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모래시계

<제4회> 모래시계

오늘의 쉼터 2018. 10. 15. 19:03

<제4회> 모래시계    



   

# 1 거리


기다리는 종도. 저만치 다가오는 승용차. 종도 얼른 피우던 담배를 던져버리고 맞이한다.

 이윽고 앞에 와서 멈추는 승용차. 뒷창문이 내려지며 얼굴을 드러내는 장도식. 종도.

깊숙이 허리를 굽혀 절을 한다.



# 2 카지노 호텔 앞


승용차가 서고 조수석에서 나온 정인재, 뒷문을 연다.

내려서는 노주명.


장도식 (소리) : 요번 전당대회 때 자네들과 붙었던 애들이 노주명이 애들이야.


노주명, 호텔 입구 쪽으로 가고 기다리던 젊은이들이 여럿 뛰어나와 정중하게 맞이한다.


장도식 (소리) : 노주명이가 이번에 큰 걸 물었어.

최동만 사장이 카지노 허가를 따냈는데 그 영업을 맡길 모양이야



# 3 호텔 복도


걸어가는 노주명과 그의 심복들. 지배인이 달려 나와 안내해간다.


장도식 (소리) : 카지노 그 거 괜찮지. 10프로 주식만 받아내두 자네 식구 이삼백 명은

호강시킬 걸.



# 4 호텔 특실


최 사장, 노주명을 맞이한다. 정을 비롯한 심복들을 뒤에 세우고 거만하게 앉는 노주명.


장도식 (소리) : 노주명이한테 카지노라… 호랑이한테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지.

그럴 수는 없어요. 왜냐. 나라적인 관점에서 볼 때 노주명이는 깡패 거든.

우리 편이 아니라구.


최 사장이 담배를 내민다.

노주명, 점잖게 사양하고 정에게 손을 내민다.

정은 재빨리 시가를 꺼내 준다.

시가의 냄새를 깊숙하게 맡고 입에 무는 노주명.



# 5 남산 일각


종도와 장도식. 장도식, 종도에게 무언가 말을 하고 종도, 깊이 고개를 숙인다.

거래가 성립된 분위기.



# 6 우석의 하숙집


가방을 들고 들어서던 우석, 놀라 선다.

부엌 앞 마당에 판을 벌려놓고 양념통들을 주욱 늘어놓고 요리를 하고 있는 태수.


우석 : 뭐하냐?


태수 : 이거 맛 좀 봐.


양푼에 가득한 돼지고기에 양념을 하고 있는 중이다.

태수, 양념 묻은 손가락을 내민다.


태수 : 돼지갈비야.


우석, 다가와 그 손가락을 핥아 맛을 본다.

고개를 갸웃하고 입맛을 다시고…


태수 : 어때?


우석 : 짜.


태수 : 짜?


우석 : 응.


태수 : 제기.


두리번거리다가 옆의 물을 쏟아 붓는다.

우석, 말리려지만 늦었다.



# 7 방 안


방안에 들여놓은 석유곤로, 그 위에서 구워지고 있는 돼지고기.

태수, 한 입 메어지게 먹으며…


태수 : 돈 생겼어. 많이 사왔으니까 많이 먹어. 공부 할려믄 체력이 좋아야지.


우석 : (먹어가며) 철들었네. 많이 컸어.


태수 : (소주 부어주며) 오늘 운전 쉬어라.


우석 : 안 돼!


태수 : (노려보다가 그 잔 들어 자기가 마시는데)


소리 : 이게 무슨 냄새야?


방문이 열리더니 들여다보는 혜린. 태수, 목에 걸려 얼른 자세를 바로 한다.


혜린 : 고기다.


우석 : 들어와 이 친구가 사왔어.


혜린 : (태수에겐 아랑곳없이) 고기다 고기. (들어서려다가) 아 나한테 쌈장 있다.

갖구올께 다 먹지 마.


부리나케 나간다.


태수 : (멍하니 있다가) 저 아가씨두…


우석 : 저 아가씨 뭐?


태수 : 가난하냐?


우석 : 식구는 많은데 단칸방에 산대. 아르바이트 해서 등록금 내구 방값내구 악발이야.


태수 : 여자가 쉽지 않겠다 야.


우석 : 어어 쟤 앞에서 그런 말 마.


태수 : 무슨 말….


우석 : 여자가 어쩌구 그런 말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어?


혜린 들어선다. 쌈장 내려놓으며 자리 잡아 앉으며 태수에게 대충…


혜린 : 잘 먹겠습니다. 야아 고기 너 본지 오래다. (먹기 시작하는데)


우석 : 여자가 그게 뭐냐?


혜린 : 뭐?


우석 : 좀 다소곳해봐 여자답게…


혜린 보지도 않고 자동적으로 옆의 책을 들어 우석의 등을 퍽 갈긴다.


우석 : 봤지?


태수 :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보고 있다.)


혜린은 잔에 남아 있던 소주를 들어 주욱 마시고 있다.



# 8 택시 회사 앞


택시를 몰고 나오던 우석, 난데없는 굉음에 놀라 차를 세운다.

오토바이를 탄 태수, 택시 앞을 싸고돌며 장난을 친다.

우석, 요것 봐라해서 잽싸게 차를 돌려 빠져나간다.

장난기가 가득해서 그 뒤를 쫓는 태수.



# 9 여관 앞


빈 트럭 두 대가 와 선다.

여관 문 앞에 몰려서 있던 건달들, 무슨 일인가 보면 트럭 앞에서 내리는 종도.

빠른 걸음으로 여관으로 들어선다.



# 10 길거리


택시를 잡는 승객.

