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모래시계

<제6회> 모래시계

오늘의 쉼터 2018. 10. 18. 18:44

<제6회> 모래시계   




# 1 마포 신민당사


골목 이곳저곳에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의 여공 아이들이 삼삼오오 몰려들고 있다.

먼저 도착한 이들은 기다리고 있다.

모두가 비장한 얼굴들….

그 중의 누군가가 시계를 본다.

시계는 아침 열 시를 가리키고 있다.

그가 앞장서서 당사로 향한다.

그 것을 신호로 여기저기서 기다리던 여공들이 우우 입구로 몰려든다.

미리 준비했던 머리띠를 두르며….

머리띠에는 [정일노조]라든가 [폐업 반대]등의 서툰 글씨가 적혀 있다.



# 2 당사 내부


복도를 메우며 들어서는 여공들…

안 에서 당원들이며 의원들이 뛰어나온다.

그 중에는 함께 비장한 얼굴로 박수를 쳐주기도 하고 강당으로 오르는 계단을

안내하기도 하고 협조적인 분위기…



# 3 학교 근처 서점 내부


혜린, 들어선다.

책을 하나 들어 보는 척 하면서 유리창 밖을 살핀다.

창 밖으로 보이는 길 건너에 어정 거리고 있는 사복 둘이 보인다.

안 쪽에 있던 후배학생 세 명 혜린과 눈인사를 나눈다.

안 쪽에 있던 운경, 혜린 옆으로 와 역시 책을 보는 척하며


운경 : 달구 왔니?


혜린 : 그런 거 같애요.


운경, 안 쪽의 후배들을 향해 눈짓을 한다.

후배들. 유리창 쪽으로 가서 책을 고르고 얘기를 하는 척 하며 시야를 가린다.

 

운경 : 어뜩할래?


혜린 : 가야죠.


운경 : 다른 학교에서두 지원대를 보낸다니까 웬만하면 빠지지.


혜린 : 후배들하구 약속했네요. (가볍게 운동하며) 아아 또 뛰게 생겼네.


운경 : (혜린의 가방 안에 유인물 뭉치를 넣어준다) 이거 괜찮을까 몰라.


혜린 : 잡히게 되면 다 먹어버리죠 뭐. (웃는)


창 쪽에는 여전히 후배들이 몸으로 가리고 있다.

안 쪽의 서점 주인 손짓을 한다.

혜린 가방을 들고 그 쪽으로 간다.



# 4 밖의 길


사복 둘, 기웃 거리며 서점 안 쪽을 보려고 한다.

그러나 책을 보며 얘기하는 학생들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사복, 둘 시선을 교환하고는 길을 건너 서점으로 간다.



# 5 서점 내부


거칠 게 들어서는 사복 둘.

유리창 쪽의 학생들…그리고 안 에서 보고 있는 서점 주인. 그리고 아무도 없다.

사복 중의 한 명이 안 쪽으로 나있는 뒷문을 발견한다.



# 6 골목


혜린 가방을 들고 뛰고 있다.



# 7 당사 내부 강당


여공 아이들 몰려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다.

조개껍질 묶어…노래의 멜로디에 개사를 해서


노래 : 우리 회장님은 탈법으로 돈 빼내어, 미국에다 땅도 사고, 스위스에 저금하고,

공장 노동자는 봉급도 못 받고요,

문까지 닫아버려, 어디 가서 먹고사나

.

그들이 들고 있는 플랭카드에는 서툰 글씨로

[우리를 나가라면 어디로 나가란 말이냐] [배고파 못 살겠다 먹을 것을 달라]란 글씨가 적혀 있다.



# 8 복도


여공들의 노래가 들리는 복도에는 뱃지를 단 의원들과 당원들 기자들로 어수선하다.

의원 중의 한 명, 몰려선 기자들 앞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의원 : 우리 당으로서는 이들이 마지막으로 우리 당을 찾아준 것을

눈물겹도록 고맙 게 생각하고 있으며 또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복도 한 쪽에서 혜린을 비롯한 학생들 우루루 온다.

혜린과 학생들은 기자들에게 유인물(운경에게서 받았던)을 나눠주고 있다.

나눠주며 일일이 설명한다.


혜린 : 이번 정일노조 농성을 보는 우리 대학생의 입장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그들의 투쟁에 적극 지지를 보냅니다.


혜린 문득 멈춘다.

안 에서 들리는 노래가 바뀌었다.

있는 힘껏 부르던 개사곡이 끝나고 애잔한 아침이슬이 흘러나온다.

혜린, 열려져있는 강당문 쪽으로 다가가 안 을 들여다본다.

함께 몸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앳된 얼굴들…먹을 것을 달라는 플랭카드….



# 9 건물 전경



# 10 내부 사무실


장도식 선 채로 듣고 있다.

그에게 말을 하는 책상 뒤의 인물은 보이지 않는 상태.


소리 : 어디까지나 명분이 있어야된단 말이야.

위에서는 무조건 경찰을 투입하자 이 얘긴데 나중에 그 거 어뜩게 감당하겠다는 거야?

경찰을 집어넣드래두 이유가 있어야지, 안 그래?


장도식 : 물론입니다.


소리 : 어쨌 거나 야당 당사에 들어가는 거야, 시끄럽게 만들 필요없어.


장도식 :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소리 : 경찰애들이 무식하게 굴지 말아야 할 텐데. 알아서 충성하는 놈들이 너무 많아서 말야.



# 11 장도식의 사무실


들어선 장도식, 책상 위의 전화기를 든다.



# 12 나이트 사무실


종도, 전화를 받고 있다.


종도 : 오늘 밤입니까? 알겠습니다. 한 이백 명 동원하면 되겠지요,

예, 그러믄요. 아, 무슨 말씀을요, 나라를 위한 일인데 저희야 영광이지요, 하하.



# 13 나이트 홀


아직 영업 시간 전.

의자에 길 게 누워 주간지를 보고 있던 진수, 일어난다.

앞에 와 서는 종도.


종도 : 애들을 불러야겠다.


진수 : 무슨 일인디요?


종도 : 얼마나 모을 수 있어?


진수 : 태수 형님은 아무 말 없었는디.


