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모래시계
# 1 카지노 내부
비어있는 카지노 홀 조명이 꺼진 주변은 어둠에 잠겨 있고.
중앙 카드 테이블 주변만이 밝게 떠오른 상태. 테이블 양 쪽엔 윤재용과 정 사장.
정 사장의 뒤에는 그 수하들이 주욱 앉아 있다. 윤재용의 뒤에는 장근섭만 앉아 있다.
윤과 정의 옆에는 각각의 공증인이 서있다.
정의 옆에 있는 공증인, 정이 차용서류들의 확인 끝내길 기다리며
공증인 1 : 윤재용 씨 앞으로 작성된 정근섭 씨의 차용증 전부입니다.
이자 포함, 총 17억 5천 6백 2십만 원에 해당됩니다. 확인됐습니까?
정 사장 끄덕인다.
공증인1, 서류들을 봉투에 넣는다.
윤재용의 옆에 선 공증인 2, 윤 회장이 양도서류의 내용을 확인하길 기다리며
공증인 2 : 정근섭 씨가 소유하고 있는 카지노 지분 62퍼센트에 대한 권리를 양도한다는
서류입니다. 하자 없습니까?
윤 회장 끄덕이고 서류를 봉투에 넣어 내민다.
각각의 공증인 서류봉투를 들고 자리를 바꾸어 가져온 봉투를 윤과 정의 앞에 놓아준다.
테이블 옆의 중앙에는 딜러가 서있고, 그 옆에는 보스딜러가 서 있다.
보스 : 게임은 단판승부로 결정합니다.
승부에 관계없이 윤재용 씨는 모든 채권을 포기합니다.
단 윤재용 씨가 이겼을 경우 정근섭 씨는 카지노 지분을 양도합니다. 맞습니까?
윤 회장 : (끄덕인다)
정 사장 : 그런 셈이구만. (미소를 짓고 있다)
보스 옆을 향해 고개짓을 하면 한 명의 딜러가 카드 한 벌을 받쳐들고 온다.
보스. 카드를 집어 테이블 위에 놓는다. 딜러 카드를 주욱 펼친다.
양 쪽의 공증인 다가와서 카드를 검사하고 확인했다는 표시를 한다.
게임 시작. 딜러 양 쪽에 세 장씩의 카드를 나눈다.
윤에게 먼저. 정, 카드의 끝을 들어본다.
다이아 J, 다이아 10, 다이아 Q. 윤도 카드를 들어보더니 (카메라는 못보게)
스페이드 K를 뒤집어 놓는다.
나머지는 여전히 엎어져있는 상태. 정이 다이아 10을 뒤집어 놓는다.
딜러, 윤에게 스페이드 에이스를 보이게 놓아준다.
정에게는 다이아 에이스가 놓아진다.
딜러, 윤을 보면 윤, 테이블 가운데에 봉투를 밀어놓는다.
정을 보면 여전히 미소를 짓고 는 정, 자신의 서류봉투를 그 위에 던진다.
테이블 가운데에 놓인 두 통의 서류봉투. 딜러, 윤에게 한 장, 정에게 한 장을 밀어준다.
정, 새로온 카드를 합해서 그 끝을 뒤집어본다.
새로 온 카드는 스페이드 2. 정은 남은 세 장의 카드를 합해서 한 손에 쥔다.
건너편에서 자기 카드를 보고난 윤이 그런 정을 보고 있다.
정의 앞에 펼쳐져있는 다이아 10과 다이아 A.윤의 앞에 펼쳐져있는 스페이드 A와 스페이드 K.
정 사장 : 한판 승부라니 후회하지 않겠는가.
윤재용 : 공정한 게임이라면 후회 같은 건 안 합니다.
정 사장, 껄껄 웃더니 손에 쥐었던 세 장의 카드를 펼쳐 던진다.
스페이드2는 간곳이 없이 내놓아진 카드는 다이아J와 다이아 Q와 다이아 K.
윤, 정을 잠시 바라보고 있더니 앞에 엎어져있는 카드 석장을 그대로 내버려둔 채 일어선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절을 하고는 나간다.
그 뒤를 따르는 장근섭. 정 사장, 껄껄 웃으며 일어나 테이블 가운데에 놓인 서류봉투
두 개를 집어든다.
그러다가 문득 윤이 놓고간 세 장의 카드를 뒤집어 본다.
흠칫 놀란다. 카드 세 장은 클로바K와 하트 K와 다이아 K.
윤이 놓고간 다이아 K와 정이 던졌던 다이아K.정 사장, 윤이 나간 문 쪽을 후딱 돌아본다.
# 2 내부 거실
전축판 위에 바늘이 얹혀지고 왈츠곡이 흐르기 시작한다.
바늘을 얹고 돌아서는 윤필용. 자상하고 세련된 아버지의 모습이다.
거실 한 쪽의 식당. 식탁 위에는 생일상이 차려지고 있다.
가정부 이천댁을 도와 상을 차리고 있는 아들, 영재의 모습이 보인다.
영재는 열일곱 정도의 고등학생… 왈츠곡이 흘러나오자 이쪽을 보며 빙긋 웃는다.
# 3 혜린의 방
왈츠곡이 계속 흐르며…. 거울 앞에 앉은 단발머리의 열네 살 혜린에게 모친,
고운 머리띠를 둘러주고 있다.
혜린은 생일의 주인공답게 예쁜 옷을 차려입고 있다.
어두움은 모르는 화사하게 웃는 얼굴…모친 뒤로 물러나 보고 혜린 모친의 앞에서
한 바퀴 돌아 보인다. 문득 혜린 창 밖을 본다.
가로등이 비치고 있는 유리창으로 비가 점점 굵게 떨어지고 있다.
# 4 호텔 주변
깊은 밤.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다.