우석, 택시를 그 앞에 세우지만 승객이 미처 다가오기 전에 승객과 차 사이를 가로막고 서는

태수의 오토바이.  부웅부웅 요란스레 엔진음을 낸다.

승객, 겁먹어서 비실비실 다른 쪽으로 간다.

운전석의 우석, 성질을 내려다가 태수의 장난스런 손짓에 그만 웃고 만다.



# 11 여관 특실


백민재 귀를 후비며 보고 있다.

그 앞에 선 종도,


종도 : 시간이 없습니다. 일본에 간 노주명이 내일모레면 들어온댑니다.

그 전에 일을 끝내놔야 하니까요.


백민재 : 성범이 형이 그렇게 말했단 거냐.


종도 : ……형님은 모르고 계십니다.


백민재 : 어째?


종도 : 태수 생각입니다. 만약 일이 잘못 될 경우 형님까지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고….


백민재 : (노려보다가 테이블을 퍽 치고 일어선다) 태수 불러와.


종도 : 태수는 최 사장 쪽으로 갔습니다.


백민재 : (버럭) 벌써 시작을 했다는 거야?


종도 : 태수는 백곰 형님두 빼고 싶어했습니다. 형님두 안전하게 뒤에 …


백민재 :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의 자식…


민재 다급하게 생각하느라 계속 방 안을 돌고 있다.

종도 눈치를 살피며 한마디 덧붙인다.


종도 : 태수 말이 아무리 기습이라지만, 상대는 노주명이 패라구…

절대 장담할 수 없으니까 형님들만큼은 안전하게 보호해야 된다구…

말씀드리지 말라는 걸…


백민재, 성질 오르는 대로 테이블을 걷어차 버리고는


백민재 : 우리 애들 몇이야?


종도 : 이백쯤 됩니다.


백민재 : 태수 이놈의 자식…(방문을 거칠게 열고 나가며) 노주명이가 뭐 어째. 등신 같은 놈….


백민재가 나가고 난 방안 에서 종도 조심스레 안도의 숨을 내쉰다.

옷깃을 바로잡고 손목 시계를 보고 뒤를 따라 나간다.



# 12 주택가 골목


번듯한 집들이 늘어서 있는 골목…그 중 한집의 대문으로 나오는 혜린.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이 깍듯하게 인사를 한다.


혜린 : 모레까지 그 문제 다 풀어놔야 돼.


학생 :


혜린, 손 흔들어주고 돌아서다가 흠칫 선다.

느닷없는 크랙션 소리.

저 앞에 서있는 택시. 운전석의 우석, 창문으로 고개를 빼어 손가락을 흔들어 보인다.

 혜린 어처구니없어 본다.

우석, 엄지로 뒤를 가리켜 보이며 나도 모르겠다는 표정.

 택시 뒤에 가려진 오토바이에 타고 있던 태수,

고개를 빼어보며 어정쩡하게 인사를 한다.



# 13 운동장


달리기 시합을 하는 혜린과 우석. 결승점에서 기다리는 태수. 혜린,

달리며 우석에게 질 것 같자 진로를 방해하고 서로 잡아당기며 달리는 둘을 보는 태수.

지겨움과 소외감…



# 14 대포집


학교 근처의 대포집.

마주치는 세 개의 술잔 태수, 자기 잔을 들어 마시다 보면 혜린 한숨에 다 마시고 있다.

옆 테이블에선 어깨동무까지 해서 몸을 흔들어 가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학생패들…

태수, 혜린에게 디스코를 가르친다. 진지하게 배우는 헤린.



# 15 윤중로


벗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길 셋이 걸어오고 있다.

혜린은 소주병을 든 채, 우석은 순대 봉지를 든 채. 셋 다 거나하게 취해있는 상태.

태수가 걸으며 디스코스텝을 해보인다.

혜린, 소주를 병째 들어 마시며 따라 해본다. 잘 안 된다.

우석이 들고 있는 순대를 한 점 집어먹으며 태수가 하는 모습을 잘 본다.

진지하게 가르쳐주는 태수와 배우는 혜린.

혜린, 우석에게도 해보라고 한다. 우석,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혜린 우석의 팔을 잡고 억지로 시켜본다.

그런 둘을 바라보는 태수. 아직 태수는 혜린에게 그렇게 친밀하게 들어가지 못하는 상태.

그렇게 걸어오는 세 사람. 어쨌거나 따뜻하고 우애로운 시간.



# 16 여관 마당


즐거운 여운이 남아서 들어서는 태수. 흔들거리며 들어서다가 문득 이상한 감.

주위는 조용하고 아이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 17 복도


빠른 걸음으로 들어서는 태수. 옆의 방문들을 열어젖혀본다.

어지러져 있는 채 다 비어 있다. 불길한 기분이 드는데 달려 들어오는 진수

그 뒤로 두어 명이 더 따르고 있다.


진수 : 아이구 형 을매나 기다렸다고요.


태수 : 애들 다 어디 갔어.


진수 : 어디로 가다니 거기로 갔지라.


태수 : 뭐야?


진수 : (태수의 기색에 점점 어안 이 벙벙해지며) 자정이 기습시간잉께 시방 고 근처 어디쯤…


태수 : (다급한 마음에 진수의 멱살을 잡아) 무슨 소리하구 있어 너 지금.


그 때 특실 쪽에서 하나가 뛰어나오며


사내 : 전화… 어 형님 오셨습니까. (절하고) 전화 왔는데요. 아직 안 오셨다 그랬는데.



# 18 특실


태수, 전화기를 왈칵 잡아든다.