종도 : (노려보다가 참고) 시간이 없어. 태수가 들어오기 전에 일단 준비는 해놔야 되니까.


진수 : 글씨 그 것이 순서적으루다가 태수형님이 먼저 말씀이 기셔야…


종도, 한 번 더 참고 돌아선다.



# 14 주차장


오토바이를 타고 온 태수, 세우고 헬멧을 벗는데 기다리고 있는 종도.

태수가 보기에 종도의 기색이 영 우울해 보인다.

주춤주춤 다가오더니


종도 : 태수야.


태수 : 뭐.


종도, 태수 앞에 고개를 푹 꺾어 숙인다.


종도 : 날 용서해라.


태수 : (어처구니 없어보는)


종도 : 이렇게 될줄 몰랐어. 내가 잘못했어.



# 15 룸


태수, 보고 있다.

그 앞에 앉은 종도, 독한 양주를 들이켜고 있다.


종도 : 그 자식들 이렇게 지저분하게 굴 줄 몰랐어. 성범이 형님 말씀이 옳았어.

우리 같은 깡패들이 공무원들하구 놀아봤자 이용만 당한다구 그 말씀이 옳았어.

처음부터 거래를 트는 게 아니었어.


태수 : ….그래서 우리 애들 데리구 가서 여공애들을 패라는 거냐


종도 : 아니 그냥 소란만 피워주면 된다구… 그 뒤는 경찰들이 알아서 해준다구. …


태수 : 거절하면?


종도 : 거절할 수가 없어.

이제까지 우리 애들 다치지 않구 버틴 게 다 그 쪽 배려때문이었으니까 내 잘못이야 태수야.

니가 이런 거 싫어하는 거, 알구 있어.


태수 : 몇 시라구 했지?


종도 : 오늘 밤 한 시…. 태수야 난…


태수 일어난다.


태수 : 민재 형한테두 애들을 보내달라구 해야겠지.


태수, 문 쪽으로 간다.

종도, 그 눈치를 힐끗 보고 안도를 하는데 태수, 문을 열려다가 돌아본다.


태수 : 종도야.


종도 : 어.


태수 : 다음부터는 이럴 필요 없다.


종도 : 무슨…


태수 : 내 앞에서 술 마시고 고개 숙이고 그런 짓 하지 마.

고개를 너무 잘 숙이는 사내자식 미덥지가 않아.


종도 찔끔하는 기분.

태수 나간다.

남은 종도, 차가운 얼굴이 된다.



# 16 당사 외부 (밤)


사복차림에 이어폰을 꽂은 형사들이 눈에 띄게 불어나고 있다.



# 17 강당


연단에는 노조 간부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있는 여공들…

그 뒤에 둘러서있는 의원들과 당원들 기자들…

{정일노조 지지} { 대학생 연합회}등의 머리띠를 두른 학생들 가운데 혜린의 모습도 보인다.

장내는 숙연하고 비장한 분위기.

연단 마이크 앞에서 말하고 있는 노조간부는 울음을 참으며 앳된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간부 : 경찰이 오늘 밤안 으로 우리를 끌어낸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우리 노동 조합은 우리의 정당한 요구와 투쟁을 우리의 힘으로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항 거할 것입니다.

그럼 정일노조 종결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차렷 조국과 민족을 위해 묵념…


고개를 숙이는 사람들…


간부 : 차렷. 다음으로 부모형제와 고향땅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경례.


고개를 숙이는 여공들…

여기저기서 울음이 새어나오기 시작한다.

울음은 이어 전 체로 퍼지며 서로 부등켜 안 고 통곡하는 아이들…

뒤에서 사진을 찍는 기자들까지도 숙연해지는 분위기…



# 18 복도


기자들 의자에 웅크려 잠들어있 거나 얘기를 나누고 있 거나 밤이 깊어가고 있다.



# 19 당사 외부


트럭이 도착하며 태수네 패 거리들이 내리고 있다.

앞좌석에서 내린 태수, 저만치 종도가 장도식과 다른 경찰간부와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본다.

장도식 태수를 발견하고 이 쪽으로 온다.


장도식 : (손을 내밀어) 오랜만이구만.


태수 : (내키지 않는대로 악수를 받고는 곧 몸을 돌려서 후배들 쪽으로 간다)


여유로 그런 태수의 뒷모습을 보고있는 장도식.

후배들은 완장이며 피켓 등을 나누어받고 있다.

태수도 완장 하나를 받아 팔에 맨다.

거기에는 구사대라고 적혀 있다.

태수, 반지를 빼어 주머니에 넣는다.



# 20 내부 다른 일각


혜린이를 비롯한 대학생 지원대들…몇은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고

몇은 음료수 박스를 치우 거나 일을 거들고 있다.

몇은 구석에 웅크리고 잠들어 있다.

혜린, 메모한 것을 후배에게 넘기며


혜린 : 통금 풀리는대루 학교루 갖구가. 대자보부터 붙이구 가능하면 학보에두 실으라고 해.


후배 : 예.


혜린 : 그리구.


순간 밤의 정적을 찢는 자동차 크랙션 소리. 길 게 세 번

다음 순간 뭐야! 외치는 소리와 함께 현관 유리창이 박살나는 소리.



# 21 당사 입구


현관문을 박살내며 들어서는 태수의 패 거리들…

당원들 막으려 하지만 역부족.

사방에서 일어나는 경찰들의 호루라기 소리.



# 22 강당


여공들 비명을 지르며 아우성.



# 23 건물 외부


조명용 소방차가 대낮같이 건물을 향해 조명을 비춘다.



# 24 외부 일각


건물 벽 외각으로 매트리스나 대형 그물을 든 무장 경찰들이 일제히 달려와 설치한다.



# 25 내부 계단


태수를 선두로 구사대 머리띠들이 짓쳐올라가고 있다.



# 26 외부 비상계단


방석모를 쓴 전경들이 우루루 달려올라가고 있다.



# 27 강당 문


태수 등 강당문을 부수며 들어간다.



# 28 강당 내부


비명을 지르며 몰리는 여공들…

다른 문으로 전경들이 달려들어온다.

전경들은 일제히 유리창 쪽으로 달려가 투신 자살을 막는다.