카지노를 알리는 사인만 어두운 밤에 빛나고 있다.
빗 속에 라이트도 켜지 않은 채 호텔로 향하는 언덕길을 올라오고 트럭 두 대.
그 중의 한 대는 카지노 입구에 와 선다.
비를 피해 안에 있던 카지노의 종업원 게으르게 나와서 문을 열다가 놀란 얼굴이 된다.
# 5 카지노 내부
트럭이 카지노 정면의 벽을 부수며 돌진해 들어온다. 내부의 손님이며 종업원들,
놀라 도망치고. 그 와중에 칩을 거두는 사람들의 모습…
# 6 윤의 집 식당
영재, 전등불의 스위치를 내린다.
어두워진 실내로 들어서는 윤 회장, 열네 개의 촛불이 켜진 케익을 들고 있다.
모친의 옆에 앉아있던 혜린의 행복한 얼굴…혜린의 앞에 놓여지는 케익. 혜린을
사이에 두고 양 옆에 부모. 혜린 힘껏 촛불을 불어 끈다.
우스꽝스럽게 튀어나온 혜린의 입술…순간 영재가
그 모습을 플레쉬를 터뜨리며 사진을 찍는다.
# 7 카지노 내부 일각
게임을 즐기던 손님들 비명을 지르며 양 쪽으로 달아난다.
빗물을 뚝뚝 떨구고 있는 흰 셔츠의 사내들 장근섭을 선두로 쳐들어오고 있다.
막아서던 카지노의 종업원들은 무차별로 얻어맞는다.
# 8 카지노 다른 일각
놀란 정 사장 수하들 몇 명에 둘러싸여 안 쪽의 입구로 피하고 있다.
그러나 안 의 입구에 도달하기 전에 그 쪽의 문이 열리며 역시 흰 셔츠의 사내들이
우루루 몰려나온다.
돌아가는 룰렛판 위로 종업원 하나가 던져진다.
# 9 윤의 집 식당
식사를 하는 가족. 모친 식사를 하는데 점차 숨이 가빠오기 시작한다.
모친은 심한 천식 환자다. 다른 식구들에게 감추려고 애써 참으려하지만 증세는 점점 심해진다. 윤재용이 먼저 눈치를 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부인을 부축한다.
남편의 품에 고꾸라지며 숨을 가쁘게 몰아대는 부인. 겁먹어 일어서는 영재. 혜린,
재빨리 전화기로 달려가 침착하게 다이얼을 돌린다.
윤재용 얼른 부인을 안아 올린다.
그 와중에 테이블의 식기가 떨어져 박살이 난다.
# 10 카지노 밀실
장근섭, 엉망으로 맞은 딜러를 앞으로 밀어낸다.
이미 장의 무리에 둘러싸여 있던 정 사장. 찌푸려진다.
정 사장 주위를 둘러본다. 그의 부하들은 하나도 없다.
정 사장 만년필을 든다.
# 11 윤의 집 안 방
의사와 간호사 진료를 마치고 방을 나선다.
윤재용, 잠든 부인의 이불을 조심스럽게 덮어준다.
전화벨이 울린다. 부인이 깰세라 윤, 재빨리 수화기를 든다.
잠든 부인 쪽을 다시 한 번 보고 수화기를 귀에 댄다.
윤 회장 : (낮은 목소리로) 나야.
듣다가
윤 회장 : 그래 수고했다. (전화기 옆의 탁상시계를 본다. 10시 칠팔분쯤 전이다.)
윤이 전화하는 모습을 열려진 방문 틈으로 복도에 서서 보고 있는 혜린.
혜린의 시선에 비친 아버지의 옆모습은 싸늘하게 굳어 있다.
어려서부터 혜린이 보아온 아버지는 언제나 그런 두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 12 호텔 밖
사이렌 소리도 요란하게 출동해오는 경찰차들…
그 경찰차와 엇갈려 장근섭의 트럭 두 대가 지나쳐간다.
트럭은 이내 비가 오는 어둠 속으로 잠겨버린다.
# 13 윤의 집 서재
윤재용과 혜린이 책상에 마주앉아 카드 게임을 하고 있다.
칩 대신 흑백의 바둑알로 하는 게임이다.
번갈아 카드를 받으며 내놓은 바둑알이 점차로 많이 쌓이고 있다.
혜린은 카드를 받을수록 점차 자신이 생기고 있다.
그런 혜린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윤필용. 그저 조용히 따라가 주고 있다.
혜린 자신있게 자신의 카드를 뒤집어 보인다.
마악 테이블 가운데의 바둑알을 쓸어오려는데 윤, 자신의 카드를 뒤집어 보인다.
실망하는 혜린. 윤, 바둑알을 자신에게로 쓸어온다.
혜린 아무래도 승복할 수 없는 표정. 문득 카드를 들어 뒤를 자세히 살핀다.
윤 회장 : 왜?
혜린 : 아버지 제 카드를 다 읽었죠?
윤 회장 : 아니 니 얼굴을 읽었지.
혜린 : (얼른 얼굴 표정을 굳힌다)
윤 회장 : 그래두 보여. (카드를 챙긴다)
혜린 : 역시 카드는 운이 좋아야 되나…
윤 회장 : 아무리 운이 좋아두 기술자한테는 소용없지.
혜린 : 속임수를 쓰는 거 말이죠?
윤 회장 : 손재주로 속이는 건 하급이야. 상대의 마음을 속이는 게 진짜 기술이지.
혜린 : (곰곰 생각한다)
윤 회장 : 그만 자야지.
그러나 혜린은 아직도 조금 전에 끝난 게임을 복기해보느라고 갸우뚱 거리고 있다.