# 9 공중전화


종도 주위의 눈치를 보며 낮게


종도 : 한번만 눈감아 줘. 내가 다 알아서 할께. 정보두 확실하구 …노주명이는 일본 갔어.

성공할 수 있어. 내가 잘 해보일께. 넌 그냥 사장 만나서 담판만 지어줘.

사장 있는데 진수가 알어. 제발, 태수야.



# 20 특실


태수 : 애들 델구 철수해. 두 번 말 안 한다. 어디야 당장 애들 델구와.



# 21 공중전화


종도 : 실패하면 니 손에 죽을께. 그럴 게, 태수야. (전화를 끊어버린다.)


달칵 걸려지는 전화기.

종도 벽에 이마를 댄다. 종도로서 이것은 크나큰 도박이다.



# 22 특실


태수 미칠 것 같은 심정이다.

그 뒤에 벙해서 서있는 진수. 태수, 그러나 어쩔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진수를 돌아본다.



# 23 카지노 앞


한밤중.

카지노 입구의 현란한 불빛.

입구를 지키고 있는 건달 패거리들….이만치 어둠 속 승용차 옆에 서있는 종도. 시계를 본다.

자정이 가까와지고 있다.

승용차에서 나오는 백민재. 그 역시 시계를 보더니 뒤를 돌아본다.

저 밑 어둠……

백민재 운전석에 앉은 사내에게 눈짓을 해보인다.

사내, 끄덕이고는 바로 차의 하이라이트를 켠다.

불빛은 입구를 정면으로 비춘다. 입구에 서있던 건달들 강렬한 불빛에 놀라본다.

동시에 다른 쪽에서 비추어지는 불빛들…

엔진 소리도 요란하게 어둠에 잠겨있던 트럭들이 달려 나온다.



# 24 카지노 내부

 

게임을 하던 손님들이며 딜러들 비명을 지르며 몰리고 있다.

백민재와 종도를 선두로 한 일행들이 닥치는 대로 부수며 들어서고 있다.

도망을 치려던 딜러 한 명이 백민재의 우람한 발에 걸려 넘어지고,

뒷덜미를 끌어올려져 맞고 나가 넘어진다

손님 한 명 그 와중에 칩을 끌어 모으다가 얻어맞고 넘어진다.

칩이 공중에 날린다.



# 25 호텔 복도


태수 진수 등과 들어서고 있다.

지키던 자들이 거침없이 전진하는 태수 등에 맞아 넘어진다.



# 26 호텔 특별실


포커를 치고 있던 몇 명의 신사들…

순간 문이 박차지며 망을 보던 사내 두 명 나가 뒹군다.

들어서는 태수 일행. 순식간에 양주 등이 있던 미니바가 박살이 난다.

겁에 질려 피하는 사내들 중에 한 사내 앞에 서더니


태수 : 최 사장님이십니까?


최 사장 겁에 질려 간신이 끄덕이자 태수, 두말없이 그의 목덜미를 끌어세운다.



# 27 카지노 내부


가까이 덤벼드는 사내 한 명을 잡아 치려던 백민재,

뒤통수를 의자로 얻어맞고 무릎을 꿇었다가 끄응 일어난다.

성이 나서 자신을 때린 놈을 찾다가 멈칫 굳는다.

카지노의 지원군 격인 사내들이 우루루 앞뒷문으로 몰려들고 있다.

전세는 역전되고 있다.

종도의 패거리들은 중앙에 포위를 당해 있다.

노주명의 행동대장인 정인재가 백민재의 앞으로 나선다.


정인재 : 너냐. 애들을 데려온 게.


백민재 : (입안으로 욕이 나온다. 더럽게 됐다)


정인재 : 꿇어.


정의 옆에 서있던 사내 한 명이 벌컥 각목을 들고 나오며


사내 : 무릎 꿇으래잖아. 이 자식들아.


백민재 옆의 아이들 저도 모르 게 흠칫 뒤로 물러나는데 입구 쪽에서 들리는 다급한 목소리


소리 : 부장님


정인재, 돌아보면 태수와 그의 수하 몇이 최 사장을 둘러싸다시피하고 들어서고 있다.

정인재의 주위 사내들이 벌컥 나서려는 것, 정이 팔로 막는다.

백민재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옆에 있던 종도의 옆구리를 쿡 찌르고


백민재 : 저 자식 왜 이렇게 늦은 거야.


정을 발견한 최 사장, 다급하게


최 사장 : 정 부자앙.


순간, 태수, 최 사장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최 사장, 더 소리를 내지 못한다.


태수 : 오늘 부로 여기 영업은 우리가 맡게 되었수. 여기 사장님께서 결정하신 거니까,

그리 아시우


최 사장은 주눅이 든 얼굴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다.

정인재, 성큼성큼 나선다.

정의 수하들 정을 따르려 하지만 어느새 종도의 패들이 그 가운데를 막아선다.

정은 고립된 형상을 개의치 않고 태수의 앞까지 나선다.


정인재 : 널 기억하겠다.


태수 : (빙긋이 웃어) 그날 많이 다치진 않으셨수?


정인재 : 지방에서 올라왔다구?


태수 : 시골놈들이요.


정인재 : 여긴 니들이 놀 데가 아니야. 돌아가라. 사장님 이리 오시죠.


최 사장 망설이며 태수의 눈치를 본다.

정인재, 한걸음 성큼 내딛는다.

순간 정의 뒤에 서있던 종도, 품에서 칼을 빼든다.

태수의 눈썹이 올라가며 사장을 밀치고 앞으로 나서려는.

그러나 이미 종도는 납작 엎드리는가 싶더니 칼이 번쩍한다.

무너져 내리는 정인재.