태수의 패 거리들 여공들을 끌어내기 시작한다.

죽자고 반항하는 여공들…

그러나 한사람당 네 명씩 달려들어 들어내간다.



# 29 내부 사무실


거칠 게 쳐들어오는 정사복 경찰들…

몰리는 당원들과 의원들

무차별로 구타를 당한다.


의원 : 이놈들아 나는 국회의원이다.


사내 : 국회의원이면 다야 끌어내.


의원, 몽둥이로 얻어맞는다.



# 30 내부 일각


기자들이 구타를 당하고 있다. 사진기는 뺏기고 빼내어진 필름이 뒹군다.



# 31 내부 일각


혜린이를 비롯한 대학생들과 당원들 쫓기고 있다.



# 32 내부 계단 쪽


태수 일행 경찰들과 뒤섞여 내려오고 있다.

울부짖는 여공들을 끌어잡아 오는 중이다.

앞 쪽에서 와아 소란이 일어난다.

쫓겨서 이 쪽으로 오던 학생들이 당하고 있다.

태수, 성가셔지며 지나가려다 문득 다시 본다.

거기 전경들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발길질을 하고 있는 여자아이. 혜린이다.

태수, 잠깐 당황하다가 옆을 내려오던 진수를 잡아


태수 : 저 아이를 잡아.


태수, 먼저 달려간다.

혜린, 전경의 몽둥이에 등을 맞고 엎어졌다가 누군가에 의해 끌려 일어난다.

있는 힘을 다해 반항하지만 잡은 손길은 억세고 이내 두어명이 더 혜린을 잡는다.

혜린을 잡은 것은 태수와 그 부하들…


태수 : (일부러 큰 소리) 끌어내.


혜린, 그제야 태수를 본다.

놀라 잠깐 힘이 빠지는데 태수, 거칠 게 진수 등과 함께 혜린을 끌어내간다.



# 33 당사 외부


상황이 끝나가고 있다.

경찰들 남은 사람들을 질질 끌어 연행해가고 있고,

십여명의 청소부들 경찰의 지휘를 받으며 달려와 깨진 유리등을 치우고 있다.

이만치….

태수네의 트럭에 태수 패 거리 마저 올라탄다.

운전석 옆으로 태수 올라타 문을 닫는다.

트럭 출발해간다.

그들 중 몇이 빼서 집어던진 완장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다.



# 34 트럭 앞 좌석


운전을 하고 있는 진수.

힐끗 옆을 돌아본다.

태수와 진수 사이에 끼어앉아있는 혜린.

좀 전의 충격과 공포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해 굳어있는 얼굴.

진수, 운전을 하며 빨간 경광등을 차 지붕에 얹는다.

그 바람에 정신이 난듯 혜린, 고개를 들어본다.

차는 통금이 지난 인적이 없는 거리를 달리고 있다.


혜린 : 세워요.


태수 돌아본다.


진수 : 통금인디 워딜 세운다요.


혜린, 진수가 잡고있는 핸들을 꺾어버린다.



# 35 길


인도 쪽으로 훽 틀어지며 급브레이크로 멈추는 트럭.



# 36 거리


인적이 없는 거리.

영등포 뒷골목쯤…

닫혀진 가게들 앞으로 쌓여있는 쓰레기들만…

혜린,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다.

그 뒤를 따라걷고있는 태수.

통금이 지난 시간이다.

혹시 방범이라도 있을까 태수는 신경쓰다가 보면 혜린, 걸으며 자꾸 비틀 거리고 있다.

혜린, 좀 전의 사건으로 옷차림도 엉망이지만 새삼 되짚어지는 충격속에서 거의 탈진상태다.

태수, 보다못해 부축해주려고 한다.

혜린, 거칠게 뿌리친다.

뿌리치며 걷다가 기어코 넘어진다.

태수, 다시 손을 뻗는데 혜린, 독이 오른 짐승처럼 뿌리치고

그 것도 모자라 옆의 쓰레기통 뚜껑 같은 것들을 손에 잡히는대로 집어들어 태수를 팬다.

태수, 대충 막거나 맞아준다.

혜린, 어지간히 지쳐서야 헐떡이며 멈춘다.

아직도 온 몸이 덜덜 떨리고 있다.

눈 앞에 자꾸만 좀 전 당사에서의 일이 어른 거린다.

태수,문득 고개를 든다.

골목 저만치 어둠 속에서 손전등 불빛이 어른 거린다.

태수, 그대로 혜린을 끌어잡아 소리치려는 것, 입을 막고 샛골목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 37 샛골목 쪽


태수, 혜린을 벽에 붙여세운다.

혜린, 반항하려다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잠시 후 골목 쪽으로 방범 둘이 손전등을 비추며 지나간다.

태수, 돌아보면 혜린, 태수를 노려보고 있다.

입을 막았던 손을 떼주자


혜린 : 드런 놈.


태수, 어이없다.


혜린 : 앞잽이.


태수, 몸을 떼어 뒤로 물러난다.

혜린, 여전히 노려보고 있다.

태수, 황당해하다가 선뜻 몸을 돌리더니 샛골목을 빠져나간다.



# 38 골목


성컴성큼 나온 태수, 어두움 속에서 겨우 손목시계를 본다.

3시 30분 정도.

잠시 망설인다.



# 39 샛골목 쪽


태수가 가고 난 골목

혜린 더 이상 버틸 기운이 없어 주저앉는다.



# 40 골목


혜린이 쪽에서는 안 보이는 코너에 태수 앉아 있다.

통금 풀릴 때까지는 기다려 줄 생각이다.

태수, 잠시 후 울음 소리에 고개를 빼어 슬쩍 보면 혜린, 참으려참으려 애쓰며 울고 있다.



# 41 신문 보급소 앞


새벽, 트럭에서 신문 뭉치를 떨구어 놓는다.

뭉치의 맨 앞장 신문 일면에 커다란 글자로

나와있는 [김영삼 신민당 총재 제명]


(다른 날 같은 시각)


던져지는 신문 뭉치

일면의 큰 제호는 부마사태에 관한 것.


