하고 말씀 올리겠습니다. 어르신 갖고 계신 주식이 필요합니다.


해암 노인, 언짢아서 돌아앉는다.

오군이 가져온 차를 마시는데 혜린 계속.


혜린 : 제게 찬성해주시지 않을 거면 주식을 팔아주십시오. 대금은 바로 치뤄드리겠습니다.


해암 : 오 군아 손님 간다. 문 열어드려라.


오 군 엉거주춤 일어서는데


혜린 : 돈을 벌자고 하는 짓이 아닙니다. 돈을 뺏기지 않으려고 이러는 겁니다. 카지노도 사업입니다. 떳떳하게 벌어서 떳떳하게 쓰고 싶습니다. 옳지 못한 자들이 권력을 유지하는데, 뒷돈을 대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불을 질러버리고 싶은 게 제 심정입니다.


오군, 해암 노인의 눈치를 본다.

해암 노인,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차만 마시고 있다.


혜린 : (화가 나고 있다) 치마 입은 제가 나서서 죄송합니다. 바지 입은 남자들이 제대로 해준다면, 저도 이런 거 싫습니다.


오군 : 저 그만 가시죠.


혜린 : 솔직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제가 여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더러운 짓을 하지 않으려고 하니까, 그러면 카지노 사업이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오군 : 손님


혜린 : 그러면, 어르신 수입에 지장이 있으니까, 그래서 반대하시는 거 아닙니까?

해암 : 오 군아.


오군 : (울상이 되서) 일어나세요.


혜린, 일어선다.

여전히 돌아앉아있는 해암 노인. 잠시 해암 노인을 내려다보다가

혜린 : 가보겠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개 숙여 보이고 돌아선다.

오군, 얼른 문을 열어주고 혜린 나간다.

해암 노인, 붓을 들어 먹을 묻힌다.

빈 화선지를 내려다보다가 붓을 댄다. 빈 화선지에 힘차 게 그려지기 시작하는 대나무…



# 33 대회의실


주주총회가 준비되고 있다.

비서들, 각 좌석마다 음료수와 서류를 차려놓는다.

주주들, 하나둘씩 도착한다.

민 변호사가 그들을 맞아들이고 있다.

혜린의 좌석인 중앙의 자리는 아직 비어있다.



# 34 옥상


재희, 옥상 문을 열고나서 보면 저만치 난간 옆에 서있는 혜린.

재희, 다가선다.


재희 : 시간 됐습니다.


혜린 : (끄덕이지만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재희 : 좀 더 있고 싶습니까? 기다리라고 전할까요?


혜린 : (흐흥 웃고 심호흡을 한다) 솔직히 말하면 가고 싶지 않아. 그냥 도망가면 안 될까?


재희 : 그러시든지요.


혜린, 돌아보면 재희는 빙긋이 웃고 있다. 혜린도 웃고 먼데를 본다.

서울의 전경……


혜린 : 오늘루 이 짓두 끝나. 잘 됐어. 앞으로는 주식 배당금이나 받으면서, 편하게 살 거야. 오빠 있는 빠리에나 가볼까. 조카 태어나면 같이 놀아주고.


재희 그저 미소 지으며, 혜린이 보고 있는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


혜린 : 재희두 같이 갔으면 좋겠어. 빠리에서 검도 도장을 차리는 건 어때?

재희 웃더니 혜린을 향해 선다.


재희 : 돌아서 봐요.


혜린, 마주서면 재희, 혜린의 흩어진 옷차림을 단정하게 고쳐준다. 그리고…


재희 : 열다섯 살 때부터 늘 보아왔습니다. 맞춰볼까요? 절대 도망가지 못해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못돼요. 그리고… 오늘 아가씬 이길 겁니다.


혜린 : (웃으려다말고 본다)


재희 : 두고 봐요.



# 35 회의장


혜린, 자기 자리에 앉는다. 혜린을 맞아 자리에서 일어섰던 사람들도 하나둘 자리에 앉는다.

주주들은 거의 자리를 메우고 있다.

문이 열리며 주주1과 주주2가 들어선다. 그들은 공손하게 누군가를 안 내하고 있다. 그들이 안 내하는 사람이 모습을 보인다. 두루마기 차림의 해암 노인이다.