아직 한 무릎을 바닥에 댄 상태의 종도.

고통 속의 정. 그의 양발목 뒤의 피.



# 28 카지노 사무실


부러진 몽둥이가 바닥에 팽개쳐진다.

그 옆에 간신이 몸을 일으켜 한 무릎을 꿇은 상태의 태수.

이미 성범에게 엄청 얻어맞은 상태다.

방안에는 난처해서 구석에 서있는 백민재. 성범의 보디가드격인 일도.

그리고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종도.

성범 아직 분이 덜 풀린 상태로 서성대다가 손에 잡히는 대로 재떨이를 들어

태수에게 냅다 던진다.

태수, 피하지 않고 재떨이는 태수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는다.

주루루 피가 흐른다.

종도 찔끔해서 보지만 절대 나서지 않는다.


성범 : 얘길 해봐. 할말이 있을 거 아냐.


태수 : 잘못했습니다.


성범 : 뭘 잘못했어. 니가 한 짓이 그게 잘못하는 걸 알구, 한 짓이야?


태수 :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성범 : 술 갖구와.


종도, 재빨리 문가로 간다.

태수, 옆눈으로 종도 쪽을 본다.

문을 열려던 종도, 그 시선을 보고 찔끔하지만 아뭇소리 없이 문을 연다.

밖의 수하에게 지시를 하는 사이


성범 : (태수에게) 왜 그러구 있어. 일어나. 이젠 니가 두목 아냐. 두목이 왜 그러구 있어?


태수, 한 무릎을 마저 꿇어 두 손으로 바닥을 짚는다.


성범 : (담배를 찾아문다)


종도 재빨리 달려와 불을 붙여준다.


성범 : (그런 종도를 흘낏 보고) 너


종도 :


성범 : 칼솜씨가 좋다구.


종도 : (그저 고개를 숙이는)


성범 : 건달은 아무리 적이라도 동업자야. 이 무식한 놈이 동업자끼리 병신을 만들어?


종도 : 그 때 상황이…


성범 : (피우던 담배를 그대로 종도의 면상에 던져버린다)


종도 : (흠칫 입을 다문다)


성범 : 건달은 주먹을 써서 건달이야. 칼을 쓰면 그때부터 양아치야.


종도 : 죄송합니다.


성범 : 너 애들한테 아주 좋은 거 가르쳤어. 아무 때구 칼루 그어라. 칼이 최고다.

니 발목엔 칼이 안 들어갈 거 같아?


노크 소리와 함께 웨이터 차림의 부하 한 명이 양주와 안주를 담은 쟁반을 갖고 들어온다.


성범 : 소주 갖구와.


종도 : 얼른.


성범 : 니가 갖구와


종도, 잠깐…그러나 이내 순종하는 자세로 조용히 나간다.

성범 태수를 본다. 태수의 이마에 피.

성범 주머니에서 손수 건을 꺼내더니 양주병을 들어 적신다.

태수 고개를 들자 성범이 양주에 적신 손수 건을 건네고 있다.

태수 받아서 이마에 댄다.



# 29 호텔 로비


유리문 안쪽에서 보고 있는 종도.

그가 보는 곳에 태수와 성범이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 30 호텔 앞길


걸어오는 성범과 태수.

그 뒤를 거리를 두고 따르고 있는 승용차.

승용차 옆을 따라 걷고 있는 일도.


성범 : 상대가 누군지나 알고 시작한 거냐.


태수 : (끄덕인다)


성범 : 노주명이 십 년째 충무로를 잡구 있어.

야당애들하구 한통속이지만 정부에서도 못 건드리는 인물이야


태수 : 예.


성범 : 생각해봤냐? 장도식이라는 그치가 왜 느들을 앞세워서 노주명이를 치려구 하는지.


태수 : (생각해보다가 그냥 웃고 만다)


성범 : 속셈이 뭐든간에 이용당했다는 것만 알아둬.


태수 : 예.


성범 : 이제 어쩔 셈이냐. 노주명이가 가만 있지 않을 텐데.


태수 : (얼굴을 찡그리고 목운동 좀 하고) 이제 다른 길은 없어요,

형. 여기서 도망치면 노주명이는 끝까지 쫓아올 걸요.

도망칠 수 없다면 싸워야죠 뭐. (미소 짓고 있다.)


성범, 걸음을 멈춘다.

뒤를 따르던 차도 멈춘다.


성범 : 난, 이제까지 너란 놈을 잘 알구 있다구 생각해왔다.

그래서 한번만 더 묻자. 이번 일 정말 니가 시작한 거냐?


태수 : (물끄러미 보다가 고개를 숙이고 피식 웃더니 끄떡 거린다)

다신 이런 일 없을 거예요.


성범, 못미더워 보다가 뒤의 차를 부른다.

옆에 와 선 차에 타며


성범 : 노주명이 만만치 않아.


태수 : 예.


차가 떠나고 떠나는 차를 보고 선 태수.



# 31 서울 거리


택시의 차 안 에서 보이는 광경. 전경들이 한 떼 달려가고 있다.

길가로 시민들이 우왕좌왕 몰리고 전경 너머에선 최루탄이 터지고 있다.

밀리는 차들.

택시 운전석의 우석, 차를 돌려 옆의 골목으로 빠져든다.



# 32 골목


지나는 사람들 연신 기침을 해대고 있다.

중년 사내 둘이 우석의 차를 세워 타며 기침을 한다.


우석 : 어디로 모실까요?


사내1 : 에취 아무데로나 갑시다. 이런 제길…


사내2 : 수색으로 갑시다.



# 33 길


달리는 차 안 에서 뒷자리의 사내들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내1 : 박정희두 다 됐어.