(다른 날 같은 시각)


던져지는 신문 뭉치

일면에 박대통령 시해사건에 대한 검고 큰 제호.



# 42 서울 거리


1980년 5월



# 43 버스 내부


흔들리며 가고 있는 버스.

꽤 많은 승객들로 붐비고 있다.

그 중에 대학생 두 명, 주위의 눈치를 살핀다.

그 중의 한 명, 몸으로 가린 상태에서 나머지 한 명,

가방의 단추를 푼다.

버스가 정류장에 선다. 내리고 타는 승객들로 혼란스러운 와중에 대학생,

잽싼 솜씨로 유인물을 가방에서 꺼내 버스의 열려져 있는 천창 밖, 버스의 지붕 위에 올려놓는다.

버스가 마악 떠나려는데 대학생 두 명 재빨리 사람들을 헤치고 버스에서 내린다.



# 44 거리 버스 정류장 부근


출발해가는 버스, 그 위에 얹혀져있는 유인물, 흩어져서 날린다.

임시로 발간하고 있는 신문 형식의 불법 간행물.

땅바닥에 떨어진 유인물의 겉장에 큰 글씨로 씌어진 제호가 보인다.

[民主소리 제5호]

지나치던 사람들 중의 몇 유인물을 주워본다.

대학생 두 명, 자신들이 해 놓은 일의 결과를 보고 사라져간다.



# 45 거리 육교 위


행인들에 섞여 걸어오는 대학생 한 명, 육교의 한 쪽 끝에 오더니

들고있던 신문으로 싼 뭉치를 난간 위에 올려놓고 상체를 굽혀 운동화끈을 맨다.

다 매고는 그대로 계단을 내려간다.

 겁이 나 있는 상태라 고꾸라질듯 뛰어내려간다.

잠시후 바람에 신문지 겉장이 들춰지면서 안 에 있던 유인물 날려 흩어떨어진다.



# 46 창고


백민재, 한 쪽에 앉은 채 몹시 언짢다.

서너명에게 몰매를 맞는 진수의 비명소리가 들리고 있다.

백민재, 돌아보면 종도 싸느란 표정으로 서 있다.


백민재 : 어이.


종도 : (돌아본다)


백민재 : 대충 해라.


종도 : (외면한다)


백민재 : (종도의 외면이 무시함으로 느껴진다.

벌떡 일어나 종도에게로 가) 대충 해. 고만하라고.


다른 부하들, 둘의 충돌을 보고 있다.


백민재 : 이 짜식이. 임마 쟨 태수 아이야. 패두 태수가 패야지.


진수를 때리던 서너명의 부하들, 손을 멈추고 이 쪽의 눈치를 보고 있다.

진수, 맞아서 몰골이 엉망인 채 엎어져 있다.


백민재 : (진수 쪽의 부하들을 향해) 일으켜. 잡아주라구


부하들, 종도의 눈치를 살피며 진수를 일으킨다.

종도, 아무 말없이 진수 쪽으로 다가간다.


백민재 : (일이 다 끝났다고 생각해서) 어이 짜식 성질하군 (돌아서는데)


종도소리 : 다시 말해봐


백민재 돌아본다.

종도는 진수를 향해 말하고 있다.


종도 : 다 때려치구 고향에 가겠다? 니 맘대루 뭘 때려쳐? 건방진…


종도, 순간 옆의 부하 손에서 몽둥이를 뺏어 진수를 후려팬다.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진수.

백민재 불끈해서 보는.



# 47 클럽 사무실


들어서던 태수, 맞고 밀리던 종도와 부딪힌다.

종도를 패고나서도 성이 가라앉지 않고있는 백민재,

황소처럼 다시 종도에게 덤벼든다.

태수, 둘 사이로 막아선다.

종도, 태수의 뒤에 숨었다.


백민재 : 못 비켜.


태수를 밀어제친다.

태수 밀리며 재빨리 종도를 잡아 자기 뒤로 피하게 해준다.

백민재, 종도를 잡는데 실패하고 나서 성질을 못 이겨 옆의 테이블을 뒤집어 엎어버린다.

다른 부하들은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어 보고만 있다.


(시간 경과)


사무실에 종도와 태수 둘만 있다.

종도 엉망이 된 양복을 갈아입는다.

탁탁 옷깃을 단정하게 바로잡는다.


종도 : 나라고 선배를 모를줄 알어.

나도 조직에서 뼈가 굵은 놈이야 그래도 상황이란 게 있잖아. 엉? 상황말야.


태수, 바닥에 흩어져있는 유리조각들을 발로 쓸어모으고 있다.


종도 : 너하구 민재형 주먹 땜에 여기 차지한 거 알구있어.

그래두 어쨌 거나, 지금 여기 책임자는 나야.

애들 앞에서 맨날 이 자식 저 자식 그래 갖구 어떻게 내가 애들을 다스려.

어쨌 거나 안 살림은 내가 하구 있는 거잖어 지금.


태수, 이런 얘기들이 성가시다.

슬그머니 밖으로 빠져나갈 생각인데 문득 종도의 침묵이 신경에 걸린다.

돌아본다.

종도 한손으로 얼굴을 가리고있 다.

그러더니 책상 앞에 주저앉는다.

얼굴에서 손을 떼는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종도 : 태수야 난 그저 아무 욕심 없어. 그저 이따위 영업부장 말구,

쪼끄매두 내 사업 하나 하구싶은 거, 그 거뿐이야.

그래서 우리 애들 눈치 안 보구 일하게 하는 거 그 거 뿐이야.


태수, 이런 눈물에는 익숙하지가 않다.

민망하고 난처해서 슬그머니 문을 연다.



# 48 옥상


밤의 서울 거리가 보이고 있다.

저 앞 산동네에는 꼭대기까지 다닥다닥 불빛이 채워져 있다.

태수, 난간도 없는 옥상 아래로 두 발을 드리우고 소주를 병째 한모금 마신다.

쓰다.

그 옆에 시무룩하니 앉아있는 진수. 아직도 얻어맞은 흔적.


진수 : 우리 어머니 소원이 국밥장사구먼요,

노점 말고 지붕 있는 가 게에서요. 이번에 보증금 내구 가 게 하나 빌렸슈.