윤, 혜린을 일으켜 어깨를 밀어 방에서 나가는데 종알대는 혜린의 목소리
혜린 : 아까 제가……패를 들었을 때요.
그때 배팅을 하지 않구 기다리기만 했다면 아버진 어뜩하셨을 거예요?
부녀가 나가며 불을 끄기 전에 잠깐 보이는 서재의 책상 위 의 사진들…
윤 부부와 혜린 영재가 함께 찍은 가족사진도 있고,
특히 혜린과 윤이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눈길을 끈다. 불이 꺼진다.
# 14 거리
학생복에 학생 외투를 입은 여중생, 혜린이 그 친구들 몇 명과 하교하고 있다.
그 모습을 차 안 에서 보고있는 시선. 그 또래의 아이들답 게 재잘대며 오다가 갈림길에서
헤어진다. 이제 혼자서 걷는 혜린을 서서히 이동하며 따르고 있는 검은 승용차.
혜린의 옆에 서더니 혜린을 가로막듯 문이 열리고 거구의 사내가 혜린을 막으며 나온다.
# 15 별장 거실
소파에 뉘어 있던 혜린 정신을 차린다.
눈을 뜨고 나서도 잠시 멍하다가 문득 후딱 일어나 앉는다.
방 안에서 다른 짓을 하고 있던 사내들 하나씩 혜린 쪽을 돌아본다.
당연히 울거나 소리칠 줄 알았던 혜린은 사내들을 주욱 둘러보더니
바로 앉아 흩어진 옷매무새를 다듬고 단발머리를 손가락으로 빗어 넘긴다.
사내들 어처구니 없다는 듯 시선을 교환한다.
그중의 사내1, 의자를 끌고와 마주 놓아 앉고는
사내1 : 걱정마라 꼬마야 잡아먹진 않을 거니까.
사내2 : 그거야 모르지. 갑자기 잡아먹구 싶어질지.
웃는 사내들.
혜린, 대꾸 없이 주위를 둘러본다. 안쪽의 문이 열린다.
사내들 벌떡벌떡 일어선다. 혜린 고개를 들어본다.
문으로 들어서고 있는 정 사장.
# 16 윤재용의 집
문을 박차듯 들어서는 윤재용과 수하 몇 명.
거실에 있던 장근섭과 몇 명의 사내들 벌떡 일어난다.
윤 회장 : 정 씨 짓인가?
장근섭 : 일곱 시에 다시 전화하겠다구 했습니다.
순간 윤이 걷어찬 테이블이 요란하게 나뒹군다.
윤 회장 : 그래서 전화나 기다리고 있는 게야?
장근섭 : 놈들 패거리 중 몇 놈을 잡았습니다. 있을 만한 곳을 알아보는 중입니다.
윤, 한 쪽 구석에 겁먹어 서있는 영재를 본다.
뚜벅뚜벅 다가가 어깨를 거칠 게 잡는다.
윤 회장 : 어머니한테는 암말 말아라. 절대루.
영재, 고개를 끄덕인다. 심약한 영재는 울 듯한 얼굴이 되어 있다.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얼른 수화기를 잡으려는 장을 윤재용 손을 들어 말린다.
벨이 여러 번 울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윤재용 천천히 수화기를 든다.
윤필용 :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윤재용이요.
# 17 별장 거실
정 사장 수화기를 들고 있다.
정 사장 : 나 정이네. 들었겠지만 따님이 여기 있어.
아주 대담한 아이구만. 마음에 들어. 하하하.
소파에 앉은 혜린이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 18 윤의 집 거실
수화기를 든 윤필용, 잠시 침묵하다가
윤 회장 :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 19 별장 거실
정 사장 눈짓을 해보인다. 헤린의 옆에 있던 사내,
그 앞 테이블에 있던 전화를 들어 혜린에게 내준다.
혜린 정 사장을 본다. 정은 아직도 수화기를 들고 있다. 대화를 들을 참이다.
혜린 수화기를 낚아채 귀에 대더니 다짜고짜
혜린 : 아버지 여기 전화 두 대에요. 저 아저씨가 듣구 있어요.
# 20 윤의 집 거실
윤필용, 감정을 억눌렀던 얼굴에 희미하게 미소가 피어오른다.
윤 회장 : 알고 있다. … 괜찮냐?
# 21 별장 거실
혜린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결국은 어린 소녀라 아버지의 음성을 듣자 긴장이 풀어지고 있다.
혜린 : 네
윤 회장 (소리) : 지금부터 아버지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혜린 : 네.
잠시 아무 소리가 없다. 수화기를 들고 있는 정 사장 귀를 기울이고 있다.
# 22 윤의 집 거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윤필용 이윽고 입을 연다.
윤 회장 : 너를 구해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듣고 있던 영재 놀라 본다. 다른 이들도 놀라본다.
윤 회장 : (계속) 이번에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너를 구해내면 다음에 또 너를 납치할 거다.
나는 어떤 요구도 들어주지 않을 생각이다.
# 23 별장 거실
정 사장 버럭 소리를 지른다.
정 사장 : 윤재용이. 니 딸을 죽일 생각이냐. 니 놈의 딸이야.
혜린의 옆에 있던 사내 재빨리 혜린의 수화기를 뺏는다. 혜린 멍한 얼굴이 되어 있다.
# 24 윤의 집 거실
윤 회장 : 딸이란 어차피 시집가면 남의 사람이 되지요.
일찍이 유학 보내고 시집갔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정근섭 (소리) : 이 봐. 야 이 자식아.
윤재용,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장근섭 : 형님.
영재, 울음이 가득 차 보고 있다가 이층으로 뛰어올라간다.
전화기를 누른 채 윤재용, 감정을 누르느라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
그 때 이층에서 들리는 혜린 모친의 비명소리 윤재용 번뜻 정신이 들어 돌아본다.