주주1,2와 들어서는 해암을 보는 순간, 혜린, 마지막 희망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해암은 지팡이를 텅텅 짚으며 기세좋게 안 내되어진 자리에 앉는다. 혜린 쪽은 보지도 않는다.


(시간경과)


주주2가 사회자 격으로 진행하고 있다.


주주2 : 윤재용 회장께서 타계하신 뒤로 에 또 임시 경영자로서 그동안 애써준 윤혜린 양에게 우선 심심한 사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허나 그 것은 어디까지나 임시조치에 불과했던만큼 또…우리 주주들 사이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던 바 이에 대한 대처가 있어야겠다… 해서 오늘 이 자리에서는 현 대표 경영자에 대한 신임 여부를 투표로 결정하게 되겠습니다.



# 36 회의장 밖 복도


각 주주를 따라온 보좌역의 사내들…이리저리 모여 서있다.

재희, 소란스러운 그곳을 떠나 걷기 시작한다.



# 37 계단 쪽


걸어 내려가던 재희, 문득 멈춰 선다.

계단 저 아래 인영 등과 걸어 올라오는 태수.

태수, 재희를 발견하고 멈칫하는가싶더니 그대로 올라간다.

재희를 지나쳐 올라 가다가 문득 멈춰서 돌아본다.

마침 돌아보던 재희와 시선이 마주친다.

태수, 빙긋이 웃는가싶더니 올라갔던 계단을 다시 내려온다.



# 38 라운지


(전에 태수가 장도식과 들렀던 건물 내에 있는)


태수와 재희 바에 나란히 앉아…

재희, 자기 앞에 놓인 잔에는 손도 대지 않고, 술을 마시고 있는 태수를 바라본다.

태수는 아무 말이 없다.


재희 : 할 말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태수 : 아… 그저…언제든 한번 이렇게 단둘이 술을 마셔보고 싶다…그런 생각을 했었지요.


재희 : (손목시계를 본다.)총회에 참석하러 온 게 아닙니까?


태수 : 필요하면 부르겠지요.


둘 다 별 말없이 하나는 술을 마시고 하나는 무표정하게 앉아 있다가 문득 태수, 웃는다.


태수 : 둘 다 말재주는 없는 사람들인 것 같군.


다시 침묵이 흐르다가 불쑥.


태수 : 혜린이를 아가씨라고 부르지요 아마?


재희 : (보면)


태수 : 아가씨를 정말로 위한다면 이 일에서 손을 떼 게 해요.


재희 : (슬쩍 미소가 스친다. 결국 이 얘기였나하는)


태수 : 이대로 고집을 부리면 다치 게 될 거야. 상대가 못돼.


재희 : ……생각은 아가씨가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은 아가씨를 지키는 겁니다.


재희 일어서려는데


태수 : 백재희. …당신이 있어서 다행이라구 …그 말이 하고 싶었어.


재희, 멈춰서 본다.

태수, 아무 말도 안 했다는 듯 남은 술을 마신다.



# 39 회의장 내부


주주1, 영 불쾌한 얼굴로 들어주고 있다.

다른 주주들도 마찬가지.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혜린이 발언하고 있다.

혜린 : 투표를 하기 전에 한 가지 가르침을 청하고 싶습니다. 지난 이 개월 동안 카지노 수입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2퍼센트 증가했습니다. 물론 그에 대해 주주 여러분의 배당금도 올랐구요. 연말연시 시즌을 대비, 단 체 관광객을 비롯, 거물급 손님들의 예약도 이미 완료된 상태입니다. 좀 전에 저의 경영에 대해 주주 여러분들이 우려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잘 납득이 되지 않는군요. 누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주주들 서로 얼굴만 마주볼 뿐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


주주2 : 에 또 윤 양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 카지노 사업이란 게, 무슨 옷공장이나 신발공장하군 달라요. 매출액이 늘었다고 해서 잘한다… 하구 말할 수가 없는 거예요.


혜린 : (미소가 떠오르려고 하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겠어요?


주주2 : 그게 그러니까…


주주1 : 장부계산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란 얘기야. 대인관계, 외교능력, 이런 게 필요한 사업이야.