나가 좀 보탰지라, (언뜻 자랑스러운 미소) 근데 고 것이 아무래도

어머니 혼자 힘으로는 어려울 것이라…


태수 : 그래 가서 도와드릴려구?


진수 : 형이 있어라하면 있고요.


태수 : 우리랑 있는 게 싫니?


진수 : 싫긴요 의리라는 게 있는디.

근데 좀 그런 점이 쪼께 있어라.

맞는 것도 싫고요이. 때려두 맘이 편칠 않어라.

성범이 형님 말씀이 건달해선 안 될 놈이 하면 그렇다든디…


태수 혼자 웃는다.

문득 주머니를 뒤져서 있는대로 돈을 꺼내 진수에게 준다.

진수, 말이 막힌다.

태수, 생각난듯 손목시계도 풀어준다.


진수 : 혀엉.


태수 : 식당에 그릇이나 사 주전자도 사고.


태수, 무뚝뚝하니 서울의 밤만 바라보고 있다.

진수, 더이상 말을 건네지 못한다.


진수 : 그럼 저 가요?


태수 앞을 바라본 채 고개를 두어번 끄덕 거린다.

진수 슬그머니 일어선다.


진수 : 아예 오늘 밤차 타구 갈까요?


태수 대꾸가 없다.

진수 두어걸음 가다가


진수 : 가자마자 연락허겄슈, 한번 와주실라요?


태수, 힐끗 돌아본다. 미소를 짓고 있다.

진수, 안 심이 되어 몇걸음 더 가다가


진수 : 광주 시내니께 터미널에서 얼마 안 멀어요.

오신다면 마중 나갈 거구먼요. …… 형 저 가요


앞을 보고있는 태수의 뒷모습.

끄덕 거리는듯 싶다.


(시간 경과)


이미 진수는 간 자리.

태수 혼자 소주병에 남은 술을 마저 마신다.

쓸쓸하다.

함성이 들리기 시작한다.



# 49 서울역 앞


낮. 함성소리가 계속되는 가운데

1-서울역 앞을 가로지르는 고가도로 위의 시민들 모두가 난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2-외신 기자들 카메라를 들고 뛴다. 그 옆으로 전경들 뛰고 있다.

3-남대문 앞 불 타고 있는 버스

4-플랭카드를 앞세우고 몰려오고 있는 또 한 대학의 학생들…

5-그리고 서울역 앞에 모여 앉은 학생들 노래하고

밤이 되어가고 있다.



# 50 윤 회장 집 전경



# 51 집 내부 복도


백민재가 안 내하여 들어온 장도식을 재희가 맞아들인다.



# 52 윤 회장 서재


재희 먼저 들어와 장을 안 내한다.

윤 회장은 서류를 잔뜩 쌓아놓고 전화를 하고 있다.


윤 회장 : 홍콩엔 내일 들어갈 생각이야, 준비시켜놔. 입찰 건은 떠들 필요없어.

내 말 알아듣겠나. 떠들어대지 말란 말이야. (수화기를 든 채 전화를 끊는다)


장도식 : (공손히 서서) 별고 없으십니까?


윤 회장 : 웬일이신가. 비상일 텐데

(전화 버튼을 눌러) 민 변호사 대.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장도식 : 따님 때문에 잠깐 들렀습니다.


재희 나가려다가 선다.

듣는다.


윤 회장 : 혜린이? 저 밖에 어디 있겠지.


소리 : (전화벨)


윤 회장 : (들어서) 어이 민 변호사.


장도식 : 학생들은 철수하는 중입니다.


윤 회장 : 이봐. 애들 철수했대. 길 뚫렸어. 당장 일루 와. (수화기를 탕 내려놓는다)


장도식 : 다들 학교로 돌아갔을 겁니다.


윤 회장 : 거봐. 나보단 장 선생이 더 잘 알면서 뭐 물어볼 게 있나.


재희 문고리를 잡은 채 듣고 있다.


장도식 : 오늘밤 일제 검 거가 있을 겁니다.

이번에 걸리면 저로서도 힘듭니다.

아시겠지만 사람들이 많이 바뀌었어요.


윤 사장 전화기를 든다.


윤 회장 : 오 사장 아직 연결 안 됐나 집에두 해봤어? (그러면서 재희 쪽을 슬쩍 본다.)


재희, 소리없이 문을 열고 나가고 있다.



# 53 밤. 대학교 학생회관 앞


철야농성으로 술렁이며 다니는 학생들….

그들 사이를 지나 회관 문으로 들어서는 재희.

양복 차림의 모습이 아무래도 눈에 띈다.

문을 나서던 학생 두엇 재희의 모습에 서로 시선을 교환한다.



# 54 학생회관 복도


재희 남학생들에 막혀 있다.

재희를 둘러싼 남학생들은 긴장하고 있다.


학생1 : 학생증 있어요. 우리 학교 학생이냐구요.


오가던 학생들 모두 이 쪽으로 보고 있다.

재희, 아무 말없이 막아선 학생을 뚫고 지나가려하지만 막힌다.


학생2 : (다가오며) 뭐야 누구야.


학생1 : 학생 아니면 여기 들어올 수 없어요. 소속이 어디에요?


학생2 : 프락치 아냐? 뒤져봐.


학생들의 분위기 험악해지고 있다.

그 때 재희, 저만치 혜린의 모습을 본다.

혜린, 재희의 모습을 확인하고 잠깐 멈칫해 있다가 외면하고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재희, 혜린의 의도를 안다.

만나고 싶지 않은 것. 만나도 설득할 수 없을 것.

학생2, 거칠 게 재희의 상의를 뒤지려한다.

재희, 노련하게 그 손을 뿌리치고 다른 학생들의 손길에서도 벗어난다.

학생들 멈칫 거리는 사이 재희 순순히 돌아선다.



# 55 밤. 교문 앞


서너명의 농악대 학생 땅바닥에 앉아 장단을 맞춰보고 있다.

북 채를 쥔 학생, 떠엉 북을 치고 나서 고개를 들다가 놀란다.

교문이 활짝 열리며 들어서는 헤드라이트도 켜지 않은 경찰차가 들어서고 있다.