이층에서 뛰어내려오던 부인 서너 계단을 미처 내려오지 못하고 발이 걸려 구른다.
장근섭 재빨리 달려가 부축을 하는데 윤재용, 그대로 서 있다.
모친 : 여보 혜린이 혜린이가…
다시 천식 발작이 일어나고 있다. 그 뒤에 엉거주춤
겁먹어 서있는 영재, 윤재용 다가서는가 싶더니 그대로 영재의 따귀를 올려붙인다.
# 25 별장 거실
의자에 맞아 어항이 박살이 난다.
물이 엎어지면서 바닥에 떨어진 금붕어들이 펄떡 거린다.
정 사장, 아직도 분이 안 풀려서 씨근대다가 후딱 혜린을 돌아본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파랗게 질린 채 아직도 울지 않고 빤히 보고 있는 혜린.
정 사장 거칠 게 밖으로 나가고 직속 몇이 얼른 뒤를 따른다.
재희, 혜린을 돌아본다.
# 26 별장 외경 (밤)
눈이 쌓인 겨울
# 27 거실
페치카의 장작이 타고 있다.
거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내들 술을 마셔가며 포커판을 벌이고 있다.
자욱한 담배 연기…
탁 탁 규칙적인 소리가 들리고 있다.
구석 자리에 벽에 기대앉은 재희 야구공을 반대 벽에 던지고 받아서 다시 던지고 하는
동작을 되풀이하고 있다.
벽에 튀겨져 나온 공, 그러나 이번에는 재희의 손에 잡히지 않고 저만치 통통 튕겨져 간다.
재희 계단 쪽을 보고 있다.
사내2 슬그머니 안의 동료들 눈치를 보며 지하실로 향하는 계단으로 내려가고 있다.
재희 천천히 일어나 굴러간 공을 잡아든다.
표정이 없는 얼굴로 뭔가 생각하고 있다.
문득 거실 한 쪽에 놓인 전화기가 눈에 들어온다.
# 28 윤의 집 앞
앰블런스가 세워져 있고, 간이 호흡기를 씌운 혜린의 모친이 들 것에 실려져 집에서 나온다.
그 옆을 줄곧 따르고 있는 윤필용. 모친은 차에 실려진다.
윤재용, 차에 따라 타려는데 집 안 에서 급히 달려 나오는 사내. 윤에게 달려오며
사내 : 혜린이 별장에 있댑니다. 청평에 정 사장 별장이 있대요.
# 29 별장 외경
별장 일 층 아래로 지하실의 작은 창문이 보인다.
불이 꺼져 있어 어둡다.
# 30 지하실
뒤로 손이 묶여있는 혜린의 입에 억지로 재갈을 물리고 있는 사내2.
혜린 공포에 가득차서 몸부림을 쳐보지만 사내의 억센 힘에 나동그라진다.
어둠 속에 우둑 선 사내, 천천히 잠바를 벗어던진다.
공포에 찬 혜린의 눈. 사내 혜린의 위로 상체를 기울이는데 순간 털썩 혜린의 위로 넘어진다.
기겁을 하는 혜린. 사내, 순간 상체를 일으켜 뒤를 돌아보려하는데 다시 한 번 머리통을
얻어맞으며 옆으로 나가넘어진다.
나무 몽둥이를 들고 서있는 재희. 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은 사내. 재희, 정신을 잃은 사내를
주의깊게 살펴보고 나서야 몽둥이를 던진다.
혜린의 앞으로 다가와 앉는다. 혜린 겁에 질려 뒤로 물러난다.
재희 입에 손을 대고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한다.
재희, 혜린이 소리를 지를 것을 주의하면서 입에 물린 재갈을 풀어준다.
못미더워서 보는데 혜린은 소리를 내지 않고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재희를 똑바로 보고 있다.
재희. 혜린을 향해 뒤로 돌라는 손짓을 한다. 혜린, 순순히 뒤로 돌아앉는다.
뒤로 묶인 밧줄을 풀어준다. 밧줄이 풀리자마자 혜린은 껑충 저만치 떨어져 이쪽을 경계한다.
그러나 재희는 그런 혜린에 아랑곳없이 주위에 쌓여 있는 헌 가구들을 들어 문 앞으로
조심스럽게 옮긴다.
문의 안쪽에 엇갈려 쌓기 시작한다. 최대한 버틸 바리케이트를 치는 셈이다.
소리 나지 않게 작업을 해나가던 재희, 멈칫한다.
혜린이 가구 하나를 낑낑대며 옮겨와 내밀고 있다.
무뚝뚝하게 받아들어 빗장을 지르며 재희의 입가에 얼핏 미소가 스친다.
순간, 문을 두들기는 소리
소리 : 어이 뭐해 문 열어.
재희 재빨리 가구 하나를 밀어붙인다.
밖에서는 안의 심상치 않음을 눈치 챘는지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려 한다.
재희 몸으로 버틴다. 혜린도 달려와 재희 옆에서 버텨본다.
그러나 사내들 몇이 한꺼번에 밀어대는 힘에 역부족으로 잠시 후 문이 벌컥 열리며
앞으로 나동그라지는 두 사람.
# 31 거실
나가떨어지는 재희. 이미 엉망으로 얻어맞아 있다.
사내1, 쓰러진 재희를 다시 들어 주먹으로 갈겨댄다.
두 손을 뒤로 꺾여잡힌 채 어쩌지 못해 보고 있는 혜린.
사내1 : 이 쥐새끼 같은 놈의 자식.
재희의 머리통을 잡아 그대로 벽에 부딪힌다.
한 번 두 번, 맥없이 무너져 내리는 재희. 사내1 다시 멱살을 잡아 일으키는데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며 장근섭 일행이 달려 들어온다.