혜린 : 정확하게 누구와의 대인관계지요? 카지노를 찾는 손님 말고, 다른 사람을 말씀하시는 거 같은데요.


주주1 : 이 원… (주주2를 향해) 이봐요. 이런 거 시간낭비 아냐? 우리 다 바쁜 사람들인데.


혜린 : 여기저기에 얼마나 뇌물을 잘 바칠 수 있는가, 그런 말씀이신가요? 이제까지 해오던 것처럼요?


주주들 웅성거린다.

주주1은 벌겋게 화가 오르고 주주2는 사람들을 진정시키느라고 손을 젓고 있다.

그 때 지팡이로 바닥을 찧는 소리 쿵쿵 …

좌중 조용해지며 해암을 바라본다.

해암, 지팡이로 사람들의 시선을 모은 다음 혜린을 본다.


해암 : 임시 사장. 이렇게 부르면 되나?


혜린 : 말씀하십시오.


해암 : 방금 자네가 한 얘기는 죽은 자네 아버지를 욕하는 건가?


혜린 : (말을 잃었다가) 저는 새로운 경영방식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있는 겁니다.

해암 : 그러니까 자네 말은 뇌물 같은 거 바치지 않아도, 잘 꾸려나갈 수 있다 이 건가?


혜린 : 당분간은 어려움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게 옳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해암 : 어째서?


혜린 : (잠시 긴장하여 생각을 정리하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시장바닥에 자릿세를 걷는 양아치 조직이 있습니다. 상인들은 누구나 그 조직에 자릿세를 내줍니다. 양아치들은 고마운 것두 모릅니다. 당연한 일이니까요. 날이 갈수록 자릿세는 오를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하루벌이보다 자릿세가 더 많아지게 될 겁니다.


해암 : 그래서 남들 다 내는 자릿세를 나 혼자만 안 내겠다?


혜린 : 양아치를 만든 건 상인들입니다. 자릿세 따위 내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이 되면, 양아치들은 다른 직업을 찾을 겁니다.


해암 : 천진난만하구만, 주주들이 겁내는 것도 이해가 돼.


혜린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혜린의 뒤에 있던 민 변호사, 맥이 빠지는 기분.

주주1, 2를 돌아본다.

안도하는 눈짓이 오고가고.


주주2 : 자아 그럼 투표를 시작하겠습니다. (뒷쪽에서 대기하고 있는 비서를 향해 고개짓을 한다)


비서, 각 주주 앞에 용지를 나누기 시작하는데


해암 : 복잡하게 할 거 없어. 어이 임시 사장.


혜린 : 네.


해암 : 자네가 주식 몇 프로를 갖고 있지?


혜린 : 43퍼센트입니다.


해암 : 내가 십 프로 정도 갖구 있어. 9점 몇 프로쯤 될 거야. 자네하고 내꺼 합하면, 다른 사람들 건 볼 것두 없어.


혜린 :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른 주주들도 멍하니 바라보는데 해암 두루마기 자락을 떨치고 일어서더니


해암 : 이제부터 임시가 아니라 정식 사장이야. 잘 해봐. 내년 총회 때 다시 보자구.

주주2 : (놀라 일어서며) 아니, 해암 선생님.


해암 : (지팡이를 탕탕 짚어 말을 막고는) 이 중에 카지노 망하면 밥 굶을 사람 있으신가? 없어요? 그럼 됐군.


해암, 지팡이를 텅텅 짚으며 나간다.

혜린, 얼결에 일어나지만 아무 말도 못하고 나가는 해암을 보고만 있다.



# 40 카지노 내부


손님들 가득 찬 상태

혜린,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저만치에서 플로어를 보고 있던 최 과장, 목례를 해온다.

혜린, 그 인사를 받고 룰렛판 쪽으로 가본다.

현숙, 게임을 하고 있다가 혜린을 보고 …… 혜린, 웃고 손가락으로 손님 쪽을 슬쩍 가리켜보인다.

현숙, 얼른 보면, 이미 룰렛이 돌아가고 있는데 칩을 걸려는 손님.

현숙, 능숙하게 그 것을 막는다.

혜린, 카지노를 본다.

이것이 아버지가 평생을 걸려 지켜온 사업인 것이다.