그 뒤로 전경들이 떼로 몰려들어오고 있다.



# 56 학생회관 회의실


학생들 둘러앉아 회의를 하고 있다가 놀란다.

우당탕 문이 열리며 뛰어든 학생

학생1 : 도망쳐요.

그러나 이미 방으로 몰려들어오는 사복과 전경들…

닥치는대로 학생들을 때려잡는다.



# 57 복도


학생들과 경찰들 간의 추격전

방문마다 걷어 채여져 열리고 숨었던 학생들이 끌려나온다.

도망치는 학생들은 이내 잡히고 얻어맞고 끌려나간다.



# 58 회관 밖


창문을 통해 도망치는 몇 명의 학생 중에 혜린이 있다.

그러나 몇걸음 뛰기도 전에 전경과 사복 형사들 조에 걸린다.

사지를 잡혀 끌려가는 혜린.

그 모습을 나무 뒤에 숨어서 보는 시선.

시선은 집요하게 몸을 숨겨가며 혜린을 따라간다.

재희다.

아직은 주변에 경찰병력이 많다.



# 59 캠퍼스 일각


혜린, 다른 학생들과 함께 차에 실린다.

밖으로 문이 닫히고 전경들 밖을 지킨다.

또 하나의 차가 들어오고 차를 빼라는 신호들 시끄럽고 복잡한 와중에 오고가고.

운전석의 기사 시동 키를 돌린다.

(운전석과 뒷칸 사이는 막혀 있다.)

차를 빼려고 하는데 움직이는 차의 기사 쪽 문이 열린다.

뭐야 돌아보는 순간 대뜸 옷자락을 잡혀 끌려나간다.

시동이 꺼지며



# 60 차의 뒷칸 내부


잡혀있던 학생들, 차가 거칠 게 서는 바람에 넘어진다.

간신히 몸들을 일으키는데 잠시후 차가 급출발을 하는 바람에 다시 쓰러질 뻔한다.

혜린, 간신이 몸을 일으킨다.



# 61 차의 외부


출발해가는 차를 보고 전경들 당황한다.



# 62 뒷칸 내부


혜린 창살 밖으로 차를 쫓아오며 소리를 지르고 있는 전경들을 본다.

뭔가 이상하다.

혜린, 흔들리는 차에 중심을 잡으며 앞으로 간다.

칸막이 너머로 보이는 운전석.

조수석은 비어있고, 그리고 운전석에 있는 사내.

백밀러로 혜린을 보고 얼핏 미소가 스치는 그는 재희다.

버스는 전경들이 보초를 서고있는 교문을 통과하고 있다.

강렬한 헤드라이트 불빛 속에서 전경들은 학생들을 막는데만 관심이 있다.



# 63 새벽, 교외. 검문소 앞


검문을 기다리는 차들의 행렬

재희의 검은 승용차 그 줄에 끼어 기다리고 있다.

운전석에 재희. 뒷자리에는 혜린.

혜린 문득 보면 옷걸이에 걸려있는 혜린의 고급 자켓 .

내려서 위에 걸친다.

낡은 셔츠가 감춰진다.


재희 : 회장님 오늘 홍콩으로 가십니다. 당분간 집에 계시지요


혜린 : (검문하는 군인들에게만 신경을 쓰고 있다.)


재희 : 집에 계시는 게 좋을 겁니다.


군인들 바리케이트를 치고 차마다 검사하고 있다.

재희의 앞차는 허름한 트럭.

걸려서 옆으로 빠져 세워지고 있다.

재희 차를 몰아 앞으로 세운다.

고급 승용차를 본 군인은 경례를 붙이고 안 을 흘낏 거린다.

정갈한 차림의 기사와 뒤에 앉은 아가씨. 통과시킨다.

재희, 차를 출발시킨다.

혜린 허탈해서 웃음이 나온다.



# 64 고속도로 휴게소


세워져있는 차들…버스들…사람들…

혜린, 그 중의 한 버스에 올라타려다가 돌아본다.

재희가 예의 무표정으로 서 있다.

혜린, 다가와 입고있던 자켓을 만지작 거리며 우선 웃어보인다.


혜린 : 재희 다워. 어뜩 게 이 옷을 가져올 생각을 했어?

(정작 할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 그저 해보는 소리다)


재희, 아무 표정없이 헤린을 보고 있다. 혜린이 지금 생각하는 바를 읽고 있다.

혜린, 결심하고 자켓을 벗어 건네준다.

재희, 받지 않는다.


혜린 : (머뭇 거리다가) 구해주지 않는 게 나을뻔했어.

혼자 도망치는 건 참… 맘이 불편해. 집에 있는 건 더 그렇구.

우리 집은 너무 안 전하잖어. (눈치를 보지만)


재희 : (동요없이 보고 있다)


혜린 : 이해할 수 없겠지만… 혼자 안 전한 건 아주… 챙피한 기분이야,

이렇게 혼자 도망칠 때마다 난 같은 편이 아닌 거 같다구.

무슨 말인지 알아? 내가 사이비 같단 말이야.


재희, 잠시 혜린을 보다가 재킷을 받아든다

혜린, 안 심이 되는 기분이다,

재희의 한 팔을 잠깐 잡아 감사의 마음을 대신한다.

돌아서 달려가 버스에 올라탄다.

혜린, 자리를 잡아 앉는다.

창문 밖으로 재희의 모습이 보인다.

버스 출발해간다.



# 65 연병장 혹은 부대 주변


공수부대원들 특유의 강도 높은 훈련이 계속되고 있다.

--- 완전 군장의 구보….낙오된 자는 밧줄로 묶여 끌려가고…

--- 진흙탕 속에서의 육박전… 등 등



# 66 연병장


충정훈련(진압훈련)이 실시되고 있다.

일사불란하게 그리고 거칠 게 훈련은 계속된다.

각자가 손에 들고 있는 진압봉이 인상적이다.



# 67 낮 연병장 일각


트레이닝복 차림의 대원들,

이리저리 양지에 늘어앉아서 진압봉을 깎 거나 페퍼로 다듬고 있다.

박달나무로 정성스럽게 …

전라도 출신의 강 일병,

나무를 깎으며 후후 불어가며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옆의 우석에게


강 일병 : 이 거 봐라.