장근섭, 달려 들어온 기세 그대로 혜린을 잡고 있던 사내에게 달려들어 패대기를 쳐버린다.
나머지 별장의 사내들, 수에 눌려 도망쳐보려 하지만 하나씩 잡힌다.
뒤이어 들어온 윤재용.
윤 회장 : 혜린아. (두 팔을 벌리는데)
그러나 혜린, 부친을 힐끗 보더니 넘어져있는 재희에게 달려간다.
재희를 일으켜 앉히는 혜린. 그 주위로 별장의 사내들을 제압하고 있는 윤의 부하들.
윤재용 자신을 보지 않는 혜린을 보고 있다.
# 32 병원 복도
장근섭과 몇 명의 부하들 모여 있다.
이 쪽 중환자실 앞에 나란히 앉아있는 혜린과 영재. 혜린 번쩍 고개를 든다.
병실 문이 열리며 윤이 나서고 있다. 그 넋이 나간 얼굴이 안의 상황을 짐작케한다.
영재, 울음이 터지며 안으로 달려 들어간다. 혜린도 급히 그 뒤를 따른다.
중환자실의 유리 칸막이 너머로 모친의 침대가 보이고 간호사가 모친의 얼굴 위로
이불을 씌우고 있다.
유리에 매달려 우는 영재. 혜린, 금방 눈물이 흘러넘치며 울다가 뒤를 돌아본다.
아까 자신이 앉았던 의자에 앉아있는 부친. 두 손에 얼굴을 파묻은 채 꼼짝도 않고 있다.
# 33 윤의 집 정원
눈이 쌓여 있다.
# 34 내부
이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던 혜린 계단 난간 너머 보이는 거실을 본다.
머리에 는 아직 상장을 꼽고 있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부친의 목소리
윤 회장 : 다친 데는 어떤가.
재희 : 좋습니다.
헤린이 서 있는 쪽에서는 거실의 일부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혜린 계단을 내려와 거실 입구 쪽으로 다가간다. 숨듯이 서서 내부를 본다.
그동안 계속되는 부친의 목소리
윤 회장 : 그래 이름이…
재희 : 백재희라고 합니다.
윤 회장 : 나이가?
재희 : 열여덟입니다.
윤 회장 : 얘기 들은 적 있어. 정 사장 밑에 어린애가 하나 있는데 재주가 좋다구.
중앙에 앉아있는 부친과 그 옆 쪽에 앉아있는 장근섭이 보인다.
그들 앞에 서있는 재희는 혜린이 서있는 입구 쪽을 향하고 있다.
윤 회장 : 왜 그랬나? 그날 왜 우리한테 전화를 해줬지?
순간 재희 힐끗 혜린 쪽을 본다.
그 시선은 이내 윤 쪽으로 가는데 윤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는다.
윤 회장 : 어쨌거나 너로서는 배신을 한 거 아닌가.
재희 : ……
윤 회장 :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봐. 공부를 하고 싶다면 유학이라도 보내주지.
재희 : (대답이 없다)
윤 회장 : 돈을 벌고 싶나. 나한테 사업체가 몇 개 있어. 그 중에 어디라도…
재희 : 저는… (말을 끊어놓고 망설이다가). 저는 선생님 곁에 있고 싶습니다.
혜린, 벽 뒤로 반쯤 숨겨놓았던 시선을 슬쩍 빼어 부친 쪽을 본다.
부친은 장근섭과 무언가 나직하게 얘기를 하고 있다.
# 35 모친의 방
문을 열고 들어서는 혜린 이제는 비어있는 침대 옆 바닥에 영재가 앉아 있다.
넋이 나간듯 멍청한 얼굴이다. 헤린 그 옆으로 가서 나란히 침대에 기대앉는다.
오빠를 돌아본다. 여전한 표정… 혜린 오빠의 팔에 자기 손을 얹는다. 잠시 후
영재 : 내가 아니야. (영재는 줄곧 그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엄마는 아버지 때문에 돌아가신 거야.
나 때문이 아니야. 아버지 때문에 너두 납치됐던 거야.
아버지가 그따위 일을 하니까 그런 거야.
영재, 쿨쩍쿨쩍 울기 시작한다. 혜린 말없이 작은 팔로 오빠의 어깨를 감싸준다.
오빠의 어깨에 고개를 얹고…뭔가 깊이 생각하는 눈이다.
# 36 밤 정원
눈이 녹지 않은 겨울 밤의 정원. 어둠을 가르며 나무가지로 떨어지는 죽도.
재희, 혼자 검도 연습을 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 검도 선수를 지낸 완숙한 솜씨.
노리고 달려가 아래 윗 가지를 일발에 치고 지나간다.
# 37 윤의 집 앞
하교해 돌아오는 혜린. 집 앞에는 승용차가 두 대나 서있고,
그 주위로 사내들이 둘셋씩 모여서서 잡담들을 하고 있다.
혜린을 보고 아는 체하는 자도 있지만 혜린 새침하게 열려 있는 대문으로 들어간다.
감기가 들어 컹컹 기침을 한다.
# 38 집 내부
들어서는 혜린. 집 안에도 역시 여러 명의 사내들이 진을 치고 있다.
그 중에 재희도 있다. 시선으로 들어서는 혜린의 모습을 쫓는다.
혜린은 기침을 하고 있다. 그때 서재 쪽에서 들리는 박 사장의 외침
박 사장 (소리) : 윤 회자앙 이럴 수는 없네.
혜린, 계단을 오르려다가 서재 쪽을 보더니 그 쪽으로 간다. 재희 보고 있다.
# 39 서재 문 앞
열려 있는 문틈으로 혜린 안을 들여다본다.
윤 회장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육십이 넘은 박 사장의 모습만 보인다.