사내2 : 박정희가 다 됐으면 어뜩하게.


사내1 : 박정희 아니면 대통령 할 놈 없을까베.


사내2 : 말조심해. 앞에서 들어.


백밀러 속의 우석의 얼굴, 피식 웃는다.


사내2 : 언놈이 돼 봐. 지금보다 잘 할 거 같애? 구관이 명관이란 말 몰라?


사내1 : 우리 아들 놈이 그러데. 아버진 역사의 방관자여.


사내2 : 먼 방광. 오줌 누는 방광?


사내들 낄낄 웃는다.



# 34 서울 밤 거리


가로등 불빛.

그 불빛 밑에 차를 세워놓고 책을 보고 있는 우석.

문득 시선을 들어 앞을 본다. 여관이며 술집의 네온들…

어느 술에 취한 남녀가 이쪽을 향해 부둥켜안고 오고 있다.

사내는 우석의 차를 발견하고 손을 들어 보인다.

우석 보던 책을 접어 옆에 놓는다.

법률에 관한 책이다. 시동을 건다.



# 35 거리 차 안


우석 계속 백밀러에 신경을 쓰고 있다.

뒤에서 들리는 소리.

거부하는 여자.

난폭한 남자.

백밀러에 언뜻 비친 남자의 얼굴은 젊다.

순간 남자가 여자의 얼굴을 때린다.

여자의 비명소리.

우석, 불끈해지며 차를 꺾는다.



# 36 파출소 앞

 

거칠게 브레이크를 밟아 서는 택시.

우석, 차에서 뛰어내리더니 뒷문을 열어 젊은 사내의 멱살을 잡아 내린다.


사내 : 뭐야, 이 자식 어어.



# 37 파출소 내부


입구 쪽의 아까의 여자, 찢어진 옷을 추스리며 불안해서 보고 있다.

박 경장, 책상 앞에 선 우석, 어처구니가 없어서 언성이 높아진다.


우석 : 뭘 더 얘기해요. 그 이상 얘기할 게 뭐가 있습니까?


박 경장은 어지간히 성가신 얼굴이다.


우석 : 저 자식이 내 차 뒤에서 그… 그러면서 여자를 때리구 어이구 나 참.


우석이 가리키는 쪽의 젊은 사내는 소장 옆자리의 소파에 앉아 재수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

소장은 전화를 하며 우석 쪽을 힐끔 거리고 있다.

전화를 하는 태도가 지나치게 공손하다.

우석, 뭔가 불안 해진다.


우석 : 나 빨리 회사에 들어가 봐야 돼요.

통금되기 전에 차를 갖다 줘야죠.

나한테 이럴 게 아니라 저 여자한테 물어보면…


(입구 쪽을 가리키며 돌아보다가 멈춘다)


여자가 있던 자리는 비어 있다.

후딱 서장 쪽을 보는데 전화를 끊은 서장은 사나운 얼굴로


서장 : 박 경장.


박 경장, 짐작했던 듯 일어선다.



# 38 유치장 입구


밀려져 들어가는 우석,

문이 닫히기 전에 돌아보면 아까의 젊은 사내가 소장에게 뭐라 말을 하며

거만스레 옷을 털고 일어나는 모습이 보인다.



# 39 유치장 안


통금에 걸린 사람들 몇이 우루루 들어온다.

만취한 사람이 쓰러지고. 그 와중에 같이 들어온 김밥 장사가 판을 벌인다.

우석은 그저 구석에 앉아 있다.



# 40 시간 경과 유치장 안


사람들이 우루루 나가고 있다.

송치되어 나가는 사람들이다.

우석은 그 자리에 그대로 그들을 보고만 있다.



# 41 파출소 안


아직 어두운 새벽.

우석, 순경에게 끌려나온다.

잠이 부족한 박 경장, 힐끗 보더니


박 경장 : 통금 풀렸어. 가봐.


우석 그대로 우두커니 서 있다.

라면을 먹던 순경.


순경 : 어이 너 법대생이래매. 법대생이 택시는 왜 몰아.


박 경장 : 안 들려!


순경 : 그러지 마요. 나중에 검사 영감 될지, 알아요? 어이 영감 되 거든 잘 봐주라.


우석 뚜벅뚜벅 박 경장 앞으로 오더니.


우석 : 법대생이라서 봐주는 겁니까? 아까 그 놈이 전화 한통화루 나간 것처럼요?


박 경장 : (못 들은척 옆의 신문을 펴든다)


우석 : 내가 법대생 학생증이 없었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 놈 대신 끌려들어가는 겁니까? 명예훼손죄 정도 붙여서요?


박 경장, 순간 신문을 우석의 얼굴에 팽개쳐버린다.

평소의 불만이 터진 기분이다.


박 경장 : 그래, 이 자식아. 니가 법대생이라서 풀어준다.

나중에 검사되거든 똑바루 하라구,

니 아들놈이 강간미수로 걸려들어가두 전화질하지 말라구 풀어준다 왜.


우석, 할 말을 잃었는데 라면을 먹던 순경 끼어든다.


순경 : 너 말하는 거 보니까 변호사하는 게 났겠다. 그 쪽이 수입이 좋대.



# 42 우석의 자취집


대문을 들어서던 우석, 마악 혜린의 방문을 나서는 여러 명의 남녀학생들과 마주친다.

밤새워 세미나를 해서 초췌한 모습들로 가방을 하나씩 끼고 나오고 있다.

그 중의 몇은 우석을 보고 인사를 건넨다. 혜린 그들을 마중하여


혜린 : 잘가 학교에서 보자.


대문을 닫고 우석을 돌아본다.