# 41 청와대 전경



# 42 내부 대기실


면담 차례를 기다리는 고위직들이 몇 명, 그들의 보좌관들과 있다. 그 중의 둘은 서로 얘기를 나누고 있고, 한 명은 자신의 보좌관과 서류를 검토하기도 한다.

떨어진 곳에 강동환과 장도식이 낮게 얘기를 나누고 있다.

안 에서 문이 열리며 서 국장이 나온다.

기다리던 보좌관, 얼른 맞이하고, 안 에서 나온 비서, 다른 면담자를 맞아들인다.

나서던 서 국장, 강동환을 발견하고 선다.

강동환 자리에서 일어난다.


강동환 : 나오셨습니까?


서 국장 : 강 부장께선 거의 매일 출근을 하신다구요?


강동환 : 하하 여긴 과장이 심한 곳이라… 서 국장님이야말로 오늘 면담이 아주 길어지셨다던 데 중한 얘기를 나누신 모양이지요.


서 국장 : (웃고 있지만 차갑게 살피며) 안 에서 무슨 얘기가 오구갔는지 저보다 먼저 알구 계시잖습니까?


강동환 : 그럴 리가 있습니까? 떠도는 소문 정도는 들었지만…


서 국장 : 어허 벌써 소문이 났습니까?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 제가 출마할 거라구요?


강동환 : 어이구 출마하라고 하십니까? 축하드립니다. 잘 된 일입니다. (주위를 살피는 척 하고 서 국장을 가볍게 밀어 자리를 옮기며) 언제까지나 뒷줄에 계셔선 2인자로 부상하기 힘들지요. 전면에 나설 땝니다. 좋은 기회에요.


서 국장 : (웃는다. 그러나 여전히 언짢은 기색이 남아) 종로에 출마하라더군요.


강동환 : 아아 종로입니까?


서 국장 : 만약 제가 낙선되면 어찌될까요?


강동환 : 설마요?


서 국장 : 허허 난 말이에요 이 얘기를 듣는 순간 이런 그림이 떠올랐어요. 누군가 나를 나무 위에 올려놓고 흔드는 게 아닌가.


강동환 : 무슨 말씀이신지…


서 국장 : 어째서 나를 출마하라고 했을까? 그 것도 안전한 고향 지역구가 아니라, 가장 고전이 예상되는 종로란 말이에요.


강동환 : 그만큼 믿으시는 거겠지요.


서 국장 : 그럴까요? 전 이런 구상이 강 부장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닌가 생각했는데요. 강 부장만큼 머리 좋은 분 별로 없잖습니까?


강동환 : (움찔 굳는데)


서 국장 : 하하 가봐야겠습니다. (가며) 너무 높은 나무에 올려놓고 흔들진 마세요.


강동환, 정중하게 배웅을 하지만 표정이 굳어진다.

옆으로 다가온 장도식.


장도식 :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거 같군요.


강동환 : 어떻게 나올 거 같은가?


장도식 : 글쎄요 시키는 대로 출마할 만큼 어리석어 보이진 않는데요. 거기라면 당선될 가능성 별로 없습니다. 2등으로 당선된다 해도 체면이 안서지요. 잘못하면 이제껏 쌓아온 후계자의 위상이 흔들릴 게 뻔하니까요.


강동환 : 흥, 종로도 겁내는 자가 나라를 탐내?


장도식, 강동환의 한걸음 뒤에서 빙긋이 미소를 짓고만 있다.

강동환, 자리로 가며


강동환 : 그래서 카지노는 결국 그 여자애 손으로 넘어간 거야?


장도식 : 일단 모양새는 그렇습니다.


강동환 : 성가시게 됐군.


장도식 : 잠시 그대로 놔둬볼까요? 차근차근 알아듣게 설득을 하고…


강동환 : (불끈 짜증이 솟구치며) 알아듣게 설득을 해? 지 아버지 장부를 가지고 장난을 치려던 애야. 그리고 시간이 없어. 당장 돈 들어갈 데가 천지라고!


장도식 : 알겠습니다. 즉시 손을 쓰지요.


강동환, 언짢아서 저리로 간다.