박 사장 : 한 달만 시간을 주어. 약속을 함세. 이보 게 윤 회장.
(노인의 말소리는 거의 울음이 섞여 있다)
노인 너머에서는 민 변호사가 노인의 애원과는 상관없이 서류를 작성하고 있다.
박 사장 : 내 이렇게 애원을 하네.
(그 자리에 무릎을 꿇는다) 이렇게 사정을 해. 자네 우리 아들놈 알지.
그… 그 놈 병원비 안 대주면 죽어. 한 달만 이보 게 한 달만 시간을 주어…
민 변호사 서류를 갖고 다가오더니
민 변호사 : 여기에 찍으시면 됩니다.
박 사장 : (절망에 노하여) 윤 회자앙
혜린 각도를 돌려 윤 회장 쪽을 본다.
책상 뒤에 앉은 윤 회장은 전혀 무심한 얼굴로 다른 서류를 뒤적여보고 있다.
뻐근한 목을 돌려 운동도 해가며. 그 동안도 노인은 소리지르고 있다.
박 사장 : 자네 나한테 이럴 수 있나.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 40 정원
교복을 입은 채로 혜린 그네에 앉아 조금씩 흔들고 있다.
문득 그네를 멈추고 보는 곳,
현관 쪽에서 사내 몇에게 질질 끌리다시피 박 사장이 끌려나오고 있다.
탈진하여 소리도 못 지르고 그저
박 사장 : 은혜를 원수로 갚아. 이 이 짐승만도 못한 놈. 이 이놈.
그러나 박 사장은 사정없이 대문 밖으로 끌어내져 밀쳐지고 그 뒤로 대문은 쾅 닫힌다.
혜린, 다시 그네를 흔들기 시작한다.
기침이 나오고 훌쩍인다. 그 어깨에 덮혀지는 쉐타.
재희다. 혜린, 재희를 힐끗 보고 다시 고개를 숙인다.
재희, 뭔가 말하려다가 그만두고 돌아간다.
혜린, 하늘을 본다.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있다.
(시간경과)
성인이 된 헤린, 그 그네에 앉아서 조금씩 흔들고 있다. 정장을 입고 있다.
코트를 든 재희(성인의 모습) 다가와 옆에 선다.
재희 : 기다리십니다.
혜린 끄덕이고 일어선다. 재희가 입혀주는 대로 순순히 코트를 입는다.
재희 고개를 기웃이 해서 혜린의 얼굴을 본다. 혜린, 돌아보면
재희 : 얼굴…
혜린, 그제야 굳었던 얼굴을 펴고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만하면 됐냐는 식으로. 재희 잠깐 미소 지어 보인다.
# 41 클럽 내부
정재계 인사들의 사교모임 클럽 중후한 소파들이 이리저리 놓여있는
홀 안에 정장의 중년 노년 사내들이 테이블마다 앉아 담소를 즐기고 있다.
젊은 여자들도 서넛 눈에 띄는데 늙은 거물을 따라온 애인들로 한 눈에 보기에도
요염한 모습들이다.
정장을 입은 웨이터들이 조용조용히 술잔을 나르고. 테이블 마다의 얘기들이 들린다.
얘기1 : 글쎄, 홀인원이란 걸 말루만 들었지 내 눈으로 본 건 처음이라니까요…
얘기2 : 박 의원은 안 돼. 공천 받자구 벌써부터 뛰는 모양인데 그 사람 라인을 잘못 잡았어.
어떤 라인을 잡느냐 이게 중요하다구.
얘기3 : 완전히 당했다니까. 김 회장 그 짠돌이가 입찰가 350을 쓸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
350. 상상이 돼요?
입구를 들어서는 윤필용 회장과 성인이 된 혜린. (스무 살. 갓 대학에 입학한)
둘 다 정장을 하고 있다. 그 뒤를 따르는 재희.
종업원에게 외투를 벗어 건네는 동안 안 서 오 사장 이쪽을 발견하고는 반색을 하여 다가온다.
오 사장 : 아이구 윤 회장님 웬일로 여기까지 나오셨습니까.
윤 회장 : (웃음으로 답례하고 혜린에게) 인사드려라. 오성 건설에 오 사장님이시다.
혜린 : 안녕하세요?
오 사장 : 오라. 이번에 대학에 수석 합격했다는 그 따님이신가.
윤 회장 : 과수석에 불과합니다. 하하.
오 사장 : 아이구 인재를 소개해야지. (자기의 테이블 쪽으로 가며) 여기들 좀 봐요,
누가 오셨는가?
윤 회장 : (그들을 향해서 웃는 얼굴로, 그러나 혜린을 향해 낮은 소리로)
저 가운데 앉은 이가 대동의 마 회장이다. 그 옆이.
혜린 : 박만재 의원이죠.
윤 회장 : 돈만 있다면 젖소 밑에도 들어갈 작자지. 재주는 있으니까
내 편으로 해두는 게 좋아.
혜린, 한 쪽에 앉아있는 여자를 본다.
여자는 나이든 신사의 담배불을 붙여주고 있다가 혜린과 시선이 마주친다.
윤 회장, 혜린의 시선을 보고 혜린의 등을 밀어 오 사장이 간 쪽으로 가며
윤 회장 : 태산의 손 회장이다.
먼저 아는 척 할 필요 없어. 강하게 보이면 지가 먼저 인사해올 거야.
재희는 문가에 자리를 잡아 그들을 지켜본다.
재희가 보는 시선에서 윤은 혜린을 거물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같은 장소 시간경과)
홀의 한 쪽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칵테일 바에서 혜린 쥬스 한 잔을 받아든다.
한입 마시며 뒤를 돌아보면 윤은 사람들과 한참 얘기를 나누고 있다.