자기 방문 앞 툇마루에 앉아 운동화끈을 풀고 있는 우석.


혜린 : 웬일이야 외박을 다하구. 이차시험 며칠 안 남았잖아.

그렇게 자신 있어? (고개를 기웃해서 우석의 얼굴을 들여다보고는) 여자랑 밤새 놀았어?

왜 그렇게 지쳤어?


우석 : 여자 입에서 나오는 소리하군.


헤린 : 여자. 여자 입. 여자가… (관두고) 좋아. 나두 지쳤어. 토론은 나중에 하자구. (자기 방 쪽으로 가는 혜린을 보고)


우석 : 혜린아.


혜린 : 혜린이 아르바이트 갈 시간이야. (방문을 여는데)


우석 : 간밤에 나 어디 있었는지 물어 봐.


혜린 : (할 수 없다는 듯 돌아보고) 어디 있었는데?


우석 : 파출소


혜린 : (잠시 보다가) 그게 뭐.


우석 : 유치장 안에…


혜린 : 파출소 유치장 하루밤이 뭐. 그걸루 뭘 알어.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우석 : (그대로 기대앉은 채 우두커니 있다가 혼자 웃는다.)



# 43 병원 복도


노주명의 부하들 웅성거리며 여기저기 모여 있다.

하나둘씩 입원실 문을 쳐다본다.

문이 열리며 노주명이 몇 명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나선다.

부하들 길을 비켜주며 일제히 허리를 꺾어 인사를 한다.

그 사이를 침통한 얼굴로 지나쳐가는 노주명.



# 44 입원실 내부


마지막 하나 남았던 부하마저 나가고 문이 닫히고.

병실 침대에 정인재 혼자 누워 있다.

두 다리는 두껍게 붕대가 감겨 있다.

무표정하게 천정을 바라보고 있는 정인재.

꺼칠하게 자라난 수염. 눈가로 눈물 한줄기가 타고내린다.



# 45 사법고시 수험장


각각의 자리에 앉아 있는 수험생들.

각각의 책상마다 나눠지는 법전. 나눠지는 답안지…

우석의 자리에도 법전과 답안지가 놓인다.



# 46 주류 도매상


안에서 상점의 셔터문을 올리던 사내 둘 놀라서 본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듯 돌진해오는 오토바이 두 대.

사내들 셔터를 도로 내리려고 하지만 두 명의 오토바이 사내는

각각 한 사내씩을 맡아 끌어내버린다.

그 뒤로 기다리던 트럭이 후진하여 달려든다.

상점 안으로 그대로 후진해가는 트럭. 상점 안에 쌓여있던 술상자들이 박살이 난다.

오토바이 사내 중의 하나 헬멧을 벗는다. 태수다.



# 47 수험장


강단에 와 서는 감독관. 두루마리를 들고 있다.

긴장의 침묵…

감독관은 두루말이의 한 쪽 끝을 칠판에 붙인다.

시험문제가 보인다.



# 48 술집


드레스를 입은 아가씨들이 겁에 질려 한 쪽으로 몰려진다.

카운터의 마담, 태수와 종도 등에게 둘러싸여 두려움에 떨며 장부를 내어준다.

종도 장부를 받아서 펼쳐본다. 태수 위스키 병을 들어 상처난 손등에 붓는다.

고급 술집 안은 이미 태수 패가 장악하고 있다.

백민재는 벽에 걸려있는 추상화를 고개를 삐뚜름히 해서 보고 있고 진수는

안주를 공중에 던져 받아먹는다.



# 49 수험장


우석, 답안 지 가득 답을 써내려가고 있다.

조용한 자신감.



# 50 우석의 자취집 대문 앞


태수, 대문을 열어주는 혜린을 보고 잠깐 당황한다.



# 51 마당


혜린 수돗가로 오며


혜린 : 우석 씨 시험치구 있어요. 사법고시요. 모르셨어요?


태수 어정쩡하니 서 있다가 우석의 방문 앞 툇마루에 걸터앉는다.

혜린은 큰 양동이에 가득 들어 있는 이불 호청을 빨던 중이다.


태수 : (날짜를 세어보고는) 시험날짜 그저껜 줄 알았는데요.


혜린 : 이차 시험은 4일동안 계속 본대요. 내일까지 쳐야될 걸요.


태수 : 아.


태수 혜린이 이불을 빠는 모습을 본다.

커다란 이불을 손으로 빨고 있는데 솜씨가 영 서툴다.

태어나서 직접 세탁을 해보지 못하고 자랐다.


태수 : 안 가봅니까?


혜린 : (이불 빠는데 열중해서) 어딜요?


태수 : 시험치는 데요


혜린 : (태수를 보고는 그제야 말뜻을 알아 픽 웃는다) 오해하셨나보네요.

우리 애인 같은 거 아니에요


태수, 할 말이 없어 그저 물끄러미 혜린이 이불 빠는 것을 보고 있다가


태수 : 신을 벗어요.


혜린 : 네?


태수 : 신을 벗으라구요.


혜린 : (무슨 말인지 모르는데)


태수 : (주춤주춤 손짓을 해가며) 맨발루 들어가서 밟아요


혜린 못 미더운 대로 일어나 신을 벗고 잠시 망설이며 태수를 본다.

태수 손짓으로 들어가라고. 혜린 이윽고 들어가 이불을 밟는다.

이내 그것의 효과를 알게되자 만족하여 열심히 밟아대다가 태수를 보고 미소 짓는다.

태수 얼핏 시선을 피한다. 딴 데를 보면서 혼자 슬쩍 미소 짓는다.