# 43 회관 (식장 내부)


오 계장, 기분 좋게 안내판을 들고 앞으로 나간다.

안내판에는 신랑 강우석 신부 정선영이라고 쓰여있다.

주례석 옆에 안내판을 놓고 흐뭇하게 장내를 둘러보는 오 계장.

결혼식을 치루기 위한 간단하고 검소한 준비가 되어있다.

하객은 별로 없이 하숙생 몇 명과 동료 검사 몇 명 정도 한담을 나누고 있다.

오 계장, 주례석 탁자에 놓여진 꽃의 방향을 다시 한 번 조정해본다.

우석이 모친과 동생 영석을 안내하여 들어서고 있다.

오 계장 얼른 그 쪽으로 달려가 맞이한다.


오 계장 : 어서 오십시오. 전 강 검사님을 모시고 있는 오 계장입니다.


모친 : 고맙습니다.


오 계장 : 오늘 제가 신부되시는 분을 모시 게 됐습니다. 자 이 쪽으로…(안내해가며) 신부되실 분, 그러니까 사모님 되실 분께서 제 게 특별히 청을 해주셨어요.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에 마련된 자리에 모친을 앉힌다. 모친은 썰렁한 장내를 둘러본다.


오 계장 : 하객이 별로 없어서 섭섭하시죠. 이 게 다 우리 강 검사님의 깊은 뜻이 있어서요. 청첩장도 돌리지 않으셨거든요. 축하하러 오는 게 아니고, 검사이기 때문에 억지로 오는 하객은 있어선 안 된다… 뭐 그런 뜻이지요. 그 참 강 검사님을 보고 있으면 말이죠. 평소 가정교육이 어땠길래 이런 훌륭한 아들이 성장했을까… 뭐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어머님.


그 뒤에서 영석을 동료들에게 소개해주고 있던 우석, 할 수 없다는 듯 오 계장 쪽을 보고 웃고 있다.



# 44 대기실


따로 마련된 작은 방

선영 드레스 대신 하얀 원피스에 머리에는 꽃을 꼽은 차림.

차림새를 손봐주던 친구,

친구 : 면사포라도 쓸걸 그랬나봐.


선영 : (걱정돼서) 이상해?


친구 : 아냐 이뻐. 이쁜 데 섭섭해서…


선영 : (한 바퀴 돌아 보인다.) 정말 괜찮아?


친구 : 괜찮아. (웃고) 준비 어떻게 됐나 보구올께.


나가려다가 멈춘다.

문가에 서서 보고 있는 영진.

친구, 선영을 돌아본다.


선영 : (당황스럽지만) 오셨어요?


영진, 미소 지으며 들어선다.

친구 나가고.


영진 : 이뻐요. 나두 시집갈 때 드레스 말구 이렇게 입을까 생각중이에요.


선영 : (우물우물) 드레스 빌리는 값에 샀어요. 나중에두 입을 수 있을 거 같애서…


영진 : 나 결혼식 시작하기 전에 선영 씨하구 둘이서만 얘기하구 싶어서 왔어요. 괜찮아요?


선영 : (긴장하지만 ) 그러세요, 말씀하세요.


영진 : 실은 나 강 검사한테 청혼했었어요. 나하구 결혼해달라구요. (웃고) 깨끗하게 거절당했지만요.


선영 : …몰랐어요.


영진 : 제발 오해하지 마세요. 결혼 어쩌구 할 만큼 친했던 게 아니에요, 그냥 뭐랄까 강 검사 같은 사람이 망가지는 게 싫어서… 그러니까 내가 마누라가 되면 잘 지킬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랬든 거 같아요. (머리를 긁고) 뭐 좀 좋아하는 마음도 있었지요. 괜찮은 남자잖아요. (웃는다)


선영 :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어요.


영진 : 젠장 나두 잘 설명이 안 되는데… 음…그런 검사들 더러 있어요. 소신 있구, 정의와 명예가 뭔지 아는 검사들이요. 그런데 얼마 못가 포기하드라구요. 결혼을 하게 되면 포기가 더 빨라요. 내가 설명을 잘 하구 있어요?


선영 : 네 이해하고 있어요.


영진 : 내가 검사의 아내가 된다면 절대 남편을 포기하지 않게 만들 자신이 있었거든요.