옆을 보면 중앙 홀의 옆에 붙어있는 게임룸이 보인다.
# 42 게임룸
고급 당구대가 놓여 있고, 중앙홀보다는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
아마도 부친을 따라온 젊은 청년들이 더러 얘기를 하기도 하고 술을 마시기도 하고
다트를 던지거나 당구를 치고 있다.
당구를 치고 있던 청년1, 마악 들어서고 있는 혜린을 보고는 휘파람을 본다.
옆의 청년2에게
청년1 : 어떤 영감을 따라온 애냐.
청년2 : (진지한 눈으로 살펴보며) 신선한데.
청년1 : (청년2의 옆구리를 치며 킬킬 웃는)
혜린 순진하게 서서 방을 둘러본다.
여자가 하나도 없던 방에서 하나씩 둘씩 자신에게 향하는 청년들의 시선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 하다.
방 한 쪽 벽에 걸려있는 그림을 보더니 다가가 두어 걸음 앞에서 감상을 한다.
진품인지를 가려내기라도 할 듯 열심히 보다가 사인이 있는 쪽을 자세히 보는데 그 뒤에서
청년1 : 하이
혜린 : (돌아본다)
청년1 : 지금 막 게임을 시작하려던 참인데, 같이 하지 않겠어? (당구대 쪽을 가리켜보인다.)
혜린 : (그제야 주위를 둘러본다)
방안의 청년들 다 이 쪽을 보고 있다.
청년1 : 할 줄 모르시면 가르쳐줄 수도 있고.
그렇게 말하며 뒤를 돌아본다. 청년의 친구들, 응원하는 손짓.
혜린 : (청년1을 보더니 끄덕인다) 할 줄 알아요. 내기하는 거죠?
청년1 : (멍해서 혜린을 돌아본다)
(시간 경과)
당구대 옆에 둘러서있는 청년들 모두가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보고 있다.
혜린이 치고 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되고 있다.
어려운 공. 진지한 얼굴로 갸웃 거리며 재어보더니 친다.
성공한다. 아이처럼 기쁜 얼굴이 되어 당구대를 돌아간다.
보고 있는 청년1의 얼굴 일그러지고 있다.
청년1, 청년2에게 눈짓을 한다.
청년2, 끄덕이고 사람들 뒤를 슬그머니 돌아 혜린의 뒤 쪽으로 간다.
혜린 당구대에 상체를 기울여 공을 재어보고 있다.
주위의 청년들은 청년2의 행동을 눈치 채고 있다.
청년2는 혜린의 뒤에 서서 혜린의 큐대를 노리고 있다.
옆의 청년들 공범의 짓궂음으로 보고 있다.
뒤로 빼어지는 혜린의 큐대.
청년2, 마악 혜린의 큐대를 치려는데 그 손목, 누군가에게 잡혀진다.
재희다.
청년2, 잡힌 손목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재희, 서서히 그 손목을 꺾어버린다.
뒤의 상황은 전혀 모르는 채 혜린, 큐대를 날린다.
공은 목표하는 공에 멋지게 맞추어진다.
혜린, 이긴 것이다.
기쁜 얼굴이 되어
혜린 : 이겼어요. 주세요, 내기돈.
# 43 대학 캠퍼스
봄의 교정 스케치
# 44 게시판 앞
수위가 대자보를 뜯어내고 있다.
유신정권, 박정희 등의 글귀가 보인다.
# 45 강의실 앞 복도
혜린 강의실을 나서는데 저 앞의 복도를 정신없이 뛰어오는 청년,
운경. 혜린을 보자 다급하게 들고 있던 자기 가방을 무조건 맡기고는 뛰어가 버린다.
혜린 놀라서 그를 부르려다가 뒤쫓아오는 기관원 모양의 사내 둘을 본다.
혜린 저도 모르게 돌아서 강의실로 다시 들어가 버린다.
사내들은 운경이 간 쪽으로 뛰어가 버린다.
혜린 놀란 가슴을 진정하여 밖을 빼곰이 살펴보고는 운경이 맡긴 가방을 열어본다.
거기에는 유인물이 가득 들어 있다.
놀라 다시 닫았다가 열어본다.
한 쪽에서 학생수첩을 발견한다.
그 안에는 운경의 사진이 박힌 학생증이 들어 있다.
# 46 서클룸 복도
혜린 큰 가방을 멘 채 두리번거리며 방을 찾는다.
그 중에 한 방의 호실을 확인하고 노크를 한다.
안 에서 예 대답 소리가 들린다. 열고 들어서면
# 47 서클 룸 안
학생들 몇 바쁘게 뭐가를 정리하고 있다가 들어서는 혜린을 본다.
혜린 : 저, 여기 정운경 씨라고…
소리 : 난데요
보이지 않던 구석에서 바닥에 엎드려 뭔가를 하고 있던 운경이 고개를 든다.
혜린 : (반가와) 안녕하세요?
운경 : 누구시더라…
혜린 : 저 이거. (자신의 큰 가방 속에서 운경의 가방을 꺼낸다.)
운경 그제야 아아 생각이 난다.
혜린 가방을 건네주려 가까이 가다가 멈칫 선다.
운경은 바닥에 현수막을 펼쳐놓고 빨간 글씨로 뭔가를 쓰는 중이었다.
거기에는 유신 독재라는 글씨가 미완성으로 씌어지고 있었다.
운경 : 신입생인가 봐요.
혜린 : 네
운경 : 빨간 글씨에 놀라는 거 보고 알았어요. (씨익 웃는다)
# 48 옥상
학생 한 명 주위를 살피고 있다.
그 뒤로 모여 있는 대여섯 명의 학생들. 바쁘게 오가는 손길…
유인물 뭉치를 빠른 손길로 나누고 있다.
그 학생들 중에 혜린이 있다.