(시간 경과)


태수 혜린과 이불을 맞잡아 물을 짜는 것을 도와준다.

혜린은 진지한 얼굴로 열심이다.


(시간 경과)


빨래줄에 이불을 너는 것을 도와준다.

이불을 펴서 널다가 문득


혜린 : 깡패같아요.


혜린은 태수의 손등에 난 상처를 보고 있다. 태수, 저도 모르게 손을 감춘다.

혜린은 웃고 있다. 태수, 그제야 혜린이 농담을 한 것을 알고 미소 짓는다.


혜린 : 다쳤어요?


태수 : 싸웠어요.


혜린 : 설마 (웃는다)


이불은 보기좋게 널렸다.



# 52 골목길


아르바이트를 가는 혜린. 돌아가는 태수 나란히 걷고 있다.

골목길이 끝나는 곳. 멈춰선다.


혜린 : 내일 아침 여덟시 전에 오면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엿 사오는 거 잊지 마시구요.


태수 : ….아 엿.


혜린 웃더니 자기 갈 길로 간다.

태수 잠시 혜린이 가는 모습을 보다가 돌아선다.

몇 걸음 걷다가 문득 멈춰선다.

후딱 골목 쪽을 돌아본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어쩐지 신경이 쓰이지만 그냥 간다.

태수의 모습이 사라지자,

아무도 보이지 않던 골목길의 으슥한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재희.

태수가 간 쪽을 본다.

한걸음 나서려다가 얼른 뒤로 다시 몸을 숨긴다.

재희, 보는 곳에 사내 둘이 태수를 미행하고 있다.

재희, 인상이 찌푸려진다. 저 건 또 웬놈들인가.



# 53 노주명의 사무실


태수를 미행하던 두 사내. 앞에 서있고, 노주명 사진을 보고 있다.

사진에는 태수의 모습이 박혀 있다.


사내1 : 이성범이는 거의 지방에 있습니다. 서울지역은 이놈이 맡고 있구요


노주명 : 이름이?


사내1 : 박태수라고 합니다. 내일 중으로 데려오겠습니다.


노주명 : 데려올 거 없다.


사내1 쳐다본다.

노주명은 말을 다 끝낸 듯 눈을 감고 뒤로 기댄다.

사내1, 무슨 말인지 알았다.

고개를 숙여 보이고 뒤로 물러난다.



# 54 길거리


빈병이며 고물이 들어있는 리어카 위에 얹혀있는 엿판.

엿장수는 가위를 대고 툭툭 쳐서 엿을 떼어낸다.

종이에 얹어 내어준다. 받아드는 태수.



# 55 길


(우석의 자취집으로 가는) 태수, 엿봉지를 들고 덜렁덜렁 걸어가고 있다.

이른 아침 등교하는 학생들이 이따금 종종걸음으로 지나쳐간다.

그리고 이만치 상당한 거리를 두고 태수를 미행하는 사내 두 명.

그 중 하나는 어제 미행했던 사내들 중의 하나이다.



# 56 우석의 자취집 앞


태수가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는 미행자들.



# 57 우석의 자취방


내미는 엿. 우석, 종이를 펴보다가 웃는다.


태수 : 엿 사다주래.


우석 : 누가?


태수 : 앞방 아가씨가.


우석 : 혜린이?


태수 : 지금… 있냐?


우석 : 누가 (하다가 웃는다) 없어. 새벽에 애들 가르치러 가.

(엿을 한입 떼어먹으며 필기구등을 챙긴다. 그러면서도 계속 웃음을 참지 못한다.)


태수 : (어색하게 방 한가운데 앉아 있다가 생각난 듯 두툼한 봉투를 꺼내 밀어놓는다)


우석 : (돌아서다 보고 웃음기가 가셔) 뭐냐?


태수 : 난 쓸데가 없어 너 써.


우석 : (태수의 앞에 앉는다) 그러지마.


태수 : (성가시다는 듯) 택시운전하지 마.


우석 : (웃고 잠시 생각하는)


태수 : (이불에 기대 누우며) 한잠 자구 갈랜다.


우석 : 태수야.


태수 : (눈을 감아 버린다)


우석 : 너 서울에 왜 왔는지 대충 짐작해. 이 돈 어뜩게 번 건지두.


태수 : 이 자식 이 건…


우석 : 너 언제까지 그럴래?


태수 : 받을 거야 말 거야.


우석 : 그런 돈은 받을 수 없어.


태수 : 관둬 그럼. (돈봉투를 채간다)


우석 : (뭔가 말하려는데)


태수 : 그만해애?


우석 한심해서 보다가 으이그 이불을 통째로 덮어씌워버린다.

물건 챙겨들고 나가려는데


태수 : (이불에서 얼굴 내밀고) 이름 쓰는 거 잊지 마.


우석 할수 없다는 듯 웃고 나간다.

문이 닫힌다.



# 58 골목길


시계를 보며 바쁘게 내려가던 우석, 문득 앞을 본다.

한눈에 보기에도 건달인 듯한 사내 여러 명이 빠른 걸음으로 올라오고 있다.

그들 지나쳐서 우석 운동화끈을 고쳐 매는 척하며 돌아본다.

안내를 하는 격의 사내가 우석의 자취집 대문을 가리켜보인다.

그들은 재빠르게 흩어져 잠복을 하는 위치를 정하여 몸을 숨긴다.

우석, 내키지 않는 걸음을 걷기 시작한다.



# 59 길 아래 쪽


우석 다시 걸음이 느려진다.

급하게 달려온 트럭, 좁은 골목 어귀에 멈추어서고 트럭 뒤에서 십수명의 사내들이 뛰어내린다.