우석이 보면 강은 진압봉의 손잡이 부분에 姜이라는 한문자를 새겨놓고 있다.

우석 웃고 만다.


강 일병 : 우린 언제 나간다냐.


우석 : 어딜


강 일병 : 계엄 됐잖냐. 계엄하러 나가야지. 야 손하사가 그러는디,

계엄때 출동 나가면 끝내준다드만. 서울에 있는 대학에 주둔했었는디,

아 글씨 여대생들이 담너머루 구경함시롱 아저씨 아저씨 이라면서…

히히 말그대루 화려한 외출이라는 거 아니냐? 솔직히 우리 입대해서 외출 한번두 못나갔잖냐.

나가면 사고친다고.


우석 : 대학에 주둔한 대? 출동나가면?


강 일병 : 대학생을 막자고 하는 것이 계엄인디,

당연한 이야그 아니냐. 참 너도 대학 다니다 왔다고 했냐.


우석 : 어.


강 일병 : 나가 대학에 휴학계 낸 것이 일 년도 안 됐는디 참말루 요상허네이

나 인생에 대학시절이란 게 있었는가 싶다.

계엄이구 뭣이구간에 대학 구경이나 해봤음 좋겄다.


우석, 진압봉을 어루만져본다.

착잡한 기분이다.


강 일병 : (혼잣말처럼) 우리 학교두 데모 오지 게 하구 있겄네.

나 친구 중에 한놈이 서클에 장이여,

지금쯤 걸리지 않았으면 도발이치구 있을 것인디,

니 친구들 중에두 그런 놈 많지.


우석 : …하나 있어.


강 일병 : 요즘 하다가 잡히면 군대 보낸디야.

그렇게 찍혀서 가면 삼년 내내 오지 게 쳐맞는 거이고.


우석 : 여자야.


강 일병 : 뭐?


우석 : 여자라구. 데모하는 친한 친구놈이.


우석 선뜻 일어서 저만치 간다.

남은 강 일병,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은 채 건빵을 하나 입에 털어넣는다.



# 68 내무반


앞의 기분과 연결되어 우석 회상에 잠겨 있다.

불 꺼진 내무반. 다시 자리에 들어있는 병사들…

우석 돌아눕다가 옆자리의 강 일병을 보고는


우석 : 벗어.


강 일병 : 싫어.


우석 : 벗어 임마.


강 일병 : 싫어 어차피 또 비상일 걸 뭐.


우석 관두자하여 돌아누워버린다.

강 일병, 반대로 돌아눕다가 담요 밑으로 군화를 신은 발이 드러난다. 얼른 담요 속으로 감춘다.

그 때 문이 열린다.

모두 담요 속에서 움찔하는데 다시 문이 닫기더니 어둠 속에서 들리는 조용한 목소리


마 중사 : 누구야?


몇 명은 상체를 일으킨다.

불도 켜지 않은 상태에서 선임하사격인 마 중사가 술에 취한 채 버티고 서 있다.

구석 쪽에 계급이 높은 몇 명은 귀찮은 듯 돌아눕 거나 재미 있다는 듯 구경할 준비를 한다.


마 중사 : 느들 중에 사회서 대학물 먹다가 들어온 놈 다 나와. 누구야.


상체를 일으킨 우석, 시선이 마 중사와 마주친다.


마 중사 : 좋은 말 할 때 나와.


우석과 강 일병을 비롯한 네 명이 일어나 나가 중사 앞에 선다.

마 중사, 맨 끝에 서있는 우석의 앞에 와 서는가싶더니 그대로 정신없이 갈긴다.

겨우 진정이 되어


마 중사 : 느들 때문이야.

느들 대학생 놈들 때문에 나라가 이 모양이라고.

(패고) 느들 대학생놈들이 빨갱이를 끌여들이구,

빨갱이들이 이 나라 먹어삼키믄, 이 자식들아,

니들 대학 문전이나 구경할 거 같애?

(패고) 그리고 느들때문에 내 마누라 애 낳는데 나 집에두 못 가.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냐? 내 마누라가 혼자서 애 낳는다고. 이 자식아.


마 중사의 구타는 우석의 옆 강 일병에게 옮겨진다.


마 중사 : 말새끼 소새끼 다 대학생 하드니 … 똑바로 못 서.


그러다가 강 일병이 신고있는 군화에 시선이 간다.

강 일병 죽었다는 표정.

마 중사 어처구니없어 낮아진 음성.


마 중사 : 대학에서 배웠냐? 잔대가리 굴리는 법. 이 자식 이 거. (주먹을 치켜든다)

강 일병, 각오를 해서 눈을 질끈 감는데 소식이 없다.


슬쩍 눈을 떠서 보면 마 중사, 그대로 잠시 서 있다가 뭐라고 혼잣말로 욕을 중얼대더니

비틀비틀 침상에 가서 벌렁 드러눕는다.

강 일병 슬그머니 주저앉아 군화끈을 풀며 눈치를 본다.

우석, 코피를 슬쩍 닦으며 마 중사를 본다.

마 중사는 괴로운듯 한 팔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 69 광주 고속버스 정류장


광주고속 버스 한 대가 도착하고 내리는 손님들 그 중에 태수가 내린다.

기다리던 진수 반갑게 달려나온다.


진수 : 혀엉


태수, 진수의 머리를 거칠 게 쓰다듬어준다.



# 70 진수의 식당


국밥이 가득 든 뚝배기가 탁자에 놓인다.


진수 모친 : 나가 작업반장님 말씀은 많이 들었지라.


태수, 진수를 본다.

진수, 모친의 뒤에서 눈짓을 보낸다.


진수 모친 : 우리 진수가 공장 일 할적에 반장님이 뽀나스도 많이 주고

그 뭣이냐 친형처럼 보살펴주고 잠자리도 챙겨주고 나가 이 은혜를 워츠케 갚을꼬이


태수, 민망할 따름이다.


진수 모친 : 드셔보시오, 식당은 비록 신장개업이라도 솜씨만큼은 백년전통이여.

태수 밀리듯 국밥을 먹는다.