# 49 강의실
아직 수업이 시작되기 전.
열 명도 안 되는 학생들이 이리 저리 앉아 얘기를 나누거나 책을 보고 있다.
뒷문으로 들어서는 혜린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있다.
책상 사이를 걸어 앞으로 나아가며 재빠른 손길로 가방을 연다.
맨 앞에 앉아있던 학생 상체를 굽혀 가방에서 책을 꺼내는데 누군가 자신의 책상 옆을 지나간다. 상체를 들다보니 자신의 책상 위에 한 뭉치의 유인물을 올려져 있다.
그제야 보지만 앞문을 열고 나가는 혜린의 뒷모습밖에는 볼 수가 없다.
학생들 하나씩 모여들며 유인물을 들어 나누어본다.
# 50 교사 내
계단을 내려오던 혜린 아래층 현관 쪽에 서 있는 사내를 본다.
귀에 이어폰을 꼽은 사내는 한눈에 보기에도 형사로 알 수가 있다.
혜린, 메고 있던 가방을 슬쩍 열어본다.
아직도 한 뭉치나 남아있는 유인물… 잠시 망설이다가 가방을 닫고 자연스러운 발걸음으로
현관을 향해 나아간다.
이어폰에 손을 대고 무언가 듣고 있는 형사의 앞을 지나쳐서 밖으로 나간다.
# 51 윤 회장 집 앞
승용차가 도착한다. 재희와 혜린이 내리자 안에서 재빨리 한 사내가 뛰어나와 재희 대신
운전석에 오른다.
# 52 거실
나이 지긋한 신사들 몇이 얘기를 나누거나 신문을 보며 기다리고 있다.
그 안 쪽이 윤 회장의 서재.
혜린과 재희 거실을 가로질러 서재에 가가이 갈 무렵 서재의 문이 열리며 장도식이 나온다.
혜린 그다지 반갑지는 않지만 인사를 한다.
장도식, 특유의 비밀스러운 미소를 띄운 채 헤린을 위해 정중히 길을 비켜주고는 밖으로 나간다.
# 53 서재 안
윤 회장, 민 변호사가 보여주는 서류를 들추며 싸인을 하며 들어서는 혜린을 보고
윤 회장 : 장 선생 왔었다.
혜린 : 나가시는 거 뵈었어요.
윤 회장 : (민 변호사에게 서류를 넘기며) 내일 중으로 팔아넘겨.
팔수 있는 데까지 다 팔라구. 후딱후딱 조용조용히 알겠지?
민 변호사 : 예 (나가며 혜린을 향해 아는 척을 한다.
혜린이 어렸을 때부터 늘 윤 회장 옆에서 일을 해온 변호사이다)
윤 회장 : 장 선생 말이 그 뭐냐. 데모하는 학생들 명단에 니 이름이 있다는 게야.
뭐 이상한 서클인지에 들어 있다며.
혜린 : 공부하는 서클이에요.
윤 회장 : (책상에 있던 유인물 몇장을 들어보이며)
이 종이조각들이 다 그 서클에서 나왔다던데 맞냐?
혜린 : …네
윤 회장 : 관 둬. 내일 가서 얘기해. 관둔다고. 그리고 이름 빼. (얘기 끝났다는 듯 서류 들추는데)
혜린 :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요. (반항적이기보다는 순순한 얼굴)
윤 회장 : 어째?
혜린 : 좋은 모임이에요. 학교에서 못 배우는 것들을 배워요.
윤 회장 : 이를테면?
혜린 : 이 사회에 필요한 사람과 있어서는 안 될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다 보니 좀 그렇다)
윤 회장 : (혜린의 머뭇거림을 간파한다) 나 같은 사람은 어느 쪽이라고 하드냐.
혜린 : ….(고개를 들고) 후자 쪽이라고 배웠습니다.
윤 회장 : 이 유인물에 기생충이라고 한 게 그 뜻이냐?
혜린 :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윤 회장 : (전화를 들어) 오 비서 내일 우리 딸애 학교에 가줘야겠어.
가서 휴학계든 자퇴서든 내. 그리고 유학 보낼 거니까 알아봐.
미국이든 유럽이든 알아서 해. 결정되는 대로 보고하라고.
전화를 끊고 일을 시작한다.
혜린 잠시 보고 있다가 조용히 방을 나간다. 문이 닫히는 소리.
# 54 윤 회장의 집 앞
밖으로 나선 혜린 잠시 우두커니 서 있다. 씬 1과 연결이다.
재희, 급하게 나오다가 혜린을 발견한다.
재희 : 차 갖구 오겠습니다.
혜린 : (가려는 재희를 말려) 아니. 됐어 (그리고는 다시 생각에 잠겨 있다)
재희 : 바래다드리겠습니다.
혜린 : (미소로) 아니… 혼자 갈 거야. (돌아선다.)
# 55 우석의 자취집
방 옆에 붙어있는 간이부엌. 우석, 쌀을 씻다가 인기척에 돌아본다.
혜린이 문가에 서 있다.
혜린 : 안녕 나 이제 이 집서 살 거야.
혜린은 두 손에 하나씩 커다란 가방을 들고 있다.
우석, 멍해서 보는데 밖에서 들리는 주인여자의 소리.
소리 : 학생 이 쪽 방이야
우석 얼른 나아가 혜린의 옆으로 밖을 본다.
마당 건너 방의 문을 열어놓고 주인 여자가 부르고 있다.
여자 : 남향이라서 볕두 잘 들구 화장실도 가깝고.
보일러 논지 얼마 안 돼서 얼마나 뜨듯한데.
우석, 혜린을 돌아본다.
혜린 : 우리집 식구는 많은데 단칸방이야. 공부할려구 나왔어.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 구해줄래?
<3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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