그들은 기다리고 있던 한 사내의 안 내를 받아 우석이 내려온 골목길을 뛰어올라간다.

우석, 결국 걸음을 멈춘다.

시계를 보고 골목 쪽을 다시 돌아보고 그리고 옆의 골목을 본다.

그곳은 우석의 집 뒤 쪽으로 통하는 다른 길이다.

우석, 결국은 그길로 뛰어간다.



# 60 우석의 자취집 뒷집


대문을 열어주던 아낙. 급하게 튀어드는 우석에 놀란다.


아낙 : 아이구머니 이봐요, 누구야.


그러나 우석은 아랑곳없이 자기집과 연결된 담 옆 장독대로 뛰어오른다.


아낙 : (안 으로 뛰어들며) 아이고 여보오.



# 61 우석의 방


설핏 잠이 들었던 태수, 후딱 잠이 깬다.

우석이 소리없이 흔들고 있다.

뭐라 말하려는 태수의 입을 막아


우석 : 너 쫓기구 있니?


순간 대문을 거칠 게 두들기는 소리.



# 62 마당


튀어나온 태수와 우석. 대문을 열어주러 나왔던 안경 낀 자취생. 어리둥절하여 본다


우석 : 열지 마.


우석이 옆집으로 가는 담을 가리키고 태수 그리로 뛰는데 순간 대문이 박차지며

사내들이 튀어든다.

태수 담을 붙잡아 몸을 얹는다.

문득 뒤돌아보면 우석이 사내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다.


우석 : 당신들 뭐요?


사내들 담 위의 태수를 발견하고 저기 있다. 잡아! 소리지른다.

우석 맨 앞에 달려오는 사내를 몸으로 막는다.

태수 순간 망설인다. 

그때 태수 쪽을 돌아본 우석의 시선. 빨리 가라는 눈빛. 태수 담 너머로 몸을 날린다.



# 63 길


승용차의 창문으로 보이는 달려나오는 태수. 어느 가 게 앞에 세워져있는 오토바이를 본다.

아직 시동이 걸려있는 오토바이 옆에는 헬멧을 낀 청년이 가게 주인과 얘기를 하고 있다.

태수는 한 번 더 뒤 쪽을 돌아본다.

잠깐 갈등을 느끼고 있다.

그러다 에잇 오토바이에 올라탄다.

주인인 청년이 놀라 소리 지르며 달려올 때 쯤 태수는 이미 길을 벗어나고 있다.

그 모든 모습을 말없이 차 안 운전석에서 보고 있는 재희.

뒤늦게 건달사내들이 뒤쫓아 달려오고 있다.



# 64 사법고시 수험장 1

 

건물 정문 앞 우석 달려온다.

그러나 정문은 이미 굳게 닫혀 있다.

문 너머 저 쪽에 가고 있는 경비의 모습이 보인다.

우석 부르려다가 단념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 봐야 이미 늦은 것을 안다.

정문에 기대어 선다. 허탈함…



# 65 사법고시 수험장 2


시험을 치루고 있는 수험생들…

그 중의 한 자리가 비어 있다.



# 66 우석의 자취집 앞 골목


대문을 나서던 혜린 멈칫해서 본다.

거기 대문 건너편 벽에 기대서있는 태수.

혜린을 보더니 담에 기대었던 상체를 세운다.


혜린 : 왜 여기 계세요?


태수 : (여자와 말하는 것이 익숙하지가 않다) 저기….우석이가 아직 안 들어왔네요.


혜린 : 들어가서 기다리시죠. (대문을 열고 돌아보면)


태수 : 아닙니다. 여기 좋은데요.


혜린 : 우석 씨 일 끝내면 통금 다 돼서 와요.


태수 : 알구 있습니다.


혜린 어쩔 수 없다하여 가려는데


태수 : 어디 …가요?


혜린 : (돌아보면)


태수 : (말하다보니 캐물은 것 같이 됐다) 아니 내 말은 시간이 늦었는데…


혜린 : 그래서 빨리 가야 돼요. 통금되기 전에 가서 밤새야 되거든요.


태수 : 아아 (뭔진 모르지만 끄덕인다)


혜린 웃고 돌아서려는데


태수 : 저기…


혜린 : 네.


태수 : 대학생이 아니래두 …


혜린 : (보는)


태수 : 고등학교 중퇴래두 친구합니까?


혜린 : (보다가 웃는다. 웃고, 생각하다가 뭔가 말하려는데)


태수의 시선이 혜린의 등 뒤로 가 있다. 굳은 표정이다.

혜린 뒤돌아본다.

거기 어둠 속에 서있는 우석.


혜린 : 우석 씨


우석, 그제야 움직여 다가온다.

아무 표정이 없다.


혜린 : (어쩐지 당황스러운 기분) 내내 기다리셨어. 시험 잘 쳤어?


우석 : (대답이 없다)


혜린 : (좀 민망한 대로 태수에게) 그럼 갈게요.


혜린 우석을 힐끗 돌아보며 가고 우석, 태수는 보지도 않은 채 대문 앞까지 온다.

열려는데


태수 : 시험 어뜩게 됐어?


우석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돌아본다.

태수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본다.

표정 없는 우석의 얼굴에서 대충 짐작이 간다.

태수, 스스로에게 화가 나며 고개를 돌린다.

그렇게 잠시 끓는 속을 누르고 있는데 그 어깨에 와 얹혀지는 손.

돌아보면 우석이다.


우석 : 저녁 먹었니? 난 배고픈데.


태수, 그런 우석의 얼굴을 본다.

우석, 그렇게 태수의 어깨를 감싼 채 대문 쪽으로 간다.


<4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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