선영 : (보다가 웃음이 나오려고 한다. 억지로 참고 근엄한 얼굴을 유지한다)


영진 : (그런 선영을 보다가 그만 킥킥 웃음이 나오기 시작한다.)


선영도 그만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렇게 둘이 웃다가


영진 : 이해하지요? 나 여기 여자루 온 거 아니구, 사람으루 왔다는 거.


선영 : …우리 곧 광주로 가요. 그 쪽으로 오 게 되면 놀러오세요.


영진 : 우리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쵸.


선영 : (웃고…) 나 괜찮은 검사의 아내가 될 생각이에요. 두고 보세요.


영진 : 믿어요, 오늘 그 원피스 보구 믿게 됐어요.


친구가 다급하게 들어오며


친구 : 얘 다 됐어 나가야돼. 부케 여기…


영진 얼른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며


영진 : 잠깐만요, 여기 온 두 번째 목적. 전문가는 아니지만… 여기 보세요, 행복하게 웃어요, 하나두울.


선영 어색하게 포즈를 취한다. 찰칵 사진이 찍힌다. 들리기 시작하는 음악소리



# 45 식장 내부


몽따쥬로 전개되는 결혼식 장면들…

오 계장의 팔을 끼고 입장하는 선영.

맞이하는 우석.

눈물이 나오려는 표정으로 보고 있는 모친, 그런 모친의 팔을 잡아주는 영석.

주례석에서 보고 있는 검사장.

썰렁하리만큼 단출한 하객들…

부지런히 움직이며 그런 모습들을 사진 찍어주는 영진 등등…

주례사가 진행되고 있다.


검사장 : 신랑신부에게 딱 한 가지만 부탁하겠어요. 상식대로 살아주십사…하는 거예요. 상식이라는 건 보통사람으로서 알아야 될 일반적인 지식을 말해요. 길거리에 휴지를 버려서는 안 된다. 도둑질을 해선 안 된다. 부부는 서로 믿고 사랑해라. 이런 게 다 상식이지요. 살아보면 알겠지만 상식대로 산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울 거예요. 상식대로만 살면 남들이 바보라 그럴지도 몰라요. 그럴 때 서로 서로 격려해주고 한편이 되어주라고 부부가 있는 거예요. 언제까지나 세상 사람이 뭐라고 해도 든든한 한 편이 되세요.


우석, 옆에 선 선영을 돌아본다.

선영, 우석을 본다 .


검사장 : 자아 다음 뭐지요? 반지 주는 거 맞지요? 신랑 신부 서로 마주 보세요. 신랑 반지 꺼내요. 어느 손가락에 끼워 주는지 알지요?


하객들 웃음…화기애애한 가운데 치러지는 결혼식.

우석, 선영에게 반지를 끼워준다.


검사장 : 자아 이것으로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축하해요.


하객들 박수쳐주고…

우석, 미소 지어 고개를 돌리다가 문득 멈춘다.

식장 뒤편, 입구 쪽에 서있는 태수. 우석과 시선이 마주치자 박수를 보낸다.

우석의 동료들을 의식해서 가까이 나아오지 않고 있는 태수.

우석, 그런 태수를 보며 가슴이 싸해오는데 하객들 와아 모여들며 색종이를 뿌려주고 축하해온다. 악수해 오는 사람, 어깨를 두들겨 주는 사람……

태수, 사람들에 싸여있는 우석을 본다. 우석, 사람들 틈으로 태수 쪽을 보려고 하고 있다.

우석의 모친과 영석도 앞으로 나와 축하를 받고 축하를 해주고 어수선한 와중에 우석 휩쓸리다가 다시 입구 쪽을 보았을 때 태수는 보이지 않는다.



# 46 건물 밖


태수,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에 올라탄다. 잠시 식장 건물 쪽을 다시 보고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 운전석에 앉아있는 정근에게 고개짓을 해 보인다. 정근, 차를 출발시킨다.

뒤이어 건물에서 뛰어나오는 우석. 두리번거리며 찾아보지만 태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우석 우뚝 서서 잠시 그대로 있다.

굳이 찾아온 친구에 대한 따뜻함과 회한 속에서……


<18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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