저만치 구경을 하던 열두살 댓살의 진수 여동생들,

태수와 눈이 마주치자 깨드득 웃으며 도망쳐들어간다.


진수소리 : 인사드려. 내가 얘기하던 태수형님이여.


마악 문을 들어선 고등학교 교복의 동생 명수, 태수를 향해 모자를 벗고 꾸벅 인사한다.

태수, 절을 받으려는데


진수 : 어허 삼십 도가 아니라, 구십 도여.


명수 : (다시 절을 하고는) 이만함 됐는가.


진수 : 그만함 됐구먼.


웃는 식구들

태수, 이러한 가족적인 분위기에는 익숙하지가 않다.



# 71 식당 앞 골목


진수 모친, 식당 앞에 세워놓은 입간판을 물걸레로 닦고 있다.

고만고만한 구멍가 게며 세탁소 등이 늘어서 있는 골목.

리어카 강냉이 장수 지나가고 그 뒤를 빈병을 든 아이 몇이 따라 달려가고 구멍 가게 앞에선

주인과 손님이 콩나물을 넣었다뺐다 실갱이를 하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 서로 장난을 치며 지나가고 평화로운 여늬때나 다름없는 서민들의 모습들…

그 위로 계엄 확대에 관한 라디오 뉴스가 들리기 시작한다.



# 72 변두리 다방


5월 18일

카운터의 아가씨, 라디오의 다이얼을 자꾸 돌리고 있다.

음악이 나오는 곳을 찾으려 하지만 잡히는 주파수마다 계엄령 확대와 대학 휴업령에 관한

뉴스만 방송하고 있다.

아가씨, 단념하고 꺼버리고,

스스로 노래를 흥얼 거린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진수소리 : 저 쪽에 빨간 옷 보이지요이.


카운터의 옆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주방에서 나온 커피를 받고있는 종업원 아가씨(연주)가 보인다.

빨간 웃옷을 입고 있다.

이만치 테이블에 마주앉은 진수와 태수,


진수 : (은밀하게) 이름이 연준디. 형 나 저 아가씨랑 결혼할라요.


태수, 못 미더워서 진수를 보고 연주를 다시 본다.


진수 : 잘 보라고요.

이런디서 일함서도 한번 웃는걸 못봤지라.

고 점이 맘에 꽉 들어부렀어요.

나가 콱 찍었구만요.


연주가 진수네 테이블로 오는 바람에 말이 끊긴다.

연주는 무뚝뚝하게 커피를 놓아주고는 가버린다.

진수는 딴 데만 보고 있다.

태수가 살피기에 전혀 진수와 아는 사이같지가 않다.


태수 : 싸웠냐?


진수 : 어이구 싸우긴요, 아직 말 한번 못 붙여봤어라.



# 73 다방 밖


나서는 태수와 진수, 웃어대고 있다.


태수 : 야 임마 (뭔가 말하려다가 멈춘다)


느닷없이 터져나오는 함성

[계엄철폐 계엄철폐 ]

골목길을 메우며 오고있는 학생들의 시위행렬….

진수의 입가에 경멸하는 표정이 지어진다.


진수 : 썩을 놈들… (태수를 끌어 학생들을 피해 가며 계속 투덜댄다)

아까운 돈 들여 대학 보내줬드만, 공부는 안 하고 제기… 학생 놈들이 저러코롬 설쳐대면,

우리 식당경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다고요.


순간, 지나치던 학생이 들고있는 피켓 모서리에 진수, 머리를 부딪힌다.


진수 : (불끈 피켓을 뺏어들더니 패려고한다)


태수 말린다.

소란스러움….

그러다가 학생들의 행렬의 움직임이 술렁 거린다.

선두로 가던 학생이 뒤로 도망치고 있다.

학생들 후다닥 오던 길로 다시 튀기 시작한다.

진수와 상대하던 학생들도 무조 건 뛴다.

태수, 진수의 팔을 끌어잡아 뛴다.

그 위로 자막

[1980년 5월 17일]



# 74 밤 군부대 전경


취침 시간 조용한 연병장



# 75 부대 상황실


헤드폰을 쓴 무전병 급하게 무전을 받아 적고 있다.

무전병, 종이를 당직장교에게 전한다.

종이를 읽은 장교 튀듯 일어나 급하게 모자를 찾아들고 방에서 뛰어나간다.



# 76 부대 내 복도


어둡고 긴 복도를 달려가는 장교.

그의 발자국 소리만 계속 들려온다.



# 77 내무반


잠들어있는 병사들…

문이 조용히 열리고 불이 켜진다.

순식간에 후다닥 일어나는 병사들문 앞에 서있는 중대장을 본다.

아직 명령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

잠깐 침묵이 흐르고


중대장 : (나직한 소리) 비상이다.



# 78 연병장


완전군장으로 모여있는 병사들…

이제까지 매일 계속된 비상 때와는 달리 모든 것이 조용하다.

중대장, 정렬해있는 병사들 앞을 걸어가며

잘못되어있는 군장들을 조용히 지적하고 고쳐준다.

각자의 배낭마다 비죽이 진압봉의 손잡이 부분이 삐져나와 있다.

그러한 조용한 분위기에 더욱 긴장감이 흐른다.

중대장이 자기 앞을 지나쳐가자 강 일병 못 참고 우석에게 속삭인다.


강 일병 : 드디어 나가네. 화려한 외출이여.


중대장 이 쪽을 돌아보는 바람에 강 일병 다시 부동의 자세를 유지한다.



# 79 일각


트럭에 내무반의 모든 물품들이 실어지고 있다.

텔레비전에 바둑판에 통기타까지 실어지고 있다.

나르고 있는 병사들은 어딘지 모르 게 들떠있는 분위기다.

강 일병 헐레벌떡 뛰어와 사진기를 내민다.


강 일병 : 여기 있습니다.


하사관 받아서 한 장 찍어주는 흉내를 내고는 집어넣는다.

그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흉내를 낸 강 일병 신이 나 있다.



# 80 일각


어둠 속에 병사들, 차례로 트럭에 올라탄다.

우석, 차례를 기다리다 돌아본다.

고급 장교가 탄 지프차가 어둠 속에 지나쳐가고 있다.

<6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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